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10. 대공가의 수도 복귀!
재상과의 이야기를 끝내고 궁으로 돌아온 카리엘은 타리온에게 방금 들은 따끈따끈한 정보들을 알려 주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황제파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황제와 벨푸르스에 관한 이야기는 양이 적었어도 알짜배기였다.
“……심각하군요.”
타리온 역시 내부가 썩었을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카리엘이 나름대로 정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당장 서부에 정보 요원을 파견하겠습니다.”
“아니, 서부를 지금 당장 자극하지는 마.”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보인 성정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끝낼 생각으로 밀어붙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서부를 자극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예?”
타리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보자 카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대공가를 수도로 불러들이는 것.”
“……가능하겠습니까?”
“해 봐야지.”
카리엘의 대답에 타리온이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차라리 감찰부와 군부를 움직이는 게…….”
“그것도 폐하가 중간에 멈추게 만든다면 답이 없어져.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전생에서 예상치 못한 천재에게 박살 났지만, 그들의 모든 세력이 와해되었다고 보긴 어려웠다.
제국이 큼지막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해 보니 서부에 갑자기 해적이 출몰했지.’
그 당시엔 여러 사건들로 정신없어서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서부 변경백이 바다를 잘 장악하고 있었기에 다른 곳을 중점적으로 살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인 정보를 토대로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의심이 갔다.
‘아이사 군도 쪽에서 넘어온 게 아닐지도 모르겠네.’
남쪽의 아이사 군도 연합의 해적들이 세력 확장을 한 것이거나 암상인들이나 범죄 집단이 해적으로 변모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완전히 박멸하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전생에 귀족들이 가끔씩 기어오르거나 범죄 조직을 만들어 댄 것도 모두 살아남은 벨푸르스의 잔당이 계획한 것인지도 몰랐다.
카리엘이 은퇴하고 편안한 삶을 살려면 최소한 벨푸르스 정도는 청소하고 가야 했다.
“폐하의 심기를 건드려 전하께서 화를 입으실까 걱정되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 문제는 폐하를 설득하지 않으면 답이 없어.”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곧바로 황제의 궁으로 향하기 위해 마차에 올랐다.
황제궁에 도착하자 시종장이 곧장 황제에게 안내했다.
과거와 같은 건방진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오랜 시간 황궁에 일한 만큼 현재 황궁의 실세가 누군지 파악하고 알아서 기는 것이다.
“……무슨 일로 왔느냐?”
카리엘의 얼굴을 보자마자 피곤한 표정을 짓는 황제.
‘마약인가?’
시종이 마약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전부 치우고 환기를 시켰지만 아직 잔향은 남아 있었다.
예전의 황제였다면 겉으로나마 멀쩡한 척 연기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도 없는지 초췌한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지가 뭘 했다고 피곤해하지?’
카리엘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한껏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사옵니다.”
카리엘의 말에 황제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이냐?”
최소한의 연기조차 하지 않으며 말하는 황제의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왔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겉으로 멀쩡한 척 연기하던 것조차 사라지니 암군 그 자체가 되어 버린 황제.
그런 그를 향해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재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개인적으로 마약상과 접촉한 것을 알아냈습니다.”
“…….”
카리엘의 말에 황제가 입을 다물고 노려보았다.
제법 영민했다던 재상의 말처럼 카리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단번에 파악한 듯싶었다.
“……그래서? 무엇을 원하느냐?”
마치 ‘이 황제 자리라도 넘겨주랴?’와 같은 뉘앙스로 말하자 카리엘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재상의 뒤에 심상찮은 조직이 있었습니다.”
“뭐?”
예상치 못한 카리엘의 대답에 황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냐?”
자신을 압박하러 온 것으로 생각했던 황제는 카리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리엘은 황제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최상의 예우를 갖춰서 허리를 숙였다.
“시종을 물려 주십시오.”
카리엘의 말에 피곤한 기색으로 가득하던 황제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손짓 한 번에 모든 시종들을 물려 버린 황제는 그림자들을 통해 방 안에 어떤 이도 침입하지 못하게끔 하고 물었다.
“그래, 재상의 뒤에 어떤 세력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누구냐?”
“서부였습니다.”
카리엘의 답에 황제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공가가 뒷배인 것이냐?”
황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대공가의 부활이다.
자신이 이룩한 균형을 단번에 무너뜨릴 만한 존재들.
영웅의 후손으로 수많은 마스터들을 배출하고 한때 황가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 주었던 존재들.
비록 지금은 수십 년에 걸쳐서 한없이 낮아져 버렸다지만 언제든 마스터만 배출하면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가문이 대공가였다.
암군들의 특징이 대개 그러하듯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이들을 수없이 의심하고 배척하려 한다.
그들이 충신이더라도 쓴소리를 하면 내치려고 한다.
그렇기에 3대에 걸친 암군들은 대공가를 지속적으로 멀리했고, 현재에 이른 것이다.
“아니옵니다.”
“……아니라고?”
가장 의심스럽던 대공가가 아니라는 말에 황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변경……백?”
황제의 말에 카리엘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매번 의심한다.
역대 암군들이 그러하듯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까 봐 가장 부족한 자를 황태자에 올리고 결국 그가 황제가 되어 왔다.
지금의 황제 역시 그것을 알기에 혹시 누군가가 반란을 일으킬까 봐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산다.
‘그렇기에 균형에 집착한 것이겠지.’
어느 한 세력이 치고 나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없도록 균형을 이루는 것에 집착한 것이다.
“……벨푸르스로 의심됩니다.”
카리엘의 말에 황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뭐라 했느냐?”
