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6. 어느 줄을 잡아야 하나? (3)
잠시 당황했던 3황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장난…….”
“장난인 것 같냐?”
카리엘은 화를 내려던 3황자의 말을 끊고 싸늘한 표정으로 황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두 황자가 움찔했다.
후에 소드 마스터와 마도사에 근접한 마법사가 되는 이들이지만 지금은 어린아이일 뿐이다.
“쯧! 잘 생각해 봐. 내가 황제가 되고 싶었다면 이런 일을 벌였을까?”
그 말에 카리엘이 맨 처음 한 일이 생각난 두 황자는 표정을 굳혔다.
황제파를 건드린 일.
이 일로 카리엘은 황제파에 단단히 찍혔다.
현 황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지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황태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자신들 중 하나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할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다 이딴 몸뚱어리로 황제가 되어 봤자 피곤하기만 해.”
카리엘이 자신의 몸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최근에야 좀 괜찮아졌다지만 여전히 불안함은 남아 있었기에 이 몸을 완전한 상태로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에도 빠듯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황제란 자리는 카리엘에게 가치가 없었다.
‘더 이상 욕받이는 사양이야.’
카리엘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두 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럼 다시 묻는다. 황태자 자리에 관심 있냐?”
다시 한번 묻는 그를 보면서 두 황자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아직 어리지만 섣부르게 답해선 안 된다는 것은 알 정도로 사안이 중했기 때문이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나중에 황태자가 되고 싶다고 수 쓰지 말고.”
카리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두 황자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고자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진정시켰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차를 마시던 두 황자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카리엘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황자에게 말했다.
“그럼 내 요구 조건을 말할게.”
카리엘의 말에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짓는 2황자와 얼굴을 구기는 3황자.
2황자에 비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편인 그였기에 이런 거래는 불편했다.
황태자 자리를 내놓은 조건으로 대공이나 공작의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거나, 제국의 핵심 지역을 달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3황자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카리엘이 입을 열었다.
“증명해라.”
“뭐요?”
“뭔 소립니까?”
카리엘의 말에 두 황자가 동시에 대답했다.
생뚱맞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짓는 둘에게 카리엘이 씁쓸한 차로 목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야. 황태자란 자리에 자신이 어울린다는 걸 증명해.”
“……어떤 방식으로 말입니까?”
2황자가 불편한 표정으로 묻자 3황자도 인상을 찡그리며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너희들이 정치력을 발휘하긴 어려울 테니 잘하는 걸로 해 봐. 넌 마법을 통해서, 넌 검을 통해서.”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었다.
2황자의 경우 마법을 통해 제국을 부흥시킬 방법을.
3황자의 경우 무력을 통해 가라앉는 제국을 부흥시킬 방법을.
“제게 너무 불리한 거 아닙니까?”
3황자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재 군부는 각 파벌들이 적당히 나눠 갖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무력을 통해 제국을 부흥시킬 방법을 찾으라는 조건은 3황자에게 불리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2황자는 마도구만 잘 만들어도 어느 정도는 조건을 갖출 수 있을 터.
“알아. 그러니까 공평하게 맞춰 줄게.”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진한 미소를 그렸다.
그러자 두 황자가 흠칫 놀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난기가 서린 미소였지만 순간적으로 흠칫 놀랄 정도로 냉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곧 군부 전체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거야.”
“……그게 뭡니까?”
3황자의 말에 2황자도 궁금해했다.
“군사기밀을 넘기다 걸린 새끼 알지?”
“아…….”
3황자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작 백작 하나 잡겠다고 군부가 나설 리는 없으니 실망한 것이다.
그런 3황자를 보며 카리엘이 빙그레 웃었다.
“알고 보니 그놈이 몸통에 불과하더라고.”
“그게 정말입니까?”
3황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카리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누군지 말해 줄 수 있습니까?”
“황제파.”
3황자가 조심스럽게 묻자 카리엘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두 황자가 경악 어린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설마 황제파를 치실 생각인 겁니까?”
