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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3화 (13/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 날뛰는 황태자

마침내 감찰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제의 명을 받은 황태자의 압박에, 감찰부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황태자의 명에 따라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그동안 감찰부가 갖고 있던 모든 자료들을 토대로 황궁에 숨어 있는 첩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황궁!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이게 첩자 소굴인지 황궁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모든 건 황제파 탓이다! 그들이 황궁을 장악한 후 벌어진 일이다!’라는 교수들의 의견들이……」

「‘폐하의 눈을 현혹시킨 황제파를 몰아내야 한다!’라는 여론이 형성……」

자극적인 신문들이 매일같이 몰아치고 황제파는 점점 더 구석으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황제를 등에 업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다니는 터라 안 좋은 감정들이 많았는데,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모두 터져 나온 것이다.

“잘하고 있네.”

카리엘이 웃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감찰총장을 마음속으로 칭찬했다.

그만큼 맛깔나게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감찰부에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황제파를 박살 낼 기세로 몰아치자 황제파의 귀족들은 물론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귀족파에서도 와서 감찰총장에게 살살 하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폐하의 명을 태자 전하께서 직접 저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감찰총장은 이런 식으로 황태자를 말릴 수 없다는 듯 연기하며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황제파를 몰아붙였다.

나중에는 황제파가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다며 협박했지만 그마저도.

“저는 힘이 없습니다. 위에서 시키면 따라야지요. 폐하를 설득하십시오.”

이렇게 말해 버리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황제파가 믿을 건 황제뿐이었는데, 황제조차도 불타는 지금의 여론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웠다.

암군이라 불리지만 폭군이 될 용기는 없는 황제라 여론의 눈치만 보는 통에 시간은 흘러갔고, 그럴수록 황제파는 더욱더 고립되었다.

감찰총장이 워낙 확실하고 깔끔하게 일하는 터라 가끔 보여 주기식으로 감찰부를 방문하는 것 말곤 할 게 없었다.

덕분에 멈췄던 운동 역시 다시 시작되었다.

“훅……훅……훅…… 그, 그만…….”

“한 세트 더 하셔야 하옵니다.”

“오늘 너무 많지 않나?”

“그동안 쉬셨으니 할 수 없지요. 보십시오. 벌써 화기가 올라올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살짝 불그스름하게 변한 피부를 보면서 말하는 토토의 모습에 카리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살짝 바빠서 강체술과 운동을 빼먹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자신을 끔찍이도 아끼는 타리온조차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면서까지 자신을 외면하는 모습에 카리엘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금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운동이 끝났다.

하지만 수련은 이제 시작이었다.

강체술을 수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몸에 익은 강체술이었지만 다음 단계를 밟을 수는 없었다.

강체술은 웨어 울프들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라 카리엘의 신체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체술의 심화 과정이 화기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섣부르게 다음 단계를 밟을 수가 없었다.

“하,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지?”

“강체술을 전하의 몸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단계가 끝날 때까진 계속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안 된다면?”

토토의 물음에 카리엘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토토가 이 모든 것이 자초한 거면서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카리엘은 고개를 푹 떨궜다.

“하…….”

“이 삶이 꼭 나쁜 건 아니옵니다. 매일같이 운동하는 이 삶. 얼마나 규칙적이고 재밌습니까?”

토토가 근육을 꿈틀거리면서 말하자 카리엘이 고개를 흔들며 진저리 쳤다.

강체술을 얻고 수르트와 계약하면서 더 이상 병약한 신체로 살지 않아도 되었지만, 대신 매일같이 운동과 함께하는 삶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강체술이 성장하고 수르트가 강해지면 되는 게 아니냐고?

카리엘이 성장한 만큼 화기도 성장한다.

그렇기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평생 운동과 함께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타리온.”

“예, 전하.”

강체술 수련을 끝내고 지친 표정으로 부르는 카리엘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타리온.

그런 그에게 카리엘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찾아와.”

“……예?”

“내가 말한 녀석들 찾아와. 당장!”

“예, 전하. 찾아올 터이니 이제 씻고 공부하러 출발하시지요.”

타리온의 말에 흥분했던 카리엘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새 카리엘의 공부 시간이 다가왔다.

전생에서 다 배운 내용들이기에 카리엘에겐 휴식 시간이나 다름없는 그 시간.

카리엘이 운동으로 흠뻑 젖은 땀을 씻어 내고 들어오자 늙은 정치학 교수 하나가 그를 보면서 움찔거렸다.

“자, 수업을 시작해 볼까?”

카리엘이 환하게 웃으면서 늙은 교수를 바라보았다.

황태자인 카리엘이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며 활발하게 활동하자, 그런 카리엘의 움직임을 묶기 위해 황제가 생각한 방법이 바로 교육이었다.

문제는…….

“이게 맞는 말인가?”

“예?”

“아니, 이 이론이 맞냐고. 이건 이그니트 위주의 외교 방식이잖아. 이게 박살 난 지 30년은 되었을 텐데?”

카리엘의 말에 외교에 대한 교육을 하러 온 늙은 교수가 쩔쩔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가르치는 책은 전부 어느 정도 검열을 받은 것들이었던 것이다.

황제파 출신으로 인맥발로 교수 생활을 해 온 늙은 교수 입장에서 현 황제의 치적을 나쁘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어느 정도 거짓을 섞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카리엘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적했다.

