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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97화 (97/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34. 일복 터진 황제님! (2)

황궁 안에 있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선황이 장례식이 끝난 순간을 기점으로 아이론에서 내전이 발발했다.

상인답게 시작은 돈의 전쟁이었다.

서로의 자금 흐름을 방해하면서 힘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미 하위권 상단들은 이 싸움에 반쯤 망한 상황이 되어 있었다.

“상당히 진행이 빠르네.”

“그런 것 같습니다.”

타리온의 보고를 들은 카리엘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회의를 위해 집무실로 찾아온 대신들 역시 무거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2개의 파벌로 나뉜 아이론의 수많은 상단들.

그들 중 대다수가 벌써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친제국파였다.

“다행히 배신은 아니었군.”

“예.”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하는 카리엘을 보며 타리온도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현재의 친제국파도 마지막까지 간을 보기는 했다.

실제로 카리엘이 동부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친제국파 대부분이 남부 왕국들과 밀약을 맺기도 했다.

그것을 중재하고 적어도 제국과의 약조한 기간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게 제이론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걸 끌고 와서 친제국파를 만든 것도 오로지 제이론 폴의 역량 덕분이었다.

다만 같은 파벌인 줄 알았던 상단들 다수가 로테온 쪽으로 넘어간 게 문제였다.

그로 인해 현재 친제국파의 상단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세력이 밀려나고 있었고, 언제 패배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제이론의 상단이 워낙 압도적인 덕분이었다.

“현시점에서 제국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외교적으로는 힘듭니다.”

외무대신의 말에 카리엘은 군부대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군부대신도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계입니다. 적어도 내전은 마무리 지어야 군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미 제국의 모든 군은 각 국가를 견제하는 데에 동원되었기에 움직일 만한 병력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수도 방위군과 남은 중앙군 정도인데, 이들마저 빼 버리면 중앙이 텅텅 비게 된다.

“제국의 상단들이 아이론을 도울 방법이 있나?”

“서부 상단들이 도울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러면 본격적으로 저들의 내전에 개입하는 꼴이 됩니다.”

재무대신의 말에 재상이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들도 그러지 않은가?”

실제로 로테온도 아이론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비밀리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상단들이 들어가서 지원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로테온은 아직 자신들의 상단을 아이론에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겉으로나마 내전 중인 아이론에 간섭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차이가 난단 말인가?”

재상의 물음에 재무대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론과 남부의 교역량이 제국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럴 리가……. 제국으로 들어오는 물량이…….”

“서부가 주로 교역하는 물품과 남부 왕국들이 교역하는 동대륙의 물품들을 서로 교환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재무대신의 말에 카리엘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각국에는 자신 있는 분야가 있었다.

마탑만 해도 각국마다 특색이 다다르니 상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주력하는 분야에 동대륙이나 신대륙에서 오는 광석이나 물품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서로 거래하면서 완제품만 제국에 파는 형식이었다.

“호구네.”

한마디로 정리한 카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재상을 비롯한 대신들이 고개를 숙였다.

모두 자신들이 과거에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마탑이 문제야. 상황이 정리되면 가장 먼저 마탑을 정리해야겠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제국이 삽질하면서 퇴보하는 동안 소국이었던 남부 왕국들과 신생 국가 아이론은 발전을 위해 제약을 풀고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었다.

100년 가까이 삽질을 반복한 결과 강대했던 제국은 비웃음을 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나마 제국이 유지된 건 강력한 마스터들과 병력, 그리고 적어도 무기에 한해서만큼 나름 발전된 체제를 갖고 있었던 덕분이다.

“고개 숙이고 반성회라도 할 거야?”

카리엘의 물음에 움찔하는 대신들.

“반성할 시간에 일해. 시간이 없어.”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재무대신에게 말했다.

“서부 상단주들을 모아서 여차하면 개입하도록 해.”

“하오나…….”

말리려는 재무대신을 손을 들어 제지한 카리엘은 곧바로 외무대신을 바라보았다.

“외무대신.”

“예.”

“성국와 남부 왕국들한테 강력하게 항의해. 지금 당장 군을 물리고 아이론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제국과의 전쟁이 시작될 거라고.”

“……선전포고입니까?”

외무대신의 물음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전쟁은 예정되어 있잖아. 그럼 명분이라도 찾아야지. 재무대신은 저들이 강하게 나오는 순간 곧바로 개입할 준비를 해.”

“예!”

“군부대신.”

“예.”

“중앙군을 움직일 준비를 해.”

카리엘의 말에 군부대신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폐하!”

“준비만 하는 거야.”

카리엘의 말에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군부대신과 대신들.

그런 그들을 위해 카리엘이 말했다.

“중앙군과 수도 방위군 일부를 움직여서 당장이라도 출정한 것처럼 연기해, 여차하면 내가 직접 아이론을 돕기 위해 친정할 수도 있을 것처럼.”

“폐하.”

“안 나가.”

다급하게 말하는 타리온에게 카리엘이 안 나간다고 못 박았지만, 모두들 믿지 않았다.

카리엘의 성정을 익히 아는지라 여차하면 나갈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제국의 남은 병력이 중앙군과 수도 방위군 일부라면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게 맞긴 해.”

“하오나 너무 위험합니다.”

“단순한 위협만 하는 거면 위험하진 않지. 그리고 내가 움직임으로써 마스터와 황궁 기사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저들은 큰 압박을 받을 거야.”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준비하자는 거야.”

위정자라면 언제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방법을 마련해 놓아야 했다.

