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10. 대공가의 수도 복귀! (3)
자신의 은퇴를 확정 지을 수 있는 귀한 손님이 곧 오기 때문일까?
그동안 미적거렸던 작업들을 빠르게 진행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내무부였다.
“대공가의 모든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말했을 텐데?”
“그, 그것이…….”
“폐하께 허락도 받았거늘…… 나를 무시하는가? 아니면 폐하를?”
“아니옵니다!”
카리엘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황급히 바닥에 꿇어앉아 허리를 굽히는 이들.
“대공가가 오기 전에 처리해. 괜히 미적거려서 도착할 때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생활이 고달파질 거야.”
협박성 멘트를 내뱉고 떠나는 카리엘의 모습에 내무부 관료들의 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던 타리온은 카리엘의 뒤를 따르다 말고 잠시 고개를 돌려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힐끔 보았다.
대공가의 복권은 결정되었지만 제재를 완전히 풀어 주는 것과 지원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그렇기에 내무부가 황태자의 명을 받았음에도 미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내무부 자체적으로 황제한테 상신해 결재를 받을 수 있지만 결국 귀족회에서 반발해 대전 회의 안건으로 올라간다면 고달파지는 건 내무부였다.
그걸 알고 있기에 타리온도 잠시 안쓰럽게 바라보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동안 권력에 기생한 이들이었기에 크게 불쌍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권력에 충성했다지만 내무부 관료들 역시 썩은 부분이라는 것은 변함없었다.
지금이야 어쩔 수 없어 계속 남겨 둔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부 갈려 나갈 존재들에 불과했다.
‘꼴좋군.’
그렇게 생각하며 타리온은 황급히 카리엘을 뒤따라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저, 전하, 예까지 어인 일로…….”
“내가 못 올 곳에 왔나?”
카리엘의 다음 목적지는 바로 중앙 귀족회가 있는 곳이었다.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모여 회의하는 귀족들의 최고 회의장.
그렇기에 황족들조차 웬만하면 오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귀족들 사이에서 성지로 취급하기에 황족들뿐만 아니라 황제 역시 귀족회를 존중하며 방문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불문율을 카리엘이 화끈하게 깨 버렸다.
“그것이 아니오라…….”
“깽판 치러 온 것이 아니다.”
“……예?”
“귀족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다. 때마침 여기서 주요 귀족들이 모여 있다길래 찾아온 것이니 오해 말라.”
카리엘의 말에 정복을 입은 귀족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 주었다.
“타리온은 여기에 있도록.”
“전하!”
“귀족들의 성지에 입장하는 것인데 이 정도 예는 갖춰야지.”
카리엘의 말에 근방에 있는 귀족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황제파, 귀족파 할 것 없이 쥐 잡듯 잡아넣고 있는 카리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중앙 귀족 회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전하를 뵙습니다.”
안에서 황급히 나와 인사하는 데이비어 공작.
뒤이어 다른 귀족들까지 카리엘에게 인사를 올렸다.
“미안하오. 본래 이리 갑자기 찾아올 생각은 아니었네만 모두 모여 있다길래 다급한 마음에 이리 찾아오게 되었소.”
“아니옵니다. 하온데 무슨 연유로 찾아오신 것인지요?”
“대공가에 관한 일로 찾아왔소.”
카리엘의 말에 주변 귀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을 느낀 데이비어 공작이 카리엘에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전하, 저희에게도 시간을 주시지요. 사안이 사안인지라 차분하게 논할 시간이 필요하옵니다.”
데이비어 공작의 말에 몇몇 귀족들이 헛기침했다.
귀족파는 크게 두 공작의 파벌로 나뉘어 있었고, 두 공작 모두 카리엘의 부탁을 들어주는 형국이었기에 결국은 대공가의 제재를 해제하는 데 힘써 줄 것이다.
그렇지만 몇몇 지방 귀족들은 이를 불편하게 생각했기에 형식적으로나마 ‘설득’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카리엘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자 데이비어 공작 역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공작을 불편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소. 만약 그렇게 느꼈다면 사과하겠소.”
카리엘의 사과에 데이비어 공작의 눈이 잠시나마 크게 떠졌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전하께서 오시는데 불편할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귀족들 중 그리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니 시간을 좀 주시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우러난 충언이었습니다.”
돌려서 돌아가 주기를 요청하는 데이비어 공작의 말에 미소를 지은 카리엘이 곧장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대공가를 받아들이는 것에 불만을 가진 귀족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오늘은 직접 그들을 설득하고자 왔소.”
“설득…….”
“설득 맞소. 그러니 믿어 주시오.”
불안한 표정을 짓는 데이비어 공작에게,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카리엘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이 이상 막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데이비어 공작이 직접 안으로 안내하자 귀족들이 길을 터 주었다.
그렇게 귀족 회의장에 들어가자 수많은 눈들이 카리엘만을 바라보았다.
압박감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카리엘은 웃었다.
‘귀족회에 다 와 보는군.’
전생에도 이렇게 멀쩡한 중앙 귀족 회의장에는 와 보지 못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나름 재밌었다.
“허…….”
한 귀족이 미소를 띤 채 걸어가는 카리엘을 보면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귀족들이 불편한 심기를 내뱉으며 압박했음에도 도리어 웃으며 걸어가는 카리엘의 모습에 허탈함을 넘어 감탄이 나왔다.
그건 다른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안하오, 월크셔 공작.”
“……아니옵니다.”
월크셔 공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지만 불편한 심기가 표정에서 드러났다.
그렇지만 데이비어 공작이 안으로 들인 것이라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순순히 단상에서 비켜 주었다.
그러자 카리엘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수많은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귀족회에 황족이 찾아온 것이 달갑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소.”
