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7. 일이 점점 커진다? (2)
황제의 마음이 점점 황제파에게 멀어지고 있다.
이것을 확인한 재상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재상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황제궁 쪽을 노려보았다.
균형을 중시하는 주제에 능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황제를 움직여 얻은 작위가 현재의 재상이었다.
하위 귀족에 불과하던 자신을 후작이라는 고위 귀족으로 만들어 줄 정도로 균형에 집착하는 황제였기에 믿었다.
“……너무 방심했다.”
재상이 자신의 실수를 통렬하게 반성했다.
병석에 누워만 있던 황태자였기에 무관심했는데, 알고 보니 황족들 중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천재 마법사인 2황자와 소드 마스터가 될 가능성이 높은 3황자보다 더 위험한 인물.
그것이 바로 현 황태자였다.
“황제파를 쉽게 치우진 못할 것이오.”
카리엘의 의도를 눈치챈 무솔리니가 싸늘한 표정으로 재상부로 향했다.
위기인 만큼 황제파를 전부 모아서 대처해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에겐 한 가지 무기가 남아 있었다.
방금 전 황제에게 은근슬쩍 자신의 무기를 드러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단순한 위협용이 아닌 실제로 휘두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재상이 바삐 움직일 때, 카리엘은 여유롭게 황태자궁으로 돌아와 차와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케이크 좀 먹어 봐. 맛있어.”
“우우…….”
카리엘이 은근슬쩍 케이크를 권유했지만 그것이 무섭다는 듯, 울먹이는 미리엘.
“형님은 미리엘에게 다가오지 마십쇼.”
“쯧쯧!”
2황자와 3황자가 미리엘을 감싸면서 말하자 카리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희 언제 그렇게 친해졌냐?”
“글쎄요~.”
2황자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3황자도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카리엘에게 말했다.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무서워하는 겁니다.”
혀를 차면서 지적하는 3황자를 보며 황급히 표정을 추스르는 카리엘.
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자신을 더 무서워하는 미리엘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쉰 카리엘이 미리엘을 안고 있는 두 동생을 부럽다는 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황자의 품에서 뽀시락거리며 케이크를 먹고 있는 미리엘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는 카리엘에게 3황자가 조심히 물었다.
“황제파…… 괜찮겠습니까?”
3황자의 물음에 미리엘을 보고 있던 2황자도 슬쩍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문제없어.”
“재상은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알아. 교활한 여우 같은 인간이지.”
카리엘이 지겹다는 듯 몸서리치면서 답했다.
그러자 3황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렇게 여유롭게 계셔도 됩니까?”
“지금 상황에서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재상이 숨겨 둔 패가 뭔지도 알 것 같고.”
그렇게 말하며 카리엘이 빙그레 웃자 2황자와 3황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까?”
“정말이니까 믿고 기다려 봐.”
카리엘이 그렇게 답했지만 2황자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3황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카리엘의 표정을 보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카리엘은 단 한 번의 실패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상이 뭘 할지 알고 있다라……. 무서운 형님이네.’
‘나와는 다른 의미로 괴물이네.’
2황자와 3황자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카리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뭔데? 뭘 그렇게 빤히 봐?”
뚱한 표정으로 말하는 카리엘을 보며 두 황자의 머릿속에 공통된 생각이 들었다.
‘저런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왜 황제 자리를 포기하지?’
이런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두 황자의 마음속에 조금이지만 의심이 피어났다.
‘뭔가 문제가 있나?’
순간적으로 드는 의심.
하지만 아직 어리고, 작은 의심에 불과했기에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뚱한 표정으로 카리엘을 놀리기 위한 장난이 들어찼다.
그렇게 미리엘을 데리고 놀며 여유롭게 지내는 황족들.
처음엔 어색해했던 두 황자도 이제는 자주 황태자궁으로 들렀고, 그 과정에 꼭 미리엘을 데려갔다.
얼마 전까진 서로 얼굴조차 잘 보지 않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시간만 나면 서로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는 했다.
