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1. 마탑과의 전쟁 (2)
늙은 귀족과 노인과 같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신설된 마법부를 향해 움직였다.
황궁 마탑, 그리고 귀족들의 마탑에 관한 문의가 빗발쳤다.
동시에 마탑의 제재로 인해 남은 원자재, 혹은 일을 멈춘 공방들이 황궁 마탑을 향해 찾아왔다.
그러자 당황한 건 기존의 마탑들이었다.
“……제대로 이를 갈았군.”
“뭐 예상되던 일이었지. 황제가 마탑을 그냥 놔둘 리는 없었으니까.”
혼란스러워하는 마탑 내의 마법사들을 보면서 두 명의 중년의 마법사가 피식 웃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지금 대화를 나누는 두 명만큼은 이리될 줄 알고 있었다.
제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는 중앙 마탑 소속의 장로들이었으나 두 사람은 힘이 없었다.
라인을 타고 오른 게 아닌 순수 본인들의 능력으로 장로까지 올랐으나, 인맥도 힘도 없었기에 마탑 내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이었다.
특히 두 사람의 주력 분야 역시 배척받기 딱 좋았다.
공학에 미친 마법사 6장로 알버트.
생활 마법사 전문가 7장로 메디슨.
둘 다 능력은 있기에 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탑과는 반대되는 길을 걷는 이들이기에 결국 철저히 버림을 받았다.
솔직히 일반적안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처럼 마법에 몰두했다면 벌써 독립해서 마탑을 하나 차렸을 수도 있을 만큼 재능이 있었다.
그럼에도 마탑에 남아 있는 것은 가족들 때문이다.
자신들의 주력 분야로는 마탑을 세운다 한들 외면받을 것이기에.
그렇기에 능력도 없는 후배가 더 위로 올라가는 굴욕을 감내하면서 마탑에 눌러앉아 있는 것이다.
“재밌게 돌아가는군.”
“그러게 말일세. 어떻게 되려나.”
두 장로가 흥미롭다는 듯 웃으면서 마탑의 미래를 점쳤다.
그렇지만 어떤 것을 점쳐도 마탑의 미래는 어두웠다.
황제는 마탑과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다.
둘이 보기에 마탑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황제에게 허리를 굽히며 용서를 빌거나, 끝까지 저항해서 멸망하거나.
“뭐가 되었든 마탑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 확실하네.”
“그렇겠지.”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마탑의 미래를 바라보았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마탑에서 빠져나온 두 장로는 한적한 거리를 걸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마탑 밖의 풍경은 상당히 한적했다.
“황제가 작심했군.”
“그러게.”
마탑을 박살 내기로 마음먹었는지, 항상 바글바글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거의 없었다.
자금을 끊으면서 주변 은행들이 문을 닫았고, 물자가 안 들어오니 공방은 비어 있었다.
거기다 중앙 마탑과 거래하던 상인들 역시 대부분 잡혀 들어갔으니, 개별적으로 거래하는 소수만이 마탑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다들 눈치를 보느라 다급한 상황이 아니면 찾아오질 않았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 슬슬 움직이세.”
“그러세.”
한때 마탑의 동료였던 친구가 오랜만에 술 한잔하자고 자신들을 불렀다.
자신들이 장로가 되는 동안 밀려나서 결국 작은 아카데미의 계약직으로 있는 친구, 클린트.
교수 자리가 꽉 차서 미래에 자리가 비면 교수를 시켜 준다는 약속으로 계약직에 서명했었다. 장로급은 아니지만 나름 잘나가는 마법사가 이런 굴욕을 감내해야 하는 건 전부 라인을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맥이나 학연이 없는 이상 대부분의 평민 마법사들은 능력이 있음에도 살기 위해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오랜만이네.”
멀리서 자신을 반기는 클린트를 보면서 미소 짓는 두 중년 마법사.
“일단 맥주부터 한잔하러 가지.”
“바로 말인가?”
“이 사람! 우리 밥도 안 먹었네.”
“안주로 배 채우면 되지.”
오랜만에 봤으면서도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하며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웃고 있던 알버트와 메디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네…….”
“일단 앉게.”
식당 안을 장악하고 있는 실력자들.
