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15화 (115/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2. 분열된 아이론을 집어삼켜라! (4)

제이론의 발표에 아이론은 서대륙 전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장 먼저 로테온이 발끈했다.

반제국파를 이용해서 제이론이 제국과의 뒷거래가 있다는 것처럼 몰아갔다.

그러자 반제국파에서 나왔던 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친제국파의 사람들 역시 제이론의 이러한 결정에 불만을 가졌다.

아무리 반제국파가 싫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자 성국과 로테온이 곧바로 반응했다.

「성국은 제국의 횡포에 저항한다! 교황의 소신 발언!」

「로테온은 아이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두 국가가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론의 마음을 잡아 보겠다고 여론전을 펼쳤다.

탈로스 같은 경우 서대륙 전체에서 여론이 안 좋았기에 전략적으로 이번 여론전에서는 빠졌다.

그러다 보니 상황은 제국에게 점점 안 좋게 흘러갔다.

이대로라면 제국과 제이론은 악의 축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제국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이론의 다수가 합의하지 않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

곧바로 제이론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적극 개입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제국은 신중하게 행동했다.

제국의 공식적인 발표 이후, 곧바로 황제가 나섰다.

“아이론 내부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 대화를 통해 평화로운 의사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제국의 황제가 직접 아이론 내부의 일은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내리자 아이론 내부의 의견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론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제국의 의지는 단순히 말만 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군대 역시 아이론의 수도에서는 전부 빠져서 국경 근처로 물러났다.

그러자 아이론의 내부 여론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제국이 물러났음에도 로테온은 미적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뭉개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수도를 점령할 기세로 조금씩 전진하기까지 했다.

사실 로테온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미 아이론 내부에서 반제국파가 거의 붕괴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도 물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장기전으로 가면 패배한다. 결단을 내려야 해.”

부관의 말에 피레스 공작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미 제국의 정보부가 로테온의 정보부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아이론 내부 사정 역시 제국에 기울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과 똑같이 행동해 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이젠 좋든 싫든 결판을 봐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로테온 내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상황을 보자고 합니다.”

“후…….”

이미 로테온에서는 군을 물리고 상황을 지켜보자고 의견을 전해 왔다.

하지만 꼭 따를 필요는 없었다.

전장에선 총사령관의 명령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결판을 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이미 피레스 공작의 의견은 확고했다. 성국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인지, 어떻게든 제국 북부군을 뚫고 별동대라도 아이론 내부에 진입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남은 건 탈로스뿐이었다.

서대륙 전체에서 배신자로 찍혔기에 힘든 상황인 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결단을 내려 주길 희망했다.

‘3국이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승산은 없다.’

이미 아이론의 주력군은 다시 회복한 상태고, 거기다 제국의 대부분의 정예군이 아이론 근방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탈로스의 군대가 필요했다.

“클레타 공작…….”

* * *

클레타 공작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피레스 공작.

그러나 피레스 공작의 바람과 달리 클레타 공작은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국왕 전하께서 군대를 빼길 원합니다.”

“지금 여기서 빼면 왕국에 미래가 있을 것 같소?”

“하지만 지금 군을 빼지 않으면 왕국 자체가 위험합니다.”

탈로스에서 온 내무대신의 말에 클레타 공작이 한숨을 쉬었다.

“알탄 후작도 같은 의견이오?”

클레타 공작의 물음에 내무대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이번에 결판을 내길 원합니다.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알탄 후작이 보기에 회군하지 않으면 보름 안에 중앙 지역도 위험하다 보고 있습니다. 결판을 내려면 그 안에 해야 합니다.”

내무대신의 말에 클레타 공작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보름?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시오?”

제국의 주력군과 아이론의 정규군을 상대로 보름 안에 어떻게 전쟁을 끝낸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내무대신을 보면서 클레타 공작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합니다.”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러는 것이오?”

클레타 공작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사 군도의 해적들이 탈로스에 대대적인 공습을 해 왔습니다.”

“아군이라면 해적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터…….”

“그사이 남부 해적들이 약탈을 시작했습니다.”

“허…….”

내무대신이 한숨을 쉬면서 말하자 클레타 공작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적 떼들이 국경선 근처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산적들도 들끓고 있습니다.”

“아예 서대륙에 있는 범죄자들이 죄다 자국에 몰려들고 있다 하시오?”

“맞습니다.”

“…….”

빈정거리듯 말했으나 내무대신은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물론 그중에는 제국 소속의 특수부대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로 인해 자국 내부가 어수선하다는 겁니다.”

“대체 그깟 범죄 집단에 이렇게 휘둘리는 이유가…….”

“그깟 범죄 집단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무대신은 제국의 군부대가 투입된 증거를 보여 주었다.

“이들이 어째서…….”

클레타 공작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국에서 유일하게 특수부대를 보낼 여력이 있는 남부군은 아이론 근방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이들이 탈로스 내부에서 활동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국의 국경선에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아 있을 겁니다. 그것도 보여 주기식으로 남아 있는 거겠지요.”

“설마 남은 병력을 전부 탈로스에 투입했다는 것이오?”

“알탄 후작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내무대신의 말에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1. 해적들로 인해 탈로스에 남은 병력 대다수가 남부로 빠졌다.(해적왕과 황제의 뒷거래가 있을 걸로 추정)

2. 그로 인해 비어 버린 국경선에 남부 사령관의 명으로 마적 떼로 위장한 남부군이 들이닥침.

3. 국경선이 혼란해지자 탈로스 군이 황급히 남은 병력을 마적떼를 막기 위해 투입.