“요즘 황자분들과 자주 모이시는 것 같습니다.”
“뭐, 그렇지.”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뭔가에 집중하면서 답했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정말 보기 좋습니다.”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원래는 친했잖아.”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잠깐 과거를 회상했다.
아주 어렸을 적, 자신의 전생에 있던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엔 두 황자와 친하게 지냈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어미인 황후의 죽음이 황비들과 무관하다는 것을 안 지금 굳이 그들과 척질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가까이 지내야만 했다.
둘 중 누가 황제가 될지 모르지만 후에 자신을 잘 보살펴 주게끔 해야 했다.
“정말 보기 좋습니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감찰총장에게 이거나 전해.”
실실 웃는 타리온에게 서신을 쥐여 준 카리엘.
“이건…….”
“재상이 대전 회의에서 숨겨 둔 패를 사용할 거 아냐. 그러니 우리도 준비는 해야지.”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한때, 마나와 고대 서적들로 가득했던 카리엘의 방은 이제, 수많은 정보들이 담긴 종이들로 가득했다.
모두 중요한 정보들이었다.
타리온이 운용하는 정보 단체와 감찰총장이 직접 보낸 정보들이었기에 잘만 이용하면 엄청난 이득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문제는 카리엘은 이 정보들로 당사자들과 거래를 하기보다 박살 내기 위한 무기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큰 거 하나 터지겠네.’
타리온이 카리엘이 보던 정보지들을 슬쩍 바라본 후 침음성을 삼켰다.
「황제파의 자금 흐름과 신전의 연관성」
타리온이 나간 후, 유심히 보던 정보들을 집어 던진 카리엘이 창문을 바라보았다.
제국을 말아먹은 파벌 중 하나를 날리기 직전임에도 흥분보다는 더욱더 냉철한 이성을 유지했다.
자신이 회귀한 이후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 참 안 가네.”
대전 회의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카리엘은 오늘따라 시간이 안 가는 것을 느끼면서 투덜거렸다.
아무리 카리엘이 닦달한다 한들 시간은 정확히 흘러갔고, 마침내 대전 회의 날이 다가왔다.
***
“많이도 왔군.”
카리엘이 대전 회의장 앞에서 바글거리는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평소엔 잘 참가하지도 않던 양반들이 이번엔 빠짐없이 전부 참여했다.
몇몇 하위 귀족들은 어떻게든 황궁에 발을 들이밀어 멀리서나마 대전 회의장을 구경했다.
그만큼 황궁엔 많은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가자.”
카리엘의 명에 타리온을 비롯한 시종들이 천천히 뒤따랐다.
그러자 대전 앞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귀족들이 일제히 길을 트기 시작했다.
“전하를 뵙습니다!”
모든 귀족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카리엘이 가볍게 손을 저으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대전 앞에 서 있는 시종이 우렁차게 말했다.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카리엘이 대전 안에 들자 모든 귀족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카리엘도 대전 앞에서 했던 행동과는 다르게 정중하게 인사를 받아 주었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모두 예를 갖추십시오.”
시종장의 목소리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반으로 접었다.
카리엘이 입장할 때와는 격이 다른 예를 취하며 황제가 황좌에 앉을 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았다.
그렇게 황제가 황좌에 앉는 순간 대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일단 첫 번째로 남부 무역로에 관한…….”
내무대신이 말을 하려는 순간 월크셔 공작이 손을 들었다.
“폐하.”
“……말하게.”
월크셔 공작을 바라본 황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말을 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사안부터 다루심이 어떠하신지요?”
“저 역시 그리 생각하옵니다.”
월크셔 공작의 말에 데이비어 공작마저 가세하자 재상의 표정이 구겨졌다.
“저 역시 같은 생각이옵니다.”
중립파의 거두인 감찰총장마저 나서자 눈치만 보던 귀족들이 일제히 황제에게 허리를 숙이며 시급한 사안부터 다루라 압박해 왔다.
허리를 굽히지 않은 이는 황태자인 카리엘과 황제파뿐이었다.
