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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72화 (72/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25. 눈치 게임!

거대한 마수와 카리엘의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화염의 장벽이 만들어지면서 다른 사람들과 카리엘을 가로막았다.

기묘한 파장에 마수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노를 억누를 정도로 호기심이 급격히 치솟았는지 작디작은 인간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세를 낮추고 거대한 얼굴을 들이밀자 움찔했던 카리엘도 겁먹지 않고 늑대에게 다가갔다.

-크릉!

공명하고 있던 늑대가 고개를 돌려 시카리오 후작을 보았다.

그러자 카리엘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나 저 사람이랑 같은 편 아니야.”

-크릉!

“음…… 저 새끼 나쁜 놈 맞아.”

카리엘이 기분 나쁘다는 듯 작게 우는 마수를 달래기 위해서 시카리오 후작을 나쁜 놈으로 몰아갔다.

마수 입장에선 자신을 공격하던 인간이니 나쁠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상태라면 설득이라도 해 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 그냥 시카리오 후작이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다.

-크릉! 크릉!

“아! 제일 나쁜 놈은 저 아래로 갔어.”

미궁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하자 마수가 작게 고개만 끄덕일 뿐 딱히 격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카리오 후작보다 훨씬 많이 때린 교황이라면 쫓아갈 줄 알았는데 마수는 살짝 웃기만 했다.

‘고생 좀 하겠네.’

마수가 이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미궁 아래에서 흑마법사들이 준비하는 게 상당히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릉!

늑대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는 모습은 기괴했지만 그만큼 기쁘다는 표시라는 것을 알기에 열심히 그를 편들어 주면서 마음을 달래 주었다.

카리엘은 마치 아기를 달래듯 대화하면서 마수와의 교감을 이어 나갔으나 북서부 때와는 달리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리겠는걸.’

북서부에서도 오래 걸렸지만 이번엔 훨씬 더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비록 대부분의 힘을 잃고 육체만 남았다지만 온전한 정령왕보다도 높은 격을 가진 마수였다.

그렇기에 정령왕의 파편 때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교감하면서 공명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카리엘을 돕기 위해 불덩이가 튀어 올랐다.

“아! 겁먹지 마. 내 친구야.”

-오랜만이다, 붉은 늑대야.

수르트의 인사에 마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기억에 없는 존재였지만, 아주 오래전에 만나 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혼의 대부분이 소멸되었구나.

수르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본래라면 육체와 함께 소멸해야 했을 영혼이지만 강제로 묶여 있으면서 타락해 버렸다.

그 때문에 기존에 있던 격마저 상실하면서 이 상태가 된 것이다.

그나마 강대한 육체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기에 지금의 영혼이나마 유지되었다.

-나 역시 목걸이가 아니었다면 이리되었겠지.

제국의 마법으로 겹겹이 보호되어 잠들지 않았다면 수르트 역시 모든 영혼이 소멸하였을 것이다.

본래라면 그것이 순리에 맞았을 것이나 안타깝게도 자신이나 마수 둘 다 타의에 순리를 어기게 되어 버렸다.

-얘기는 내가 할 테니 공명에 집중해라.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나와서 좀 도와!

수르트가 작은 팔을 부풀리면서 허공을 휘젓자 아주 작은 형태의 마그마 골렘이 나타났다.

용암을 뚝뚝 흘리면서 허공에 떠오른 작은 골렘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거대한 늑대를 바라보았다.

서로 정신연령이 비슷해서 그런 것일까?

갸웃거리던 마수와 골렘이 알 수 없는 대화로 열심히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쯧!

수르트가 혀를 차면서 둘의 대화를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정령왕의 파편은 본래도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했지만 찢긴 파편들을 흡수하면서 좀 더 이상해졌다.

남동부에서 파편들의 힘을 폭주시켰기에 그 힘을 막기 위해선 단순히 공명하는 것만으로는 어려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기 정령이나 다름없던 골렘을 강제로 끄집어냈다.

