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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07화 (107/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0. 봐주니까 선을 넘네?

서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국가 내부의 사정도 빠르게 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도 되었다.

거대한 전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정책들 역시 기존의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기 쉽게 변해 가고 있었다.

위기 상황 속에서 기존의 체제에 불만이 있던 자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뭐가 이렇게 비싸!”

“그러게.”

황제의 정책에 따라 기득권에 줄을 대면서 폭리를 취하던 상인들은 하나둘 그들이 가진 무기를 내려놓았다.

제국이 위기에 봉착했는데, 그걸 기회 삼아서 이득을 취하려 한다?

그것을 용납할 카리엘도 아니었지만, 그 전에 이미 감찰부가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귀족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귀족원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하…… 한 번만 봐주십시오!”

“나도 그러고 싶네만…… 이번엔 어렵네.”

그동안 뒤를 봐준 상인이 걸려들자 귀족원 출신의 귀족이 한숨을 쉬었다.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제발…….”

“어떤 것을 주어도 이번만큼은 어렵네.”

귀족원이 바빠졌다.

카리엘이 직접 업무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거절할 수도 없는 것이 혁명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귀족들도 이것이 마지막 기회임을 알기에 예전처럼 범죄를 방관할 수 없었다. 오히려 철저히 범죄 조직이나 뒷돈을 건네는 상인들을 끊어 내었다.

동시에 혁명 세력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굴렀다.

자꾸만 영역을 넓혀 가려는 혁명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귀족들 스스로가 변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귀족들에게 줄을 대던 상인들은 다급해졌다.

“쯧쯧! 그러게 진즉에 마탑에 붙었어야지.”

“안타깝구만.”

몇몇 상인들이 감찰부에 끌려가는 상인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카리엘이 황제가 되면서 귀족들을 박살 낼 명분만 찾고 있다는 것은 제국민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귀족들에게는 미래가 없다며 줄을 갈아탄 상인들만 살아남은 거였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들을 들고 보고하러 온 재무대신은 카리엘의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재밌네.”

카리엘이 재무대신의 보고서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마탑에 납품하는 원자재의 가격으로 장난질을 치고, 마탑은 그것을 명분 삼아서 마도구들의 가격에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

현재 전쟁이 한창인 제국에 마도구나 무기들의 수요는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공급 부족을 이유로 마탑은 더더욱 가격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마탑을 건들 수 없을 거란 자신감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에선?”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비밀 계획은?”

“그쪽도 아직…….”

재무대신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보고했다.

보고서를 들여다본 카리엘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자신의 목을 칠까 두렵다는 표정으로 덜덜 떠는 재무대신을 보며 카리엘은 한숨을 쉬었다.

“제국에 있는 마탑 중 한 곳도 회유할 수는 없었나?”

“예.”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담합한 마탑이다.

중앙 마탑이든 중소 마탑이든 마도구 가지고 장난질하는 것을 그만둘 미친놈들은 없었다.

제 살 깎아먹을 미친 마법사는 없기 때문이다.

“아쉽군.”

중소 마탑이라도 몇 곳을 회유했더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었거늘…….

머리 좋기로 유명한 마법사답게 자신들이 쥔 기득권을 온 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었다.

“서부 마탑은 가관이군.”

“전쟁 때문에 원자재 가격과 마법사들의 인건비가 올랐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미 1년 치 예약이 전부 꽉 찬 상황이어서 더 이상의 생산이 힘들다고…….”

“그걸 핑계로 가격을 더 올리려는 속셈이라……. 미친놈들이 선을 넘는군.”

전쟁 중이라 자신들을 건들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아는 마탑들이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

“마치 자기들이 제국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구는군.”

카리엘의 말에 재무대신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전쟁 중인데 무기를 공급할 수 없다고 배짱을 부리는 것은 이렇게 해도 자신들을 건드릴 수 없다는 자신감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미 모든 마탑은 담합을 한 상태였기에 카리엘이 서부 마탑을 건든다면 모든 마탑이 들고일어날 것이다.

마음 같아선 그들 모두를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 진행되는 모든 것이 멈추게 된다.

“후…… 짜증 나는군. 귀족들은 그동안 뭘 한 건지…….”

카리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표정을 구겼다.

제국에서 일개 가문으로는 가장 강력한 마법사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월크셔 가문이 있으나, 현재는 전쟁으로 인해 바빴다.

다른 마법 가문들 역시 카리엘의 명으로 주요 마법 전력이 전쟁에 투입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공학에서만큼은 마법 가문들조차 마탑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나마 월크셔 공작 가문이 체계를 갖추고 있으나, 마탑이 연합해서 압박한다면 천하의 공작 가문도 얼마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마탑의 영향력이 강했다.

그렇기에 카리엘이 답답해도 참고 있는 것이다.

“이놈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건가?”

카리엘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이렇게 나왔다가는 나중에 자신에게 박살 날 것이 자명한 일인데, 이렇게 배짱부리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동안은 전쟁이 끝나지 않으리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재무대신이 품속에서 서신 몇 개를 꺼내 카리엘에게 건넸다.

“이건…….”

“저와 친한 지방의 마법 가문 몇 곳이 전해 온 서신들입니다.”

재무대신의 말에 미간을 찌푸린 카리엘이 서신을 읽어 보다가 구겨 버렸다.

