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8. 황태자의 친위대?
모두가 주시했던 대전 회의.
기대 반 불안 반으로 시작했던 회의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끝나 버렸다.
모두가 중점적으로 봤던 황제파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신전의 비리! 이번에도 덮을까?」
「성국의 항의 서한? 적반하장이다!」
「황제파와 성국의 은밀한 관계?」
「충격! 신전과 흑마법사의 관계는?」
신전의 비리만으로도 충격적이었는데 황태자가 직접 밝힌 신전의 비밀 창고에서 나온 흑마법사의 무구.
이 사안은 덮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웬만한 일이라면 커버를 치려는 신도들 역시 흑마법사의 무구가 나왔다는 말에 경악했다.
물론 황태자와 귀족파가 짜고 치는 거라며 증거 조작을 들먹이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황태자가 스스로의 직위를 내걸고 황제에게 청했다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황궁에서의 소식이 퍼지면서 제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움직여라.”
“예!”
카리엘의 명을 받은 감찰총장이 그 즉시 움직였다.
중립파를 움직여 국경을 봉쇄했다.
귀족파를 움직여 제국 전역에 흩어진 신전들의 조사를 시작했다.
동시에 황권을 이용해 치안대와 군부까지 움직였다.
“타국으로 도망치기 전에 전부 잡아들여야 한다고 전해.”
제국의 변경백에게 직접 전하는 카리엘의 서신.
이참에 제국을 좀먹는 쓰레기들을 치우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느낀 것인지 타리온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타국으로 도망치려는 첩자들을 제국 안에 가뒀다.
신권을 이용해 성국으로 도망가려는 사제들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그들과 손잡은 귀족들을 하나씩 잡아내기 시작했다.
「제국을 위해 귀족파, 중립파가 손잡았다! 그 중심엔 황태자가?」
「썩어 버린 제국. 하지만 희망은 있다!」
「황태자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움직임」
제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분과 무기를 쥔 카리엘은 거칠 것이 없었다.
폭군이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거칠었지만, 그 누구도 카리엘을 탓하지 않았다.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진 명분이 모든 것을 상쇄했기 때문이다.
“나, 난 아니오! 난 아니란 말이오!”
“변명은 감찰부로 가서 하시오.”
한 귀족이 자신은 아니라며 반항해 보았지만 결국 연행되어 끌려갔다.
평소라면 작위와 자신의 뒷배를 얘기하며 버텨 보겠지만, 같은 귀족파마저 외면했다.
황제파와 귀족파를 줄타기하며 벌어들인 돈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뇌물을 통해 무마시켜 줄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귀족들은 사정이 나았다.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예!”
치안대에게 저항하는 범죄 조직을 보면서 기사단이 검을 뽑아 들었다.
범죄 조직들의 경우 이번에 잡히면 꼼짝없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격렬하게 반항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군부가 움직였다.
그것도 연줄로 자리만 차지하는 기사가 아닌 제국의 정예 기사들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기사들의 검에 마력이 맺히며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황급히 무기를 버리면서 두 손을 드는 조직원들.
그중엔 몰래 무기를 쥐고 도망가려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은 자비 없이 손목을 날려 버리거나 다리를 베어 버렸다.
“움직이지 마라, 다음번엔 목을 칠 것이니.”
기사들의 싸늘한 말에 범죄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연줄로 오른 실전 경험조차 미진한 기사들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냉정함을 유지하며 자비 없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에 누구도 도망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수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중앙 지역을 중심으로 제국 전역에 정예 기사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도망치지 못한 범죄 조직들은 알아서 치안대로 자수하러 가는 발길이 이어졌다.
“……정말로 끝인가?”
재상이 재상부의 건물에 있는 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현 황제의 성정인 적당히,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본래라면 느릿하게 움직여 빠져나갈 놈은 다 빠져나갔겠지만 이번엔 아니었고, 그렇다는 건 황제파의 고위 귀족들이 연루되었다는 증거들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까지군.”
결국 재상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을 말아먹은 간신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면서도 끝끝내 재상의 자리에 올라온 그였지만 이번엔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황태자를 경계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재상이 그렇게 중얼거려 보았지만, 결과론일 뿐이다.
병약하고 어린 황태자가 이런 역량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황태자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건 확실했다.
“……아쉽군.”
재상이 자신의 끝이 다가옴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점점 옥죄어 오는 손길들을 보며 누군가는 두려움에 떨며 피하기 위해 추한 모습을 보이지만, 재상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많은 귀족들의 싸움에 사라질 뻔한 가문을 후작가로 올려놓은 게 그였다.
재상까지 하며 유서 깊은 가문들과 싸워 왔던 자신이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제국의 변화는 나를 끌어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겠군.”
재상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언젠가 들이닥칠 감찰부를 담담히 기다렸다.
자신의 집무실 안에서 두문불출하는 재상.
그마저 회생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황제파는 발악하기를 반쯤 포기했다.
황제가 버렸고, 타국을 이용한 한 방마저 막혔으니 황제파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망연자실한 황제파였지만 다른 귀족들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비리를 혼자 저지르지는 않았기에 귀족파와 중립파도 내줄 건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제국에서 유일하게 웃는 곳이 있다면 그건 황태자궁뿐이었다.
“재상의 움직임이 없다고?”
“그렇습니다.”
타리온의 대답에 카리엘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담담히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대의 간신이라 불렸지만, 하위 귀족에서 재상까지 올라갈 정도라면 웬만한 담력으론 될 수 없다.
