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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85화 (85/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30. 카리엘의 위험한 계획

열심히 항구를 발전시키고 있을 무렵, 마침내 혁명가들이 하나둘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고받은 숫자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머릿속에 구상한 건 많은데 인재가 너무 없네.”

미간을 찌푸리면서 투덜거리는 카리엘.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게 그의 모토인데 문제는 그가 회귀했다는 점이다.

미래에 있던 기술들, 그리고 위기 속에서 어렵게 피어난 더 높은 정치와 행정 체제 등을 겪었던 그이기에 자꾸만 욕심이 났다.

“하면…… 큰일 나겠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카리엘.

이미 혁명가들을 불러들이는 것만으로도 제국 입장에선 큰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국이 위기 상황이었고, 카리엘의 위상 자체가 높아졌기에 용인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을 더 벌인다?

귀족들이 얼마나 반발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인재가 부족해.”

행정가도 부족했지만, 병력도 부족했다.

자금 역시 슬슬 제국도 힘에 부치는지 조금씩 양이 줄어 가고 있었다.

빠르게 발전시키고 튀려는 카리엘의 계획은 자꾸만 미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업무 지옥에 빠져서 매일같이 신세 한탄을 하고 있던 찰나 마침내 남부의 상인들이 움직였다.

운이 좋게도 남부 왕국들이 제국의 대응이 미지근하다고 여겼는지 자금을 당겨서 소국 연합을 더 많이 지원하던 찰나에 이루어진 한 방이었다.

「남부 상인 연합. 이 일에 연관된 상단과는 거래를 끊겠다고 용단을 내리다!」

갑작스레 소국들과 남부 왕국들 간에 밀약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돌연 제국의 상인들이 거래를 끊기 시작했다.

본래 상인들은 정부에서 금지하지 않는 이상 마지막까지 꿀을 빠는 족속들이다.

제국의 남부 상인들은 범죄조차 저지를 정도로 돈에 미쳐 있는 존재들이었는데, 그런 이들이 갑작스레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고 거래를 끊은 것이다.

거기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밀수 루트, 그리고 소국과 남부 왕국들 간에 이루어지는 접선 장소로 추정되는 곳까지 감찰부에 알리면서 상황이 악화되어 갔다.

이것만으로도 정신없는데 그들에게 또 하나의 악재가 덮쳐 왔다.

“저하! 탈로스의 제1검과 왕국 직속 기사단이 뒤로 빠졌다 합니다.”

타리온이 급보를 전해 오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 상인 연합이 움직였으니 이제 해적들이 움직일 차례였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때렸으면 좋았겠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제 더 이상 탈로스는 제국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로테온도 마찬가지였다.

“성국은?”

“북부 변경백이 견제하고 있습니다. 동부군이 보조할 것 같습니다.”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계획했던 것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카리엘이 제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이제 남은 건 이 빌어먹을 항구를 정상 궤도에 올리는 것뿐이다.

“혁명가들은?”

“일주일 내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기차를 타고 오면 금방이잖아.”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돈이 많거나 귀족들을 중심으로 운행되느라……. 아시다시피 혁명가들은 대부분 가난합니다.”

“으음…….”

불순한 사상을 가진 자들을 귀족들이 고용해 줄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상단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들 역시 대부분 귀족들의 투자를 받은 몸이니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다들 지지리도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오고 있다는 거지?”

“예.”

“좋아. 좀만 더 버텨 보자고.”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쉰 카리엘은 다시금 일 더미에 파묻혔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언제나 밤이 되었고, 늦은 밤이 되었다.

“으…… 죽겠네.”

“천천히 하시죠. 요즘 너무 무리하십니다.”

“이걸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일이 얼마나 늦어지는지 알잖아.”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서류가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카리엘이 무리하지 않으려 해도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밑에 있는 관료들이다.

