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3화 (3/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1. 원치 않는 회귀! (2)

전생에 자신을 고생시킨 주범들인 황제파를 박살 내기 위해서 고심했다.

황궁을 떠나기 전까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황제파를 박살 내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며 그들의 약점을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그 결과, 그 고심 끝에 떠나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첫 번째 목적이 정해졌다.

‘재상은 무조건 조지고 가야지.’

현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는 재상.

자신이 전생에 고생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흉은 황제파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재상이었다.

본래 황제파를 이끌던 후작가 하나를 끌어내리고 자작가를 후작가로 만든 천재.

황제 대신 귀족파와 중립파, 황제파의 의견을 잘 조율하는 것으로 유명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청렴하다는 것이었다.

공을 세워도 대부분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눠 주자 황제가 직접 후작위에 봉했다고 전해질 만큼 깨끗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건 다 뻥이었다.

“청렴하긴 개뿔…….”

카리엘이 이를 갈면서 재상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도 어렸을 적에는 뭣도 모르고 그를 청렴하다 생각했다.

“그게 다 가면이었지.”

재상은 몸속에 수천 마리의 능구렁이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얍삽하고 욕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본심은 황제가 죽은 후 드러나게 된다.

힘도, 기반도 약한 자신을 대신한다는 명목으로 제국을 분열시키고 사욕을 채우려 한 것이다.

으득!

카리엘은 다시 이를 빠득 갈면서 재상에 대한 분노를 불태웠다.

재상만 아니었어도 전생에 고생했을 것이 3분의 1은 줄었을 것이다.

“후…… 침착하자.”

분노해 봤자 자신만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아는 카리엘이 명상하며 애써 분노를 잠재웠다.

몸 안에 있는 화기 덩어리가 분노라는 감정에 잘 동화되는 녀석이라 극한 분노에 휩싸이면 자칫 위험해질 수 있었다.

“전하, 명하신 책들을 가져왔사옵니다!”

“들어와.”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카리엘이 들어오라고 명했다.

그의 명령에 시종이 수레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게 전부야?”

“아닙니다. 이만한 책 더미가 네 번 정도는 더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방을 채운 책만 해도 그 수가 엄청난데 앞으로 이것의 4배가 쌓일 예정이라는 사실에 잠시 말을 잊은 카리엘.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가라고 명령했다.

“많긴 하네.”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가장 기초적인 서적부터 탐독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저명한 아카데미의 교수들을 불러 자문을 구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자신의 정보도 유출될 것을 감당해야 했다.

그럴 바에 혼자 알아보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음.”

방대한 양의 책들을 보면서 순간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은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곳 수도에는 똑똑한 놈들이 너무 많았다.

제국에서 머리 좀 쓸 만하다 싶은 놈들은 죄다 모여든 곳이기에 조각조각 난 정보들을 취합해서 카리엘이 숨기고자 하는 정보를 유추할 수도 있었다.

결국 혼자서 알아보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가장 중요한 것부터 순서를 정해 나갔다.

1. 웨어 울프 강체술.

2. 계약해야 될 존재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아볼 것.

3. 화기를 억제시킬 방법을 찾을 것.

4. 계약할 존재들의 상세 위치와 계약 방법 등을 찾을 것.

크게 이 네 가지였는데 가장 쉬운 것부터 해 나갈 생각이었다.

신이 준 정보들 중에서 가장 명확한 힌트는 웨어 울프의 강체술이었기에 그것에 관련된 것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황궁 도서관이라 그런지 상당히 수준 높은 정보들이 담겨 있는 책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몬스터 대백과사전을 선택한 카리엘이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호, 역시 몬스터들도 만만치 않아.”

카리엘이 전생을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몬스터 웨이브로 고생할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렸다.

분명 각 지역의 변경백들이 수차례나 경고했음에도 빌어먹을 반란과 인접 국가들의 침공 때문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수도가 함락 직전까지 가서 피난했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억울한 일이었다.

분명 자신은 몬스터에 관해 대비하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반란과 인접국의 공격 때문에 때를 놓친 것뿐이었다.

“큽!”

분노하자 다시금 머리를 뜨겁게 달구는 화기 덩어리들.

카리엘은 곧바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속으로 연신 ‘침착하자.’라고 외치며 분노를 잠재웠다.

“후…….”