마탑이 상인들을 모으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마법 가문들도 회유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예 마법을 통해 새로운 권력의 핵심이 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카리엘이 치기 전에 미리 몸집을 불려서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게끔 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일단 폐하께 보고하기 위해 감찰부에 연락하진 않았습니다.”

“놔둬.”

분노한 카리엘의 명령에 재무대신이 의아함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아니야.”

분노할수록 머리를 차갑게 식혀야 했다.

지금은 마탑을 건드릴 때가 아니었다.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은 지금 마탑을 건드리는 건 벌집을 들쑤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시간 싸움인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은 차분하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마탑이 마법 가문들을 회유하면 그다음은 귀족들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아서 쉬이 건드릴 수 없도록 몸집을 만들면 그제야 카리엘에게 화해를 신청하면서 한발 물러설 것이다.

그럼 카리엘도 함부로 건들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화해 신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조진다!’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이 재무대신에게 명했다.

“지금부터 비밀리에 정보부와 감찰부와 연계해서 마탑의 자금 흐름을 조사해.”

“언제까지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비밀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 감찰부를 중심으로 전방위로 몰아친다.”

카리엘의 명령에 재무대신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제국이 진행하는 사업 상당수가 멈출 것이옵니다. 아카데미가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움직이시는 것이…….”

재무대신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어.”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카리엘이 기존의 계획을 앞당겼다.

안전하게 가려다간 마탑을 중심으로 뭉친 세력이 너무 커진다.

본격적으로 몸집을 부풀리기 전에 밟아 줘야 했다.

“저들이 마도구 가지고 장난치기 힘들게 압박이라도 줘 봐. 최대한 방해는 해야지.”

“……예.”

재무대신이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집무실에 혼자 남게 된 카리엘은 주먹을 꽉 쥐고 책상을 내리쳤다.

“후…… 쓰레기 새끼들…….”

제국을 좀먹는 쥐새끼를 치운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른 녀석이 나타나 곳간을 털어 가려 하고 있었다.

전생에 자신을 고생시킨 일 순위가 마족들이라면 지속적으로 괴롭힌 건 귀족이 아닌 마탑들이다.

카리엘이 몸져누웠을 때 그들과 기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무너지고, 기존의 마탑이 무너지면서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간신히 살아남은 중소 마탑들이었다.

어떠한 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카리엘이 마공학의 힘으로 간신히 제국을 유지시키면서 마법사들의 권위가 강해졌고, 전쟁을 연이어 치르면서 귀족들의 권력을 마법사들이 쥐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카리엘과 수차례나 격하게 싸우기도 했었다.

전생에 지겹도록 이루어진 마법사와의 전쟁이 이번 생에서도 어김없이 이뤄지게 생겼다.

-어쩔 거야? 이번엔 마탑인 거 같은데……. 이러다간 영원히 수련 못 하게 생겼어.

어느새 나타난 수루트가 혀를 차면서 말하자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하나를 해결하면 하나가 말썽이었다.

마탑 문제는 뒤로 미뤄 두려고 했는데, 이것들이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일단 대충 봉합만 해 놓고 폐관 수련에 들어가야지.”

-괜찮겠냐?

수르트의 물음에 카리엘이 이를 갈았다.

“아니.”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한 카리엘은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지금 당장은…… 최소한으로만 대응하게 하면서 참아야지.”

-그러다가 건방지게 네 권위까지 넘볼걸.

“그렇게 멍청한 놈들은 아니야. 만약 정말로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면……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쓸어버려야지.”

카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귀족들의 몰락이 예견되면서 마탑의 권위는 빠르게 커져 가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전생과 흐름이 비슷했다.

다만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마스터들을 비롯한 제국의 군사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과 자신이 막강한 황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권위를 넘본다? 그 순간 카리엘은 어떤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마탑을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시작은 비밀 계획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될 거야. 물론 본격적으로 쓸어버릴 때는 중앙군이 돌아왔을 때가 되겠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지도를 바라보았다.

‘전부도 필요 없어. 어느 한 곳만 정리되어도…….’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이 펜을 움켜쥐었다.

동부의 로만의 침공과 서부의 아이론의 내전.

그리고 남부 왕국들과의 물밑에서 일어나는 전쟁.

이 세 가지는 전부 한데 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독립되어 있기도 하다.

우선 아이론의 내전은 백중세처럼 보이지만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날 시, 순식간에 결판이 날 수도 있다.

남부 왕국들 역시 그들이 자랑하는 정보망과 상권을 제국이 차츰차츰 먹어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두 왕국 내부에 어느 정도 견제할 세력만 구축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로만 역시, 해적들을 통해 인접 국가를 지원할 수만 있게 된다면 지금처럼 저렇게 대군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셋 중 한 곳만 정리되어도 제국은 숨통이 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마탑을 쓸어버리는 데 쓰게 된다면 천하의 마탑이라도 엎드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녀석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가 되겠지.’

마탑을 전부 쓸어버릴지, 아니면 개선할 기회를 주게 될지는 카리엘이 자리를 비운 동안 판별될 것이다.

어서 빨리 마탑을 박살 낼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카리엘은 자신이 수련에 들어가느라 자리를 비웠을 때를 대비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마침내 수르트와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그럼 부탁하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알리고.”

“그리하겠습니다.”

끝까지 걱정에 수련장으로 들어서지 못하는 카리엘에게 시종장이 안심하라는 듯 대답했다. 그 모습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은 그토록 미루던 수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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