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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화 (1/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0. 프롤로그

“× 같네.”

침상에 누워 있는 삐쩍 마른 남자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고풍스럽게 꾸며진 침상 곁에는 백발의 노인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멋들어진 갑주를 입은 기사는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걱정 속에서도 침상에 누워 있는 남자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인생…… 참 거지 같아.”

남자의 말에 고풍스러운 방 안에 있는 자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병색이 완연한 남자의 마지막 모습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온 이 남자의 정체는 이 제국의 황제였다.

「에스토리아 128대 황제 카리엘 프레드리히 폰 블레이저」

이 남자의 이름이자 제국의 역사에 암군으로 기록될 황제의 이름이었다.

“내가 죽으면…… 암군으로 기억되겠지?”

옆에 있는 시종장을 바라보며 말하는 황제.

그런 그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시종장.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굳은 표정의 기사가 그리 말했다.

제국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위대한 업적을 세운 기사.

황궁 기사단장이자 몇백 년 만에 나타난 그랜드 마스터가 그리 말했지만 황제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개소리.’

지금도 밖을 나가면 죄다 그를 욕하는 자들밖에 없었다.

아마 황제가 죽는다면 묘비에 이리 적힐지도 몰랐다.

최악의 황제

31세 젊은 나이로 요절하다

‘아…… 억울하다.’

황제는 억울한 표정으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하늘 너머에서 신이 자신을 비웃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자신은 뼈 빠지게 일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만약 이대로 자신이 죽는다면 사인은 분명 이렇게 나올 거다.

사인 : 불치병 20%, 복합독 10%, 과로 70%

과로가 70%를 차지할 정도로 정말 노력했다.

어렸을 적부터 독살 위협에 노출되었을 만큼 불안한 환경.

거기다가 선천적인 질병까지.

그런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허리가 휠 정도로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양이다.

“쿨럭!”

검은 피를 토한 황제가 점점 숨이 가빠 옴을 느끼며 자신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21세에 선황이 죽고, 다급하게 황제 위에 올라 10년 동안 열심히 굴렀다.

「제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그것을 진압하는 데 2년」

「기회를 엿보던 인접 국가들과의 전쟁으로 1년」

「북부 몬스터 웨이브로 2년」

「흑마법사들에 의해 마계 게이트가 열려 2차 인마 전쟁을 치르느라 3년」

「남은 기간은 연이은 전쟁으로 나자빠진 제국을 침공한 동대륙의 군대를 막아 냈다」

이런 고난의 연속에도 끝끝내 제국을 지켜 냈다.

‘그런데도 제국 최악의 암군이 되었지.’

황제가 이를 갈며 자신의 평가에 분노했다.

10년간 개처럼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황제가 된 후 대규모 전쟁만 네 번이었고, 살아남은 귀족들의 비리를 막느라 2년간 수없이 목을 베었기 때문이다.

제국민들이 보기에 자신은 능력도 없는 주제에 운 좋게 황제가 된 폭군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동생들이 훨씬 능력이 좋았고, 자신은 장자라는 이유로 황태자에서 황제가 된 무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에 재능이 있는 2황자.

대륙에 몇 없는 마스터에 오른 3황자.

제국민들은 그가 아닌 동생들 중 아무나 황제가 되었어도 제국이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 말한다.

한때 대륙 최강의 제국이 한 명의 암군에 의해 모든 걸 날려 먹었다.

한때 자유로웠던 제국이 한 명의 폭군에 의해 공포에 벌벌 떠는 나라로 변모했다.

한때 찬란했던 제국의 역사가 무능한 존재로 마지막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렇기에 제국민들은 그를 원망했다.

아마 그가 죽으면 제국민들은 환호할 것이다.

“끄아아! 억울해!”

개처럼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그래도 가까스로 살아남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난…… 그냥 살고 싶었을 뿐인데! 내 잘못도 아닌데! 헉헉…… 개 같은 놈들, 헉……헉…….”

“폐하, 말씀을 아끼소서.”

