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 날뛰는 황태자 (2)
포돌스키에게 굴욕을 당하고 온 무솔리니가 재상 관저에 돌아와 물건들을 박살 내면서 화를 풀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암군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렇게 무솔리니가 자신의 관저에서 분노를 풀고 있을 때, 카리엘은 빈민가에 도착했다.
“치안대는?”
“뒤따라오고 있습니다.”
“감찰부는.”
“무력 부대와 같이 올 겁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 두 무리가 열심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수도 방위군에게 협조 요청은 했어?”
“예, 포위망 형성 중입니다.”
“좋아. 시작해.”
카리엘의 명령에 치안대와 감찰부가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곧바로 움직였다.
황궁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잡아들인 시종들 중에 결국 취조를 못 견디고 입을 연 자들이 있었다.
애초에 이중 첩자질을 하면서 간간이 돈이나 벌자는 마인드가 많았기에 쉽사리 입을 열었고, 감찰부는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타국의 첩자들이 활동하는 지역을 역추적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튀어! 빨리!”
“잡히면 안 된다!”
건물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안으로 진입한 치안대와 감찰부의 무력 부대가 도망치는 타국의 첩자들을 제압했다.
개중에는 상당한 실력자들도 있었지만 치안대에도 특수부가 있었고, 그들은 기사 부럽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들마저 뚫고 간다 한들…….
“기사단, 발검!”
포위망을 갖춘 수도 방위군에게 잡힐 수밖에 없었다.
“제길!”
첩자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자로 보이는 이가 그나마 포위망이 약한 지역으로 도망쳤지만 그곳은 사지였다.
암행을 위해 평복으로 갈아입은 황궁 기사 둘이 서 있는 지역으로 빠르게 뚫고 나가려 했으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카리엘을 호위하는 이들은 황제파의 인맥발로 기어 올라온 이들이 아닌 진짜 정예들이었기 때문이다.
“컥!”
단번에 제압당한 첩자를 보면서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이쪽이 만만해 보였나 보네.”
카리엘이 황궁 기사들을 비웃듯이 바라보자 기사들이 자존심 상한다는 듯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다음 곳에 가서는 실력 발휘 좀 해 봐.”
“전하를 호위해야 하옵니다.”
나이 많은 황궁 기사의 말에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시종들 있잖아.”
“하오나…….”
“떨어진 황궁 기사단의 위신 좀 세워야지. 기회를 줄 때 잡아.”
카리엘의 말에 늙은 기사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신은 여기 있겠사옵니다.”
“괜찮겠어?”
“첩자를 잡는 데에는 젊은 기사들로 충분합니다.”
황궁 기사의 말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황궁 기사단의 명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황궁을 지키는 기사들이다.
인맥발이라도 기본적인 실력은 갖추고 들어와야 했고, 그중에서도 황족들을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이들은 무조건 실력순으로 뽑혔다.
황궁 내에서 경비나 서는 인맥발 기사나, 황족들이 암행이나 외출을 위해 나왔을 때 호종하는 이들과는 애초부터 사이에 벽 하나가 세워져 있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셈이다.
다음 행선지는 나름 큰 곳이었다.
수도 내에 있는 범죄 조직.
그런데 그곳이 사실 타국의 첩자들이 머무는 곳이었다는 걸 공식적으로 밝혀내면서 토벌에 들어간 것이다.
“빠르게 끝내고 임무에 복귀해.”
“예!”
고작 세 명의 황궁 기사들.
하지만 그들이 투입된 순간 시간을 끌던 자들이 제압당하기 시작했다.
인원수로 밀어붙이려 했지만 수도 방위군의 합류로 그마저도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온 김에 주변 범죄 조직들도 소탕하는 게 좋겠지?”
“그, 그렇사옵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근처에 서 있던 치안대장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그날, 수도 한쪽에 모여 있던 범죄 집단들이 죄다 박살 나 치안대와 감찰부로 끌려갔다.
엄청난 숫자의 범죄자들 때문인지 수도 내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구경하러 올 정도였다.
현 황제가 집권한 이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북적거리는 치안대와 감찰대.
덕분에 가뜩이나 바빴던 감찰부는 일이 마비될 정도였다.
