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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25화 (25/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8. 황태자의 친위대? (5)

기사단장급 네 명이 모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답은 간단했다.

만약 적이라면 마스터가 아닌 이상 무조건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적은 그럴 수도 없었다.

이미 사전에 모인 군대가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 쾅!

폭음이 터져 오면서 지축이 흔들리고 지반이 터져 나간다.

마법사들은 괴물 같은 남자 하나가 거검을 휘두를 때마다 곤죽이 되었고, 화염의 창을 휘두르며 돌진하는 여인에게 살이 익어 갔다.

그런데 이들은 그나마 나았다.

짐승처럼 찢고 할퀴며 다져 놓는 여인과 괴상한 무기들로 온몸을 난도질하는 미친놈이 더 무서웠다.

문제는 이 미친 자들이 목표로 하는 자가 단 한 명이라는 점이었다.

“저 새낀 내 거다!”

“제 겁니다!”

적진 깊숙한 곳에 있는 마법사를 향해 토토와 이리스가 서로 자기 거라며 미친 듯이 달려 나갔고, 아르슈나는 한 방에 처리하기 위해 고위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그사이 몰래 괴상한 무기를 던져서 먼저 잡으려 하는 브리온.

그러나 적은 고위 마법을 쓰는 마법사답게 용케 막아 냈다.

“쳇!”

브리온이 혀를 차면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놈들이…….”

네 명의 미치광이들에게 노려지고 있는 마법사는 당황해서 식은땀을 흘렸다.

분명 적당히 하고 빠질 생각이었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황태자 측의 대응이 너무 빨랐다.

‘어디서 이런 강자들이!’

아무리 황궁 기사들이라도 이런 강자들을 황태자 하나만 지키게끔 할 수는 없다.

그렇다는 건 순전히 황태자의 능력으로 끌어모은 이들이라는 뜻이다.

분명 괴짜들의 실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잘해야 정예 기사급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갑자기 기사단장급 수준의 강자가 되어 공격해 오니 마법사로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쿠웅!

“크윽!”

어느새 다가온 토토의 거검에 하얀 방어막에 균열이 갔다.

거기에 뒤이어 다가온 이리스가 마치 곰이 앞발을 휘두르는 것처럼 강력한 주먹을 내지르자 방어막이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고위 마법사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황태자에게 붙어!”

고위 마법사의 명령과 함께 근처에 숨어 있던 자들이 모조리 마차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건 마법사에게 달려드는 괴짜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으로 저항하던 이들이 괴짜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괴짜들과 황태자를 향해 달려드는 마법사와 습격자 들을 보면서 황궁 기사들이 재빨리 반응했다.

순식간에 목을 베어 내면서 마차로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 기사들.

그런 그들을 보면서 타리온이 황급히 말했다.

“밀어내! 뭔가 이상하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타리온이 적들을 베어 내는 것과 동시에 밀어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 명령은 주효했다.

기사들과 시종들이 목을 베어 낸 시체들을 발로 차서 밀어내는 순간!

콰아앙!

달려들던 자들이 폭발을 일으키며 죽어 버린 것이다.

그것을 본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체 폭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카리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전생에 수도 없이 경험했던 방법.

“왜 지금……?”

시체 폭발이 왜 지금 이 시점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혼란스러워하던 카리엘은 황급히 냉정을 되찾았다.

“수르트.”

-그래. 슬슬 나설 참이다.

카리엘의 부름에 수르트가 힘을 끌어 올리려 했다.

황궁 기사단이 최대한 막아 주고는 있지만 폭발력 전부를 막기는 어려웠는지 조금씩 마차에 충격이 쌓여 갔다.

마차가 부서지는 순간 폭발력은 전부 카리엘에게 집중될 터.

바로 그때가 수르트가 나설 상황이었다.

콰앙!

또다시 일어나는 폭발에 마차 일부가 터져 나가는 그 순간, 카리엘 역시 화기를 끌어 올렸다.

바로 그때, 귀신같이 도착하는 황궁 기사단.

“전하를 지켜라!”

