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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98화 (98/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35. 대관식!

드디어 길고 긴 반란군 진압이 끝났다.

보고받은 즉시 토벌군이 복귀할 걸란 생각과 달리 그들은 더 남쪽으로 향했다.

고전하는 데이비어 공작의 군대를 돕기 위함이었다.

반란군에 패색이 짙어지자 도망친 자들이 전부 소국 연합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소국으로 도망친 자들이 최후의 항전을 벌이자 천하의 데이비어 공작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루피엘의 판정승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타리온의 보고서를 옆에 두고 지도를 살폈다.

반란군의 도주 루트와 소국 연합군의 진형 등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다시금 조정해서 현시점의 상황대로 깃발을 배치했다.

그러자 반란군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 역시 제국 내에서 밖으로 대다수가 빠져나가 있는 형태가 되었다.

이 점 때문에 세리엘이 아직도 소국 연합을 박살 내지 못했지만 그것조차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꼬우면 자신이 먼저 소국 연합을 상대로 승리했어야 했다.

“남은 건 소국 연합뿐인가?”

“예.”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제 지도에 남은 건 소국 연합을 상징하는 검은 깃발들뿐이었다. 붉은 깃발들 역시 소국 연합에 합류한 이상 그들의 군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시름 놓았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란군이 진압되면서 남부 쪽에서 올라오던 엄청난 양의 보고서가 사라졌다.

반나절에 한 번씩 남부의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보고서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는데, 그게 사라진 것이다.

전후 처리가 남아 있지만 그건 급하지가 않았다.

“일이 줄긴 했으니 관료들도 한시름 놓긴 하겠지.”

“그럴 것입니다.”

타리온도 한숨 돌렸다는 듯 긴 숨을 내뱉었다.

“이제 정말로 남은 건 외부의 적들뿐이군.”

“예.”

이제야 겨우 내부를 제대로 단속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소국 연합의 토벌은 얼마나 걸릴 것 같지?”

“한 달은 걸릴 것 같다 합니다.”

“남부 변경백한테 연통을 넣어, 합류해서 쓸어버리라고.”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럴 경우 로테온이 문제가 될 겁니다.”

“상관없어. 반란군의 진압이 끝나는 즉시 대관식을 열면 돼. 그럼 최소한의 시간은 벌 수 있겠지.”

제국의 황제가 정식으로 즉위한다는 명분을 통해 각국에 사신들을 요청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론 역시 잠깐이나마 소강상태에 접어들 터.

그러면 로테온 역시 곧바로 개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폐하, 반란군의 수장이 살아남았습니다.”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

스스로를 데리엘이라 칭하던 자는 결국 죽었다고 보고가 올라왔다.

마스터에 근접한 힘을 뿌려 대면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데리엘은 결국 월크셔 공작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패배한 것이다.

아마 시간을 더 주었다면 마스터가 되었을지도 몰랐을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다.

그런 그가 죽으면서 사기가 꺾인 반란군이 연쇄적으로 무너졌고, 그로 인해 현 상태가 된 것이다.

“예, 데릭은 죽었습니다. 잡힌 것은 벨푸르스 가주입니다.”

“숙부?”

카리엘의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타리온.

“그리고 여기.”

“서부 쪽?”

“예, 서부 변경백이 직접 전한 서신입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은 검은색 봉투를 열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고모할머니도 잡히셨나?”

사실상 벨푸르스의 실제 가주나 다름없는 여인.

그녀 역시 서부의 해적들이 서부군에 의해 박살 나면서 결국 잡혀 버렸다.

이로써 제국을 흔들려 했던 세력의 주축들이 전부 잡힌 것이다.

“해적들이 소탕된 것입니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내무대신이 얼굴이 환해지면서 물었다.

“그건 아니야. 하지만 본거지는 박살 낸 듯싶어.”

해적들을 전부 박살 내지는 못했지만 본거지를 박살 냈다. 이로 인해 서부 해적들은 다시금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이론의 급변 사태로 그쪽 부근의 섬에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이제 제국 근방의 해역에서 함부로 돌아다니긴 힘들게 된 것이다.

