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2. 분열된 아이론을 집어삼켜라! (3)
제국의 모든 역량이 아이론에게 집중되기 시작하자 남부 왕국들 역시 더 빠르게 아이론을 점령하려 했다.
하지만 뭐든 급하면 탈이 나는 법.
남부 왕국들이 급하게 전쟁을 치를수록 반제국파의 이탈은 더 가속화되었다.
동시에 혁명 세력의 규모 역시 빠르게 커지면서 아이론 내부에 친제국파 인사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 갔다.
모든 상황이 제국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무렵, 황궁으로 안 좋은 소식이 들어왔다.
“폐하.”
카리엘에게 북부에서 온 서신을 전하는 타리온.
까마귀를 통해 다급히 보낸 서신을 읽는 순간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미친! 타리온, 지금 당장 그림자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가라.”
“예!”
“시종장…… 아니 군부대신 불러!”
카리엘의 다급한 목소리에 타리온이 황급히 나가서 군부대신을 호출하라고 지시하고는 사라졌다.
「북부 방어선 뚫렸음.
북부군 주력 병력은 성국에 묶여 있음.
성국의 별동대가 제국을 통과해 아이론으로 진입할 예정.
별동대 수장은 태양검.」
북부 방어선 일부가 뚫리면서 성국의 정예들이 아이론으로 향했다.
황급히 집무실로 온 군부대신에게 서신의 내용을 보여 주자 그가 빠르게 파악하고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별동대를 이끄는 자가 태양검이라면 성국의 정예들로 꾸려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부군에게 지금 알린다면…….”
“아시다시피 서부군의 주력은 아이론에 있습니다. 서부 지역에 부대들이 남아 있긴 합니다만 별동대를 막긴 역부족일 것입니다.”
군부대신의 말에 카리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별동대가 아이론에 진입하면 어떻게 되지?”
“정부군의 뒤를 치게 될 것입니다. 요새들 중 한곳만 별동대에 무너져도 연쇄적으로 전선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주요 요새들을 통해서 남부 왕국들의 군대를 막고 있는 정부군은 수도를 중심으로 요새를 이어서 전선을 만들어 놨다.
그곳 중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수도까지 길이 뚫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9할 이상 지원군이 오기 전에 아이론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서부에 알려.”
“그리하겠습니다.”
“후…… 그림자들이 갈 때까지 버텨 줄까?”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한 군부대신이 서부군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폐하!”
“뭔가 생각났나?”
“대공가! 대공가가 있습니다!”
“대공가의 주력은 소가주와 함께 아켈리오 경과 있을 텐데?”
카리엘의 말에 군부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사옵니다. 하오나 폐하, 대공가엔 그동안 지원해 준 것으로 인해 새로이 기사가 된 이들이 여럿 있을 것이옵니다.”
“아직 부족할 텐데…….”
“기존에 그들을 키운 베테랑들도 있을 것이니 해볼 만하옵니다.”
서부에 남아 있는 부대들과 대공가의 기사들이 힘을 합친다면 시간 정도는 끌어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부족할 텐데?”
성국의 최정예들로 구성되었다면 병력이 부족한 건 둘째 치고 질이 너무 떨어졌다.
웬만해선 그냥 돌파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먼저 아이론에 연락해서 별동대가 아이론에 진입할 것을 경고해야 합니다.”
“그쪽에 병력이 남아 있었나?”
이미 아이론의 정규군은 죄다 남부 왕국들을 막기 위해 동원되었다.
북쪽은 제국에게 맡겨 놓겠다는 듯, 모든 병력을 남쪽으로 긁어모은 것이다.
“혁명 세력과 반정부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별동대의 침공을 알리면 될 겁니다.”
“후…… 좋아. 만약 그들이 방어선을 구축한다면?”
“그들이 방어선을 구축할 때, 저흰 서부군을 한데 끌어모아야 합니다. 애초에 합류 지점을 아이론으로 하시옵소서.”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까지 박박 긁어모아 아이론의 병력과 함께 전선을 만들어야 했다.
“후…… 가능할까?”
“해야 하옵니다. 일단 서부는 완전히 비워 두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병력 손실이 일어나지 않게끔 서부를 비우고 모든 병력을 아이론에 집결시킨다는 군부대신의 말에, 카리엘은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어서 움직여.”
“예! 폐하.”