그렇게 간신히 머리끝까지 뻗치는 분노를 잠재운 카리엘은 몬스터에 관한 책을 탐독했다.

지금 카리엘이 읽고 있는 몬스터 대백과사전은 단순히 특징만을 적어 놓은 것이 아니었다.

무려 황족이 읽는 책답게 각 몬스터에 대한 정보들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중에는 각 종족들이 사용하는 힘에 관한 서술도 있었다.

“확실히 마나 숙성법도 연구할 가치는 있어.”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때 화기를 잠재우기 위해 마나를 깊이 연구했던 카리엘이기에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마나 숙성법의 가치를 누구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카리엘은 이곳 출신이 아니기에 몬스터들의 기술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그 와중에 몬스터 웨이브까지 터지니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마나 활용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하게 되었고, 몬스터들의 마나 활용이 어떤 면에선 인간들보다 훨씬 수준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마법사들이나 학자들은 이런 카리엘을 못마땅해했다.

하긴, 황제란 작자가 미개한 몬스터들의 기술을 연구하고 앉았으니 학자들 입장에선 황제가 미친놈처럼 보일 만도 했다.

“학자란 인간들이 오히려 틀에 박힌 사고를 갖고 있으니…….”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혀를 찼다.

그러고선 대륙의 모든 마나 활용법을 모아 둔 고서를 들었다.

대부분 익히 아는 것들이었으나 몇 가지는 흥미로운 것들도 있었다.

“확실히 흥미롭긴 해.”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책장을 넘겼다.

학자들조차 얼마나 더 많은 종류가 있을지 가늠조차 못 하는 수준까지 와 버린 현대의 마나 활용법들.

물론 그렇게 많은 마나 활용법도 크게 보면 결국 두 개로 나뉜다.

마나 숙성법.

마나 정제법.

고대부터 내려온 이 두 가지의 방법은 현재에 이르러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인류와 아인종은 마나 정제법 계열로.

인류를 제외한 몬스터라 불리는 대부분의 종족들은 마나 숙성법 계열로.

인간들이 마나 정제법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각각의 방법들은 장단점이 명확했는데, 먼저 인간들이 선택한 마나 정제법의 장점은 이러했다.

1. 안전하다.

2. 가공하기 편리하다.

그렇다면 몬스터들이 선택한 마나 숙성법의 장점은?

1. 빠르게 강해지는 게 가능하다.

2. 회복 속도가 빠르다.

3. 단순하다.

장점이 극명하게 갈리는 만큼 단점들도 명확했다.

마나 정제법은 마나 숙성법에 비해 강해지고 마나를 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반면에 마나 숙성법은 불완전했다.

그만큼 위험을 동반해야 한다는 뜻.

몬스터들이 마나 숙성법을 선택한 이유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마나 숙성법을 선택해야만 했다.

반면에 인간들과 아인종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으로 마나 정제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가뜩이나 몸이 약한 카리엘이 마나 숙성법을 익힐 경우 더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마나 정제법을 극한까지 단련한 자들과 고명한 학자들도 결국 카리엘의 화기를 제어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리스크는 감내한다.’

언제까지 평생 화기에 질질 끌려다닐 수는 없는 법.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감내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웨어 울프에 관한 정보들을 뒤져 봤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역시 별거 없네.”

카리엘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생에서 이미 알아봤던 것이기에 곧바로 뭔가가 나오진 않았다.

“분명 그때 웨어 울프도 알아봤는데…….”

전생에 학자들과 알아본 바로는 웨어 울프의 마나 운용도 오크들이나 다른 몬스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강력한 몸을 기반으로 하는 마나 숙성법.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투술까지.

모든 것을 알아보았던 카리엘이기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백과사전에 있는 내용은 대부분 익히 아는 내용이었기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던 카리엘은 갑자기 멈춰 섰다.

「고대 웨어 울프들 중에는 독특한 형태의 마나 활용법을 사용하는 종족이 있었다.」

이 문장을 본 카리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맞아. 고대 시절까진 알아보지 않았지.”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다음 장을 넘겨 보았지만 간단한 개념만 있을 뿐, 자세하게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일반적인 투술이 아닌 신체 능력 극대화와 본능을 갈고닦는 개념의 고대 웨어 울프의 무투술.」

웨어 울프 내에서도 사장된 기술이기에 자료는 얼마 없었다.