뭔가를 눈치챘는지 2황자의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카리엘이 진한 미소를 띠며 말없이 차를 마셨다.
“어차피 너희 둘 다 황제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귀족파는 갈라질 거다.”
카리엘의 말에 두 황자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황태자란 자리를 두고 싸우기 시작한다면 필연적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상황에서 황제파는 필요 없어. 그렇기에 난 황제파를 제물로 삼아 타국을 칠 거다.”
카리엘의 계획에 두 황자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생충 같은 귀족들을 꼬드겨 제국의 이권을 처먹은 새끼들을 단죄하는 것. 그것이 내가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할 일이다.”
카리엘의 계획을 들은 두 황자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불명예스럽게 퇴위하실 수도 있습니다.”
2황자의 말에 3황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타국과 이권을 빼먹은 자들은 하위 귀족들뿐만이 아니었다.
고위 귀족들도 걸려 있는 만큼 자칫 잘못 움직였다간 귀족들의 거센 저항에 황태자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물론, 온갖 죄목을 뒤집어쓰고 귀양을 갈 수도 있었다.
아직 어린 황자들이지만 영특한 녀석들인 만큼 황제가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그렇기에 황제는 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카리엘을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상관없어.”
카리엘이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차를 마시면서 빙그레 웃었다.
“자! 그럼 할 얘기는 다 끝났고……. 남은 건 너희들이 외가에 이르는 것만 기다리면 되나?”
그의 말에 두 황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이 취급하지 마십쇼.”
“아이 맞잖아.”
2황자의 말에 카리엘이 비웃음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열네 살이 된 지 얼마 안 된 2황자나 3황자는 이제야 겨우 꼬마 티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그나마 매일같이 수련하는 3황자가 그나마 청년처럼 보이는데, 2황자는 아직도 애였다.
카리엘의 팩트 폭행에 입을 꾹 다문 2황자.
성장이 느려서 그런지 요즘 들어 살짝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카리엘이 애 취급을 하니 삐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3황자가 비웃는 표정으로 2황자를 아래위로 훑었다.
“쯧쯧!”
“죽고 싶냐?”
“성장부터 하고 와라.”
마력을 일으키는 2황자에게 3황자가 혀를 차면서 눈짓으로 카리엘을 가리켰다.
그러자 2황자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황급히 마력을 억눌렀다.
“이제 이 정도는 괜찮아.”
카리엘이 여유롭게 차를 마시자 2황자와 3황자가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요즘 뭔가 하고 계신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효과가 있었던 겁니까?”
“조금? 걸어 다닐 정도는 돼.”
3황자의 물음에 카리엘이 웃으면서 답하자 3황자가 그럴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긴 하나, 여기저기 근육이 잡힌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강체술이라는 건데 육체 강화에 효과적이야. 낭비되는 마력이 많긴 하지만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지.”
“강체술? 혹시 마력 숙성법 계열입니까?”
“맞아.”
벌써부터 마나 연구에 몰두하는 천재답게 2황자는 단번에 카리엘이 익힌 것을 눈치챘다.
“위험하실 텐데요.”
“그래서 기초만 수련 중이지. 슬슬 단계를 높여야 할 것 같은데 위험성이 커서 쉽지가 않네.”
카리엘의 말에 2황자가 헛기침하면서 말했다.
“흠흠! 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십쇼.”
쑥스러운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2황자를, 카리엘과 3황자가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성장이 덜 되어서 더 애 같은 2황자는 틱틱거리는 것조차도 살짝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두 황자의 시선을 느낀 2황자가 분노한 표정으로 노려보자 그제야 입가에 그려진 미소를 지운 카리엘이 대답했다.
“알았어. 막히면 도움 좀 구할게. 도와주면 내가 특별히 평가에 반영을…….”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카리엘의 말에 3황자가 발작하듯 일어났다.
그런 그를 보면서 이번엔 2황자가 피식 웃었다.
“꼬우면 너도 연구해.”
