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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47화 (47/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16. 배신자를 처단하라! (2)

카리엘이 서북부로 올라온다고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일이 펼쳐졌다.

“증거를 찾았다!”

카리엘을 따라 올라온 병력이 메르헨이 말해 준 곳을 뒤져서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자 본격적으로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사전 작업을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한차례 습격한 이후 쉬는 타이밍을 이용해서 대대적인 청소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주요 인물들의 저택을 포위한 것이다.

북부의 까마귀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같이 따라온 그림자들이 주요 증거들을 확보하기 위해 잠입했다.

그러는 동안 감찰부원들은 공식적인 수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자 카리엘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이놈들부터 잡아 와.”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중앙군을 투입해.”

저항한다면 반역자로 취급하면 그만이다.

정예들로 구성된 병력을 투입해서 기존의 병력을 쫓아내고 서부로 부대를 이전하려 했던 쓰레기 부대를 포위했다.

그렇게 모든 작업이 끝나자 마침내 감찰부가 범죄자들을 하나하나 방문했다.

가장 먼저,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 위해 기존의 부대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장교들이 대거 잡혀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감히 황태자를 습격하는 걸 도왔던 배신자들에게도 감찰부가 방문했다.

“나, 난 아니오!”

“전하의 명이오.”

“아무리 전하의 명이라 하더라도 이리 막무가내로 데려가는 건……!”

한 장교가 너무한다고 소리쳤지만 감찰부원 중 하나가 조용히 증거물을 꺼내 눈앞에 떡하니 들이대자 그의 입은 다물릴 수밖에 없었다.

“막무가내?”

중앙에서 파견된 고위 감찰관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곱게 죽을 생각은 마시오.”

“그…….”

이미 죽는 건 확정이었다.

남은 것은 어떻게 죽느냐였는데, 고위 감찰관에게 찍힌 그는 곱게 죽긴 글러 버렸다.

잡혀가는 장교의 뒤를 따라가는 감찰부원은 조용히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현재 40% 정도 잡혔습니다.”

“느리군.”

보고하는 타리온에게 혀를 찬 카리엘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몇몇 저항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법대로 하라고 해.”

카리엘이 사법권을 들먹이면서 저항하는 이들을 비웃었다.

그럴 줄 알고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놨다.

단번에 죽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메르헨을 설득했으며, 증거를 확보하고 나서도 감찰부를 통해 절차를 밟게 했다.

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은 예상했기에 귀찮지만 하나하나 절차를 밟아 진행한 것이다.

“저항하는 놈들은 가중처벌 한다고 해라.”

“이미 죽을 놈들입니다만…….”

“심하게 저항하는 놈들은 저쪽으로 보내야지.”

카리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그곳엔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같이 요동치는 화산이 보였다.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숲에 범죄자들을 떨궈 놓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적어도 곱게 목이 베여 죽는 것보단 끔찍한 일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음…….”

타리온이 침음을 흘리면서 입을 닫았다.

온몸이 물어뜯기고 찢겨 나갈 것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얌전히 자수하는 놈들은 선처한다고 해. 동시에 저항한 놈들은 저기로 보낸다고 넌지시 흘리고.”

“예.”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카리엘이 처음 잡고자 했던 자들은 전부 잡아들였다.

처음 말을 흘렸을 때는 아무도 자수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저항한 놈들 중에 몇몇을 중앙군이 직접 숲 근방에 던져두고 오자 그때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허겁지겁 카리엘에게 달려와 선처를 부탁했다.

그 덕분에 손쉽게 수사를 진행하게 된 감찰부는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수사를 확대해 나갔다.

자수한 자들을 통해 추가적인 범죄 조직과 벨푸르스, 흑마법사에 대한 연관성을 조사해 나갔다.