“적을 베지 말고 밀어내!”

추가로 도착한 황궁 기사들이 황급히 자리를 잡으며 몰려드는 습격자들을 모조리 밀어냈다.

그렇게 주변에 습격자들이 없어진 순간 황궁 기사단의 힘이 발휘되었다.

“마력 결계를 펼쳐라!”

선임 기사의 명령에 황궁 기사들이 일제히 마력을 발산했다.

그러자 서로 다른 마력이 일제히 융화되면서 주변에 강력한 결계를 만들어 냈다.

황궁 기사단이 황족들을 지키기 위해 고안한 방법.

같은 검술, 같은 마력 제어법을 익힌 자들이 고도의 수련을 통해 펼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마력 결계였다.

마법사들 수십 명이 하나의 마법진에 모여 펼치는 마력 결계에서 따온 이 방법은 지금 이 순간에 엄청난 위용을 보여 주었다.

쾅! 쾅! 콰아앙!

엄청난 폭발 속에서도 견고하게 버텨 내는 결계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후, 끝난 것 같습니다.”

엄청난 폭발 속에서도 견고한 마력 결계를 보고 나자 그제야 안심한 타리온이 카리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굳어 있는 카리엘을 보며 타리온이 걱정스레 말했다.

“놀라셨습니까?”

“놀라? 이런 걸로?”

굳어 있던 카리엘이 타리온의 말에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전생에 수없이 겪은 것이 바로 시체 폭발이었다.

겨우 이 정도 놀랄 것 같았으면, 전생엔 심정지로 죽었을 것이다.

카리엘의 표정이 굳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놀라기는 했지. 흑마법사들이 대놓고 날 노릴 줄은 몰랐으니까.”

카리엘은 파편으로 변해 여기저기 흩어진 살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끔찍한 장면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몰려오는 적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하오나 전하, 저들은 빛의 마법을…….”

“빛의 마법을 쓴다고 흑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니야?”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하지만 타리온이 주장한 것도 일리는 있었다.

일반적으로 성력과 흑마력은 상반된 힘을 갖고 있어서 동시에 사용할 수가 없다.

흑마력을 없애고 성력을 다시 키운다고 해도 과거에 쌓았던 힘의 여파로 그 즉시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전생의 자신도 신관들 중에 흑마법사 세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냈었다.

“신전에서 흑마법사의 무구가 나왔다.”

“그건…….”

“굳이 흑마법사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신관들 중 흑마법사와 결탁한 세력이 있을지도 모르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지금도 터져 나가는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시체 폭발은 흑마법사가 자랑하는 가장 끔찍한 마법이지. 흑마법사가 그 원류를 신관들에게 흘렸다면? 신관들도 시체 폭발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시체 폭발 마법을 흑마력으로만 할 수 있다는 건 고정관념일 뿐이다.

빛의 마법으로도 가능하게끔 개조하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손잡은 건 둘뿐만이 아닌 것 같네.”

“귀족들 말입니까?”

타리온이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림자 출신답게 돌아가는 상황만 보고도 카리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낸 것이다.

“확실히……. 저들이 수도 근방에 이렇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고선 힘든 일이지요.”

한두 명도 아니고 이렇게 대규모로 준비하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지역이 누구 것인지 알아봐. 최근 이곳을 중점적으로 드나들었던 상인이나 용병단이 있으면 알아보고, 그들에게 흘러들어 간 자금의 흐름을 조사해.”

“예!”

카리엘이 타리온에게 명령을 내리는 동안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던 시체 폭발이 완전히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궁 기사들이 마력 결계를 풀지 않는 건 어떤 위험이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힘들 것이 분명함에도 고집스럽게 유지되던 결계가 풀린 건 근방에 수도 방위군의 병력이 몰려왔을 때였다.

“전하를 뵙습니다!”

“습격자들은? 잡았나?”

카리엘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군단장의 인사를 대충 받아 주고 묻자 군단장이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예, 다만…….”

“그들도 자폭했나?”

“……그렇습니다.”

“한 놈도 못 잡은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렇긴 하오나…….”

