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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39화 (39/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13. 즐거운 시간?

황제와 함께 황태자를 엿 먹일 때만 해도 몰랐다.

분노한 황태자가 날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던 귀족들은 오랜만에 파티까지 열었었다.

카리엘을 임시로 재상의 자리에 앉히면서 비어 있던 관료들의 자리도 하나둘 채워 나가기로 정했기에 그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문제는 머리끝까지 분노한 카리엘이 그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빡친 상황에서 이런 소식까지 들었으니 카리엘이 대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하, 조금 쉬시면서 하시는 것이…….”

“밑의 애들을 굴리려면 나도 고생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야. 머릿속에 든 게 있어야 잘 굴릴 수 있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타리온이 긁어 온 자료들을 시종들과 함께 분류하고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어떤 사람은 분노가 한계치를 넘어서면 오히려 냉철해진다고 하던가?

카리엘이 딱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머리끝까지 분노한 것이 도리어 냉철한 마음으로 귀족들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게 했고,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자신이 고생하는 것 이상으로 굴려 버리는 것이었다.

카리엘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주요 자료들을 파악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론 연맹에 사신을 보냈더니 이런 짓거리를 했더라고?”

카리엘에게 개인적으로 날아온 서신.

거기에는 공식적으로 보낸 사신이 아이론 연맹의 귀족들에게 접근해 밀수업자를 소개해 달라고 했던 정황들이 담겨 있었다.

사신 행렬에는 통관을 잘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이용해 꼼수를 부리려 했던 것이다.

“그, 그것이…….”

“이 새끼, 사신이 되기 전에도 평가가 좋지 않던데? 왜 이 녀석을 사신으로 보낸 거지?”

카리엘이 싸늘한 표정으로 묻자 외무대신의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황제파를 박살 내 놨더니 엉뚱한 녀석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주, 죽여 주시옵소서!”

“그 말 진심인가?”

카리엘은 보란 듯이 타리온이 긁어 온 자료들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아이론 연맹에 보낸 사신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던데?”

보기만 해도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리엘이 외무부의 관료들을 바라보았다.

“인접 국가에서 탱자탱자 놀면서 정보를 파악하라고 준 돈을 마약 사는 데 쓰질 않나!”

“소, 송구합니다!”

“문제가 생긴 제국의 상인들을 도우라고 보내 놨더니 그들에게서 삥을 뜯어?”

대로한 카리엘이 외무부 대신을 바라보았다.

“이런 새끼들을 데리고 서북부 문제에 대응할 수 있겠어?”

“송구합니다. 곧바로 시정 조치에 들어가…….”

“됐고, 이 새끼들 황궁으로 불러들이고 새로운 사신들을 보내. 정식으로 사과하고.”

“그, 그럼 제국의 위상이…….”

외무대신의 말에 카리엘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대륙 최고의 호구에게 더 떨어질 위상이 있던가?”

카리엘이 신랄한 비판에 외무대신이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해? 그럼 잘했어야지. 인맥질로 이딴 덜떨어진 놈 뽑지 말고 제대로 하든가. 이래 놓고 국제적 위상 타령을 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

맞는 말에 반박하지 못한 채 고개만 떨구는 외무대신.

“다음 대전 회의 때까지 해결 못 하면 이 녀석들 대신 대신의 목이 날아갈 거야. 내 장담하지.”

카리엘이 살벌한 눈으로 협박하며 외무부를 나섰다.

감찰부야 포돌스키가 알아서 정리했고, 내무부는 알아서 기었기에 카리엘이 직접 찾아갈 정도로 큰 문제는 없었다.

남은 부처 역시 카리엘의 전문성이 떨어졌기에 큰 비리 문제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터치할 게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터져 나왔다.

“장난하나? 내가 분명 서부의 군대는 건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이 우스운가?”

카리엘이 도끼눈을 뜨고 묻자 군부대신 하워드가 무릎을 꿇은 채 황급히 말했다.

이미 대전 회의에서 전부 결정된 사안을 군부대신이 틀어 버린 것이다.

이미 찾아올 줄 알았는지 카리엘이 오자마자 무릎부터 꿇은 하워드가 변명을 시작했다.

“서북부에서 다급하게 지원 요청을 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중앙군이 지원하러 갔잖아.”

“그것이…… 아직 도착하기 전이라 일단 서부에 있는 중앙군을 빼서 지원하고 서북부로 가는 군대 일부를 서부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하는 하워드.

황제의 함정에 당했을 당시 가장 열변을 토했던 사람이 하워드였기에 카리엘은 다른 자들보다 더 살벌하게 그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벨푸르스의 포위망을 풀자고?”

“그, 그것이…….”

“지금 그 새끼들이 폐하의 명도 거부하는 거 안 보여? 몬스터 웨이브에 맞춰서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서부는 박살 나는 거야!”

카리엘이 분노하며 의자를 치자 하워드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하, 그 새끼들이 지원 요청했다고?”

“……예.”

“갖고 와.”

카리엘의 명령에 하워드가 재빨리 책상 한구석에 쌓여 있는 서류 더미에서 서북부의 지원 요청서를 빼 가져다주었다.

그것을 천천히 살펴보던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미친놈들이네.”

“예?”

카리엘의 욕설에 하워드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몬스터가 숲을 빠져나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텐데?”

“그렇사옵니다.”

“화산 폭발까진 더 여유가 있고?”

“예.”

카리엘의 물음에 하워드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뭐가 다급하다고 지원 요청을 한 거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하워드가 뭔가 알고 있는지 입을 달싹였다.

“말해.”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릴 기세라 잠시 망설이던 하워드는 조심스레 말했다.

“서북부를 담당하던 부대 일부가 서부로 부대 이전 요청을 했습니다.”