그로 인해 적어도 서북부 방어선에 한해서라면 배신자들은 거의 잡아들인 듯싶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중앙에서 황태자를 따라온 감찰부를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방어선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전시에 이런 사태를 만드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반드시 지양해야 될 일이었다. 전쟁에서 사기가 떨어지면 패배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법칙이 적어도 지금만큼은 상관없었다.

“마스터라니…….”

“미쳤군.”

성벽 위에서 홀로 밖으로 나가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황궁 기사단장을 바라본 병사들이 경악했다.

거대한 검이 휘둘릴 때마다 지상의 몬스터들이 쓸려 나갔고, 공중에서 날아오는 몬스터들 역시 거대한 검을 피해 가지 못했다.

홀로 가장 위험한 곳을 막아 내고 있었고, 같이 올라온 중앙군 기사단이 투입되어 방어했다.

“황궁 기사단도 투입해.”

“소신들은 전하의 안위만을 생각해야 하옵니다.”

“그럼 너희들이 가라.”

“전하, 죽여 주시옵소서.”

황궁 기사단을 보내려고 하자 기사단원들이 안 된다며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고, 타리온과 그림자들을 보내려 하니 그들은 차라리 죽여 달라고 무릎 꿇고 있었다.

“그런고로 너희들밖에 없다. 그간 심심했지?”

“……전하.”

토토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지만 카리엘은 빙그레 웃으면서 뒤를 보라고 눈짓했다.

돌아보니 아르슈나와 이리스가 벌써부터 몸을 풀고 있었다.

이리스는 몬스터와 전투할 생각에, 아르슈나는 화산의 영향인지 화기를 묘하게 많이 품고 있는 몬스터들과 싸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난 것이다.

물론 몬스터 외과 의사인 브리온은 몬스터를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떠서 괴상하게 생긴 무기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저 또라이들…….”

“자네가 할 말인가?”

“소신은 운동을 좋아할 뿐 정상이옵니다.”

토토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하자 근방에 있는 모든 이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은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토토. 카리엘은 그런 그가 귀찮다는 듯 빨리 꺼지라고 손짓했다.

전원 기사단장급인 친위대가 나서자 상황은 점차 안정화되었다.

“따라와.”

“예? 전하, 몸도 안 좋으신데 어디를 가시옵니까!”

타리온이 호들갑을 떨면서 황급히 뒤를 따랐다.

“너희들이 내 안전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움직일 수밖에.”

“전하!”

카리엘이 직접 성벽 위로 올라갔다.

무리하게 거인의 팔을 소환한 대가로 격한 동작을 하는 것은 아직 불편했지만, 이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직접 뛰는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가 몰려오는 한복판에 올라가자 결국 타리온과 황궁 기사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잘하네.”

올라오는 족족 베어 넘기는 황궁 기사들을 보면서 카리엘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기가 위험하네.”

성벽을 걸어가면서 위험하다 싶은 곳으로 이동하자 이제는 황궁 기사들과 시종들이 먼저 움직여서 카리엘이 가는 길을 터놓았다.

가끔 가다 강해 보이는 몬스터들이 올라왔지만 타리온이 고유 기술까지 써 가며 손쉽게 죽여 버렸다.

그렇게 몇 번을 위험해 보이는 곳으로 직접 가서 처리해 주자 서북부에 소문나기 시작했다.

***

“전하께서 위험하다 싶은 곳은 직접 행차하신다며?”

다들 소문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몇 차례나 가장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며 막아 준 덕분에 어느새 카리엘의 별명은 ‘서북부의 수호신’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에게도 왔으면 좋겠다.”

“그거 좋은 거 아니야.”

한 병사가 힘들다며 칭얼대자 옆에 있던 병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여기로 온다는 것은 우리가 뚫리기 직전까지 몰린다는 뜻이잖아.”

“그런 곳만 가신다고? 전하신데?”

“그러니까 대단하신 거지.”

황태자의 몸으로 가장 위험한 곳을 찾아다닌다.