상사가 열심히 하는데 먼저 퇴근하는 건방진 생각을 하는 자가 있을까? 그것도 제국의 1황자가 일하는데?

당연히 밑에 있는 자들도 다 같이 야근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천천히 진행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말처럼 조금 천천히 진행해도 되긴 했다.

하지만 그의 성정이 일단 일은 다 끝내 놓고 놀자는 주의라는 게 문제였다.

“이것만 끝내고.”

그날도 늦은 밤까지 야근하는 것을 택하는 카리엘.

결국 설득에 실패한 타리온이 밖으로 나가 고개를 가로젓자 초췌한 몰골의 관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조금만 버텨 보세, 곧 사람들이 올 것이니.”

“……예.”

타리온의 설득에 울먹이면서 중얼거리는 관료들.

결국 그날도 야근을 했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지옥 같은 일정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혁명가들이 도시에 진입했다.

* * *

“저하를 뵙습니다. 마르크스 베버라 하옵니다.”

“반갑다.”

몰려온 혁명가들을 대표해서 인사를 올리는 베버를 보며 미소를 짓는 카리엘.

“다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겠지?”

“그렇사옵니다.”

“좋아. 그럼 길게 끌 거 없지. 타리온에게 각자 잘하는 분야를 말하도록.”

곧바로 채용하겠다는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전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베버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무엇이지?”

“혹……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지 물어도 되겠사옵니까?”

“평균 14시간이오. 몇몇 이들은 그 이상을 일하기도 하오.”

옆에 있는 타리온의 대답에 베버를 비롯한 혁명가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희망을 갖고 찾아왔으나 결국 이곳도 거짓이었다.

“저하, 이곳을 오면서 노동자들의 얼굴을 보았사옵니다. 모두 과한 노동에 시달린 얼굴이었사옵니다.”

“그건 그자들의 선택이었다.”

“저하께오선 아니라 생각하시지만 밑에 있는 자들에겐 강요가 될 수 있사옵니다.”

“글쎄…… 관료들은 몰라도 노동자들은 아닐걸.”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베버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고위 관료라 불리는 이들은 노동자들보다 더 초췌한 모습이었다.

거기다 자세히 보니 카리엘 역시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저하께선 그들보다 더 일하시오.”

“……더 말입니까?”

“그리고 그대들이 들은 소문은 사실이오. 다들 보상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뿐.”

타리온의 첨언에 베버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사람이 모자라서 그렇다. 저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싶나? 그럼 와서 일을 하라. 사람을 더 모아 와.”

카리엘의 말에 베버와 혁명가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뭔가 잘못 걸린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것을 안 시점이 늦었다. 이미 덫에 걸린 이상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며칠 후, 지옥을 맛본 혁명가들이 죽어 나갈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도 없었다.

달콤한 보상을 제안하며 꼬드겼고, 그것도 안 되면 카리엘을 들먹이며 협박했으며, 나중에는 그만둔다면 조약에 따라 막대한 돈을 토해 내게끔 했다.

결국 마르크스 베버가 직접 카리엘을 찾았다.

“저하.”

“그만두려는 거라면 안 된다.”

단호하게 말하는 카리엘을 향해 베버가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데려올 자들이 있사옵니다.”

“데려올 자들? 그런 자들이 있었으면 진즉 말했어야지.”

“그들의 신분이 문제이옵니다.”

“평민들이라도 상관없어.”

이미 관료들 중 상당수가 평민들이었다. 거기다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자들 대부분이 평민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범죄자 출신들입니다.”

“……설마 지금 그대가 데려오는 자들이 공노예들인가?”

“그들의 후손들입니다.”

법에 의해 대역 죄인들을 노예와 비슷한 처지가 된 이들.

공식적으로 노예가 되진 않았다 하더라도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사는 이들이기에 붙여진 별명.

반역자의 자손들이나 그에 준하는 엄청난 죄를 지은 자들.