“이로써 일거리 하나가 더 줄어들었군.”

카리엘의 말에 함박웃음을 짓는 내무대신.

그런 그를 보며 카리엘도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행복해하는 상황 속에서 타리온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벨푸르스……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타리온의 물음에 웃고 있던 카리엘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죽여야지.”

단호하게 대답하는 카리엘.

핏줄을 죽이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한다.

후에 패륜이라는 딱지가 붙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모두들 웬만하면 살려 두려 했다.

하지만 카리엘은 위험 분자를 안고 갈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제국은 더 큰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을 흔들 수 있는 존재들을 남겨 둔다?

미친 짓이었다.

“반란을 계획했을 땐 자신이 죽을 각오도 했을 터.”

귀양 정도로 끝날 거라 생각했던 내무대신조차 놀란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내무대신조차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막아 보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단호한 카리엘의 눈은 자신의 생각을 굽힐 조금의 여지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벌군이 오기 전에 모든 걸 마무리한다. 그렇게 알고 준비해.”

“예, 폐하.”

내무대신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내 대관식 전까지 제국 내에 남아 있는 잔당을 전부 처리해.”

“외부로 나가 있는 인원까지 불러들입니까?”

타리온의 물음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대대적인 청소를 해야 했다.

카리엘의 대관식 전까지 완벽하게 청소한 후, 깨끗해진 제국으로 빠른 발전과 함께 외부의 적들을 상대하며 단결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내부에서 싸워 왔지만 이제는 외부의 명확한 적이 생긴 만큼, 한동안은 단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준비해.”

“예.”

타리온이 물러가자 작게 한숨을 쉰 카리엘은 지도를 바라보았다.

동대륙과 서대륙 전체가 담긴 지도였다.

제국만 보면 서대륙만 개판으로 변한 것 같지만 동대륙의 상태도 썩 좋지는 않았다.

앞으로 있을 전쟁들을 보면 서대륙 전체의 힘이 약화될 테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동대륙에는 곳곳에서 전운이 감돌면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리엘은 동대륙의 이러한 상황에는 그쪽으로 넘어간 흑마법사들의 영향도 있을 거라 보았다.

넘어가자마자 문제를 일으키는 미친놈들을 서대륙에서 몰아냈으니 오히려 남는 장사였다. 다른 국가들은 적어도 말은 들어먹는 사람들이니 피해가 누적되면 정전할 가능성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흑마법사들은 그런 게 없지.’

그들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떠는 카리엘.

“후…… 그나저나 진짜 대관식이네.”

전생에선 황제 급사 이후 급박하게 진행했기 때문에 소박하게 끝나 버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반란군과 소국 연합을 상대로 승전식을 겸하며 대관식을 진행할 테니 상당히 화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없는 살림에 이렇게 무리하는 이유는 대륙의 모든 국가를 초청하면서 잠시라도 전쟁을 미루려는 의도 탓이었다.

예산은 상당히 많이 들겠지만 전쟁을 미룰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그것을 아는지라 내무대신도 상당히 큰 부담감을 갖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 * *

내무부 전체가 밤낮없이 일을 시작하면서 대관식을 준비하기 시작할 무렵.

「반란군 진압! 이제 남은 건 소국 연합군뿐이다!」

「마스터에 가까웠던 반란군의 수장을 제압한 월크셔 공작. 마도사의 경지가 코앞으로?」

반란군을 진압했다는 소식이 공개되면서 제국민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국 연합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토벌군과 정벌군, 그리고 남부군까지 합세하면서 지지부진하던 전쟁 역시 빠르게 승기를 잡아 가고 있었다.

그러자 로테온과 성국이 다급하게 서부로 군을 집결시켰다.