그들 전부가 아닌 척 밥을 먹고 있었지만, 전부 두 장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5단계에 이른 자들답게 단번에 그걸 느끼고 그들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자네…… 빚졌나?”
“빚 때문에 귀족을 알선해 주려는 거라면…… 우리한테 말을 하게. 우리 나름대로 잘나가네!”
“그딴 거 아니니까 좀 앉게.
클린트가 흥분하는 두 친구들을 간신히 진정시키자 그제야로브를 입은 한 남자가 일단의 무리를 대동한 채 걸어 나왔다.
그것을 보자마자 알버트와 메디슨은 기세를 끌어 올렸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이용하려는 자에게 기세를 내뿜자 곧바로 주변에서 강렬한 기세가 터져 나왔다.
‘하나같이 무시무시하군.’
‘귀족 가문 중에 이 정도 수준의 무인들을 호위로 쓰는 자가…….’
두 장로가 대체 어떤 가문일까 궁금해하는 사이 클린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되었다.”
가면을 쓴 남자가 후드를 벗으며 가볍게 친구의 인사를 받았다. 그 순간, 눈치 빠른 두 장로, 알버트와 메디슨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얼굴까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붉은 머리를 보는 순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눈치가 빠르군.”
카리엘이 감탄했다는 듯 두 장로를 바라보았다.
범상치 않은 자들이 식당에 있다는 것과 적발인 것만으로 곧바로 눈치챈 두 장로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일단 앉지.”
카리엘이 두 사람을 자리에 앉힌 후 차분하게 그들을 관찰했다.
“내가 중히 쓰는 사람의 친구들이라길래 기대했더니…….”
카리엘의 말에 알버트와 메디슨은 침을 꿀꺽 삼켰다.
황제의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그들의 친구, 클린트 역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제법 괜찮은 사람들이군.”
일부러 두 장로를 긴장시킨 카리엘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시간을 뺏을 수는 없지. 본론만 말하겠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시종을 시켜서 계약서 두 장을 건넸다.
“황궁 마탑으로 와라.”
“예?”
“예?”
두 사람이 멍하나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개인적으로 두 사람을 조사해 보았다. 그동안 마탑에서 받은 대우도 썩 좋지 못했더군. 능력이 있음에도 버러지 같은 놈들한테 밀리기도 했고.”
카리엘의 말에 두 장로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차피 두 사람 다 마탑에 정이 있는 것도 아니잖나.”
“그건…….”
“그렇긴 하옵니다만…….”
두 사람이 마탑에 남아 있는 이유는 먹고살기 위함이었다.
이미 마법계에서 찍힌 둘을 써 줄 만한 곳이 기존에 있었던 중앙 마탑뿐이었다. 마탑은 그걸 알고 그들을 철저하게 이용해 먹은 것이었다.
말석이나마 장로라는 직함을 준 것도 괜히 자존심 상해서 나가게 하지 않기 위함이 컸다.
중요한 곳은 전부 자신보다 한참 후배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라인을 잘 탄 후배들은 이미 고위 장로가 되거나 마탑이나 공방을 차리기도 했다.
“두 사람 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적지 않게 돈이 나가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시종을 시켜 두 개의 작은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직접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금…… 금괴!”
“헉!”
한 개도 아니고 몇 개나 들어 있는 금괴를 보고 눈이 돌아간 두 장로들.
“이건 그대들의 영입 비용일 뿐. 연봉은 기존 세 배. 게다가 그대들이 개발한 것이 상용화될 시 이익금에 일정 퍼센트를 떼어 주지. 뭐, 많아야 1% 이내겠지만…….”
1%라고는 하지만 그게 국가 규모로 이루어지는 사업에 사용된다면 엄청난 금액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난 자네들을 중히 사용할 생각이야. 단순히 마탑을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생각은 없다는 뜻이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슬쩍 눈짓하자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느낀 근처에 있던 사람이 설명을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클린트가 최근에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 임시 교수야?”
“계약직인 게…….”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말하기 곤란스러워하는 클린트 대신 카리엘이 직접 말했다.