그들 대부분은 그 지역에 마을을 만들어 살게 되었는데, 결국 죽을 때까지도 그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부 데려오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 중 일부라도 이곳에 머물게만 해 주십시오.”

“…….”

젊은이들만이라도 그곳에서 빼내서 미래를 꿈꾸게 해 주고 싶은 베버.

하지만 쉬이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카리엘이라도 그들을 함부로 데려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은 죄가 워낙 엄중했기에 대를 이어 벌을 받는 이들이다. 몇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 황제가 죄를 사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전쟁에서 대승을 할 정도로 큼지막한 일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 마을 중 일부가 흑마법사들의 소굴이었다.”

가장 약한 자들을 노리는 흑마법사들답게 제국에 불만이 있을 만한 곳만 노려서 자신들의 세력으로 영입했다.

범죄자 소굴, 범죄 집단, 몰락한 귀족 등이 흑마법사들의 주요 타깃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공노예들이 사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들 중 영민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대만큼?”

“예.”

과거 고위 귀족이었던 만큼 그들이 가진 기술 같은 것이 대대로 이어져 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전생에 이들을 활용할 생각을 못 했던 것은 이미 반란군이 꼬드겨 데려갔었고, 남은 이들은 인마 전쟁과 몬스터 웨이브를 버티지 못하고 다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 중 쓸 만한 이들이 많다면?

“정말 그대만큼 똑똑한 자들이 많다고?”

“예, 저랑 비교도 안 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베버의 확신에 찬 말에 카리엘이 고민에 빠졌다.

한참을 고심하던 카리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데려와 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자네가 걱정할 바 아니고. 이들 말고도 데려올 사람 있다면 다 데려와.”

카리엘의 말에 베버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일단 우리부터 살고 보자고.”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베버를 물렸다.

귀족들의 반발 때문에 애써 억눌러 왔던 욕망.

이젠 그것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이왕 할 거, 적어도 전생에 이루었던 것 이상으로!’

그렇게 다짐한 카리엘은 머릿속에서만 간직해 왔던 것들을 노트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신분제의 사회에서 어려웠던 것들.

그것이 이 도시에 한해서라면 어찌어찌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를 하나의 독립 체제로 만든다.’

굳은 결심을 한 카리엘은 자신의 계획을 하나둘 정립해 나갔다.

‘이 도시에 한해서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계획들을 정리하는 카리엘.

이왕 혁명가들을 영입한 거, 전생에 했던 계획들을 하나둘 이뤄 나가 볼 생각이었다.

* * *

베버를 만난 바로 다음 날, 카리엘은 중앙으로 공노예들을 데려오고 싶다는 서신과 함께 그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평민들을 위한 기초 아카데미를 짓는다는 계획서 역시 보냈다.

그냥 글이나 간단한 산수 정도만 가르치는 것이 아닌 전문적인 인재 양성을 위한 계획이었다.

아무리 카리엘이라 하더라도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계획.

결국 귀족들의 반발로 인해 카리엘에게 명령서가 내려왔다.

“결국 이리되나?”

카리엘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코트를 들어 올렸다.

타리온이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하.”

“괜찮아. 이럴 줄 알았으니까.”

황제가 직접 수도로 귀환하는 명령을 내렸다.

황궁에 와서 대전 회의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그동안 공을 세웠고 1황자라는 신분을 갖고 있음에도 위험한 사상이 담긴 내용이었으니까.

카리엘은 곧바로 황궁으로 향했다.

* * *

한편 위험한 계획을 세운 카리엘을 직접 불러들인 당사자인 황제.

그의 궁에는 현재 비밀리에 변경백과 고위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대들이 원하는 게 정말 그것인가?”

변경백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황제는 귀족파의 수장인 두 공작을 바라보았다.

두 황자를 미는 공작들을 향해 묻는 황제를 보면서 두 공작이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그렇사옵니다.”

두 공작의 대답에 황제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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