“재상의 뒤를 캐 본 결과 벨푸르스가 의심되옵니다, 폐하.”
확언하듯, 다시 한번 말해 주는 카리엘을 보며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짐이 수도 없이 확인했느니라.”
의심병 말기인 황제가 자신의 동생을 가만둘 리가 없었다.
매번 그림자를 보내 벨푸르스가 무엇을 하는지 확인해 왔다.
그렇기에 벨푸르스만큼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황제를 보며 카리엘이 말했다.
“고모할머님도 확인하셨습니까?”
“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카리엘의 입에서 들려오자 황제가 멈칫했다.
뇌가 정지한 것처럼 잠시 멈춰 있던 황제가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고모할머님? 짐의 고모를 말한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그분이 왜…….”
수십 년간 얌전히 살면서 죽음만 기다리는 처지에 있는 비운의 여인.
그것이 황제의 고모이자 선대 황제의 동생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동생이 한때 야심을 품었기에 지독하게 감시해 왔었다.
“벨푸르스 전대 백작 부인께서 서부 암상인 연합의 주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황제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한 것이냐?”
“재상이 직접 자백했습니다. 소자가 황궁을 뒤집어엎으며 황제파를 솎아 낼 때 황궁으로 찾아왔다고 하옵니다.”
재상이 자백했다는 것까지 말하자 황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소자가 의심된다면 직접 확인해 보셔도 괜찮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황제가 눈짓하자 누군가가 사라졌다.
그림자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내내 이어지는 불편한 침묵 속에서 황제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손톱을 깨물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림자가 조용히 나타나며 황제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맞구나.”
어느새 재상에게 다녀온 그림자의 말을 전부 들은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대로 말했나 보군.’
카리엘이 그렇게 생각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협조하기로 한 이상 뒤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재상이 그림자에게 순순히 자백한 듯 보였다.
“벨푸르스를 칠 것이냐?”
“그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황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공가를 수도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뭐?”
“동시에 대공가에게 가해졌던 각종 제재를 풀어 주십시오.”
“그건…….”
카리엘의 답에 황제가 망설였다.
“그건 아니 된다. 대공가는…… 위험해.”
“벨푸르스보다 위험하겠습니까? 서부 변경백은 아이론 연맹을 견제하기도 버겁고, 대공가는 무너졌습니다. 서부에는 벨푸르스의 암중 세력을 견제할 존재가 없습니다.”
이유를 전부 들은 황제는 침음성을 내뱉었다.
상인들이 만든 국가인 아이론 연맹은 마스터를 보유한 강국임으로 서부 변경백이 전력을 다해도 견제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대공가까지 무너졌으니 벨푸르스 견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꼭 대공가가 필요한 것이냐? 그냥 짐의 군대로 벨푸르스를 쓸어버리면 될 것을…….”
“물론 그것도 필요하옵니다. 하지만 암중 세력을 휘어잡고 있는 녀석들을 지속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선 대공가가 필요합니다.”
벨푸르스를 완전히 쓸어버리기 위해선 확실하게 끝을 봐야 했다.
감찰부와 군부를 이용해 드러나 있는 부분을 압박하고, 대공가를 키워 서부의 영향력을 줄인다.
동시에 암중 세력을 끌어내기 위한 움직임도 필요했다.
그걸 위해선 서부에 있는 암상인과 범죄 조직들을 수도처럼 한번 소탕할 필요성이 있었다.
“감히 황궁에 첩자를 심어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저들의 암중 세력이 얼마나 클지 짐작되지 않는바, 한 번에 몰아쳐야 하옵니다.”
카리엘의 말에 황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황제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다.
“……짐이 이 꼴이 된 것이…… 그들 때문인 것이냐?”
황제의 물음에 카리엘은 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현 황제의 재능은 황좌에 앉기엔 많이 부족했기에 꼭 마약과 그들의 암수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이라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적어도 제국이 이 꼴로 아작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순 있었다.
“대공가라…….”
카리엘의 침묵이 긍정임을 알기에 황제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고민에 빠졌다.
그토록 견제해 왔던 대공가를 다시 키우는 것.
이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몇 번이나 고민하는 듯싶었다.
“……대공을 황궁으로 부르거라.”
결국 황제의 허락을 끌어낸 카리엘이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들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군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서부 변경백과 중앙군 일부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주마.”
황제의 말에 카리엘은 얻을 건 다 얻었다는 듯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황제의 방을 빠져나왔다.
곧장 궁을 나가려던 카리엘이 걸음을 멈추며 시종장을 바라보았다.
“시종장.”
“예, 전하.”
“폐하께서 사용하시는 그것.”
카리엘의 말에 시종장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런 그를 보며 카리엘이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양을 줄이거나 더 약한 것으로 바꿔. 적어도 지금 사용하는 것은 절대 아니 된다.”
“하오나…….”
“흑마법사가 무슨 짓을 했을지 알 수 없다. 지금은 괜찮으나 만약 폐하의 옥체에 문제가 생긴다면 너뿐만 아니라 너의 삼족은 필히 멸할 것이야.”
카리엘의 말에 시종장은 표정이 굳어지면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폐하께 말씀드려도 좋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바꿔.”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마차로 향했다.
현 황제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일단 살아 있어야 했다.
흑마법사의 농간이라는 게 밝혀지고 저들이 위기감을 느낀다면 어떤 수를 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전생보다 더 빠르게 황제를 죽이려 할지 모르기에 최소한 흑마법사들에 의해 조제된 마약만큼은 반드시 바꿔야 했다.
“후, 진짜 이거 끝나면 은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