여태껏 황족들 중에 그런 자는 없었기에 모두들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그들의 눈에는 이미 황태자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 들어찼다.

“그런데 전하께서 여기서의 일이 끝나면 황태자 자리에서 내려오신다는데.”

“그렇다고 하더라고. 동생분들이 더 뛰어나다며 대의를 위해 물러나신다나.”

“아쉽다.”

한 병사가 아쉬운 표정을 짓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분보다 더 뛰어나다면 얼마나 뛰어다는 거야?”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전하보다 뛰어나다라……. 역사에 길이 남을 성군이 탄생하시려나?”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기대감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난 전하가 제일 좋을 것 같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한 병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서북부 내에서 카리엘에 대한 충성심은 점점 절대적인 것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

“점점 전하를 좋아하는군요.”

“그 표정 뭐냐?”

히죽거리는 타리온의 얼굴을 보고 인상을 찡그린 카리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자신의 안전을 이유로 반항하는 황궁 기사들과 타리온 때문에 직접 움직인 것뿐인데 소문은 점점 과대 포장되어 갔다.

“좋은 것 아닙니까?”

“좋겠냐? 이런 식으로 소문나면 좋을 게 없어.”

가뜩이나 공작들이나 황제가 카리엘을 잡아 두고 부려 먹으려고 하는 판국이다.

거기다 지금은 좀 달라졌다지만 황제의 의심병 역시 문제였다.

언제 또다시 의심병이 재발하여 발작할지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깔끔하게 은퇴해야 했다.

“그래도 안정화는 많이 진행되었네.”

“예, 이제 전선 전체가 안정되어 가고, 중앙에서 물자와 병력도 차차 보급되고 있습니다.”

“다음 보급일에 맞춰서 토벌 준비를 해야겠어.”

“너무 이르지 않겠습니까?”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흑마법사들이 저곳에서 뭔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어. 그들이 하려는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 쳐야지.”

“그렇긴 합니다만…….”

타리온이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두 황자 저하께서 벨푸르스와 전쟁을 시작하셨습니다.”

“결과는?”

“압승입니다. 다만…… 그들의 영지에 예상보다 훨씬 적은 병력이 있었다 하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다로 나가는 길목은?”

“서부 변경백이 틀어막고 있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서부 변경백에게 연락해서 바다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틀어막았다.

이제 저들은 독 안에 든 쥐였다.

“잘 막고 있으라고 해. 그쪽으로 튀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리 전하겠습니다.”

예상이 맞다면 분명 해적들과 내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제국의 정예군과 정면에서 싸우는 멍청한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분명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계책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은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분명 쉽게 죽을 놈들은 아니었다.

전생에 그랜드 마스터를 대동하면서 보이는 족족 쓸어버렸어도 살아남은 놈들이 암상인과 흑마법사란 놈들이었다.

그렇기에 어딘가 살길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튈 생각이냐…….”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서북부에서 할 일은 대부분 끝났으므로 흑마법사와 벨푸르스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으나, 이내 그 생각은 접어 둘 수밖에 없었다.

“화산에 엄청난 양의 마나 흐름이 관측되었습니다!”

타리온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다급하게 보고하자 카리엘이 벌떡 일어났다.

“보급품은?”

“자정까진 당도한다 하옵니다.”

“먼저 움직인다. 모두 출진 준비를 하라고 해.”

“예!”

카리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는 타리온.

바로 그때, 카리엘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두 번째 계약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움직이세요!]

“뭐?”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반투명한 창에 지도가 떠올랐다.

서북부의 군대와 숲, 그리고 화산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이곳에 있는 어떤 지도보다 상세했다.

마치 전생에 지구에 있었던 위성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지도에서 표시된 화산 꼭대기에 붉은 점이 박혀 있었다.

“정령왕의 파편인가?”

-새로운 놈을 만날 때인가?

카리엘의 중얼거림에 작은 불덩이가 ‘뿅!’ 하고 나타났다.

“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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