숨이 가빠 오는 것을 느끼며 헉헉대자 의원이 재빨리 안정을 취하라며 그를 달랬다.

하지만 제국 역사에 길이 남을 폭군이라고 말하는 제국민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자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염병할! 황제 안 한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떠밀어 놓고선, 뭐? 폭군? 쿨럭! 쿨럭!”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억울함에 피를 토하는 자신을 보고 황급히 어의가 말했지만 이미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 황제는 억울한 표정으로 고함만 내지를 뿐이었다.

한참을 분노에 찬 외침을 토해 내던 황제가 진이 빠진 표정으로 어의에게 물었다.

“황제가 되지 않았으면 좀 더 살았을까?”

억울한 표정으로 어의를 보면서 묻자 그가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러셨을 것이옵니다. 과로만 안 하셨어도…….”

어의가 말끝을 흐리면서 눈을 질끈 감자 황제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아…… 엿 같다.”

처음에 황제가 되면 온갖 귀환 약재들을 먹고 몸 상태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봤지만 그런 건 개뿔.

황자들의 반란으로 정신이 없었고, 수많은 암살자들과 습격으로 황궁 밖으로 나가는 건 1년에 한 번 정도였다. 황제에 오른 이후 수많은 독살 위협 속에서 전쟁으로 국고가 탕진해 몇 년 동안은 귀족보다 못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제국의 위기를 몇 차례나 극복하고 이제 좀 살 만해지니까 몸 상태가 돌이킬 수 없게 변해 버렸다.

“인생 참 × 같아. 그치?”

옆에서 자신을 보면서 서 있는 기사를 돌아보았다. 사실상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이자 대륙 최강자인 황궁 기사단장이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올해로 겨우 서른이 넘은 그였지만 대륙에서 가장 압도적인 무력을 갖고 있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천재.

그런 그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소신이 좀 더 잘 보필했어야 했는데……. 송구합니다.”

“하아…… 하아…… 다음…… 황위는 황……태녀에게 양위될…… 것……이오.”

결혼조차 못 한 자신이기에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어린 동생을 황태녀로 삼았다. 아무리 재능 있는 그녀라도 이 제국을 일으켜 세우려면 평생을 다 바쳐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물려주기에 미안할 정도로 망가져 버린 이 제국이지만 벌레들은 정리했기에 뭐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정말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참…… × 같은…… 인생……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부디 그곳에선 편안하시길…….”

그리고 기사단장의 마지막 인사를 들으면서 겨우 잡고 있던 끈을 완전히 놓아 버렸다.

그렇게 고단했던 인생을 끝내고 안식에 들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의식이 꺼지는 그 순간 빛무리에 휩싸인 그는 새하얀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여긴…….”

-안녕?

악동 같은 모습을 한 소년이 자신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를 향해 황제가 물었다.

“넌 누구지?”

-나? 신.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신.

해맑게 웃는 그를 향해 황제가 이를 갈며 양손을 들었다.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만약 만나면 죽빵을 날려 버리겠다고 다짐했던 황제는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런 황제를 보며 소년의 모습을 한 신은 악동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명색이 신인데 너무한 거 아니야?

자신에게 달려드는 황제를 여유롭게 피해 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황제가 평생 고생하던 모습을 지켜본 것이 퍽 재밌었기 때문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욕하던 황제의 모습은 오랜 세월 살아온 신에게 재미를 안겨다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황제의 무례마저 즐겁게 받아들였다.

“헉……헉…….”

제풀에 지친 황제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향해 악동 같은 신이 슬며시 다가왔다.

-억울하지? 뼈 빠지게 일했는데 평가가 그지 같아서.

신의 놀림에 황제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이를 갈면서 째려보는 황제에게 신이 은근히 제안했다.

-다시 한번 해 볼래? 회귀시켜 줄게.

신의 은근한 꼬드김에 이를 갈던 황제의 눈이 고요하게 변했다.

분노로 일렁이던 눈빛이 심해에 가라앉은 것처럼 깊게 변하며 가만히 신을 바라보았다.

“싫어.”

-……응?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억울하지 않아?