설사 진짜 사용할 일이 없더라도 준비는 해 두어야 하는 법.

그렇기에 다들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황제가 친정할 경우를 대비해서 재상을 중심으로 비상 체제를 구축해 놓아야 했다.

가뜩이나 일이 많은 대신들인데, 또다시 큼지막한 일이 던져졌으니 죽을 맛이었다.

“힘들면 귀족원에 도움 좀 요청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푹 숙여져 있던 대신들의 머리가 곧바로 들렸다. 카리엘이 죽어 가는 대신들을 위해 꺼낸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재상의 물음에 카리엘이 안 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귀족들과 대립하는 이유는 쓰레기들을 자꾸 정부에 밀어 넣으려는 것 때문이지, 그들을 배척하려는 게 아니야. 그들을 배척할 생각이었다면 혁명 세력을 쓰지도 않았겠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반쯤 죽어 가는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일을 줄이고 싶으면 제대로 된 녀석들로 뽑아 봐. 이번만큼은 인사 관리에 어떤 관여도 안 할 것을 약속하지.”

“예!”

카리엘의 약속에 모든 대신들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타리온은 내무대신에게 말해 둬.”

“예!”

타리온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카리엘은 모두를 물렸다.

손짓 한 번으로 대신들을 물린 카리엘이 의자에 축 늘어져 창문을 바라보았다.

“……끝이 없네.”

제일 거지 같은 때에 황좌에 올랐기에 카리엘의 일은 도무지 줄지를 않았다.

황위를 물려받은 지 한 달도 안 돼서 굵직한 일들이 연이어서 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러와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은 한창 세일럼에서 일하고 있는 능력자들을 생각했다.

가끔가다 올라오는 보고서를 볼 때면 그곳만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론의 내전과 제국의 내전으로 어지러운 제국의 상황과는 다르게 착실하게 발전하면서 동시에 여러 정책들이 시험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정체된 상황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하기 급급한 제국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인 것이다.

물론 동부의 귀족들은 죽을 맛이었다.

세일럼의 발전으로 근방의 영주들은 좀 살 만해졌지만 나머지 영주들은 죽을 맛이었다. 영지민들이 자꾸만 세일럼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이미 인근의 힘이 약한 영주들은 세일럼이라는 도시에 영지를 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변혁이라…….”

비록 동부의 일부 지역에만 해당되는 얘기였지만 변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평민이라는 이유로 밀려나거나 소외되었던 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세일럼은 이미 서대륙 최고의 자유도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비록 아직 부족한 게 많고 여전히 발전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일럼의 가치는 수직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인재가 부족해.”

마음 같아서는 확 질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참아야 했다. 적어도 내전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참아야 했다.

“대체 언제 끝날는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점점 초췌해져 가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착잡하기만 했다.

그래도 나름 잘생긴 얼굴을 가졌던 자신인데 이제는 초췌한 흔한 직장인에 불과했다.

부디 내전이 얼른 끝나기를 바라면서 카리엘은 지옥 같은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 * *

그렇게 카리엘이 다시금 서류 지옥에 빠져 있는 동안 대신들은 내무대신을 향해 뇌물 공세를 펼쳤다.

“자네 요즘 몸이 허하지? 이것 좀 받게.”

“됐네. 이걸 줘도 자네한테 줄 인원은 정해져 있어.”

외무대신이 은근하게 고급 포션 하나를 들이밀었으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내무대신.

이미 온갖 대신들과 고위 관료들이 내무부를 들른 지 오래였다.

심지어 재상까지 왔다 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무대신이 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정해진 인원대로만 분배해 줄 걸세.”

“우리 사이에 쩨쩨하게 굴 건가?”

“자네를 더 챙겨 주면? 다른 대신들은 어떨 것 같은가? 무엇보다 난 그 후에 폐하한테 불려 갈 텐데, 버틸 자신이 없네.”

생각만으로도 무섭다는 듯 두려움에 떨면서 몸을 떠는 내무대신을 보며 외무대신이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은퇴하고 싶었다.

하지만 보고할 때마다 사직서를 챙겨 가는 재상마저 붙잡혀서 구르는 중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은퇴할 수 있을까?

“후…… 그럼 제대로 뽑아 주게.”

“그래야지.”

외무대신의 말에 내무대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는다. 그걸 알기에 카리엘도 인원을 더 충원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무려 쓰레기라고 혐오하는 귀족원의 귀족들을 뽑으라고 명한 것이다.

진짜 뒈질 것 같으니 부족한 놈이라도 뽑아서 일단 땜빵이라도 하라는 뜻이다.

그런 카리엘의 의도를 잘 알기에 일주일에 걸쳐서 귀족들이 대거 등용되었다.

일단 부족한 놈이라도 아카데미는 나왔으니 최소한의 학식은 갖추었을 터.

굴려 보고 정 안 되면 내보내자는 생각으로 뽑은 것이었으나…….

“장난하나?”

“……송구합니다.”

카리엘의 싸늘한 눈초리에 내무대신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초짜를 가르치느라 일이 더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몇몇 귀족들이 일 잘하는 평민들에게 시비를 걸면서 일 처리가 늦어진 것이다.

“이대로 있다간 다 죽어.”

초췌한 몰골로 말하는 카리엘을 보며 내무대신이 눈물을 흘렸다. 황제부터 말단 관료들까지 일에 치여 죽을 판국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타리온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폐하! 반란군을 진압했습니다!”

타리온의 보고를 듣는 순간 카리엘과 내무대신의 얼굴이 동시에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똑같이 생각했다.

‘일거리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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