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86화 (86/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30. 카리엘의 위험한 계획 (2)

황제의 허락이 떨어진 후 변경백들과 고위 귀족들은 무언가를 위해 비밀리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방 귀족들이나 하위 귀족들이 이 사실을 알면 반발할 것이 분명하기에 신중히 움직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카리엘은 비공선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실패하면 좀 아쉽겠지?’

어차피 이런 걸로 그를 죽일 수는 없다.

잘해야 시골 영지로 귀양을 보내는 정도?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더 발전할 수 있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은 은근 신경이 거슬리는 일이다.

거기다 흑마법사가 동대륙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했다.

혹시나 그곳에서 로만을 꼬드겨 대륙 전쟁이라도 벌인다면 제국은 또다시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걸 조금이라도 대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재가 필요했다.

동시에 좀 더 발전할 필요가 있었다.

전생에 카리엘의 제국이 버텨 낼 수 있었던 근간.

그중에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존재의 압도적인 무력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연이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 천재들.

그들을 통해 발전된 기술들을 접목한 무기들이 제 몫을 다해 준 덕이었다.

“이런 게 이렇게 썩고 있는 건 아쉽긴 하네.”

자신을 태우고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비공선.

기술력 부족으로 엄청난 양의 마나석을 소모하기에 대중화되지 못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열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이건 엄청난 자원 소모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이나마 사용되고 있었다.

열차처럼 딱 동서남북으로 하나의 루트에만 배치된 기물들.

이것이 더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다.

“마법사들의 욕심.”

기술자들과 함께한다면 더 높은 발전을 이뤄 낼 수 있을 걸 알면서도 마법사들은 기술을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거기다 이것을 무기 삼기 위해서 아주 극소량만 생산해 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것을 만든 마법사들도 죽거나 늙었기에 기술 전승이 거의 끊긴 상황이다.

‘한마디로 개판이지.’

귀족들과 특권층의 욕심으로 더디게 발전하는 제국을 보며 혀를 찬 카리엘은 창밖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욕심 많은 귀족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그리고 황제의 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렇게 카리엘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비공선은 빠르게 수도를 향해 날아갔다.

* * *

“저하를 뵙습니다.”

목적지에는 비공선에서 내린 카리엘을 직접 데려가기 위해 황궁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범죄자인 줄 알겠어.”

“송구합니다.”

고개를 숙인 황궁 기사들을 보며 카리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가자.”

“예!”

황궁 기사들에게 둘러싸여서 황궁으로 가는 마차에 오른 카리엘이 혀를 찼다.

대놓고 자신을 압박하기 위한 구도.

타리온과 그림자들조차 대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카리엘의 손발을 묶고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그만큼 귀족들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계획이라는 뜻이었다.

“곧바로 대전으로 가나?”

“그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카리엘이 마차의 창문을 열고 묻자 황궁 기사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후…… 최소한의 준비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의지인가?”

곧장 대전으로 향하는 마차에서 타리온이 미리 준비한 것들을 천천히 살펴보는 카리엘.

어느새 마차는 대전 앞에 도착했다.

“저하, 도착했사옵니다.”

“잠시. 5분만 있다가 나가지.”

“……예, 저하.”

황궁 기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천하의 카리엘이라도 지금만큼은 긴장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마차 안에 있는 카리엘의 표정은 잔잔했다.

시간을 달라고 했던 것은 자신을 압박하는 귀족들을 타리온이 준비한 정보들로 카운터 치기 위함일 뿐.

“되었다.”

카리엘은 자신을 부축하려는 기사를 만류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낀 황궁 기사들의 눈에 놀라움이 담겼다.

‘언제 이렇게…….’

아픈 몸을 털고 일어난 후 카리엘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도에서 벗어났다가 돌아온 카리엘은 단순히 몸이 회복된 것을 넘어 무인의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황궁 기사들조차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한 카리엘.

그런 그가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은 분노를 은연중에 드러내면서 대전으로 향했다.