그러자 마치 한 몸이었던 것처럼 폭주하던 힘이 모조리 골렘에 흡수되었는데, 문제는 찢긴 상태에서 폭주까지 한 힘이라 그런지 골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미치겠군.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괴상한 대화를 하는 거대한 늑대와 마그마 골렘을 보면서 망설이던 수르트 역시 대화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분노로 가득했던 마수의 정신이 점차 안정되며 힘 역시 안정되어 갔다.

그럴수록 공명이 강해지면서 주변을 감싼 불의 색깔 역시 점차 정순한 색깔로 변해 갔다.

그 모습을 밖에서 바라보던 시카리오 후작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불의 요람인가?”

거대한 마수를 감싼 불의 형태가 마치 요람처럼 감싸고 있었다.

대충 느끼기에도 따뜻하고 포근함이 느껴지는 불의 힘은 시카리오 후작의 표정조차도 풀어지게 했다.

하지만 냉철한 시카리오 후작이 그 포근함에 취하는 시간은 짧았다.

“모두 정신 차려라! 저하를 지켜야 한다!”

시카리오 후작이 마력을 담아 고함치자 황급히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정신을 가다듬었다.

북부 변경백이 직접 다그치면서 정신을 일깨우자 몽롱한 상태였던 제국군은 다시금 무기를 잡고 자세를 잡았다.

카리엘과 마수의 주위로 겹겹이 둘러싼 방진.

어떤 이도 카리엘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든 방진 안에서 이 상황을 고스란히 촬영하는 영상구가 있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폐하께서 직접 명령하셨으니 괜찮겠지.”

거대한 불의 요람.

경이로운 이 장면을 함부로 촬영해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자신들은 명령을 따를 뿐이었다.

그런데 상당히 큰 영상구를 들고서 경이로운 장면을 촬영하는 마법사들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다른 각도로 촬영하는 마법사들.

사실 이들은 사전에 시카리오 변경백과 전부 얘기되어 있던 사람들이다.

“폐하께서 밀지를 내리셨으니 따르긴 한다만…….”

시카리오 후작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불의 요람을 바라보았다.

화산 폭발 때처럼 멀리서 찍는 게 아닌, 카리엘이 거대한 늑대와 교감할 때부터 모든 영상이 기록되어 있으니,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두 명의 마스터조차 완벽히 막지 못했던 마수와 교감하는 전 황태자.

이것만큼 수도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황제의 밀지는 내무부와 두 황자의 주도로 계획된 것이 틀림없겠으나, 어찌 되었든 황제가 직접 명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저하의 분노를 어찌 풀어 드려야 할지…….”

벌써부터 카리엘이 대로할 것이 걱정되는 시카리오 후작이 한숨을 쉬며 검을 꽉 쥐었다.

나중 일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지금은 카리엘을 완벽하게 지켜 내는 것만을 생각할 때였다.

“모두 바짝 차리고 경계를 삼엄하게 해라. 쥐새끼 하나 들여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예!”

제국 최강의 마스터가 호통치듯 하는 명령에 모든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 * *

그렇게 제국군이 마수 주위를 철통같이 에워싸는 동안 미궁 안으로 진입한 성국은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처음 지하에 진입했을 때만 하더라도 과거와는 별 차이가 없었다.

오랜 시간 봉쇄되어 있었다곤 하나 그래도 가끔은 지하까지 탐색 작업을 펼쳤던 성국이다.

하지만 최하층은 마수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탐색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최하층만큼은 성국도 오랜만에 탐색해 보는 것이었다.

분명 최하층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고받던 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마수가 있었던 최하층에 도착하자 그간 기록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그들을 반겼다.

“이런 미친 것들…….”

추기경 중 하나가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신성 마법을 펼쳤다.

언데드부터 괴상하게 변이된 몬스터들이 최하층에서 수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수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이 감시를 소홀히 한 결과가 되었군.”

