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1. 원치 않는 회귀!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의식이 꺼졌던 카리엘이 눈을 뜬 순간 본 건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풍경이었다.
“여긴…….”
어렸을 적 자신이 썼던 방임을 기억해 낸 카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주 어릴 적으로 회귀한 것은 아닌 듯, 어느 정도 자란 손이 눈에 보였다.
“결국 회귀한 건가?”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내 이를 바득 갈았다.
신에게 사기당해 회귀하게 된 카리엘은 분노 어린 표정으로 창밖에 비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신이 있다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죽빵을 날려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 귓가에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빰빠밤!
귓가로 퍼지는 트럼펫 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 가루가 터지면서 카리엘의 앞에 반투명한 창이 생겨났다.
[안녕? 회귀는 잘했어?
헤헤! 약속대로 보상을 주려고.
왜 직접 나타나지 않느냐고 하면…… 앞에 나타나면 또 때릴 거잖아?
나눈 아푼 거 시러욤! 데헷!]
빠득!
절로 이가 갈리는 문장에 카리엘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반투명한 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기존에 있던 글이 사라지고 새로운 글자가 생성되었다.
[더 하면 화병으로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만할게.
약속했던 보상이 궁금하겠지?
이 메시지가 사라지면 곧바로 보상이 지급될 거야.
이번엔 부디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랄게.
그럼 이번 생도 파이팅♥]
욕이 절로 나오는 메시지가 끝나고 마침내 반투명한 창에 받기로 했던 보상이 떠올랐다.
[신의 축복으로 당신에게 고유 능력이 부여됩니다. 당신의 고유 능력은 ‘불의 계약자’입니다.
※불과 관련된 압도적인 재능이 계약에 관련된 특성으로 발현됩니다. 당신은 불과 관련된 어떤 존재와도 계약할 수 있는 잠재 능력이 있습니다.]
“……계약자?”
카리엘이 의문을 표하는 순간 카리엘의 몸이 환하게 빛나면서 빛들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남은 보상을 지급하기 위해 반투명한 창이 생겨났다.
[당신의 불치병은 과도한 혈계 능력(모든 화염 계열 능력 사용 가능)으로 인한 것입니다. 과도한 불의 축복으로 인해 몸 안에 쌓인 막대한 화기가 그대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가능한 회복 방법을 찾습니다.]
[회복 방법 탐색 중…….]
탐색 중이라는 글과 함께 한참을 멈춰 있던 반투명한 창이 변화를 일으켰다.
[고유 능력 계약자와 혈계 능력을 활용할 방법을 찾습니다.
1. 몸 안에 쌓인 화기를 대가로 신화적 존재의 조각들과 계약한다.
추천 : 멸망의 마신의 파편, 태양을 삼킨 마수의 파편, 지옥 문지기의 파편, 불의 정령왕의 파편.
※(중요) 추천란에 있는 존재와 전부 계약하면 그랜드 마스터급이 될 수 있습니다.
2. 특별한 단련법으로 몸을 강화한다.
추천 : 웨어 울프의 강체술.]
자신이 몸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는 반투명한 창을 빤히 바라보던 카리엘이 중얼거렸다.
“대체…… 파편이 뭐지?”
[신화 시대의 고귀했던 존재의 일부분입니다. 유물이나 고대의 유적지 등에 잠들어 있습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답하듯 허공에 새겨지는 문자들.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카리엘의 눈앞에서 반투명한 창이 새로운 글자들을 생성했다.
[신의 보상이 전부 지급되었습니다.]
[10초 뒤에 이 창은 사라집니다. 10……9……8……1 뿅!]
‘뿅!’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반투명한 창.
지구에서 읽은 소설에서는 시스템 창도 있고, 먼치킨 같은 스킬도 주던데, 이놈은 고작 방법 몇 가지 알려 주곤 사라져 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한참 동안 멍하니 반투명한 창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던 카리엘. 그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욱신거리며 아파 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내며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황급히 회복 방법을 하나하나 적어 나갔다.
그러다 문득 신이 말했던 욜로 라이프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욜로 라이프라…….”
카리엘이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란 의문이 들다가 뭔가가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황제 자리를 걸고 거래한다면…….”
방금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금세 그럴싸한 계획들이 마구 솟아났다.
자신의 욜로 라이프에 황제란 자리는 걸림돌이다.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암군이 되어서라도 황제가 되어 볼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황제란 자리는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짐 덩어리에 불과했다.
마치 악상이 떠오른 작곡가처럼 미친 듯이 계획들을 적어 나가던 카리엘은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이 정도로 해 둘까?”
카리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서랍에 지금까지 적은 것들을 넣어 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쿨럭!”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몸이 휘청이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콰당!’ 소리가 나며 카리엘이 쓰러지자 밖에서 황급히 시종이 들어왔다.
“전하!”
쓰러진 카리엘을 보고선 황급히 달려 부축하는 남자.
“타……리……온.”
“몸도 성치 않으신데 무리하시면 아니 됩니다!”
전생에 자신을 마지막까지 구하려다 죽은 믿음직한 황태자궁의 시종장.
그런 그가 살아서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타리온은 호들갑을 떨면서 포션까지 가져와 먹이고는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말하며 옆을 단단히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런 타리온을 보며 카리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타리온이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지.’
마스터를 제외하고 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인 그가 자신의 방심으로 인해 죽었다.
그것도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작자들에게.
‘이번 생은 그렇게 죽게 놔둬선 안 되겠지.’