카리엘의 명령에 다급하게 사라지는 군부대신.
그가 대공과 서부군에 연락하러 가는 사이 카리엘은 지원군과 함께 움직이는 소가주에게 연락했다.
마법사를 통해 통신을 연결했으나, 급속 행군 중인지 한참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30분 가까이를 기다린 끝에 마침내 연락이 닿았다.
통신구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카리엘이 다급하게 말했다.
“글렌!”
-예, 폐하.
“지금 당장 대공가로 가게!”
-예?
갑작스러운 명령에 멍청하게 되묻는 글렌.
그런 그에게 카리엘이 빠르게 사정을 설명했다.
“별동대를 막기 위해선 대공가의 정예 기사들이 필요하다. 대공과 서부군이 시간을 끌겠지만 역부족일 거야. 그들을 살리려면 최대한 빨리 도착해야 한다.”
카리엘의 명령에 다급히 대답을 하고는 곧장 기사단을 이끌고 서부로 향했다.
“후…….”
다급히 모든 명령을 마친 카리엘은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것만 막으면 돼.”
성국의 도박 수.
이대로 있다간 아이론이 제국에 먹힐 것 같자, 성국 입장에서도 온 힘을 다해 도박한 것이다.
남부 왕국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국 역시 국운을 걸고 아이론 내전에 참여했기에 정예만을 모아 별동대를 꾸렸다.
이제 승리의 향방은 성국의 별동대가 아이론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에 따라 나뉠 것이다.
“부디…… 막아 주기를…….”
간절히 기원하던 카리엘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서부군이 버틸 것을 예상하며 중앙군에 남은 기사들을 긁어모아 빠르게 서부로 급파했고, 마법사들 역시 지원했다.
* * *
그렇게 중앙에서 성군의 별동대에 빠르게 대처할 때, 군부대신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대공가는 서부군을 규합해 곧바로 아이론으로 향했다.
대공을 중심으로 서부에 있는 모든 병력이 집결하자 곧바로 아이론으로 향했다.
별동대가 공격해 올 예상 지역을 향해 이동하자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론의 병력이 제국군을 요새로 안내했다.
전선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
본래 견고했던 요새는 대부분의 병력이 빠져서 텅 비어 있었다.
그곳을 소수의 아이론군과 여기저기서 합류한 혁명 세력, 그리고 반정부군이 채우고 있었다.
본래라면 함께할 수 없는 이들이지만, 외세의 침공에 대항한다는 대의 아래 한데 모여서 싸우고자 하는 것이다.
“지휘는 대공께 맡기겠습니다.”
“고맙네.”
자신에게 지휘를 맡긴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력을 지휘해 요새를 정비했다.
가지고 온 마도포나 폭탄들을 곳곳에 설치하고 별동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온다! 모두 전투준비!”
듀칼의 명령에 제국의 병력들이 일제히 자리를 잡았다.
멀리서 나타난 별동대에 마도포를 발사하고 폭탄을 날리는 것을 시작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막아라! 버텨야 한다!”
대공의 명령에 모두가 이를 악물고 요새를 향해 뛰어드는 성기사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대부분 정예군이 아니다 보니 정예 성기사를 막기란 쉽지 않았다.
대공가의 기사단조차 대다수가 신입 기사들이었기에 요새 내부로 들어서는 성기사들은 점차 많아지기만 했다.
그나마 숫자와 화력으로 어떻게든 버텨 보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저자는 내가 상대하지.”
어느새 성벽 위로 올라온 태양검이 대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쾅!
“크윽!”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듀칼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태양검.
비록 흑마법사들로 인해 몇 차례나 굴욕을 당했던 그였지만 성국의 2인자라 불리는 무위를 가진 자답게 매우 강력했다.
그나마 6단계 이른 듀칼이기에 대적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스터에 다가섰군.’
그렇게 생각한 대공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마스터에 가깝다는 태양검의 평가는 진실이었다.
그동안 흑마법사들을 베고 몬스터들을 수없이 베어 내면서 태양검의 검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 덕분에 마스터라는 지고한 경지까지 코앞에 다가선 상황.
그렇기에 시종일관 밀려나는 듀칼이었으나, 끝끝내 태양검의 공세를 견뎌 냈다.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대공가의 기사들이 함께 태양검의 검을 받아 냈다.
비록 실력은 부족하지만 숫자는 많으니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명예도 없나?”
