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138화 (138/140)

〈 138화 〉 장도연: 너무 그러지 마세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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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야. 비도 오고 바람 불고 날씨가 너무 안 좋다. 오늘은 그만하고 숙소로 돌아가자.”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오자, 만발한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 잎은 꽃비가 내리는 것 같이 김나리와 박재경의 머리와 얼굴, 어깨 위로 꽃잎들이 내려앉았다.

박재경은 서둘러 비옷을 꺼내 김나리에게 입히며, 오늘은 그만 달리자고 말했다.

그러나 김나리의 표정은 단호했다.

“재경 오빠! 나는 달려야 해요.”

“나리야. 이러다 감기 들어.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하자.”

“오빠. 10km 거리를 채워야 해요.”

“나리야. 제발”

김나리는 하루에 10km를 달리기로 자신하고 약속했다.

날씨가 악천후로 달리는 환경이 불편하거나 컨디션이 아무리 나빠도 10km 달리기를 빼놓지 않았다.

김나리가 비옷을 입은 채로 달리기를 시작하자, 박재경은 김나리의 뒷모습을 보다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강산은 박형수 촬영감독에게 비를 맞고 달리는 고희윤을 생동감 있게 촬영하라고 핸드헬드로 같이 달리게 했다.

박형수가 지친 것처럼 보이자 강산이 대신 카메라를 메고 달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비바람을 헤치고 달리는 배우나, 비옷을 입고 카메라를 매고 달리는 모습이나, 조명판을 들고 달리는 모습은 미친 사람들의 무리처럼 보였다.

잠시 후, 비가 그치고 바람도 줄어들더니 구름 속에 숨었던 해가 다시 나왔다.

강산이 컷을 하자, 어느새 비옷을 벗어 던지고 햇빛 속을 달리는 고희윤도 달리기를 멈췄다.

고희윤은 자신의 모습이 우스운지, 웃음보가 터졌는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촬영하던 강산도 웃기 시작하고 뒤에서 쫓아오던 김현수도 웃고 스태프들도 모두 한참 동안을 웃기 시작했다.

*   *   *

장도연은 대본 리딩을 마치고 다른 배우들과 연탄집이라는 회식 장소로 가고 있지만, 기분이 편하지 않았다.

영화 대본도 홍주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강산 감독이 자신을 5개월이나 기다려줘서 이번 영화 <봄날>은 당연히 자신 위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장도연은 강산 감독이 기대한 대로 우아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여주인공 홍주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김원일의 등장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홍주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대본 리딩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너희들하고는 수준 차이가 있지’

보통 대본 리딩을 할 때는 배우들 간의 호흡을 맞춰보는 선에서 그치지만 장도연은 다른 배우들의 기를 죽이려는 듯이,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여주었다.

장도연은 대본 리딩을 하면서, 강산 감독과 박군형 선생의 표정을 지나가듯이 확인했다.

강산 감독의 표정은 선글라스를 써서 확인할 수 없지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다.

박군형 선생의 표정도 나쁘지 않아 내심 안도하는 면도 있었다.

장도연도 박군형 선생과 일일 연속극을 하면서 많은 지적을 받았고, 지적을 받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한 끝에 연기가 달라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사실, 박군형 선생은 너무 까칠하다.

드라마를 같이 하다 보면 정해진 요일에 모여 대본 리딩을 하는데, 그때마다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서툰 배우들을 보면 지적질을 빼놓지 않았다.

연기지도를 하다 보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지적받는 배우로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연습하다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감독들이나 작가들에게는 박군형 선생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다.

박군형 선생은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좋은 척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후배들의 어설프고 서툰 연기, 특히 진심이 담기지 않은 가짜 연기를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심한 지적질을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대본에 어울리지 않는 연기가 나오면 굳이 장도연이 말하지 않아도 박군형 선생이 알아서 지적해 줄 것이다.

그때, 장도연은 우아한 미소로 후배들을 위해 박군형 선생님을 달래줄 것이다.

“선생님, 처음이라 그러잖아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다들 좋아질 거예요.”

미안하지만, 박군형 선생은 누가 자신의 연기지도 방식을 말리거나 방해하면 더욱 더 세게 자가발전하는 스타일이다.

박군형 선생은 연기지도는 후배들을 위한 신성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되는 자존심이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먼저 상대역인 장동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

지난번 드라마에 같이 출연했을 때는 장동원은 부족한 연기력을 잘생김으로 가리는 배우였다.

이번 영화 <봄날>에서는 홍주와 서희의 마음을 사로잡는 바람둥이 역할을 해야 한다.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배우들과의 앙상블이 깨질 수 있다.

장도연은 김원일 역에 장동원이 캐스팅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잘 어울리지 않는 미스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을 위해서 강산 감독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니지, 여성 관객들을 위해서라면 장동원의 잘생김이 필요한 캐스팅일지도 모르지.

음, 내가 어디까지 장동원을 도와줘야 하지.

그런데 대본 리딩이 시작되자 생각이 달라진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장동원은 김원일이 되어있었다.

