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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44화 (44/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15. 카리엘의 비장의 수 (2)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까마귀들은 모습을 드러낸 흑마법사들의 뒤를 쳤다.

“까마귀들이다! 대응해라!”

까마귀들이 나타날 줄 알았다는 듯,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발현했다.

몸에 두르고 있는 마도구를 통해 방어 마법을 시전해 까마귀들의 기습을 막아 냈다.

비록 기습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까마귀들의 작전이 실패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기습한 주목적은 기사단이 전열을 재정비하게끔 시간을 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흑마법사가 시간을 끄는 것 같다. 빠르게 뚫어야 해! 전열을 정비해라!”

중앙 기사단을 이끄는 선임 기사를 중심으로 기사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돌진 준비!”

까마귀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전열을 정비한 중앙군의 기사들이 일제히 돌진을 준비했다.

중앙에 서서 가로막고 있는 흑마법사를 뚫고 가기 위해 기사들이 돌진을 시작하자 또다시 먼 거리에서 마력포가 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리엘이 황급히 황궁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황궁 기사들은 중앙군 기사들을 도와라!”

“하오나 전하!”

“빠져나가려면 적을 뚫어야 해!”

카리엘의 명령에 황궁 기사들이 황급히 마력을 끌어 올렸다.

불완전하지만 돌진하는 중앙군 기사들의 주변에 마력 결계를 둘러 주는 순간, 중앙군 기사단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쐐기 형태의 마력 파장이 흑마법사들의 마법들을 박살 내며 돌진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마력포의 거대한 빛줄기가 날아들었으나 황궁 기사의 마력 결계가 기사들을 향하는 빛을 막아 주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구축되지 않은 마력 결계는 마력포의 빛줄기를 제대로 버텨 내지 못하고 깨져 나갔다.

“쿨럭!”

황궁 기사 중 몇몇이 피를 토하면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리하게 마력을 끌어 올려 만든 결계가 깨지면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런 황궁 기사들의 희생을 뒤로하고 중앙군 기사단이 빠르게 앞을 가로막은 흑마법사를 향해 돌진했다.

“뚫어라!”

황궁 기사들이 내상을 감수하고 시간을 벌어 준 기회를 헛되이 날릴 수는 없는 법.

중앙군 기사단이 사력을 다해 전방에 있는 흑마법사들의 마법을 모조리 파훼하고 선두에선 선임 기사의 검이 앞을 가로막은 흑마법사에 닿으려는 순간, 흑마법사의 주위로 검은 안개가 생겨나더니 엄청난 숫자의 뼈의 칼날들이 솟아올랐다.

“고유 마법이다!”

선임 기사가 그렇게 외치는 순간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들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뼈로 이루어진 공간이 만들어져 기사단을 압박했다.

마도사의 반열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단계에 있는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 마법.

그것이 흑마법사의 손에서 발현된 것이다.

“데스 나이트다! 저들을 먼저 막아라!”

장로급 흑마법사의 고유 마법을 시작으로 언데드 군단의 핵심이라 불리는 죽음의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흑마법사들을 견제하던 까마귀들을 데스 나이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전하를 지켜야 한다! 전원 수비 대형으로!”

이미 멈춰 버린 이상 돌진 대형은 필요가 없었다.

정예 병력답게 명령이 내려지는 그 순간 방패병들이 앞으로 나서면서 수비 대형을 구축했다.

동시에 몇몇 기사들이 사이사이 자리하면서 흑마법사들을 견제했다.

이대로라면 균형을 유지한 채 기사단이 장로급 흑마법사를 뚫길 기다리면 되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이 준비한 건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다크 나이트다!”

흑마력으로 강화된 기사들.

악마들과 계약한 대가로 흑마력을 주입받아 기사가 된 이들.

다크 나이트라 불리는 어둠의 기사단이 흑마법사를 견제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빠르게 카리엘의 마차를 노렸다.

그러자 황궁 기사들이 나섰지만 내상을 입은 터라, 많은 숫자들의 다크 나이트를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움직여라.”

마지막까지 마차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타리온이 명을 내리자 황태자의 시종들이 움직였다.