본래라면 이렇게 마음대로 기세를 내뿜는 건 안 될 일이다.

하지만 1황자라는 사실이 모든 것을 허용하게 했다.

그것도 ‘제국의 영웅’이라 추앙받는 그이기에 기사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모른 체하면서 대전의 문을 열었다.

황제의 명령에 대전에 도착한 카리엘을 맞은 것은 2개로 나뉜 황좌에 앉은 동생들이었다.

그 앞에서는 카리엘을 죄인처럼 서게 만든 귀족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채 싸늘한 표정으로 귀족들을 보는 카리엘.

“이건 또 무슨 장난질이지?”

카리엘의 물음에 동생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억지로 앉아 있는 게 얼굴에 역력히 드러났다.

“폐하의 명으로 왔거늘…… 감히 폐하를 이용해 나에게 굴욕감을 선사하려 했나?”

분노한 표정으로 귀족들을 바라보는 카리엘을 보면서 몇몇 귀족들이 움찔했다.

“저하께 보낸 것은 분명 폐하의 명령서가 맞습니다. 현재 폐하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하신 관계로 부득이하게 이렇게 진행할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리옵니다.”

새로이 재상으로 뽑힌 윈스턴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의도적으로 분노한 표정을 드러내면서 기세를 가져오려 했지만 재상인 윈스턴에 의해 가로막혀 버렸다.

“이번 대전의 안건은 저하에 관한 것이기에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서 계셔야 하옵니다. 이 점 양해 바라옵니다.”

‘쉽게 가기는 글렀군.’

속으로 혀를 찬 카리엘은 기세를 죽이지 않은 채 말했다.

“상관없으니 속행하지.”

“예.”

카리엘의 명령에 귀족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죄인처럼 황궁 기사들이 끌고 오는 것처럼 구도를 짜고 대전 안에서도 두 동생들 밑에서 해명해야 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황제처럼 명령을 내리는 카리엘.

황제가 없는 이상 그 누구도 자신에게 명을 내릴 수 없다는 것처럼 단호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몇몇 귀족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가장 먼저 현재 저하께서 불러들이고 있는 자들에 관한 것입니다. 현재 1황자 저하께서 불러들인 세력은 현 제국에 굉장히 위험한 자들이라는 게 귀족들의 의견입니다. 감찰총장? 이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소?”

“……혁명가라 불리는 세력들의 사상은 지극히 불손하고 제국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기에 감찰부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는 놈들이었습니다.”

재상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하는 포돌스키.

아무리 카리엘을 따르는 그라도 이번 사안만큼은 함부로 말할 수 없었는지 솔직하게 답하고 있었다.

“내무대신, 만약 저 혁명가라는 자들이 말하는 대로 되면 제국이 어떤 여파가 있겠소?”

“……현 관료 체제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외무대신, 이것이 타국들에 미칠 여파는 어떻소?”

“……적어도 남부 왕국들은 강력히 반발할 것입니다. 그들 입장에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기에 전쟁까지 각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국보다 강력한 신분제를 갖고 있는 두 남부 왕국 입장에서는 혁명가들의 불손한 사상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저하, 귀족들의 입장은 이러하옵니다. 이에 대해 해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해명이라…….”

노련한 재상의 말에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두 공작들을 바라보았다.

한창 바쁠 변경백들까지 모여 있었는데, 그들 역시 침묵하고 있었다.

주요 인원들이 침묵한 상황에서 같잖은 자가 재상의 자리에 앉아 대전 회의를 주관하고 있다. 심지어 두 동생들조차 입을 다물고 있는데.

‘뭔가 있군.’

단번에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음을 깨달은 카리엘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재상을 바라보았다.

입을 다물고 있는 자들은 중립을 지키겠다는 뜻.

그렇다는 건 귀족들의 대변인이 된 재상만 조지면 된다는 뜻이었다.

‘일이 쉬워졌군.’

잠시간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던 카리엘.

천하의 1황자조차 이 사안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귀족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리엘의 입이 열렸다.