“황제파가 바빠지겠어.”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키득거렸다.
그러자 타리온 역시 웃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카리엘과 타리온이 감찰부장실에서 차를 음미하며 여유를 부릴 때였다.
똑똑!
“전하.”
“들어와.”
감찰총장이 들어오자 카리엘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창 바쁜 양반이 여긴 왜 왔어?”
“수도 감찰부가 바쁜 것 같아 황궁 감찰부 인원을 좀 빼 왔습니다.”
“잘했네.”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앉으라고 말했다.
“일이 좀 커진 것 같습니다. 황제파가 극단적으로 나올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장 오늘 폐하께 쪼르르 달려가서 황태자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징징거릴걸.”
카리엘이 뒷목 잡고 있을 재상을 생각하며 웃었다.
“아마 내일 당장 폐하가 부르실 거야.”
카리엘이 알고 있다는 듯 말하자 포돌스키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카리엘이 괜찮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포돌스키는 달랐다.
너무 일을 크게 벌일 경우 카리엘이 뭔가 해 보기도 전에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돌스키가 생각한 건 야금야금 황제파의 힘을 갉아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리엘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로만이 커지고 있고, 인접 국가들도 빠르게 강해지고 있어. 무엇보다 남부 연합이 문제지.”
“음…….”
“그들이 더 커지기 전에 제국을 수습하고 대비해야 하지 않겠어?”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사실 그가 생각하는 건 타 국가들의 위협 따위가 아니었다.
더 큰 위협들을 대비하기 위해서 제국의 내실을 빠르게 다질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제국이 큰 타격을 받지 않고 그 위험들을 지나갈 수 있도록 준비는 다져 놓고 떠나야 했기에 다소 급하더라도 이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내일 폐하가 부르신다면 귀족파도 건들 거라고 말씀드릴 생각이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준비하겠습니다.”
“좋아. 폐하가 말씀하신 균형이란 걸 지켜보자고.”
“예!”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웃다가 지금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아! 참고로 중립파도 털어야 할걸.”
“상관없습니다.”
“진짜?”
카리엘의 물음에 포돌스키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쭉정이들에 불과하니 이 기회에 정리하는 게 낫습니다.”
“흠, 좋아. 일단 쭉정이들을 잡아서 균형 좀 맞춰 보자고.”
그렇게 말한 후, 카리엘은 포돌스키와 함께 수도 감찰부를 나와 궁으로 향했다.
엄청난 일을 벌인 것치고는 잠잠하기만 한 황태자궁.
다음 날이 돼도 조용할 뿐인 황태자궁에 많은 수의 시종들과 내관들이 들이닥쳤다.
“폐하께서 부르시옵니다.”
“그래?”
이번엔 얌전히 허리를 굽히면서 말하는 시종장을 보면서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앞으로도 잘하자.”
카리엘은 시종장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말하고는 마차로 향했다.
그러자 뒤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가는 시종장.
그래 봤자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전하,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차에 같이 올라탄 타리온이 걱정스레 묻자 카리엘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일이잖아.”
“그렇지만…….”
“쉿! 알아서 할게.”
카리엘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는 가만히 밖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자신의 마차를 보면서 잘됐다는 듯 웃는 시종들.
허리를 굽히고 있지만 그들이 웃고 있는 것을 본 카리엘이 타리온을 향해 말했다.
“아직 시종들 교육이 덜된 것 같지?”
거리가 멀어서 안 보일 거라 생각했지만 강체술을 수련하며 강화된 눈은 충분히 보고도 남았다.
타리온 역시 그 모습을 보면서 표정을 구기고는 카리엘에게 말했다.
“……따로 불러올까요?”
“됐어. 저런 건 연대책임으로 조져 줘야 제맛이지. 나중에 한꺼번에 조져 보자.”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시종들을 어떻게 조질지 생각하는 동안 마차가 황제의 궁에 도착했다.
“여기서 기다려.”
“예, 전하.”
타리온을 밖에 두고 황제궁으로 들어가자 시종이 접견실이 아닌 황제 개인 집무실로 안내했다.
‘개인적으로 보고 싶다는 거군.’