교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모든 이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의도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이 흑마법사에게 대규모 연구 시설을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타락한 기운이라…….”

“아무래도 이 기운을 대규모로 살포할 방법을 연구했던 것 같습니다.”

타락한 기운을 응축해서 연기 형태로 살포할 방법을 연구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최하층의 몬스터들은 타락한 기운에 오염되어 몸 전체가 변이된 것이 보였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미궁의 지하 구조는 예전과 달리 많은 것이 변해 있었는데, 지하 통로가 몇 개나 생기면서 거인의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인의 산맥으로 무언가를 옮긴 흔적이 보입니다.”

성기사의 보고에 교황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이곳에 있는 오염된 기운들이 거인의 산맥에 풀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황의 물음에 몬스터에 해박한 고위 사제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타락한 기운을 들이마신 몬스터들이 광폭화될 겁니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만들어지겠지요. 역사상 몇 차례 없었던 최고 단계급 몬스터 웨이브가 만들어질 겁니다.”

타락한 기운이 담긴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으로 광폭화될 것이다.

꼭 산맥 전체에 연기를 퍼뜨려 광폭화할 필요는 없다.

상위 몬스터들만 광폭화해도 알아서 몬스터 웨이브가 만들어질 것이다.

거기다 연기 형태인 만큼 산맥에 올라 퍼뜨리기만 해도 되었다.

“성하! 이것을!”

다급히 교황을 부르는 성기사의 말에 다급히 그곳으로 달려간 교황은 한쪽 면에 그려진 지도를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연구 시설이 이곳 한 곳만이 아니었던 건가?”

“예, 동부 지역 전체에 이런 연구 시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인의 산맥 곳곳에서 광폭화할 준비를 하던 흑마법사들.

그것을 보며 교황이 이를 갈았다.

“이 사실이 밖에 알려져선 안 될 것이네. 일단 이곳의 흔적들을 모두 지워야…….”

“성하! 큰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이냐!”

옆에 있던 추기경이 성기사의 말에 고함치듯 말했다.

“제국 특수부대가 뒤따라온 듯하옵니다!”

“뭐! 뒤를 철저히 감시하라 하지 않았느냐!”

태양검이 놀란 표정으로 말하자 성기사가 고개를 조아렸다.

“지하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져서 경계가 어려웠습니다. 송구합니다!”

“하!”

태양검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고서 교황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최하층에 진입했습니까?”

“확실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최하층으로 진입하는 입구 근처에서 이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반쯤 잘린 까마귀가 그려진 천 조각.

그것을 보며 교황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들을 북부에 꽁꽁 묶어 두고 있는 저주스러운 존재의 특수부대.

그들이 이곳까지 온 것이다.

“덮는 건 어렵겠군요.”

교황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들이 사고를 가장해 카리엘을 죽이려 했던 것처럼, 시카리오 후작 역시 자신들끼리 이곳 미궁 지하를 공략하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기 때문에 까마귀들을 미궁 지하에 잠입시켰는데 이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상황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성하?”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교황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자 태양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쩌면 이 사건을 이용하면 거인의 산맥과 동부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성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듯합니다.”

“아…….”

교황의 말에 태양검을 비롯한 추기경들의 얼굴에 감탄 어린 표정이 지어졌다.

“거인의 산맥에 숨겨져 있을 흑마법사들의 비밀 기지를 수색해야겠지요.”

“겸사겸사 공국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황이 딱히 별말 하지 않았음에도 추기경들이 알아서 향후 이루어질 작전을 짰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작전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제국이 방해할 테지만…… 막아 봐야겠지.’

교황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번엔 반드시 카리엘에게 승리할 것임을 다짐했다.

* * *

그렇게 미궁에서의 일이 서서히 진전되어 갈 무렵, 수도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데릭으로부터 시작된 혼란은 다른 것들과 섞이면서 시위까지 일어난 것이다.

바로 그때 광장에 있는 거대한 영상구에서 북동부에서 일어난 한 장면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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