“후, 그리하시오.”
황제의 윤허가 떨어지자 두 공작이 일제히 내무부 대신을 눈빛으로 압박했다.
그러자 내무부 대신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건을 읽어 내려갔다.
“미리엘 황녀에 관한 비리 및 군사비리 사건에 관한 안건이옵니다. 두 사안을 한데 묶은 것은 황궁의 관료들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안건을 두고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내무부 대신의 말에 황제파의 귀족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반면에 재상의 눈은 여전히 활활 타올랐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재상의 그런 의지를 읽은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카리엘을 주시하고 있던 귀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전 회의에 처음 참석함에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재상을 비웃는 듯한 웃음마저 흘리자 다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소문이 사실인가?’
‘황태자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란 소문이 사실이었군.’
‘위험하다. 위험해!’
황태자를 바라보며 저마다 다른 평가를 하는 귀족들.
많은 귀족들의 관심에 부담스러울 만도 하건만 여유로운 표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회의를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두 공작과 재상이 주도하고, 감찰총장이 객관적인 입장을 내보이며 대전 회의는 점점 과열되어 갔다.
공격 - 귀족파.
수비 - 황제파.
심판 - 중립파.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안이 크다 보니 중립파마저 귀족파에 힘을 실어 주다 보니 재상이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관련된 모든 이들을 색출하여 중죄를 물려야 마땅하옵니다.”
“타국과도 연계되어 있는 중대한 사안이옵니다. 내무부 하나로 끝낼 사안이 아니옵니다!”
두 공작의 강경한 발언에 감찰총장이 첨언을 했다.
“황궁에 마약이 밀반입되었다는 정황도 발견했습니다.”
감찰총장의 말에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 황제파 인물들은 자신들이 끝난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바로 그때, 재상이 앞으로 나섰다.
“폐하, 이번 일은 실로 사안이 엄중하나, 관련된 자들을 잡아들여 조사하는 선에서 멈추셔야 하옵니다.”
재상의 말에 두 공작과 감찰총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준비한 한 수를 보기 위함이었다.
“어째서 그러한가?”
“성국과 남부 연합에서 항의 서한을 보내왔사옵니다.”
재상의 말에 대전이 고요해졌다.
“항의 서한?”
“그렇습니다. 최근 첩자 문제로 항의 서한을 보낸 것입니다.”
재상의 말에 황제가 분노한 표정으로 황좌를 내리쳤다.
“감히! 첩자를 보내 놓고 항의를 한단 말인가!”
황제의 분노에도 재상은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가 황제의 진노가 가라앉자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 황태자 전하가 첩자라 잡아들인 이들 중에 남부 연합과 성국의 첩자라 의심했던 이들이 조작된 것이라 말하고 있사옵니다.”
“뭐라?”
재상의 말에 황제가 표정을 구기면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마약 밀반입 때문에 성국이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하옵니다. 그 주체가 제국의 귀족 중 하나였는데, 마침 오해를 풀 겸 이 문제도 같이 해결하고자 사신을 보낸다 하옵니다.”
재상의 말에 외무부 대신이 나서서 남부 연합과 성국의 비밀 서한들을 황제에게 전해 주었다.
“그 서신에는 북부 귀족들이 일부 연루되었다는 말과 남부 연합 쪽 밀수 루트에 상인 출신의 귀족들이 대거 관여되었다고 적혀 있사옵니다.”
재상이 그렇게 말하며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폐하, 황녀 저하의 문제는 실로 엄중한 일이오나, 일단 타국과의 마찰부터 해결하신 후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심이 어떠할는지요?”
재상의 말에 중립파 귀족들이 침묵에 빠졌다.
공작들 역시 재상의 한 방에 대응하지 못하고 가만히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사전에 재상의 숨겨 둔 한 방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말라고 말한 것이 카리엘이었기 때문이다.
대전 안에 지독한 침묵이 감돌 때, 회의 내내 가만히 서 있던 카리엘이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