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31. 복귀하는 황태자!
세일럼으로 돌아온 카리엘은 무서울 정도로 일에 집중했다.
바빴던 그동안의 시간은 장난이었다는 듯 쉴 새 없이 몰아붙이면서 계획들을 진행시켜 나갔다.
신기한 건 일에 치여 죽을 것 같으면 한 명씩 사람이 충원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좀 해 볼 만해지면 또다시 일거리가 주어지면서 지옥이 끝나질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반발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래 봤자 일은 줄어들지 않았고, 해야 할 일들만 밀려날 뿐이었다.
“저하!”
“이번에도 반발했나? 추가 수당을 준다고 해.”
“진짜 죽을 것 같다고 합니다.”
“오전까지 일 다 끝내면 3시간.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해.”
죽어 가는 관료들을 위해 설치한 사우나.
마도구까지 사용해서 만든 이것은 죽어 가던 관료들을 다시 쌩쌩하게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었다.
지구에서 목욕하고 사우나 한 번 하면 피로가 풀리던 것이 기억나 혹시나 해서 만든 것인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결국 이 답을 듣고 싶었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등을 돌리는 타리온.
그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카리엘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중앙에 올라가서도 한번 만들어 봐야겠네.”
열심히 반발하다가도 3시간 정도 사우나에서 쉬게 해 주면 다시금 와서 일하는 그들.
“커피까지 있으면 딱이긴 한데…….”
전생에서도 찾아보고자 노력해 봤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와 비슷한 것을 찾아서 마시고는 했지만 커피만큼은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생에는 남쪽 섬으로 무역을 확대해서 찾아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금 일에 집중했다.
그 와중에도 카리엘이 세일럼에서 떠날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항구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제법 그럴듯한 자태가 나오고 있었다.
“생일마저 반납하고 일했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지.”
본래 황자라면 그럴듯한 연회라도 여는 게 기본이었지만 관료들에게 박수만 받고 끝낸 카리엘의 생일.
그만큼 일이 넘쳐 났다.
1황자가 생일마저 반납하고 일하는데 그 누가 불만을 가질까?
워낙 일이 많았기에 가끔 불만이 나오고는 했지만 가장 위에 있는 자가 솔선수범하니 결국 다시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저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카리엘은 일하다 말고 마르크스를 올려다보았다.
“대역 죄인들의 후손들을 전부 배치했습니다. 이건 그 보고서입니다.”
“나쁘진 않네?”
카리엘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정말 그들 내부적으로 교육을 받았다는 말이 사실인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아직인가?”
멸문한 가문이 갖고 있던 기술.
아직 이들은 그것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예.”
“있는 게 확실한가? 벌써 수십 년이 지난 곳도 많은데?”
카리엘의 물음에 마르크스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그럼 이자들이 이게 어떤 기회인지 모르는 거군.”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런 기회를 같잖은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발로 차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 난 곧 올라가야 한다.”
“설득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아니면 나도 이들을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카리엘의 단호한 말에 마르크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 지금의 기회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1황자가 중앙과 싸워 얻어 낸 소중한 기회였다.
“혁명 세력은 어때?”
“그들도…….”
“배가 불렀군.”
대부분의 혁명 세력은 카리엘의 의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세력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도시에만 자신들을 가둬 두는 카리엘에게 반발하고 있었다.
이 도시가 완성되면 자신들을 다시 버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다.
“난 모든 이들을 안고 갈 생각이 없어. 이 기회를 놓치는 자들은 끝까지 데려갈 생각 없다.”
“……예.”
이미 마르크스에겐 후에 반드시 중앙으로 데려와 개혁을 이룰 것이라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애가 탔다.
옆에서 지켜본 카리엘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 주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혁명 세력이 원하는 바를 최선을 다해 들어주고 있었다.
노동시간만큼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것도 지금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다 보니 카리엘에게 반발하는 세력에게 마르크스는 혁명을 잊어버린 카리엘의 충견이 되어 있었다.
“반발하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선을 넘지 말라고 해.”
“……예.”