“미친 거야?”

“그것이…… 명분은 있사옵니다.”

하워드가 그렇게 말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 벨푸르스에 대한 의심이 떠돌며 서부에 포위망을 형성할 때, 서북부의 부대 중 하나가 지원한다고 나섰던 것이다.

군부에선 그것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여러 사건들이 터지면서 중앙군이 파견되고, 특히 황제파가 축출되다시피 하면서 명령 체계에 문제가 생겨 미뤄 둔 게 문제였다.

“그것뿐만이 아닐 텐데?”

“예, 몇몇 눈치 빠른 자들이 서북부에 문제가 생겼다고 공식 발표가 나기 전에 해당 부대로 이동했습니다.”

“대부분 귀족들의 자제들이겠지?”

“……그렇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하워드.

여기서 나댔다가는 자신의 목이 날아갈 판국이라 식은땀을 흘리면서 카리엘의 처분을 기다렸다.

“이 새끼들이 이러는 이유가 뭐지?”

카리엘이 갑갑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제국의 군대가 썩었다지만 자신들이 살기 위해 해당 지역을 이탈하려고 하는 것을 방관할 리가 없었다.

분명 후에 군사재판에 회부될 것이 자명한 일.

그런데도 이런다는 것은 믿고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나중에 큰 처벌을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살고 보자는 자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것 때문에 충성심에 나섰던 부대를 쓰레기로 만들었다는 건가?”

제국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벨푸르스의 포위망에 가담하려 했던 부대가 순식간에 서북부에서 도망치기 위한 부대로 전락했다.

온갖 쓰레기들이 그 부대에 지원하며 기존에 있던 부대원들을 다른 곳이 밀어냈고, 결국 나름 이름 좀 날렸던 부대가 쓰레기 처리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대체 왜? 그걸 감안해도 이해가 안 가는군.”

카리엘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하워드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것이…….”

“말해.”

카리엘이 죄를 묻지 않겠다는 듯 명하자 그제야 하워드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다 겨우 말했다.

“군부 내에 있는 귀족들 중에 벌을 주는 게 보여 주기식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보여 주기식?”

카리엘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감찰부에 보낸 귀족들이 몇이며, 몇몇은 벌써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어떤 이들은 험지에 수감되어 광산 노예로 살고 있는데 보여 주기식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황제파의 주요 인사들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잡은 귀족들 중에도 아직까지 재판받고 있는 자들이 있기에…….”

“있기에?”

“태자 전하께서 물러나시면 그들 역시 나중에 풀려나는 것은 아닌지…….”

귀족들의 희망 사항을 들은 카리엘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그러면 내가 은퇴할 경우 자신들도 큰 처벌은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가?”

“적어도 목숨은 부지할 것으로 판단한 듯합니다.”

하워드의 말에 카리엘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괜히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서 처리하려고 했더니 카리엘을 호구로 본 것이다.

“재밌네.”

미소를 짓고 있는 카리엘.

하지만 하워드가 보기에 저건 악마가 일을 벌이기 전에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철저하게 맞아 들어갔다.

하워드에게도 다음 대전 회의 때까지 처리할 방안을 가져오라고 명한 후, 카리엘이 움직인 곳은 감찰부였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날 호구로 보는 귀족들이 있는 모양이야.”

“……송구합니다.”

포돌스키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대가 송구할 일은 아니지. 아무래도 신사적으로 처리하려고 한 게 문제 같아.”

“속도를 더 내겠습니다.”

포돌스키의 말에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됐네. 감찰부가 속도를 내 봤자지.”

“그럼…….”

“그래, 다음 대전 회의에서 수감된 황제파를 쓸어버릴 생각이야. 그리고 곧바로 서부로 움직여야겠어.”

카리엘의 말에 포돌스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직접 가실 생각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내가 은퇴한다고 하니 만만하게 보인 모양이야.”

중앙은 그래도 자신의 눈치를 보는 편인데, 지방은 아닌 모양이었다.

수도에서는 괜히 걸려서 뒈질지 몰라도 지방은 발각당하기도 쉽지 않고 일 처리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 일을 벌여도 황태자가 은퇴할 때까진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나 보다.

그런 그들을 위해 카리엘이 직접 나설 생각을 했다.

“너무 위험하옵니다.”

“중앙군에 대공가와 함께 움직일 거다. 게다가 데이비어 공작과 3황자도 불러들일 거고.”

마스터가 포함된 대규모 군대를 습격한다?

그럼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오히려 잘됐어. 이참에 빠르게 정국을 수습해 버리고 서부에만 집중해야겠어.”

“몸을 생각하십시오. 다급하게 움직이실 필요가…….”

“다 끝내고 쉬면 돼. 서북부와 벨푸르스가 끝나면 은퇴다.”

카리엘의 말에 포돌스키가 걱정스레 말했다.

“예? 하오나…… 흑마법사들도 있고…… 성국의 문제도 있사옵니다.”

“그것들은 동생들이 처리해야지. 이미 폐하의 약조를 받았어. 은퇴할 거야.”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포돌스키에게 서부에 갈 감찰부 인원을 추려 놓으라고 명령했다.

***

얼마 후, 카리엘이 고대하던 대전 회의 날이 다가왔다.

-즐거운 숙청 시간이군.

“즐겁진 않아.”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런 것치곤 웃고 있는데?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더욱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그의 말처럼 즐겁긴 했다.

전생에서도 그랬지만 정신 못 차리고 자신을 호구로 보는 자들이 간혹 존재했다.

조금만 풀어 줘도 딴생각을 품는 귀족들.

그런 그들에게 단죄의 철퇴를 내려칠 때면 언제나 즐거웠다.

“자, 그럼 미뤄 두었던 숙청을 시작해 볼까?”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전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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