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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01화 (101/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37. 미래를 위한 준비

새로운 황제의 탄생을 알리는 축제가 끝나고, 서대륙은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이미 아이론은 자국에서 일어날 전쟁에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침내 로테온과 탈로스가 움직였다.

기습적으로 아이론을 침공하면서 파죽지세로 올라갔으나, 중간에 턱 막히고 말았다.

“서부군인가?”

선두에 서서 달려가던 로테온의 기마대장이 묻자 옆에 있는 부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건…….”

“중앙군이군.”

서부군의 주력은 해군.

나머지 병력은 경갑을 입은 병사들밖에 없었다.

중갑을 입은 병력에 기사단을 구축했다면 하나밖에 없었다.

제국의 중앙군이 아이론에 미리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사신단이…… 낚였군.”

황제가 로테온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속속 들어오면서 곧바로 아이론을 침공했는데, 그것이 전부 거짓이었다.

영악한 황제가 로테온과 탈로스를 기만한 것이다.

“……움직입니까?”

“아니, 물러나야지. 우리만으로 제국의 중앙군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

파괴력만큼은 어떤 군대에도 꿀리지 않는다 자신하는 로테온의 기마대였지만, 완벽하게 진형을 갖춘 제국의 중앙군을 뚫을 자신은 없었다.

어찌어찌 뚫는다 해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리라…….

그럴 바에는 본대와 합류해서 싸우는 게 훨씬 나았다.

“속도전은 끝났다. 자넨 지금 본 이 사실을 본대에게 전하도록.”

“예.”

기마대장의 명령에 황급히 병사 하나가 뒤를 돌아 말을 타고 사라졌다.

“대전쟁의 서막이라…….”

전쟁이 임박했단 사실에 기마대장의 주먹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런 상황은 아이론 전역에서 일어났다.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탈로스군은 남부군을 막고 있었고, 아이론의 반군은 제국의 서부군이 견제했다.

그러자 한숨 돌린 친제국파 성향의 아이론 정부는 정비를 하면서 군대를 끌어모았다.

그러는 사이 북쪽 역시 시카리오 후작의 북부군과 성국의 주력군이 대치 상황에 돌입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바로 전쟁에 돌입하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제국의 수도 역시 바쁜 나날을 보냈다.

* * *

축제가 끝난 그 즉시 모든 관료들이 곧바로 복귀해 일을 시작했다.

마치 휴식은 이제 끝났다는 듯, 모든 관료들이 밤낮없이 일하는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문제는 인력 문제는 여전했다.

축제 기간 동안 나름 검증된 자들을 뽑았음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카리엘이 황태자 시절부터 날려 버린 관료들이 수백이 넘어가니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귀족들을 뽑을 수도 없었다.

“……인력이 부족하옵니다.”

재상이 초췌한 몰골로 와서 말하자 카리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귀족들을 뽑았잖나. 그들을 스스로 내친 건 그대들일 텐데?”

“……송구합니다.”

그래도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어느 정도 학식을 갖췄으니 쓸 만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카데미 졸업장을 돈으로 사거나 방탕한 삶을 산 녀석들이 인맥발로 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말 능력 있는 인재들은 지방에서 영주 대리나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지방에 있는 자들을 불러오시면…….”

“지방은 어쩌고? 말이 된다 생각하나?”

중앙의 일이 미어터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방에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남부 지역은 반란군을 토벌한 여파로 일이 쌓여 있었고, 북부는 성국을 견제하는 일 때문에 매일같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서부는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그나마 평온한 건 동부뿐인데, 그곳은 이미 혁명 세력이 꽉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카데미 졸업반에 있는 자들을 불러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 제대로 된 이가 몇이나 될까?”

카리엘은 이제 아카데미도 믿지 않았다.

아카데미 졸업장을 살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귀족들 중 3할 이상이 샀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본래라면 졸업하지 못했을 이들이 졸업장을 사서 스펙을 쌓았다.

그것을 이용해 적당한 곳에 들어가 경험을 쌓고 중앙 부처로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명문가 중에 가주가 되지 못한 자제들이 중앙 관료가 되는 방법이었다.

“아카데미는 학생들 중 평민들만 뽑을 게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 터. 뭐 그마저도 그대들의 눈에 찰지는 모르겠군.”

아카데미 교사들조차 인맥으로 들어간 이들이 많아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본래 카리엘이라면 진즉에 저들을 처단하고 아카데미를 바꾸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놔두는 이유가 뭘까?

“그대도 알 텐데. 답은 하나다.”

그렇게 말하면서 펜을 들어 세일럼 항구를 찍었다.

인력은 부족하고, 대신들과 관료들은 매일같이 사람 좀 뽑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걸 알기에 재상이 대표로 찾아왔건만, 결국 도돌이표였다.

“귀족들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일이 줄어들길 기다리거나. 결정이 내려지면 찾아오도록.”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귀찮다는 듯, 물러가라고 했다. 그러자 재상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카리엘에게 협상의 여지 따윈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재상은 대신들을 만나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사실 본래의 카리엘이라면 느긋하게 귀족들을 주무르면서 천천히 혁명 세력을 중앙에 들였겠지만,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신으로부터 진실을 들은 이상 제국은 더 빨리 발전할 필요가 있었다.

전생에 미리엘이 고생했던 것을 보면서 카리엘은 이를 바득 갈았다.

그랜드 마스터인 글렌이 마스터를 키워 냈고, 박살 난 경제를 끌어올리면서 현재의 수준과 비슷한 군사력을 키워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무너졌다.

그렇다면 현생에서는 적어도 그보다 몇 배는 강해져야 승산이 있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은 책장 속에서 책 몇 개를 빼냈다.

그러자 기관이 작동하면서 무언가가 드러났다.