“마지막으로 일하지 않는 자는 이곳에 남을 자격이 없어. 반발하더라도 일은 하면서 하라고 전해.”
“그리하겠습니다.”
이제 정말 중앙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전날 그림자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으로는 위급한 상황까지 갔다고 했다.
그렇기에 더는 이곳에서 뭉개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혁명가들과 죄인들에게 최후통첩을 날린 카리엘은 관료들과 세일럼을 비롯한 분쟁 지역 일대의 발전 계획을 마무리해 갔다.
처음에 막막해 보이던 계획도 계속해서 수정하면서 늘려 나가니 어느새 막바지에 도달했다.
결국 다음 날 저녁쯤 마지막 계획을 완성한 관료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끝났군.”
매일같이 밤늦게까지 남아 고생한 덕분에 빠른 시간 내에 세일럼의 발전 계획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고생했다. 내일 하루는 푹 쉬도록. 노동자들도 내일 하루는 쉬라고 해.”
“와!”
“타리온에게 말해 둘 테니 술이나 음식은 걱정하지 말고 먹도록. 내일 하루만큼은 축제라고 생각하고 즐겨.”
그렇게 말한 후 조용히 빠져나온 카리엘은 침침한 눈을 껌뻑거리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결국 버려야 하나?”
아쉽긴 했다. 하지만 다급한 상황에서 질질 끌 수는 없는 법.
버리기로 마음먹고 움직이려 할 때였다.
“저하.”
“응?”
“저하를 뵙고자 청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카리엘을 보고자 찾아오는 이들.
타리온을 따라간 곳에는 대역죄를 지은 가문들의 후손들이 서 있었다.
“저하를 뵙습니다. 소인은 베이커라 하옵니다.”
“저하를 뵙습니다. 소인은 쿠리우스라 하옵니다.”
“저하를 뵙습니다. 소인은 튜링이라 하옵니다.”
이름조차 허락되지 않은 이들.
평생을 죄를 지은 자의 이름으로 살아야 되는 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유명한 이들이 찾아왔군.”
전생에 황제로 있을 시에 들어 보았던 이들.
마법이 장악한 제국에서 공학의 꽃을 피워 보려 했던 인물, 하지만 불순한 사상으로 역적으로 몰린 튜링.
연금술사들의 수장이었으나 주술에 손대서 흑마법사로 몰린 쿠리우스.
대포와 머스킷을 만들었으나 반역자와 손잡아 멸문한 베이커.
이들이 카리엘을 찾아온 것이다.
“난 방금 전 그대들을 전부 버리려 했었다.”
카리엘의 말에 고개를 숙인 세 남자가 몸을 떨었다.
“그래도 찾아왔으니 들어는 보지. 내가 그대들을 중용해야 할 이유를 말하라.”
약간 늦었으나 그 정도는 용기를 낸 것을 감안해 봐줄 수 있었다.
처음엔 머뭇거렸으나 그들도 이것이 마지막 기회인 것은 알았는지 그들이 갖고 있는 것들을 하나둘 말하기 시작했다.
마도포와 마도구에 밀린 무기들은 화약을 통해 쓰임새를 넓힐 수 있었고, 연금술사는 화학으로, 공학은 카리엘이 반드시 제대로 부활시키려 한 것이었다.
분명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사라져 버릴 줄 알았는데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조금이지만 발전한 부분도 있었다.
광산이나 험지에서 실험해 보면서 무기가 아닌 민간에 도움이 될 기구들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재밌군.”
카리엘은 미소를 지으면서 눈앞의 인재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그대들이 가진 것을 증명해라. 그럼 반드시 그대들이 짊어진 굴레를 벗겨 주도록 하지. 이는 나 카리엘 프레드리히 폰 블레이저가 명예를 걸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후 타리온에게 따로 계약서를 가져와 작성하게끔 했다.
구두 약속은 못 믿을 수 있으니 아예 계약서까지 작성해 버린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을 가서 알려라. 하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그대들까지. 나머지는 스스로 증명한다 해도 그대들처럼 바로 중용하진 않을 거다.”
한마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카리엘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이들이라는 뜻이었다.