마도구로 증폭된 음성이 회의장에 퍼져 나가자 귀족들이 가만히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몇몇 이들은 반발심에 도끼눈을 뜨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귀족들을 상대로 카리엘은 묵묵히 입을 열었다.
“대공가를 불러들이는 것, 그것 자체가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한 가지 알아 두실 것이 있소.”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눈에 힘주고 귀족들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 귀족들 역시 지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카리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공가를 불러들이는 것을 가장 불편해할 분은 폐하일 것이오.”
카리엘의 말에 귀족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설마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을 때 카리엘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폐하께서 허락을 하시었소. 그 이유가 무엇이겠소? 현재 제국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오.”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현재 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숨김없이 말해 주었다.
흑마법사와 신전과의 유착 관계.
타국과 손잡고 제국에서 비리를 저지르는 자들.
황태자 습격 사건의 배후.
이 사건들을 설명하며, 이것들 중 적어도 하나의 배후로 서부를 지목했다.
“난 이 사건들 중 하나에 벨푸르스 가문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소.”
카리엘이 직접 벨푸르스를 지목하며 말하자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이너한 신문사가 간혹가다 그런 의혹을 제기하고는 했지만 완전히 믿는 귀족들은 없었다.
그런데 그걸 카리엘이 직접 말한 것이다.
“증거가 있사옵니까?”
중립파인 모건 후작이 일어나서 묻자 다들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상계 출신의 귀족들이었다.
벨푸르스가 서부에서 가지는 존재감은 상당했고, 특히 상권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기에 그들이 무너진다면 일시적으로나마 서부에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었다.
상인들 입장에선 그 혼란으로 인해 물류에 차질을 빚게 된다면 엄청난 손실을 입어야 했기에 당연히 확인해야 하는 것이었다.
“벨푸르스가 서부의 암상인 연합의 수장일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소.”
“그렇다면 해적과도 연관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옵니까?”
모건 후작의 물음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상인들은 일반적인 상선을 이용하기가 까다로웠다.
서부 변경백이 서부의 주요 항구를 매의 눈으로 감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해적들과 손잡았다.
남부에서 밀거래를 위해 올라오는 해적들과 거래하는 자들이 암상인들이었고, 그들이 취급하는 거의 대부분이 불법적인 것들이었다.
“물론 내가 하는 말에 의심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오. 그런 자들을 위해 이 비밀을 알게 된 경위 역시 밝히겠소.”
그렇게 말하며 재상과 했던 대화 일부를 말해 주었다.
“화, 황궁으로 재상을 만나기 위해 서부의 인물 중 하나가 접근해 왔단 말이옵니까!”
한 중립파 귀족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카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상은 자신의 가족들이 그들에 의해 죽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에게 가족만큼은 지켜 달라 말하며 이 사실을 밝힌 것이오.”
카리엘의 말에 귀족회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사실 재상의 이야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힌 이유는 가장 확실한 설득 방법이었고, 이 사실을 밝힘으로써 재상의 가족들을 호위할 명분을 손쉽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벨푸르스를 공개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황태자가 직접 의혹을 제기했고, 재상의 증언마저 있었다.
“만약 벨푸르스가 흑마법사와 연관되었다면 이는 후에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소.”
카리엘이 모건 후작을 보면서 말하자 그가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이번엔 두 공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래의 제국에 위험 덩어리를 남겨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두 공작 역시 침음성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카리엘이기에 두 황자 중 하나가 이끌 제국을 생각하면 이번 일은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심증뿐이지만, 만약 타국과의 밀약을 맺은 이의 주체가 벨푸르스라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오.”
카리엘의 말에 두 공작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망상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오. 황좌에 욕심이 있던 작은아버지라면 내가 물러나고 두 황자가 서로 견제하며 제국이 혼란에 빠져 있는 틈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소.”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전생에 있었던 인접 국가의 침공을 적절하게 섞어서 설명했다.
흑마법사들의 침공과 인접 국가의 침공, 반란 등을 각색해서 설명하자 그럴듯한 스토리가 만들어졌고, 회의장에 있는 귀족들은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대공가에게 변경백 수준의 지원을 해 주는 것. 그로 인해 그들이 가진 혈통이 가진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제국을 더 안전하고 부강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하오.”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작게 숨을 내뱉으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천하의 카리엘이라도 수많은 귀족들을 설득하는 건 많은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내가 할 말은 이것이 끝이오. 부디 제국의 미래를 생각해 좋은 결정을 내려 주었으면 좋겠소.”
그 말을 끝으로 회의장을 나가는 카리엘.
협박도 없었고, 과한 발언도 없었다.
말하는 내내 귀족들을 존중하며 설득하기 위한 말을 했고, 무엇보다 황태자만 갖고 있던 정보를 풀어 주었다는 게 컸다.
“대공가에 변경백 수준의 지원을 하는 것에 찬성하는 자는 손드시오.”
데이비어 공작의 말에 다수의 귀족들이 손들었다.
몇몇 귀족들은 황태자 말만 믿지 말고 좀 더 세심하게 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것이 맞는 말이었지만 시간이 급했다.
결국 귀족회에서 대공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안이 가결되었고, 이 소식이 대공가에 들어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대공가의 주요 인사들이 수도로 향했다.
“전하, 대공이 수도에 곧 도착한다 하옵니다.”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드디어 오는군. 준비했던 것을 시작하자.”
“하온데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타리온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카리엘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황가에 서운한 점이 많았을 텐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마차를 타고 수도의 성문으로 나갔다.
그러자 그곳엔 수도 방위군의 기사단과 중앙군의 기사단이 길을 따라 양쪽에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엔 카리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마치 집을 나갔던 부인이 돌아오기라도 하는 것인 양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카리엘.
모두가 초조한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렸을 때였다.
마침내 기다렸던 대공가의 마차와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