“쭉정이들 같다 이거지?”

군단장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이해한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시체 폭발까지 사용하는 놈들이 증거를 남겨 둘 리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는 준비했으니 날 습격할 생각을 한 것이겠지.’

카리엘이 그렇게 생각하며 군단장에게 말했다.

“온 김에 일 하나만 더 하자.”

“궁으로 돌아가시는 것 아닙니까?”

군단장이 놀란 표정으로 카리엘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런 군단장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기회를 놓치라고?”

카리엘의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목숨의 위협을 받은 사람이고는 생각지 않을 정도로 장난기가 섞인 미소.

하지만 다음 말을 듣는 순간 그 미소가 악마의 미소로 변했다.

“수도에서 도망친 귀족들을 잡아들여야지. 군단장은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잘 포위하고 있어.”

“예? 하, 하오나…….”

“아! 알고 있어. 그대들이 잡아갈 수 없겠지. 그냥 어디 나가지 못하도록 포위만 해. 잡는 건 내가 할 거야. 한 명 한 명 내가 직접 방문해 줄 거니까 기다리라고들 해.”

카리엘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전하, 아직 어떤 위험이 남아 있을지 모르옵니다.”

곁에 있는 타리온이 걱정스레 말하자 카리엘은 대답 대신 거지꼴을 하고선 돌아온 괴짜들을 바라보았다.

“못 잡았지?”

“……송구합니다.”

거지꼴을 한 토토가 이를 바득 갈면서 말했다.

마지막 순간에 자폭한 마법사를 생각하며 이를 가는 토토.

그건 다른 괴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열 받지?”

카리엘의 물음에 괴짜들이 고개를 숙였다.

모두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들에게 카리엘이 말했다.

“그럼 당하고 가만있지 말고 움직여.”

“예?”

카리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토토와 괴짜들.

그런 그들에게 카리엘이 말했다.

“너희 네 명이면 충분하잖아?”

“예?”

또다시 멍청하게 되묻는 토토를 향해 카리엘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분명 이 근방에 잔당이 있을 거야. 찾아서 섬멸해.”

카리엘의 명령에 괴짜들이 멍하니 있자, 타리온이 황급히 그들에게 눈짓해 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괴짜들이 재빨리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전하의 명을 받드옵니다!”

괴짜들의 대답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움직이라고 명했다.

그러자 괴짜들과 병력 일부가 빠르게 흩어졌다.

지시를 마친 카리엘은 근방의 말을 하나 빌려 올라탔다.

“우리는 근교에 숨어 있는 쥐새끼들을 잡아서 복귀한다. 그때까지 나를 잘 보호하도록.”

“전하의 명을 받듭니다!”

우렁차게 대답하는 황궁 기사단과 병력.

그런 그들을 향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말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타리온이 감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하, 언제 이렇게 느셨습니까?”

“이런 건 기본 소양 아니야? 예전에 나도 익혔잖아.”

타리온의 물음에 카리엘이 한껏 우쭐한 모습으로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그런 그의 대답을 듣고선 타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몸 상태가 최악이 아니었을 때 잠깐 배웠던 승마 수업에서는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무섭다고 우셨던 것 같은데…….”

“개소리 말고 가자.”

카리엘이 황급히 타리온의 말을 끊고선 목적지로 향했다.

뒤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으나 애써 모른 척하며 속도를 높였다.

이 모욕은 쥐새끼들에게 풀리라.

그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가득 찬 분노를 눌러 참으며 쥐새끼의 저택으로 향한 카리엘은 타리온에게서 받은 모욕감과 방금 전 습격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한껏 풀었다.

그리고 그건 괴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광기에 휩싸인 모습으로 잔당을 찾아내 박살 낸 것이다.

카리엘과 괴짜들이 자신들이 당한 것에 대한 화풀이를 끝내고 수도로 복귀한 시간은 달이 떠오른 야밤이었다.

“……내일 아침이 되면 나리가 나겠군.”

자신의 뒤에 있는 귀족들과 습격자의 잔당을 보며 타리온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날, 상황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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