“명예 따위가 사는 것에 비할까.”
그렇게 대꾸한 대공이 자세를 잡고 기사들과 함께 진형을 구축했다.
그러자 태양검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러났다.
어느새 다수가 몰려들어 성기사들을 압박하는 통에 조금씩이지만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러나서 정비한 후 공격을 재개한다.”
“예!”
태양검의 명령에 일제히 요새를 빠져나가는 성기사들.
그들이 재정비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공격은 곧바로 그날 저녁 재개되었고, 또다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누적되는 피해는 제국군과 아이론의 군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성기사들은 신성력으로 자체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회복한 후 다시 전투를 치를 수 있는 그들과 달리 방어하는 쪽은 부상을 입는 즉시 전력 이탈이었다.
전투가 반복될수록 점차 불리해져 가는 상황.
결국 몇 번의 전투 만에 위기 상황이 오고 말았다.
“시간이라도 벌어야 한다.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싸우도록.”
대공의 명령에 대공가의 모든 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같이 싸우는 아이론의 병력이 그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타국을 지키는 것임에도 목숨을 거는 대공가와 제국군에게 모두가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내며 자신들 역시 물러서지 않으리라 다시금 다짐했다.
“이번에 뚫는다.”
“예!”
태양검이 이번에 결판을 내겠다는 듯, 처음부터 전력을 드러냈다.
새하얀 빛이 형태를 이루며 거대한 검이 만들어졌다.
그것을 본 순간 대공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오러로 만들어진 거대한 검을 막아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상만 없었어도 좀 더 버텨 볼 수 있었을 것을…….”
태양검과의 연이은 격전으로 쌓인 내상으로 인해 일격조차 제대로 막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전력을 다한 태양검의 공격과 함께 성국의 별동대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단숨에 대공을 베어 내기 위해 떨어지는 검.
대공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잠깐이나마 막아 내기 위해 검을 휘두르려는 그때, 멀리서 검이 날아들었다.
쿠웅!
강력한 마력이 담긴 검에 밀려난 태양검이 미간을 찌푸렸다.
날아온 검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대공가의 기사단! 폐하의 명을 받고 지원하러 왔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대공의 아들이 안장에 달린 검집에서 새로운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순식간에 요새로 달려와 대공을 공격하려는 태양검의 앞으로 막아섰다.
쾅! 쾅! 쾅!
“6……단계?”
태양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공가의 소가주인 글렌을 바라보았다.
아직 젖살도 다 빠지지 않아 보이는 어린 청년이 대공과 비슷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일순간 공간이 일렁이면서 태양검의 대부분의 힘을 받아 내는 글렌.
한계까지 압축된 마력을 폭발시켜 위력을 극대화한 대공가의 검술은 대공의 비기보다 더 강해 보였다.
“어찌 그 나이에…….”
충격 받은 표정으로 글렌을 바라보는 태양검.
하지만 글렌은 입술을 꽉 다문 채 자세를 바로 했다.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아버진 다른 곳을 도와주시죠.”
“그리하마.”
“건방진…….”
아들을 믿고 다른 곳을 지원하러 떠나는 대공을 보고 자존심이 상한 태양검이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대공과 다르게 글렌은 침착하게 공격을 받아 냈다.
아켈리오에게 개인적인 지도를 받기도 했고, 많은 실전 경험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뤄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괴물 같은 놈!”
자신과 싸우면서도 성장하고 있는 괴물을 보면서 태양검이 한계까지 힘을 쥐어짰다.
‘여기서 죽여야 한다. 여기서!’
어쩌면 시카리오 후작보다도 더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 괴물을 여기서 죽여야만 했다.
아직 완전히 꽃을 피우지 못했을 때 꺾어야만 했다.
하지만 눈앞의 괴물은 그런 태양검의 바람과 다르게 점차 능숙하게 공격을 받아 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마지막까지 요새를 뚫어 보려던 태양검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가의 정예 기사단에 의해 성기사들이 하나둘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일에 성국의 정예들을 전부 소모시킬 수는 없는 법.
결국 뚫는 걸 포기하고 후퇴하자, 이 소식이 곧바로 제국와 아이론 정부에 들어갔다.
이 소식이 전해진 바로 그 순간, 제이론의 믿을 수 없는 발표가 이어졌다.
“아이론은 제국의 그늘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