당장이라도 아이론에 개입할 것처럼 움직였으나, 북쪽은 북부 변경백이 틀어막고 있었고 로테온 역시 서부 변경백이 당장이라도 아이론에 들어갈 것처럼 압박하자 전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타리온의 정보부와 포돌스키의 감찰부가 힘을 합쳐서 제국 남부를 이 잡듯 뒤져서 숨어 있는 잔당을 전부 끄집어냈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몰려오는 반란군의 잔당과 함께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자들이 수도에 당도했다.

“폐하, 그들이 도착했다고 하옵니다.”

“……가지.”

시종장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카리엘은 외투를 걸치고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그들은?”

“황궁에 있습니다.”

“광장으로 옮겨.”

시종장의 대답에 벨푸르스 가주과 선대 안주인을 광장으로 옮겼다.

“……폐하, 직접 하실 생각입니까?”

시종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도 한때는 황족이었는데 직접 해야지.”

반란이라는 대역죄를 지은 가문이다. 이들을 귀양이라는 형태로 살려 두는 선례를 남길 수는 없었다.

이미 황명으로 사형이 확정된 그들이기에 카리엘은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처형해서 혼란의 잔재를 털어 낼 생각이었다.

물론 그래도 한때 황족이었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는 자들인 만큼 최소한의 명예만큼은 지켜 주기 위해 직접 마무리하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수도에 있는 제국민들에게 전부 알려라. 그동안 고생했으니 반역자들의 최후를 지켜볼 기회는 주어야지.”

“예.”

카리엘의 명령에 근처에 있는 시종이 다급히 내무부로 달려갔다.

제국민들이 광장에 모일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광장으로 향한 카리엘.

그런 그의 배려에 어느새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오자마자 처형식이라니…….”

“폐하께서도 단호하시군.”

“조금의 여지도 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시군.”

광장에 모인 자들이 모두 웅성거렸다.

질질 끌면서 귀양이나 보낼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카리엘은 황족을 직접 처형하고자 했다.

광장에 도착한 카리엘이 단두대에 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벨푸르스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선 반란군 측의 귀족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난 반란에 가담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다. 사연이 딱한 자들도 있을 것이나 죄를 사함을 받을 기회는 몇 차례나 있었다. 그 기회를 걷어찬 건 그대들이니 더 이상의 자비는 생각지 말라.”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직접 손짓으로 벨푸르스 가주와 선대 안주인을 지목했다.

그러자 단두대 앞으로 가장 먼저 끌려나온 중년 사내와 늙은 노인.

“한때 황족이셨고, 딱한 사정을 가지고 있으나…… 흑마법사와 손잡은 점, 그리고 제국에 큰 위기를 안겨다 준 점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중죄요.”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벨푸르스 가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도 카리엘이 마주 보았다.

혼란스러움이 담긴 가주의 눈동자.

그 역시 카리엘에 대해 잘 들어 알고 있었다.

재능 있는 동생들에게 황위를 물려주고자 했으나, 압도적인 재능 때문에 결국 황위에 오른 인물.

제국을 위기에서 구해 낸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 명예를 지켜 주고자 함을 느끼자 가슴속에 있던 후회란 감정이 몰려들었다.

“……그대 같은 자에게 패했으니 후회는 없소.”

벨푸르스 가주의 음성에 카리엘이 작게나마 고개를 숙여 마지막 예를 표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선대 안주인 역시 카리엘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재능이 있음에도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여인.

그녀 역시 카리엘을 향해 마지막으로 예를 올리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였다.

“두 분의 이야기는 가감 없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오.”

두 사람의 마지막 명예를 지켜 주는 것을 끝으로 카리엘이 눈짓을 주자 사형집행인들이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두대에 몸이 묶인 가주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반란군에 가담했던 수백의 인물들이 차례차례 죽어 나갔다.

잔인한 모습들이었지만 카리엘은 마지막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모든 반란군의 주요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하며 수도가 흉흉한 기운에 휩싸였을 때, 마침내 소국 연합군에 승리했다는 승전보가 들려왔다.

「소국 연합과의 전쟁은 결국 제국의 승리로 끝나다!」

「모든 일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대관식뿐.」

「드디어 폐하의 대관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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