4. 그로 인해 곳곳에 치안이 불안해지자 온갖 범죄자들이 들끓기 시작함.

남부 해적과 산적, 범죄 집단들이 탈로스로 모여드는 걸 보면 그만큼 탈로스의 현재 상황이 개판이라는 걸 뜻했다.

“총체적 난국이군.”

클레타 공작의 말에 내무대신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또 있단 말이오?”

“공국이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지금 로만을 막기에도 버거울 터…….”

클레타 공작이 말을 하다가 멈췄다.

현재의 공국은 사실상 제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상황.

“동부군 일부와 함께 우리 국경선을 치겠군.”

“그렇습니다. 로만의 군대 일부가 빠지면서 여유가 생기면서 병력 일부를 탈로스의 분쟁 지역으로 투입하고 있습니다.”

내무대신의 설명에 그제야 공작은 어째서 회군을 강력하게 요청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보름 안에 전쟁을 끝날 확신이 없다면 회군을 해야 했다.

“……알겠네.”

“송구합니다.”

클레타 공작의 결정에 내무대신이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 알탄 후작의 설명을 들으면서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알 수 있었다.

제국군이 뒤로 빠진 지금, 아이론의 수도를 점령하고 제국과 협상을 벌이든지, 아이론 전체를 장악하고 제국과의 대전쟁에 돌입해야 했다.

3국의 정예군과 싸우는 건 제국이라도 부담스러울 터.

흑마법사들부터, 내전까지 연이은 전쟁으로 힘든 지금만이 제국의 힘을 약화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애초에 기회를 안 주겠다는 거군.”

제국이 시간을 끌면 탈로스가 무너진다. 그럼 로테온도 무너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버티려면 여기서 회군하는 게 맞았다.

물론 지금 회군한다 해도 결국 탈로스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10년일 테지. 어쩌면 그 이전에…….’

그런 미래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생존을 위해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온 제국의 남부 사령관도 무서웠지만 가장 무서운 건 황제였다.

아이론에 자신들을 붙잡아 두는 사이 해적왕과 범죄 집단을 움직여 탈로스를 삼켜 버릴 계획까지 꾸민 황제의 계략에 치가 떨렸다.

만약 클레타 공작이 욕심을 부리며 회군하지 않고 아이론을 친다면?

“황제는 군 일부를 회군시켜 탈로스를 먹을 생각까지 갖고 있을 테지.”

이미 판은 깔아 둔 상태.

본진을 주고 아이론을 먹을 것이냐, 아이론을 포기하고 본진을 지킬 것이냐의 양자택일이었다.

어쩌면 아이론을 먹으면서 제국으로 하여금 서부에 집중할 수 있게 강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확률이 너무 낮았다.

“이 서신을 로테온에 보내 주게.”

“예.”

결국 클레타 공작의 선택은 도박보다 안정이었다.

국왕을 비롯한 대신들의 선택 역시 안정을 선택했고, 그렇다면 공작 역시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

클레타 공작의 서신은 곧장 로테온의 군대로 향했다. 서신을 받아 든 피레스 공작은 얼굴을 구겼다.

“후…… 망했군.”

회군을 결정한 클레타 공작.

분명 원망스러울 만도 하건만, 클레타 공작은 자국의 치부를 전부 피레스 공작에게 전해 주었다.

자신이었어도 이런 상황이라면 회군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돌아간다.”

“예.”

탈로스가 빠진 시점에서 더 이상 아이론에 남아 있는 건 이득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로테온 역시 남부 해적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제국의 그림자들이 로테온을 휘저으면서 막대한 자금이 소모되고 있었다.

결국 로테온 역시 회군을 결정하자,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성국 역시 제국과의 국경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리되는가?”

교황이 한숨을 쉬었다.

“송구합니다.”

태양검이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들어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6단계에 이른 대공이 자존심을 버리고 협공까지 하며 시간을 끄는 상황이었으니 마스터에 이르지 못한 태양검이 빠르게 그를 죽이고 돌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제국의 새로운 마스터라…….”

교황을 비롯한 마스터에 오른 이들이라면 알았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역사상 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마스터들조차 자괴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서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시카리오 후작이 그러했으니……

성국이 차디찬 북부에서 조금도 영토를 넓히지 못하는 것도 다 괴물 같은 시카리오 후작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황이 보기엔 대공가의 소가주가 시카리오 후작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미래가 어둡군.”

만약 태양검이 대공가의 괴물을 죽였다면 비록 전쟁에서 패했을지언정 큰 성과를 얻고 돌아가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도리어 그에게 경험을 더해 주고 말았다.

6단계에 이른 검사에게 생사를 건 전투는 다음 단계로 향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른 시간에 새로운 마스터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

거기에 아이론과 공국을 집어삼킨 제국이라면?

“서대륙 통일이라……. 쉽게 이루도록 둘 순 없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교황이 태양검을 바라보았다. 미래가 어두웠지만 발악은 해야 했다.

성국을 비롯해 3국이 새로운 마스터를 탄생시킨다면 제국이라도 쉽게 통일을 마음먹지 못하게끔 발악은 해 볼 수 있을 터였다.

“앞으로 태양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반드시…… 벽을 뚫겠습니다."

이를 악물면서 말하는 태양검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 교황은 새하얀 마차에 올랐다.

앞으로 있을 거대한 위협 속에 살아남기 위해 성국은 단단히 문을 걸어 잠가야 했다.

그리고 그건 로테온과 탈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론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상, 서대륙에 남은 3국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 준비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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