그렇게 결심한 카리엘은 타리온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려 내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타리온.”
“……예? 부르셨습니까?”
한창 걱정 어린 말투로 열심히 말하던 타리온이 정신을 차리고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부탁할 게 있어.”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항상 몸이 안 좋아 의욕이 없어 보이던 그가 이렇게 자신에게 부탁까지 한다는 게 감격스러웠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하, 어떤 것이든 말씀만 해 주십시오. 소신, 목숨 바쳐서라도…….”
“목숨 걸 필요 없어. 간단한 거야. 일단 종이부터 가져와 봐.”
“예!”
카리엘이 전쟁이라도 나갈 기세로 말하는 타리온을 만류하며 그가 가져온 종이에 부탁할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어? 간단한 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느새 종이가 빽빽하게 글자들로 채워지는 모습에 타리엘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자세하게 적혀 있는 글자들.
물론 그것들 대부분은 의미 없는 글자들이었다.
힘들다 칭얼거리는 것처럼 쓰여 있는 것도 있었고, 어떤 과일을 구해 오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처음엔 당황하던 타리온의 눈동자가 이내 크게 떠졌다.
“이, 이건…….”
“쉿!”
카리엘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고개를 가로젓자 타리온은 고개를 황급히 끄덕였다.
빽빽하게 적혀 있었지만 어린아이의 일기장처럼 보일 정도로 두서없는 문장들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규칙들은 타리온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전생에 타리온이 알려 준 것이니까.’
분명 이 시기에도 타리온이 알려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자신은 몸을 회복할 방법을 찾느라 아주 천천히 배웠었다.
“훌륭하십니다!”
타리온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하고는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잡다한 것들이 여러 개 섞여 있었지만 단번에 중요 포인트를 잡아냈다.
가장 중요한 건 크게 세 가지였다.
1. 황제파 중에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장난치는 놈들의 명단.
2. 그들 중에 범죄 집단과 연루되어 있는 자들을 추려 낼 것.
3. 마지막으로 자신의 궁에 있는 첩자들의 명단을 가져올 것.
전부 읽어 내려간 타리온은 걱정스레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이건…… 너무…… 위험합니다.”
타리엘의 걱정 어린 표정에 카리엘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당장 뭘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한숨을 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부터 구축된 제국의 세 개의 파벌.
그중에 가장 힘이 약한 황제파를 위해서 황족들은 자신들의 파벌이 이름을 빌려 쓰며 사업을 벌이는 것을 묵인해 왔다.
심지어 범죄를 저지른 것을 무마하기 위해 황족의 이름을 빌려 쓰는 것조차 어느 정도 용인해 온 게 사실이었다.
전생의 카리엘 역시 황제가 되기 위해, 황제파를 계속 끌고 가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며 눈감아 준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이번 생에선 그딴 거 없다.’
카리엘이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물론 지금 당장은 움직일 수 없다.
몸 상태도 쓰레기였고, 정보나 기반이 전무했으니 뭘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시기에도 타리온이 개인적으로 키워 놓은 작은 세력 정도는 있었다.
‘작지만 내실은 다져져 있는 집단이니 겉으로 드러난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지.’
그의 생각처럼 타리온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뭐 할 생각 없으니 알아보기만 해.”
“……알겠습니다.”
타리온이 마지못해 대답하자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시종 하나만 불러와.”
“뭐, 명령하실 거라도…….”
“아! 알아볼 게 있어서 황궁 도서관에 심부름 좀 시킬 생각이야.”
“저한테 말씀하십시오!”
자신한테 맡겨 달라는 듯 가슴을 퉁퉁 치는 그를 보면서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타리온은 그거 알아봐야지.”
“얼마 안 되는 양이라면 제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
타리온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면서 종이를 가져오게 시킨 다음 대충 기억나는 책들을 적어 나갔다.
신화 시대에 대한 역사서부터 무술, 그리고 몬스터에 대한 백과사전까지 적어 나갔다.
물론 첩자들에게 혼란을 줄 겸 잡다한 것들도 섞어서 적었다.
“어…….”
“물론 이건 당장 가져오는 것이고, 당연히 내 몸을 회복할 방법을 찾을 겸 약초학이나 이 병에 관한 문서들도 갖고 오게 할 거야.”
“음…….”
“많지?”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어색하게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러와.”
“넵! 아차!”
마치 군인이 경례하듯 답하던 타리온은 당황한 표정으로 기품 있게 허리를 숙이고는 방을 나섰다.
잠시 후, 타리온을 대신해 시종이 들어오자 카리엘은 도서관에서 가져와야 할 책들이 적힌 종이를 넘기고선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타리온을 잃었던 가장 큰 이유.
그건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자들의 배신 때문이었다.
‘황제파…….’
황제파에 대해 생각하며 카리엘이 이를 갈았다.
지금 와서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들이다.
평화로운 시대라면 쓰레기 같은 그들이라도 끌고 갈 생각이 있겠지만, 미래는 지옥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황제가 되려는 생각도 없었기에 황제파를 끌고 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황제파를 내 욜로 라이프를 위한 제물로 삼는다.’
그렇게 생각을 굳힌 카리엘이 빙그레 웃었다.
전생처럼 방심할 일도, 멍청하게 당해 줄 생각도 없었다.
황제가 되어 개고생을 하면서 생긴 그의 신념.
그건 바로 ‘두 번 당하면 ×신이다.’였다.
이번 생에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얻을 것만 얻고 황궁에서 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