2황자의 말에 카리엘이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동생들을 봐서 좋네. 이참에 남은 동생도 보러 가야겠다.”
“미리엘 말입니까?”
“왜? 불편하냐?”
카리엘의 물음에 2황자가 헛기침하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여동생이기에 두 황자가 살짝 불편한 표정이었으나, 꼭 필요한 일이었다.
누가 황제가 된다 하더라도 황족들에 대한 안전을 보장할 것.
자신뿐만 아니라 여동생인 미리엘의 안전마저 보장하려면 어릴 때부터 미리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이미지를 심어 둘 필요가 있었다.
“말 나온 김에 얼른 가자.”
“……예.”
“네.”
어딘가 불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동생들을 강제로 끌고 미리엘이 있는 황녀궁으로 향했다.
급작스럽게 결정되었기 때문에 황녀궁에 알리지도 않고 움직인 카리엘과 두 황자.
그렇게 그들이 마차를 타고 거대한 궁으로 이동하자 곧 황녀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궁처럼 화려해 보이는 외관을 한 황녀궁.
하지만 카리엘이 보기에 뭔가가 이상했다.
언뜻 보기엔 화려하지만 왠지 모르게 엉성한 느낌이 드는 궁의 외관.
‘확실히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거린 카리엘이 갑자기 어렸을 적 고생했다던 미리엘의 말이 생각났다.
황후처럼 몸이 약했던 미리엘의 어미는 황궁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기에 외가에서 온 유모의 손에 길러졌는데, 신기한 건 미리엘이 어느 정도 크고 나서 그 유모를 곧바로 궁에서 내보냈다는 점이었다.
“뭔가 있네.”
“……예?”
카리엘의 중얼거림에 곁에서 걷고 있던 2황자가 되물었다.
하지만 카리엘은 대답 대신 일부러 마차에서 내려 황자들과 함께 조용히 황녀궁으로 향했다.
곧이어 타리온이 황태자가 왔음을 큰 목소리로 알리려 했지만 카리엘이 그것을 가로막고는 조용히 두 동생과 궁 안으로 진입했다.
“저, 전하!”
“쉿!”
입구에서 호위를 서는 황궁 기사의 입을 봉하고는 두 황자와 함께 안으로 진입했다.
“전하!”
시녀 중 하나가 허리를 숙이면서 말하자 근처에 있던 시종들과 시녀들도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미리엘은 어디에 있지?”
“저, 저하는 정원에 계실 것이옵니다.”
“정원이라…….”
카리엘이 그녀의 말에 곧바로 정원으로 향했다.
그러자 정원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미리엘을 볼 수 있었다.
“쓸쓸해 보이는군요.”
“음…….”
미리엘의 모습을 본 두 황자가 침음성을 삼켰다.
자신들이야 외가 쪽 사람들과 귀족들이 간혹 찾아오곤 했고, 황태자조차 황제파에서 어린 귀족들이 병문안을 오고는 했다.
게다가 어린 시종들이 매일같이 붙어 있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미리엘은 그런 게 없었다.
“유모는 어디에 있지?”
카리엘이 싸늘한 물음에 곁에 있던 시녀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 그것이…… 볼일이 있는지…….”
“볼일이라…… 아직 어린 황녀를 돌보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군.”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얼거린 카리엘이 두 황자에게 말했다.
“미리엘이랑 놀아 주고 있어.”
“어디 가십니까?”
2황자의 물음에 카리엘이 황녀궁을 바라보았다.
“여기 좀 살펴봐야겠다.”
카리엘의 음성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자 두 황자는 더 묻지 않고 미리엘에게 향했다.
그것을 본 카리엘이 본격적으로 황녀궁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다음 날, 두 황자와 함께 황녀궁을 찾은 카리엘이 칼춤을 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두 공작이 비밀리에 카리엘을 찾았다는 소식마저 들려오면서 수도는 혼란에 빠졌다.
이젠 정말 어디에 줄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귀족들.
그런 그들에게 한 신문사가 답을 내놓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감옥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