은퇴했던 그림자들이 오랜만에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기 위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다크 나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고유 마법이라……. 장로급인가? 뼈 마법 계열은 처음 보는데…….”

카리엘이 마차 안에서 중얼거리면서 고유 마법을 발현하고 있는 장로급 흑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기억 속에 없는 걸 보면 인마 전쟁까지 살아남은 핵심 인물은 아닌 듯싶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생각보다 월척이 걸려들었다.

전생에서도 장로급은 인마 전쟁이 시작할 때까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을 잡기 위해 이렇게 빨리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록 1장로나 2장로 같은 핵심 인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장로는 장로였다.

전생의 경험상 장로급이 나타났다면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었다.

‘이게 끝은 아닐 테지. 얼른 꺼내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이 돌아가는 상황을 창문으로 세밀하게 살폈다.

흑마법사가 숨긴 패를 전부 드러내는 순간 타리온이 직접 움직일 것이다.

아무리 장로라고 하더라도 기사단을 상대하느라 힘 빠진 상황에서 타리온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둘 중 뭐부터 드러낼 거냐?

‘상황을 봐야지.’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그렇게 마음속으로 말하고는 마차 밖을 주시했다.

치열한 격전 속에서 눈치를 보던 카리엘과 흑마법사.

먼저 움직인 쪽은 흑마법사였다.

“……그걸 시작해라.”

장로의 말에 흑마법사들이 망설임 없이 무언가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흑마법사들의 마력이 폭주하면서 상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대계를 위하여!”

“대계를 위하여!”

모두가 대계를 위하여 폭주하는 흑마력과 함께 산화하는 흑마법사들.

그것을 보는 카리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봐도 미치광이 집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또라이 짓이었다.

“악마 소환이다!”

“막아!”

지휘관들이 악을 쓰면서 스스로를 제물 삼아 악마를 소환하는 흑마법사들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희생하는 흑마법사들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숨긴 패가 고작 저거였나?”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창문을 열었다.

“타리온, 장로를 잡아.”

“전하.”

타리온은 고개를 저었지만 카리엘이 힐끔 뒤를 보자 결국 고개를 숙였다.

“마차 안에만 계셔야 하옵니다.”

타리온의 당부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움직였다.

마법사에게 고유 마법이 있다면 무인에겐 고유 기술이 있다.

특성을 개화하는 것을 넘어 그 특성으로 고유한 기술을 만들어 낸 자들.

제국에도 몇 없는 6단계 무인이 장로급 흑마법사를 잡기 위해 나섰다.

캉!

“감이 좋군.”

다급하게 뼈 방패를 만들어 치명상을 피한 장로가 타리온의 말에 이를 갈며 말했다.

“……황태자의 개인가?”

장로의 말에 타리온은 자신의 주변에 가득 찬 뼈로 만들어진 창을 보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고유 영역이라……. 귀찮군.”

준비된 마법사는 한 단계 위의 존재도 상대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까다로웠다.

고유 마법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낸 장로는 타리온조차 까다롭다고 생각할 만큼 강했다.

하지만 기사단에 마력을 너무 많이 소비한 것이 장로의 발목을 잡았다.

“제압하려면 팔 한 짝 정도는 날려야겠어.”

타리온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움직였다.

평소 카리엘의 옆에서 멍청한 표정으로 웃거나 어벙한 짓을 하던 것과 다르게 전투에 돌입한 타리온은 누구보다 매서웠다.

카가가각!

“크으…….”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속에 할 수 있는 것은 뼈 방패로 막으며 가까스로 버티는 것뿐인 장로.

뼈 마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타리온의 이동 속도는 마도사에 근접한 장로도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그나마 마법사의 영역 안에서의 싸움이라 버티는 것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벌써 장로의 목은 떨어졌을 것이다.

“얕았나?”

장로의 마법을 뚫고 팔을 베어 낸 타리온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자 장로가 조금씩 한쪽 팔을 부여잡으면서 시간을 벌기 위해 타리온에게 말을 걸었다.

“친위대를 믿고 나를 잡으러 왔는가?”

“대화는 팔부터 날리고 하지.”