“지금 우리가 타국에게 손해 보는 게 얼마인데 이딴 수치를 들고 왔냐? 교수, 장난해?”

“그, 그것이 아니오라…….”

늙은 교수가 애처로워 보일 정도로 울상을 지었으나 카리엘은 그럴수록 더욱더 화를 냈다.

‘아,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

카리엘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분노한 표정으로 늙은 교수의 말에 하나하나 반박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수업들도 마찬가지였다.

교양은 전생에서 했던 것이라 트집 잡으려고 하면 제대로 보여 주고는 하나하나 반박했고, 일반적인 상식 교육은 다 아는 문제라며 이딴 걸 수업 교본으로 들고 왔냐고 화를 냈다.

그런데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교수.”

“……예, 전하.”

“교수는 내가 바보로 보이나?”

“그,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그런데 뭔 이따위 교본을 가지고 왔어. 장난해?”

카리엘은 《균형론》이란 책을 바닥으로 집어 던지며 말했다.

현 황제와 전대 황제의 균형론을 적어 놓은 책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이런 게 아니라 초대 황제 폐하의 제왕학과 성황제의 등용론 같은 것을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그, 그것이…….”

젊은 교수가 주눅 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카리엘의 말처럼 제왕학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건 초대 황제의 제왕학이었고, 심화 과정으로 들어가면 성황제의 등용론이나 무황의 군림론 같은 것을 배워야 했다.

문제는, 교수는 황제파로부터 뒷돈을 받아 처먹은 입장이라 황제파에 이득이 되는 수업을 해야 하는 데다 황제 역시 자신의 업적이 잔뜩 들어간 교보재에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야, 꺼져.”

“……예, 전하.”

젊은 교수는 쓸쓸히 허리 숙여 인사한 다음 방을 나섰다.

오늘도 제왕학 교수 하나를 날려 버린 카리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심보가 고약하군.

“뭐?”

-스트레스를 그렇게 풀면 좋냐?

‘뿅!’ 하고 나타난 수르트가 혀를 차면서 말하자 카리엘이 자신은 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황제가 카리엘의 발을 묶기 위해 시작한 수업이다.

언젠가는 해야 했던 것이긴 하지만, 몸이 좀 회복되었다고 바로 수업 일정을 잡아 버린 것이다.

그냥 일반적인 수업뿐이었다면 카리엘이 듣는 시늉이라도 했을 텐데 어디서 되지도 않는 걸 가져와서 가르치려 드니 이런 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쯧쯧! 넌 전생에 악마였을 거다.

“인간인데?”

카리엘의 말에 수르트가 한숨을 폭 쉬었다.

신에 의해 과거로 돌아온 것을 알고 있는 수르트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 전생 말고.

“그니까.”

-뭐?

“그 전에도 인간이었다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

수르트가 그렇게 말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리엘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말해 줄게.”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풀었다.

몸을 뜨겁게 달구던 화기도 다시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강체술을 익히고 수르트와 계약했지만 화기는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효과가 없지는 않은 게, 강체술을 수련할수록 몸이 더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카리엘은 전생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몸을 가진 것이다.

-화기도 가라앉았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 날뛰겠네?

“날뛰다니. 다 제국을 위한 일이고 미래의 우리를 위한 일이야.”

-개소리.

카리엘의 말에 수르트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말은 제국이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미래의 자신들도 안전해질 수 있고, 그래야 여유가 생겨 다른 마수들도 찾아다닐 수 있다는 변명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황제파를 엿 먹이는 게 재밌어서라는 걸, 옆에서 지켜본 수르트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말을 할 거라면 그 노트나 숨기고 말해.

“흠흠…….”

카리엘이 헛기침하면서 조용히 노트를 서랍 속으로 집어넣었다.

“어쨌든 몸도 회복되었으니 다시 움직여야겠지?”

-에휴, 네 맘대로 해라.

수르트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금 ‘뿅!’ 하고 사라졌다.

아직 힘이 불안전하니 최대한 잠들면서 힘을 안정화시키려는 것이다.

“강체술만 완성되면 상시 소환해 줄게.”

수르트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린 카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향했다.

***

한동안 잠잠했던 황태자가 다시금 궁 밖으로 나왔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황제파 전체에 퍼져 나갔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을 벌일지 몰라 덜덜 떨면서 제발 자신은 걸리지 않길 바라는 귀족들.

감찰부로 향한 카리엘이 이번에도 황궁 안에 있는 내무부나 재무부 관료들을 괴롭힐 거라는 예상과 달리 카리엘이 향한 곳은 수도 내의 빈민가였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재상 무솔리니는 기겁한 표정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쾅!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무솔리니가 고함치면서 재무부 대신과 관료들을 닦달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그러자 본인이 직접 감찰부로 가서 감찰총장을 만났다.

“총장, 이건 선을 넘은 것이오.”

“저한테 이러지 마시고 태자 전하께 따지시지요.”

“총장!”

무솔리니의 협박에 여유롭게 차를 마시면서 답하는 포돌스키.

“중립파의 신념을 잊은 것이오?”

“후, 그럼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폐하의 명을 거역이라도 할까요?”

포돌스키의 말에 재상이 이를 악물었다.

“폐하를 설득하십쇼.”

원론적인 답을 내놓은 포돌스키를 보면서 무솔리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총장 정도 되면 어린 황태자를 방해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관한다는 것은 포돌스키가 이번 일에 어떤 관여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후회할 것이오.”

“살펴 가십시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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