“일단 해명이라는 말이 상당히 거슬리는군. 누가 보면 내가 죄를 지은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겠나?”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윈스턴을 째려보았다.

“도시에서의 일은 꼬박꼬박 중앙으로 보고했고, 혁명가들을 부를 때조차 그대들에게 허락을 맡았지. 다들 동의한 것 아니었나?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운다라…….”

“……단어 선택이 좋지 않았던 점, 송구하옵니다.”

빠르게 사과하는 윈스턴.

사안이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않도록 빠르게 막은 것이다.

“쯧! 서로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답하지. 일단 모든 사안에 대해서는 중앙에 보고했다. 그럼 남은 건 내 계획 때문이라는 건데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군.”

카리엘의 말에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게 있었지. 귀족들과 평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바 재능이 다르다는 것. 간혹가다 평민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천재들은 돌연변이에 불과하다고.”

카리엘의 말에 귀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뭐가 문제지? 거기다 그대들은 환경에서조차 평민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하오나…….”

뭐라 반박하려는 귀족의 입을 손을 들어 막은 카리엘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제국 전체에 적용하자는 것도 아니고 도시 하나다. 그것도 두려워서 이 사달을 내? 자신 없나? 뭐가 두려워서 그러는 거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기세를 내뿜었다.

“고작해야 도시 하나에서 일어난 일조차 두려워서 벌벌 떨 거라면 그냥 평민이 되는 게 어떤가? 위기에 처한 제국에 그딴 쓰레기들이 귀족이라는 ‘고귀한’ 자리에 앉아 있는 꼴은 못 보겠군.”

일부러 귀족들을 치켜세우면서 말한 카리엘이 자신이 가져온 정보들을 하나둘 풀어내었다.

능력 없는 귀족 때문에 접경 지역에서 일어난 소규모 전투에서 패배한 일, 한 명의 비리 귀족 때문에 남부 왕국의 첩자들이 접경 지역에 들어온 일, 무능한 귀족에 소국 연합군이 제국의 영토 일부를 점령한 일 등이 그것이었다.

“무능한 주제에 과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하마터면 힘들 게 차지한 우리의 땅을 다시금 빼앗길 뻔했어.”

“그건…….”

“무엇보다 아직 분쟁 지역의 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제지한 카리엘이 분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루라도 빨리 도시를 발전시키고 완벽한 요새를 만들어 ‘진짜’ 우리 땅으로 만들어야 하거늘. 보내 달라는 인재들은 죄다 중앙에서 쓸어 가고는 나한테 한 명도 보내 주지 않더군.”

카리엘이 싸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대신들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눈을 돌렸다.

그들은 입이 100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놀고 있는 귀족들이라도 보내 달랬더니 다들 내 말을 무시하더군.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지? 말해 보게, 재상.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혁명가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하의 계획이 문제이옵니다.”

“도시를 정상적으로 발전시키기엔 아직도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 다른 방안이 있나? 말해 보게. 듣기로는 중앙도 인재 부족으로 고생 좀 한다던데…….”

카리엘의 말에 몇몇 대신들이 움찔거렸다.

“하오나 위기는 한순간이옵니다. 반면에 저하가 계획하시는 일이 진행될 경우 제국의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사옵니다. 귀족의 체계가 무너지면 다음은 황권이옵니다.”

황권을 들먹이는 재상. 그러자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고작 평민들 몇을 등용한다고 황권이 무너진다? 지금 자네는 황권을 능욕하고 있는 것이야.”

“분란이 될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자 하는 것입니다.”

재상과 1황자의 기 싸움에 대전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결국 단시간에 결론이 지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한 두 황자가 대전 회의를 파했다.

싸늘한 표정으로 가장 먼저 대전 밖으로 나온 카리엘.

그런 그에게 황제의 궁에서 온 시종 하나가 다가왔다.

“폐하께서 찾으시옵니다.”

“……가지.”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

과연 고위 귀족들과 변경백들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아보러 갈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