“억울하지.”

개같이 고생해서 겨우겨우 제국의 명줄을 늘려 놨더니 평가는 최악이다.

어찌 억울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거절하지?

황제가 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 같으면 그 고생을 또 하고 싶겠냐?”

황제의 말에 신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봐도 눈앞의 황제는 개고생을 하며 살아왔다.

죽기 직전까지 고생만 하다 온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장난기 많은 신조차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그냥 죽을 거야? 아쉽지 않아?

“어. 하나도 안 아쉬워.”

황제의 단호한 말에 신이 잠시 고민하더니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지구에 있는 네 가족들. 궁금하지 않아?

“……뭐?”

황제가 멍하니 되묻는 순간 그의 앞에 지구에 있는 자신들의 가족들이 보였다.

아버지가 죽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평생 고생만 하던 어머니.

의대를 가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포기하려 했던 여동생.

가정 형편 때문에 스무 살이 되자마자 공장으로 취직하려 했던 남동생.

그들은 자신이 알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어…….”

황제가 당황한 표정으로 익숙지 않은 모습의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명품을 온몸에 두른 자신의 어머니.

의사가 된 여동생은 엄청난 크기의 개인 병원을 갖고 있었다.

남동생은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대형 너튜버가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

-네가 죽기 직전 빌었던 소원이야. 어때?

행복하게 사는 가족들의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기 직전 그토록 원하던 모습이었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만족하는 황제의 모습이 신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기에서 진 지구의 신이 보상으로 네가 바라던 소원을 이루어 준 거야.

“내기?”

-응. 지구의 신은 네가 제국을 못 지킬 거라 했거든. 난 반대에 걸었고. 역시 인생은 한 방 아니겠어? 불가능해 보이는 역배에 걸어서 대박 났지!

한 방 제대로 터졌다는 듯 환하게 웃음 짓는 신을 보면서 황제가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걸었다.

-화났어? 응? 미안. 헤헤! 그래도 소원을 이뤄 줬잖아. 화 풀어!

퍽!

익살스러운 미소로 말하는 신에게 기어코 한 방 먹인 황제는 씩씩거리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일부러 맞아 준 신이 히죽 웃으면서 황제에게 말했다.

-네 덕분에 얻은 게 좀 많거든. 그러니까 추가 보상을 줄게.

“추가 보상?”

-응. 대신 조건이 있어.

“……뭐지?”

황제의 물음에 신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가 회귀하는 것.

신의 말에 황제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한 손을 들어 중지를 치켜세웠다.

-너무행!

귀여운 척하는 신을 보면서 다른 손의 중지도 들어 주자 그가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정말 아쉽지 않아?

“뭐?”

-몸만 괜찮았더라면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을 텐데.

신의 말에 황제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말처럼 몸이 괜찮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제국을 장악했을 것이고, 그러면 결과가 많이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몸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 그거 알려 줄게.

“안 해.”

-거기다 특별 보너스로 능력 하나 더 얹어 준다!

“꺼져!”

황제가 어림도 없다는 듯 손을 휘젓자 신이 은근한 어투로 말했다.

딱 봐도 자신이 회귀하는 것으로 뭔가 내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신에게 놀아날 생각이 없었던 황제는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신이 조심스레 다가오며 속닥거렸다.

-그냥 회귀만 해. 그럼 특별한 능력이 덤으로 얹힌다니까?

“…….”

-어떤 조건도 없어. 그냥 회귀만 하면 되는 거야. 정상적인 몸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음…….”

-솔직히 너도 아쉽잖아. 이참에 돌아가서 욜로 라이프를 즐겨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은근한 신의 꼬드김에 황제가 아주 잠깐 욜로 라이프를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드리워지며 손가락을 튕겼다.

-접수 완료!

“뭐?”

신의 말에 황제가 당황하며 그를 바라본 순간 뒤편에 검은 구멍이 생기며 그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번엔 잘 살아 봐. 될진 모르겠지만.

신이 키득거리며 말했고, 황제의 의식은 그 말을 끝으로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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