장동원은 젠틀한 표정과 세련되고 부드러운 말투로 홍주와 서희 사이를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능청맞은 바람둥이 연기를 선보였다.

장도연이 못 보는 동안 장동원은 많이 성장한 것 같았다.

고희윤의 모습도 예전에 알던, 예쁘기만 한 후배가 아니었다.

대본 리딩을 시작할 때만 해도 고희윤은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제작진들과 배우들에게 수줍게 인사하며,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장도연도 옆에서 오른손을 불끈 쥐며 파이팅하라고 신호를 주었다.

대본 리딩이 시작되자, 고희윤은 <봄날>의 강서희로 변했다.

평소 밝고 청순한 첫사랑 이미지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성숙한 분위기의 여성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장도연이 고개를 돌려 박군형 선생님을 보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강산 감독은 무언가 계속 적고 있었다.

성숙해진 목소리 톤도 그렇지만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탄력 있는 건강한 몸매를 준비해온 고희윤을 볼 때, <봄날>이라는 영화가 순탄하지 않을 거 같았다.

*   *   *

“동원씨! 같이 가요.”

장도연은 대본 리딩을 마치고 회식 장소인 연탄집으로 가면서 장동원을 불렀다.

장동원과는 재작년에 MBS 수목 드라마 <안개꽃 향기>에서 장도연의 대학 후배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나이는 장동원이 한 살 적지만 빠른이라 동년배나 다름없었다.

장도연이 드라마 회식 자리에서 말을 편하게 트자고 했지만, 장동원은 스타이자 방송계 데뷔 선배인 장도연에게 말을 편하게 하지 못했다.

“네. 도연씨. 오랜만이네요. 아까는 조금 늦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했어요.”

“괜찮아요, 동원씨.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살이 너무 빠진 것 같아요?”

“이번 영화에 출연하려고 7kg을 감량했어요.”

“왜요? 안 그래도 보기 좋았는 데요.”

“강산 감독님이 살을 빼 달라고 해서요.”

“강산 감독님이요?”

“감독님이 김원일의 이미지를 설명해 주었는데요. 김원일의 눈빛을 받은 여자는 그의 눈을 거절할 수 없다고 최대한 카리스마 있는 얼굴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요. 지금도 다이어트를 병행하고 있어요.”

장도연은 강산 감독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고희윤에게도 다이어트, 아니 몸매 관리와 피부 톤까지 세밀하게 요구하고 남자인 장동원에게도 다이어트를 요구하는데, 자신에게는 달랑 대본 하나만 보내주고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다.

“힘들겠어요. 동원씨. 다이어트가 쉬운 게 아닌데 말이에요. 그런데 연기 톤이 조금 바뀐 것 같아 보이던데요.”

“그렇게 보이나요?”

“전에는 동원씨가 밝고 건강한 톤이었다면 오늘은 조금 어둡고 진중한 느낌이었거든요.”

장도연은 장동원과 같이 대본 리딩을 하면서 예전의 만난 장동원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박군형 선생이 장동원의 대본 리딩을 보면 무언가 지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군형이 아무 지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장동원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자신만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장동원은 장도연의 연기 평을 듣고 감탄하듯이 말했다.

“도연씨는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대본 리딩만 보고도 그걸 알아요. 도연씨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저 요즘, 연기 수업을 다시 받고 있거든요.”

“연기 수업을 받아요? 누구 선생님에게 받아요?”

장도연은 연기 욕심이 많아서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유명한 연기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연기를 배운 적이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연기 선생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기모석 선생이라고”

“기모석 선생님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그럴 거예요. 기모석 선생님은 주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시거든요. 연예인을 가르친 지는 얼마 안 돼서 잘 모를 거예요.”

“그렇구나. 그럼 동원씨가 그 선생에게는 최초 연예인이에요?”

“아뇨. 저 말고도 여러분이 계세요.”

“누구요?”

“강산 감독이 만든 지난번 영화 있잖아요. 영화 <첫눈>에 나오는 임정재하고 서정아씨가 기모석 선생님에게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서정아요!”

장도연은 장동원에게서 서정아라는 말을 듣자, 무슨 늪에 빠지는 것 같이 끈적한 느낌을 받았다.

서정아와 장도연은 데뷔 동기이다.

서정아는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데뷔하자마자 청춘 드라마의 주역으로 출발했지만, 장도연은 그 드라마의 단역으로 출발했다.

영화감독이나 PD들은 서정아와 장도연을 두고, 서정아는 미모를 칭찬하고 장도연은 연기력을 칭찬했지만 불편한 감정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 후로 서정아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에 장도연은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내공을 다지고 영화 <청춘의 빛>의 대성공으로 주연 배우로 인정받았다.

장도연이 보는 서정아는 예쁜 미모 외에는 보여줄 게 없는 그저 그런 바비 인형과의 배우에 불과했다.

어떤 틀에 묶여있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도 발전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서정아와 우정어린 충고할 사이도 아니고 굳이 충고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첫눈>에서 서정아는 예쁘기만 한 배우가 아니었다.

이번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의 하나는 강산 감독이 만든 <첫눈>의 서정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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