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1. 마탑과의 전쟁
황제의 복귀를 기점으로 마탑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감찰부였다.
그동안 모은 증거들을 들이밀며 마법사들과 거래하던 모든 상인들을 조사했다. 물론 상인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순순히 당해 주지는 않았다.
법에 능통한 자들을 먼저 영입해 두었기에 최대한 저항하면서 시간을 끌려고 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마탑이 처리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 건이라면 마탑과 거래한 겁니다. 일단 마탑에 가 보시는 게…….”
“이 상단이 타국과 거래했다는 증거를 발견했소.”
증거를 들이밀면서 말하자 상단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마탑의 요청서입니다. 저희는 마탑의 요청에 의해 거래한 것뿐입니다.”
“마탑의 마법사들도 소환 예정이오.”
“아니, 우리는 죄가 없다니까요!”
“감찰부가 조사한 증거에는 그대들의 죄목 역시 적혀 있소. 더 이상 저항하면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소.”
감찰부가 거대 상단의 대표가 하는 말에도 꿈쩍하지 않고 상단의 물품들을 압수하기 시작했다.
“이…… 이보시오!”
“끌고 가라. 저항하면 기절시켜서라도 데려가!”
“예!”
반강제적으로 끌고 가려고 하자 맞기는 싫었는지 얌전히 끌려가는 상단주.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 역시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감찰부로 연행되었다.
그러자 마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폐하, 중앙 마탑에서 상단 문제 때문에 마력포의 공급이 어렵다고 합니다.”
“놔둬.”
시종장의 보고에 카리엘이 상관없다는 듯 답했다.
예상대로 전쟁을 인질 삼아 배짱을 부리려는 마탑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군부대신에게 말해서 기간을 정해 주고 그때까지 납품 못 하면 거래 끊으라고 해. 배상금도 받아 내고.”
“예.”
시종장이 곧장 군부로 향해서 명령을 전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부대신이 곧바로 중앙 마탑으로 공문을 보냈다.
그러자 마탑은 더 강하게 나왔다.
“폐하!”
이번엔 재무대신이 직접 카리엘을 찾아왔다.
“이것을…….”
카리엘이 마탑에서 보낸 서신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대형 마도구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조사는 하되 일단 풀어 달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놔둬.”
이번에도 카리엘은 마탑의 요구를 무시했다.
“거절할 시 당장 이번 달 생산품부터 납품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관있나?”
황제의 물음에 재무대신이 쓴웃음을 지었다.
“납품을 멈추는 순간, 자금을 동결해.”
“예!”
재무대신이 고개를 숙이면서 또 하나의 보고서를 건넸다.
“자금 동결과 함께 마탑을 압박할 수단입니다.”
“마탑과 연관된 모든 상단들을 털어먹을 생각이군?”
“그렇습니다. 또한 그 자금으로 마탑과 연관된 모든 곳을 사들일 생각입니다.”
카리엘의 제법이라는 듯 재무대신을 바라보자 그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마탑에 지급되어야 하는 돈으로 마탑과 연관된 모든 것을 사들여서 아예 고립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단순히 정부 차원에서 자금을 막고 마탑에 제공되는 원자재 수입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통째로 고립시키겠다는 생각은 카리엘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법적 검토는?”
“끝났습니다. 잘못은 마탑에 있기에 명분은 충분합니다.”
재무대신이 자신감 있게 말하자 카리엘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최대한 밀어줄 테니 진행해. 막히면 내 이름을 팔면 된다.”
카리엘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은 재무대신이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마탑에 최후통첩을 보낸 재무부.
자금 동결까지 예고하자 이제는 제국의 웬만한 사람들도 전부 마탑과 황실의 싸움을 알게 되었다.
황제가 병석을 털고 일어나자마자 마탑과의 전쟁이 벌어지자 귀족들 역시 돕기 시작했다.
카리엘이 병석에 누워 있다고 소문나 있는 동안 빠른 속도로 귀족들의 영역을 집어삼키면서 세를 불려 왔다.
그렇기에 귀족들 입장에선 이걸 되찾아야 했다.
물론 단순히 이것뿐만이 아니었다면 모든 귀족원이 만장일치로 지지하진 않았을 거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를 적극적으로 돕는다면 마탑에서 빼앗긴 것은 돌려주지.”
비밀리에 귀족원의 주요 귀족들을 불러서 제안한 카리엘.
이 한마디에 그다음 날 귀족원에서 만장일치로 마탑에 대한 모든 조치를 합법화하는 안이 가결되었다.
아무리 마탑의 힘이 강하다고 한들, 황실과 관료들, 귀족들까지 힘을 합친 공격에 대항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물론 마탑도 바보는 아니기에 이 최악의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다.
“폐하, 지방 귀족들의 상소입니다. 마탑에 납품될 원자재들이 남아돌고 있어 처치 곤란이라고 합니다.”
“북부의 상단들이 단체로 보내왔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원자재들에 대한 판매 때문이라 합니다.”
“이쪽은 중앙 지역의 상단들입니다. 마탑 밑에서 일하는 공방들이 단체로 항의하고 있다 하옵니다.”
재무부 관료들이 단체로 찾아와 자신들에게 마탑과 연관된 사람들의 진정서나 상소를 가져왔다.
아무리 카리엘이 강력한 권한을 쥔 황제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몇 번은 강제로 진행한다고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결국엔 이들의 말을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
마탑과의 전쟁은 단기전으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마탑이 선을 넘도록 유도하면서 기다리며 명분을 쌓은 것이다.
“때가 되었군.”
“그런 듯싶습니다.”
재무부 관료들과 함께 들어왔던 재상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완성 단계에 들어선 만큼 공개해도 될 정도가 되긴 했다.