“만약 제국이 정상이었다면…….”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려 보았지만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전생에 숱하게 입에 담았던 게 그놈의 ‘만약’이라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 몸이 정상이었다면?
만약 나한테 정상적인 파벌이 있었다면?
만약 선황제가 평범한 군주라도 되었다면?
이런 가정을 하며 자신의 현실을 비관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
카리엘이 쓴웃음을 지으며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재상마저 포기했으니 이젠 속도를 더 낼 수 있겠네.”
“……그럴 것 같습니다.”
“황제파 중에 타국으로 튀려는 놈들 많을 거야. 모두 잡아들이라고 해. 특히 신관들, 절대 놓치지 마.”
“예!”
그의 명령에 타리온이 곧바로 움직였다.
카리엘이 명령을 내린 지 불과 하루가 지나지 않아 대대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범죄 조직과 첩자들을 잡아들였으니, 남은 건 쓰레기 같은 귀족들을 잡아들이는 것뿐이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
「대대적인 소탕! 제국은 점점 깨끗해지고 있다!」
조간신문의 기사를 읽으며 카리엘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걱정했던 제국민들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귀족들을 잡아들이면서 그들이 축적한 비자금을 추적했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신전의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신관들마저 제국 전역에서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결국 고위 사제들까지 감찰부에서 잡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하, 성국에서 또 항의 서한을…….”
“그거 가져가서 광장에 게시해.”
카리엘이 성국의 항의 서한을 공개적으로 광장에 게시했다.
그러자 제국민들이 분노했다.
신전으로 쳐들어가 불태우거나 건물을 망가뜨리는 자들까지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신을 믿긴 하지만 제국민이라는 자부심이 더 컸는지, 감히 범죄를 저지르고 항의 서한을 보낸 성국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다.
물론 그중엔 신실한 신도들이 자제하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결국 흑마법사란 단어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일은 끝났군.”
카리엘이 웃으면서 제국민들의 반응이 담긴 신문을 바라보았다.
이젠 정말로 욜로 라이프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미소를 짓는 카리엘.
그런 그에게 타리온이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전하, 놀고 계실 때가 아니옵니다.”
“놀다니! 정무를 보고 있는 거잖아!”
타리온의 말에 발끈하는 카리엘.
하지만 그가 하는 것이라고는 신문을 본 것이 전부였다.
짜게 식은 타리온의 시선에 헛기침을 내뱉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운동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전하.”
“지금 준비하잖아. 보채지 마라.”
“보채다니요. 이게 다 전하를 위해서…… 아니, 이게 아니고. 전하를 뵙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
“공작들인가?”
“아닙니다.”
타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전에 명령하신 이들입니다.”
“아! 그들이 수도에 왔나?”
“예, 다만…….”
“다만?”
타리온이 망설이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카리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소문답게 괴짜들이라…….”
“상관없어.”
“많이 무례할 수도 있습니다.”
“괴짜들이니 이해해야지.”
카리엘이 정말로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데려오라고 말했다.
“그들을 만나야 하니 오늘 운동은 쉬는 것으로…….”
“저녁쯤에 찾아뵙게끔 하겠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어림도 없다는 듯 말하고는 물러났다.
카리엘은 한숨을 쉬며 방을 나섰다.
“전하!”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토토를 보며 카리엘의 표정이 구겨졌다.
“전하, 그런 표정을 지으시면 섭섭하옵니다. 전 언제나 전하를 위한 운동을 준비하느라 수련 시간마저 줄이는데…….”
섭섭하다는 듯 몸을 배배 꼬는 토토.
하지만 근육질의 토토가 저러는 꼴을 보고 있으면 분노만 일어날 뿐이었다.
“그럼 좀 살살 해! 매번 녹초가 되잖아!”
“그렇게 운동해야 앞으로 편해집니다.”
토토는 단호하게 말하면서 카리엘을 데리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놈의 기초 딱지를 빨리 떼 버려야지!”
요즘 부쩍 늘어 가는 화기들을 제어하느라 운동량이 배로 늘어났다.
기초 강체술로는 화기를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기에 훈련량을 늘려서 커버하는 것이다.
결국 오늘도 녹초가 될 때까지 굴려진 카리엘은 비척거리면서 방으로 돌아왔다. 그곳엔 처음 보는 인물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말씀드렸던 괴짜…… 아니 전문가들이옵니다.”
타리온이 자신의 입을 한 대 치면서 말을 정정하고는 괴짜들을 소개했다.
불에 미쳤다는 평가와는 다르게 얌전하게 생긴 여인과, 마찬가지로 전투에 미쳤다는 소문과 다르게 굳건하게 생긴 여인.
“이쪽은 소문대로군.”
카리엘이 몬스터 외과 의사 브리온을 바라보았다.
토토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겨서는 온몸에 괴상한 기구들을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 소문대로 괴짜처럼 보이긴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법사 아르슈나라고 하옵니다.”
“용병 이리스입니다.”
“치료사 브리온입니다.”
차례대로 인사를 받은 카리엘이 브리온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료사와 의사는 다르다.
지구에서는 내과와 외과로 나눠진 것과 달리 이곳에선 내과에 해당하는 이들을 치료사라고 불렀다.
즉, 외과 전문의가 갑자기 내과로 직종을 바꾼 셈이었다.
“치료사?”
“……얼마 전에 직종을 바꿨습니다. 다들 저만 보면 도망쳐서…….”
브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한마디로 돈 벌기 위해 직종을 바꿨다는 얘기였다.
“그럼 몬스터 해부는 그만두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브리온이 기괴한 장비들을 쓰다듬으면서 말하자 카리엘이 짜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