아무리 인재가 급하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곧바로 쓰일 가능성은 없어졌다.
그러나 기회는 준다.
이들을 중용하면서 점차 기회를 주는 모습을 보여 주면 스스로 기술을 뱉어 내는 이들이 나타날 터.
그럼 그때 가서 그들을 쓸지 말지 결정하면 될 일이다.
“이것으로 여기서 할 일은 끝났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중앙에 가서 더 하겠지.”
어느새 다가온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일 쉰다는 발표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질러 대는 사람들을 보며 카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휴식이라……. 부럽네.”
순수하게 휴식에 기뻐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리엘은 잠들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난 카리엘은 고위 관료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 쉰다는 생각에 밤새 달린 관료들이 퀭한 눈으로 카리엘의 앞에 섰다.
“오늘부로 난 중앙으로 올라간다.”
카리엘의 발표에 멍한 표정으로 있던 관료들의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그래. 중앙의 상황이 좋지 않기에 여유 부릴 시간이 없군.”
그렇게 말하면서 쓰게 웃은 카리엘은 마르크스를 바라보았다.
“그대에게 임시로 이곳을 맡기지.”
“저, 저하!”
“반론은 불허한다. 간간이 이곳의 보고를 받을 생각이니 방심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도록.”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타리온에게 눈짓한 후 움직였다.
곧바로 비공선이 마련된 곳으로 향한 카리엘은 홀로 중앙에 갔을 때와는 달리 황궁 기사들과 시종들을 전부 데리고 비공선에 올랐다.
동부 사령부에서 카리엘을 위해 임시로 마련한 임시 정거장에서 비공선이 떠올랐다.
“세일럼…….”
전생에선 가지지 못했던 동부의 항구.
이 자그마한 도시 하나가 제국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니 새삼 놀라웠다.
아직은 준비 단계였으나 세일럼으로 연결되는 철도와 정비된 도로는 제국을 한층 더 발전시킬 것이다.
하나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내가 키운 도시가 애먼 놈한테 들어가는 꼴은 못 보지.”
카리엘의 중얼거림을 들은 타리온이 빙그레 웃었다.
한 번 말한 것은 웬만하면 지키는 편인 카리엘이기에 이 도시는 무사할 것이다.
* * *
그렇게 애증의 산물인 세일럼을 뒤로하고 중앙에 도착하자 카리엘을 반기는 황궁 기사들.
저번과 달리 양옆으로 도열해서 카리엘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가자.”
“예!”
마치에 오른 카리엘을 호종하는 황궁 기사들.
정식으로 중앙에 복귀하는 것을 기념하듯 중앙군 기사단까지 파견되어서 카리엘을 양옆에서 호종했다.
화려한 복귀와 함께 황궁에 들어선 카리엘은 곧장 대전으로 향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전 안에서 황태자를 상징하는 패와 임시로 황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홀을 나눠 들고 있는 동생들.
“1황자 카리엘 프레드리히 폰 블레이저는 들어라.”
“예!”
황제를 대신하여 나온 두 황자 앞에 무릎을 꿇은 카리엘.
그런 그에게 윈스턴이 황제의 명을 전했다.
“1황자는 다시 황태자에 복위하라. 이는 짐의 지엄한 명령이니 거절은 허락할 수 없느니라.”
“폐하의 명을 받잡습니다.”
황태자를 상징하는 황금패를 받은 카리엘에게 다시금 재상이 말했다.
“짐의 병환이 심상치 않아 황태자에게 짐의 권한을 위임하니 모든 대신들과 귀족들은 황태자의 명을 짐의 명령과 동일하게 생각하라.”
그 말과 함께 황제의 홀을 건네주는 세리엘.
홀을 받아 든 카리엘은 묘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결국 다시 받고야 만 홀.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것을 다시 받았기에 묘한 감정이 생겼지만 곧바로 상념을 지워 냈다.
지금은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태자로서 첫 명령이오. 폐하의 핏줄을 사칭한 데릭을 반역자로 명하겠소.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역적이며 그를 지원했던 세력은 제국의 주적이 될 것이오.”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카리엘이 명하자, 대전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명을 받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