“관료들은 준비가 끝났나?”
“그렇습니다.”
“좋아. 곧바로 비밀 계획을 공개한다.”
“예!”
카리엘의 명령에 비밀 계획을 정식으로 공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 시작은 재무부에 들어온 진정서나 항의 서한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었다.
“마법부? 이게 뭐지?”
“그러게. 마법부가 신설되었나?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
재무부에서 온 서신을 본 몇몇 상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와 관련된 사안은 앞으로 ‘마법부’에 전하십시오.」
재무부에서 마탑에 관련된 사안은 일괄 마법부로 이관시켰다는 서신을 전하자 모두들 신설된 마법부라는 곳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마법부에 관해서 궁금해할 때, 카리엘이 직접 대전 회의를 열었다.
과로로 쓰러졌다고 소문난 이후 처음으로 연 대전 회의.
중앙에 있는 모든 고위 귀족들이 참석한 대전 회의에서 카리엘이 정식으로 발표했다.
“중앙 부처에 정식으로 마법부를 신설하였다. 이는 마탑을 견제할 기구가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카리엘의 말에 모든 귀족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오만한 짓을 벌여 왔던 마탑을 관리할 기구가 신설할 것이며! 또한 그동안 마탑에만 의존해 왔던 마공학 역시 여러 곳으로 나눠서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거대한 영상구에 빛이 들어오면서 카리엘이 계획한 것들이 비쳤다.
“마법부와 함께 기술부를 만들고 공방에 관한 모든 제재를 풀어 주겠다. 또한 그동안 사특하다 여겨졌던 연금술에 관한 모든 제재 역시 풀겠다. 이에 관해 불만이 있는 자들은 앞으로 나서도록.”
카리엘의 물음에 귀족들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조치가 마탑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기에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 마법사들을 배려하여 마법 가문에 내려졌던 모든 제약을 오늘부로 해제한다. 그리고 황실 직속 마법 단체를 신설하니 ‘황궁 마탑’이라 명명하도록 하겠다.”
카리엘의 말이 끝나는 순간, 황궁 안쪽에 위치한 건물 내부가 영상구를 통해 나왔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마법도구들부터 로브를 쓴 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엔 연금술사도 있었고, 마공학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자들도 있었다.
게다가 안으로 더 진입하자 공방까지 있었다.
수공업자들이 마공학자들과 상의하면서 뭔가를 만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황궁 마탑이라는 곳에서는 이미 많은 것이 연구되고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마탑을 견제하기 위해서 말만 하는 것이 아닌, 여차하면 마탑 그 자체를 대체할 마음까지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귀족들 역시 마탑을 세우길 원한다면 ‘귀족원’을 통해 정식으로 청하라. 심사를 통해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허하겠다.”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고 못 박은 카리엘이 기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일단 일정 숫자 이상의 마법사가 있어야 하고, 마탑을 유지시킬 자금이나 마탑을 세울 수 있을 만한 기술이 있어야 했다.
그 기준을 넘을 경우 귀족원을 통해 심사를 보고 마법부에서 2차로 심사를 한 후 최종적으로 황제가 재가를 내려야 했다.
복잡했지만 현재 부처에서 이뤄지는 중요 사안들이 대부분 이러했으니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저 귀족들에게 가해졌던 제약을 풀어 주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대해 불만이 있는가!”
“없사옵니다! 폐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황실 관료들이야 당연히 반대가 없었고, 귀족들 역시 모두 고개를 숙이며 찬성했다.
귀족들의 제약마저 풀어 줬는데 반대가 있을 리 없었다.
* * *
대전 회의가 끝나자마자 이 소식은 곧바로 수도 전역에 알려졌다.
“마법부라는 게 진짜 생겼잖아?”
“거기다 황궁 마탑이 생겼어. 보니까 시설은 제대로던데?”
제국민들이 광장에 설치된 거대한 영상구에 비치는 황궁 마탑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럴듯한 공방과 처음 보는 설비들, 게다가 수많은 마법사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뭔가 대단한 곳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끔 했다.
귀족들 역시 흥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귀족들에게 가해졌던 모든 제약이 사라졌군.”
“그래.”
늙은 귀족들이 이번 발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평민 출신이었으나 귀족이 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귀족이 된 순간부터 마탑과는 정반대의 세력이 되고 만다.
귀족이 되어 안정감 있는 생활을 하느냐, 마탑에 들어가느냐 단 두 개의 선택지만 있던 상황.
군부의 도움으로 전투 마법사가 되었으니 귀족이 된다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그나마 늙은 귀족은 귀족이라도 되었다.
옆에 있는 친구는 실력이 부족해 마탑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귀족이 될 수도 없었다.
귀족이 된 마법사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마탑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해 뭐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온갖 제약에 도울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 시기를 겪어 왔던 늙은 귀족에겐 이번 발표가 반가웠다.
“지금이라도 다시 도전해 보게나!”
“예끼! 이 나이에 말인가?”
“내가 도움세!”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노인이 마주 웃었다.
귀족이 되었으면서도 항상 옆에 있어 준 친구의 제안에 노인이 광장에 설치된 거대한 영상구를 바라보았다.
“황궁 마탑이라…….”
새로 생긴 황궁 마탑을 중얼거린 노인이 오랜만에 눈을 빛냈다.
수십 년간 죽어 있던 눈이 오랜만에 빛나자 귀족 노인이 흐뭇하게 웃었다.
마치 어렸을 적 꿈을 꾸던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귀족도 황궁 마탑에 받아 주려나?”
그렇게 중얼거린 귀족 노인은 자신의 친구와 함께 황궁 마탑에 들어갈 방법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