“짐은 마탑이 이 정도로 무너질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향후 아카데미를 이용해서 마법과 공학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킬 생각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 계획의 핵심 인물 중 하나가 바로 클린트였다.
비록 4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마공학과 마력 회로에서만큼은 두 장로들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그였기에 향후 제국을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자네는 생활 마법, 그리고 자넨 공학에 관심이 많다지?”
“그…… 그렇사옵니다.”
“예, 폐하.”
“특히 메디슨 자넨 몰래 연금술도 연마했다 들었네만.”
“그것이…….”
“아! 이제 불법이 아니니 겁낼 거 없네. 다만 자네가 만약 황궁 마탑에 들어오면 연금술 쪽 연구도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 말해 두는 것뿐이네.”
그렇게 말하면서 카리엘은 품속에서 황궁 마탑의 주요 프로젝트가 적힌 보고서를 보여 주었다.
하나같이 굵직한 사업들이 엮여 있었고, 그 핵심엔 바로 황궁 마탑이 있었다.
“어떤가. 한번 해 보고 싶지 않나?”
카리엘의 물음에 두 장로들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둔 개처럼 흥분하면서 당장이라도 계약하고자 하는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카리엘이 천천히 계약서를 보라고 말해 주었다.
“아! 하온데 위약금이…….”
“아…….”
갑자기 두 장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일반 마법사도 아니고, 마탑의 장로급쯤 되는 인물이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한 대가가 적을 리 없었다.
“짐 앞에서 그걸 걱정하나? 그딴 푼돈은 짐이 다 내줄 테니 걱정 말고 몸만 오도록.”
별걸 걱정한다는 듯 웃은 뒤에 나가는 카리엘을 멍하니 바라보는 두 장로.
한참 뒤, 카리엘이 식당을 완전히 빠져나가자, 평복 차림의무인들도 일제히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빠져나간 식당에서 힘이 풀린 다리로 의자에 앉는 친구들을 보면서 클린트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두 황자들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자신에게 찾아와 아카데미 개혁을 같이 해 보자며 비밀리에 임무를 주었다.
그 당시 자신이 받은 돈은 장로들이 받은 것보다 두 배는 더 많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은근히 자랑하는 클린트의 모습에 알버트와 메디슨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그를 응징했다.
“그래서…… 갈 거지?”
“안 가면 멍청이지.”
“이미 폐하께서도 우리가 가는 줄 알고 계실걸.”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은 클린트가 잘됐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잘해 보자.”
클린트의 말에 알버트와 메디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중앙 마탑의 장로급 인사를 빼 온 카리엘이 바쁘게 다른 곳으로도 움직였다.
마탑으로부터 벌레 취급받는 마도 공방의 중요 기술자부터 한직을 전전하는 마법사들까지 직접 움직여서 황궁 마탑과 공방으로 끌어들였다.
“대충 목표로 했던 인원들을 전부 빼냈군.”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목표로 했던 주요 인원들은 전부 빼냈다. 겸사겸사 2순위였던 이들도 빼내 오면서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기에 이제부터는 직접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내일이 재밌어지겠어.”
비밀리에 영입한 인재들은 일부러 같은 날에 옮기게끔 수를 써 놓았기에 한날한시에 마탑이나 기존의 공방 대신 황궁으로 출근할 것이다.
* * *
갑작스럽게 다수의 인원이 빠져나가면 아무리 거대한 마탑이나 공방이라도 당혹스럽기 마련.
가뜩이나 정부한테 쳐 맞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인원들까지 대거 이탈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중앙 마탑주 길리먼이 호통치자 주변 장로들이 고개를 숙였다.
인맥이 없어 밀려난 두 명의 장로.
그들뿐만 아니라, 한직으로 좌천된 마법사들 다수가 황궁 마탑 소속이 되었다는 말과 함께 엄청난 양의 위약금이 마탑주에게 직접 전해졌다.
황실에서 파견 나온 관료의 손으로 직접 위약금이 배달되자 길리먼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저희와 계약한 공방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큰일 났습니다! 저희와 계약한 마탑에서 공정의 중요한 마법사들 상당수가 오늘부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탑주님!”
멀리서 들려오는 마법사들의 다급한 목소리.
그것을 들으면서 길리먼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