카리엘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종을 따라 황제의 집무실로 들어가자, 황제가 의자에 앉아 카리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준비했는지 티 테이블에 먹을 간식과 찻잔까지 전부 고급스러운 것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폐하를 뵙습니다.”
“왔느냐. 앉거라.”
황제가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쇼하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이 공손한 모습을 연기하며 자리에 앉았다.
“요즘 짐의 명을 열심히 수행한다고 들었다.”
“폐하의 명이니 최선을 다해 수행할 뿐입니다.”
카리엘의 말에 황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애쓰는 카리엘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그래, 몸은 신경 쓰고 있느냐? 무리하고 있는 듯싶은데…….”
“폐하의 명을 수행하다 보니 다소 무리하게 되긴 했사옵니다. 하지만 아직은 거뜬합니다.”
카리엘의 말에 황제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무리하는 것 같구나. 이제 그쯤하고 짐에게 맡기는 게 어떻겠느냐?”
황제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직 제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사옵니다.”
“흠…….”
카리엘의 대답에 황제가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곧바로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폐하께서 어떤 것을 걱정하시는지 잘 알고 있사옵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이라…….”
“균형. 그것이 붕괴될까 저어되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카리엘의 말에 황제가 침음성을 터뜨렸다.
“그러니 이쯤 하자꾸나.”
황제의 말에 카리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균형은 맞춰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것이냐?”
“황제파가 타격을 받았으니 귀족파와 중립파에도 타격을 줘야 공평하겠지요.”
카리엘의 말에 황제의 표정이 살짝 펴졌다.
“흠, 할 수 있겠느냐?”
“예, 이미 증거는 확보해 놓았으니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좋다. 내 한 번 더 너를 믿어 보겠다.”
황제의 말에 카리엘이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카리엘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황제.
그런 그에게 물러가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바로 그때, 황제가 카리엘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황궁 내의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건 이쯤 하자꾸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들을 잡아들이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느니라.”
“그리하겠습니다.”
황태자의 대답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요청하라는 말과 함께 카리엘을 배웅했다.
그렇게 황제와의 담화가 끝난 카리엘이 곧장 마차로 향했다.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타리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전하, 폐하와는…….”
“잘 끝났다. 예정대로 귀족파와 중립파를 조져야지.”
“준비하겠습니다.”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그런 그를 보며 카리엘이 말했다.
“아! 그리고 황궁은 더 건들지 마.”
카리엘의 말에 황제와 어떤 약속을 했을지 상상이 간 타리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어차피 공식적으로만 못 할 뿐 타리온은 하던 걸 계속하면 돼.”
“……예?”
의아한 표정을 짓는 타리온에게 카리엘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족파와 중립파를 칠 거잖아. 그럼 수도가 한동안 혼란스럽겠지?”
“그, 그렇죠?”
“그럼 우리가 갖고 있는 걸 쓴다 해도 우리라고 의심할까?”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아, 아니요?”
“공식적으로 처맞은 파벌들에게 이간계를 쓰면 통할까, 안 통할까?”
“토, 통하겠죠?”
타리온의 대답에 카리엘이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물었다.
“적당한 때에 장작을 하나씩 넣어 주면서 보자고. 과연 저들이 어디까지 서로를 물며 날뛰는지.”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무섭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왠지 봐선 안 되는 모습을 본 것 같은 타리온 표정에 카리엘은 겁먹지 말라는 듯 그의 팔을 툭툭 쳐 주고는 황태자궁으로 향했다.
***
그리고 다음 날.
황제의 부름으로 기세가 한풀 꺾였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황태자는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다음 목표는 너희들이다.’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귀족파와 중립파의 비리를 대대적으로 파헤치는 카리엘.
비록 황궁 내의 비리에 한정되어 있으나 상관없었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비리들만 가지고도 귀족파와 중립파에게 타격을 입히기엔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며칠 후, 광장 벽보에는 한 장의 그림이 게시되었다.
‘미쳐 날뛰는 황태자와 그를 지지하는 백성들’
이런 제목이 적힌 그림에는 칼춤을 추는 황태자와 그를 피해 도망 다니는 귀족들, 그리고 환호하는 백성들이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