검은 벽에는 앞으로 자신의 계획들이 적힌 것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큼지막한 계획들.

그 중간쯤에는 믿을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서대륙 장악」

현실적으로 통일은 어려웠다.

그렇다면 적어도 서대륙을 제국이 장악하기라도 해야 했다.

“아직은…… 아니야.”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풀기엔 너무 일렀다. 적어도 이번 아이론 사태를 해결하고 동대륙에 조짐이 일어나기 전까진 진실을 풀 수는 없었다.

“미래를 위해선…… 내가 악마가 되어야겠네. 그러자면 그 전에…… 최소한의 준비는 해 둬야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좋은 황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자신을 ‘폭군’이 되도록 몰아가고 있었다.

“전생엔 암군, 현생엔 폭군인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카리엘은 한숨을 쉬고선 기관을 작동시켜 책장을 닫았다.

그러고선 곧바로 시종장을 불렀다.

“지금의 나라면 비밀 수호대를 움직일 수 있겠나?”

“예.”

허리를 굽히면서 말하는 시종장을 보며 카리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에게 전할 비밀이 있네.”

“비밀……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맹약의 비밀이네.”

맹약이라는 말에 시종장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비밀 수호대 전원을 불러오게, 그들은 들을 자격이 있으니.”

“예.”

카리엘의 명령에 심각한 표정을 지은 시종장은 조용히 물러났다.

* * *

그날 저녁, 베일에 가려져 있던 비밀 수호대가 전부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오랫동안 비밀을 수호해 온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비밀 수호대 전원이 허리를 굽혔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진정한 황제가 자신들을 인정해 주자 어떤 이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비밀을 수호해 온 그대들인 만큼 이 ‘비밀’ 역시 때가 될 때까지 지켜 줄 것을 믿겠다.”

카리엘의 말에 비밀 수호대 전원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의 ‘비밀’과 하나의 ‘부탁’이다.”

“부탁 말입니까?”

“그래, 비밀과 연관이 있는 부탁이다.”

시종장의 물음에 답한 카리엘이 비밀 수호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 선,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비밀 수호대.

그중 맨 앞에 선 세 사람은 도서관 사서인 노인과 시종장, 그리고 역대 황제들의 무덤을 관리하는 무덤지기였다.

하지만 이들은 노인임에도 전부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뒤에 선 비밀 수호대원들은 실력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각자 맡은 역할을 위해서 평범한 자들까지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비밀 수호대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이 말했다.

“우선 맹약에 관한 내용부터 말하도록 하지.”

그렇게 입을 연 카리엘은 오랫동안 이어진 맹약에 대해 설명했다.

가장 앞에 선 세 노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차분히 카리엘의 설명을 들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의 부탁이군.”

“혹…… 지옥이 열리는 겁니까?”

도서관 사서의 물음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지옥의 문을 닫기는 어렵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이마에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문양.

“지옥의 수문장을 찾아라, 맹약에 따라 이 문양의 힘으로 그 수문장을 굴복시킬 수 있을지니……. 우리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것뿐이다.”

카리엘의 말에 비밀 수호대가 그 즉시 무릎을 꿇었다.

“모든 것은 폐하의 뜻대로.”

늙은 노인들부터 젊은이들까지 전부 고개를 숙이면서 말하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비밀 수호대의 모든 힘은 고대에 잠들었다 알려진 ‘가름’을 찾는 것이다.”

“예!”

그렇게 비밀 수호대에 명령을 내린 카리엘은 곧장 친위대를 불러들였다.

그림자를 보내고 난 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카리엘을 지키는 자들은 오직 친위대만이 가능했다.

한때 괴짜라 불렸던 이들이 그런 고귀한 임무를 맡는다는 것에 말이 많았으나 상관없었다.

“모두들 내가 이렇게 불러 모은 건 이유가 궁금하겠지?”

카리엘의 부름에 모두들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는 친위대원들.

“그 전에 각자 이 종이에 그대들이 원하는 바를 써라.”

“저희들이 원하는 바…… 말입니까?”

“그래, 앞으로 매우 바빠질 예정이다. 그러니 적어도 그대들의 소원 정도는 들어주고 시작해야겠지.”

카리엘의 말에 친위대원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토토가 물었다.

“……위험한 일입니까?”

“많이.”

대놓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카리엘을 본 토토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침묵했다.

그러자 다른 친위대원들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언젠가 카리엘에게 하려던 부탁을 적기 시작했다.

“시종장.”

“예, 폐하.”

“타리온을 불러오게.”

한때 친위대의 수장이었던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인 타리온을 불러들였다.

“너 역시 친위대였으니 자격이 있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타리온에게 소원을 적게끔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타리온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소신의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타리온의 대답에 카리엘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뭐라도 적어 둬. 나중에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지.”

“그럼…… 일주일간 휴가를…….”

“……그래.”

타리온의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이 소원장을 고이 접어 서랍에 넣어 두고는 말했다.

“친위대 전원에게 전해, 지금부터 비밀리에 움직일 존재들을 키우라고.”

“그림자들이 있는 게 굳이 그러시는 이유가…….”

“그들과는 전혀 다른 임무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비밀 수호대에게 알려 준 진실을 타리온에게도 말해 주었다.

그것을 듣자마자 타리온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친위대가 키운 인원들은 전원 흑마법사만 쫓는 단체가 될 거야.”

“……알겠습니다.”

“너도 정보부를 맡길 준비를 해 둬.”

“그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타리온이 집무실을 나가자 카리엘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로써 최소한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아이론의 사태를 마무리 짓는 것과 제국을 발전시키는 것뿐.

그걸 위해서 마음을 다잡은 카리엘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카리엘은 다시금 칼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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