웃음기를 머금은 장로에게 그렇게 말한 타리온은 다시금 움직이려 했다.

그러자 장로가 비웃듯 말했다.

“그대가 여기로 온 것은 크나큰 실책이다. 그로 인해 황태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니…….”

“고작 저것 때문이라면 별문제 없을 것 같군.”

장로의 말에 타리온이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흑마법사들의 희생으로 소환된 악마들.

하지만 그들은 카리엘의 마차에 닿지 못했다. 전력을 드러낸 친위대에 의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전원 5단계에 이른 황태자의 친위대가 가진 힘은 흑마법사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장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우리가 준비한 게 과연 이걸로 끝일까?”

장로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순간, 까마귀 하나가 다급히 외쳤다.

“몬스터들이다!”

“……뭐?”

까마귀의 외침에 타리온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게 무슨…….”

타리온의 반응을 본 장로가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다.

“서부군에 우리가 심어 둔 첩자 하나 없을 것 같았나?”

“뭐?”

순간 이해하지 못했던 타리온이 이를 악물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흑마법사와 손잡은 군부를 생각하며 타리온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살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장로는 더욱더 큰 웃음을 터뜨렸다.

“네놈…….”

“그러게 말했잖나, 후회할 거라고.”

자신의 선택을 비웃으며 마법을 사용하는 장로를 보면서 타리온은 이를 악물었다.

이번엔 반대로 장로가 타리온을 가로막았다.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아는 장로는 이대로 타리온을 붙들어 두면서 목표했던 카리엘이 죽기를 기다렸다.

***

그렇게 타리온이 장로에게 붙들려 있는 동안 어느새 카리엘의 주변으로는 언데드들이 몰려들고 있었고, 정면으로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악마를 소환하는 마법진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카리엘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이제 나서야 될 것 같습니다.”

“부탁하오.”

남자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순간, 주변에 접근하던 다크 나이트들이 그대로 쪼개져 버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상황을 목격한 다크 나이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적으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문은 곧이어 경악으로 바뀌었다.

“마……스터라고?”

흑마법사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해서 소환한 거대한 악마.

소처럼 두 개의 뿔을 가진 거대한 악마의 돌진을 막아선 거대한 검을 보면서 다크 나이트들의 붉은 눈에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여유롭게 거대 악마의 돌진을 지켜보던 장로 역시 경악했다.

“마스터라고! 북부의 마스터가 아니라면…… 황궁 기사단장?”

장로의 말에 타리온이 빙그레 웃었다.

“이런 미친! 황제를 지켜야 할 자가 왜 여기에!”

제국을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중 하나인 황궁 기사단장 아켈리오 제스테리언.

그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장로는 황제를 지켜야 할 황궁 기사단장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언제까지 경악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타리온이 전심전력으로 그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의 고유 기술인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 모습을 감춘 뒤 사각으로 베어 들어오는 공격에 장로는 두 겹 세 겹으로 뼈 방패를 두르며 방어해야 했다.

그렇게 장로를 타리온이 묶어 두는 동안 황궁 기사단장이 외쳤다.

“나 아켈리오 제스테리언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금 당장 전하의 마차를 중심으로 모여라!”

마스터의 명령에 흩어져서 싸우던 모든 병력이 일제히 카리엘의 마차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중앙군 기사단과 병력, 숲에서 싸우던 까마귀들, 다크 나이트를 밀어내던 그림자들, 악마들을 몰아내던 친위대까지 모두 모이자 아켈리오가 거대한 검을 만들어 냈다.

“길을 뚫겠다. 모두 전하를 지켜라.”

“예!”

아켈리오의 말에 모든 병력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러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아켈리오가 자신의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고위 악마를 일격에…….”

살아남은 몇몇 흑마법사들이 아켈리오가 일격에 거대한 악마를 두 쪽 내는 것을 보고 다리를 휘청이며 주저앉았다.

압도적인 마스터의 위용과 함께 절망적이었던 전황은 급격하게 변해 갔다.

정면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이 눈이 벌게져 달려들었으나 아켈리오는 숨 쉬듯 가벼운 움직임으로 몬스터들을 베어 내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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