카리엘도 신이 알려 준 힌트가 아니었다면 넘겼을 만큼 볼품없는 서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리엘은 만족했다.

“방향은 잡았네.”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상세한 내용은 다른 곳에서 찾으면 그만이다.

웨어 울프에 관해서 파헤치다 보면 어느 정도 정보는 나올 터.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면 자료가 얼마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부디 남아 있기를 바라야겠지.’

대륙에서 가장 많은 장서량을 자랑하는 제국의 황궁 도서관을 믿으며 카리엘은 몬스터들에 관한 책들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지금 당장 고대 웨어 울프에 대해서 찾기보다 다음 순서를 알아보려 했다.

“많기도 하네.”

신화 시대에 관련된 서적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쉰 카리엘이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것은 전부 불에 관련된 자들만 찾아보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았나?”

신화 시대부터 고대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불과 관련된 존재들이 많았다.

거기다 제국의 근간이 되는 불과 관련된 영웅들 역시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장 압도적인 존재부터 찾았다.

“멸망의 마신 정도면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무려 ‘멸망’이란 단어가 들어간 존재였고 마신이란 이명이 붙은 만큼 금방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멸망의 마신이란 존재는 없었다.

“알려 줄 거면 다 알려 줄 것이지. 쪼잔한 새끼.”

화딱지가 난 카리엘이 신을 욕하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 멸망의 마신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불과 관련된 신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다른 존재들은 단서를 생각보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태양을 삼킨 마수 - 태양을 삼킨 늑대 스콜

지옥의 문지기 - 지옥의 충견 가름

불의 정령왕의 파편 - 이그니스 또는 셀라임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있었으니, 그 외에는 자료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태양신을 섬기는 이들에게 배척받은 존재인 스콜.

흑마법사의 난으로 인해 지옥의 존재라면 치를 떨기에 지옥의 문지기인 가름 역시 많은 자료가 유실되어 사라진 상태.

그나마 불의 정령왕의 파편은 그런 것이 없었지만 두 존재 역시 고대 이후 종적이 묘연하기에 자료랄 것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신이란 작자가 자신이 쉽게 불치병을 극복하도록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껏 짜증 난 표정을 짓던 카리엘이 신경질적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러던 중 불과 관련된 신화의 마지막 책장에서 하나의 이름이 나왔다.

「무스펠의 주인」

머나먼 신화 시대의 종언을 내린 불의 거인이자 무스펠의 왕.

불을 숭배하는 제국에서조차 꺼릴 정도의 존재.

하지만 신화 시대를 끝낸 장본인 중 하나인 만큼 신화 시대에 관련된 역사서에서는 항상 마지막을 장식하는 존재였다.

“신들의 세계마저 소멸시키는 존재라…….”

카리엘은 자신을 엿 먹인 신을 생각하며 수르트의 힘을 잠깐이라도 빌려 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멍하니 수르트에 관련된 정보들을 뒤적거릴 때였다.

그런 그를 가리키는 수많은 칭호 사이로 작게 적힌 글씨가 보였다.

「멸망의 마신」

“응?”

카리엘은 잘못 봤나 싶어 다시금 자세하게 책을 들여다보았다.

책에는 신화 시대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에 수르트를 멸망의 마신으로도 부르는 자들이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진짜 수르트가 멸망의 마신이라고?”

카리엘이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카리엘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다 벌떡 일어났다.

“황궁 보물 창고!”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는 생각에 카리엘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마침 황궁에 수르트의 유물 중 하나가 보관되어 있었다.

저주를 품고 있었고 진위 여부에도 문제가 있긴 했으나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일단 해 봐야지.”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드리웠다.

그런데 웃고 있던 카리엘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화급 존재들의 유물은 대부분 유실되거나 찾기 힘든 지역에 봉인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중 정말 극히 일부만 각 국가들의 보물 창고에 모셔져 있는데 공교롭게도 수르트의 보물도 딱 하나 제국의 보물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카리엘의 병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네?

순간 자신이 받은 보상 ‘계약자’부터 수르트까지 모든 것이 연결되는 느낌에 카리엘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 설마 계획한 거냐?”

카리엘이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하지만 대답이 들려올 리 없었다.

“하…….”

마지막까지 놀아나는 느낌에 결국 뒷목을 잡은 카리엘은 한동안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