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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137화 (137/140)

〈 137화 〉 고희윤: 선배님도 속았네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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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전남 구례 산수유 마을에서 촬영을 마치고, 경남 하동군 화개면으로 이동하고 <하동>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띠리링’ ‘띠리링’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강산은 무거운 몸을 뒤척이며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하~아, 무슨 일이야?”

유명세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 내가 잠을 깨운 거야?

“아냐. 일어나려고 했어. 무슨 일이야?”

- 장동원 배우 말이야.

“어떻게 됐어? 승낙했어?”

- 그래. 김원일 역을 승낙하고 계약서에도 사인했어.

“잘 했어. 명세야. 정말 잘했다.”

강산은 <달리는 여자>를 촬영하러 가면서, 유명세에게 <봄날>에서 늙은 남편의 조카역으로 장동원 배우를 섭외해 달라고 부탁했다.

<달리는 여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김원일 역을 할 배우들을 섭외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잘했다기보다 임정재 배우가 장동원 배우에게 강감독 얘기를 잘해 준 것 같아.”

“임정재 배우?”

“장동원 배우가 임정재 배우에게 강감독에 대해서 어떤가를 물어봤나 보더라고”

“무엇을 물었는데?”

“그건 말하지 않더라고, 영화 <봄날>을 같이 하면서 자신이 직접 알아보겠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나중에 임정재 배우 만나면 고맙다고 얘기해”

“알았어. 수고했다. 명세야. 서울에 올라가서 보자.”

강산은 김원일 역에 장동원이 캐스팅했다는 유명세의 말에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영화 <봄날>의 제일 큰 문제는 캐스팅이었다.

홍주역에 장도연이 아니고 김원일역에 장동원이 아니면 강산이 어떻게 ㅡ림을 그려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달리는 여자>를 빨리 끝내야 한다.

강산은 영화 <봄날>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만나고 싶었다.

*   *   *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

2002년,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지역감정은 구례와 하동이 아주 먼 곳으로 생각 들게 하지만, 실제로는 버스로 50여 분 거리에 불과하고 ‘꽃길’로 유명한 <섬진강 벚꽃길>로 연결돼 있다.

3월의 경남 하동은 벚꽃으로 유명하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5km의 구간은 <섬진강 벚꽃길> 백 리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십리벚꽃길>이라고 한다.

<십리벚꽃길>은 가로수처럼 도로변에 길게 줄지어 늘어선 1,000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늘어져 있다.

화사한 벚꽃을 피운 가지들이 하늘을 가리고 벚꽃 터널을 만들어 낸다.

이 <십리벚꽃길>을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걸으면 부부로 맺어진다고 해서 일명, <혼례길>이라고도 한다.

2002년, <십리벚꽃길>은 남도에서는 이미 아름다운 꽃길로 유명해졌지만, 전국적으로는 조금씩 유명해지고 있었다.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되기에는 고속도로 사정도 좋지 않았고 아직 주5일제도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주5일제가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2005년부터는 매년 벚꽃이 필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상춘객들로 극심한 차량 정체를 빚는 장소가 되었다.

아무튼, 2002년 주말에는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오고 있지만, 주중에는 관광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강산은 벚꽃이 완전하게 개화하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서둘러 촬영해야 하는 일정상 완전한 개화 시기까지 촬영을 미룰 수는 없었다.

강산은 조금은 이르지만, <십리벚꽃길> 중에 벚꽃이 만발한 장소를 찾아서 촬영해야 했다.

고희윤은 강산의 지시대로 벚꽃 터널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바이크에 탄 박형수 촬영감독은 바이크 뒷자석에서 달리고 있는 고희윤의 뒷모습을 촬영했다.

잠시 후, 바이크는 고희윤의 옆에서 고희윤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바이크를 운전하는 라이더에게 박형수가 신호를 주면 라이더는 고희윤 앞으로 나가서 달렸다.

박형수는 바이크 뒷자석에서 일어나 선 채로 달려오는 고희윤을 촬영하거나 뒷좌석에 배를 깔고 고희윤을 올려보며 촬영했다.

이런 촬영은 매우 위험하다.

박형수는 고희윤 배우에게 집중하고 있으므로, 불규칙한 도로의 노면 상황이나 라이더의 돌발적인 운전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번은 바이크가 크게 흔들려 박형수가 균형을 잃고 바이크에서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래서 매번 촬영을 시작하기 전마다 라이더와 박형수는 도로 사정을 점검하기 위해 촬영 장소로 예정된 장소를 2~3번을 미리 사전답사를 했다.

또한, 박형수는 바이크 운전하는 라이더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거의 라이더와 같이 바이크 위에서 살다시피 했다.

*   *   *

영화 <달리는 여자>를 촬영하면서 강산은 언덕을 좋아하게 됐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가도 마음에 드는 언덕이 나타나면 언덕에서 쉬었다가 갈지언정 이동을 멈추고 촬영 여부를 고민했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강산 보고 언덕을 변태적으로 좋아하는 ‘언덕 성애자’라고 했다.

반대로 연기(?)하는, 아니 실제로 경사진 언덕을 달려야 하는 고희윤과 김현수는 죽을 맛이었다.

마라톤 훈련에는 조심해야 하는 사항이 있다.

만약 당신이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하였다면, 당신은 절대로 언덕훈련으로 바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언덕훈련을 하려면 가볍게 그리고 조금씩 달리는 속도와 양을 늘려야 한다.

사실, 강산이 언덕 성애자라고 오해받는 것은 육상전문가의 조언 때문이다.

육상전문가는 고희윤의 조금은 빈약한 체형(?) 엉덩이를 교정하는데 언덕훈련이 제일 좋다고 했다.

언덕훈련의 효과는 엉덩이에 나타난다고 한다.

벌이 지면에 착지하는 착지기에는 엉덩이 신근(伸筋)은 큰 힘을 내고, 발이 공중에서 움직이는 체공기에는 엉덩이 굴근(屈筋)은 더 빠르게 다리를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김현수는 몇 번이나 경사진 언덕을 향해 달리면서 큰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다.

덕분에 언덕이 나타나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고희윤은 체념했는지, 아니면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언덕이 나타나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김현수는 죽을 것 같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산의 ‘내립시다.’라는 말을 들어도 김현수는 머리보다 다리 근육이 먼저 반응하는 것처럼 ‘부르르’하고 떨려왔다.

이 영화를 끝내면 죽어도 달리기, 아니 조깅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고배우님! 김배우님! 내려서 준비해 주세요!”

머피의 법칙처럼 김현수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강산은 윙바디 차에 달린 확성기로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촬영을 준비하라고 했다.

김현수는 오른 다리를 절뚝거리며 강산에게 다가갔다.

“강감독!”

“네. 현수 형.”

김현수는 강산의 한강대 연극영화과 선배로 강산의 영화 <첫눈>에서도 장미여관 대실 손님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강감독, 내가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서 이번 씬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럼, 이번 씬에서는 스쿠터를 타고 김나리를 뒤따라 오는 것으로 하시죠. 현수 형, 형이 고희윤 배우 좀 도와주세요.”

김현수는 강산의 말에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강산과 고희윤에게 미안했다.

차라리 고희윤과 같이 달리는 것이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강산은 벚꽃이 만발한 언덕을 보이자 반대편 언덕 아래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화면에 보이는 시골 풍경을 점검했다.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의 끝에 맞닿은 푸른 하늘 위로 한가로이 지나는 구름 들을 촬영하고 반대편 언덕 아래에서 고희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헉, 헉, 헉”

김철수 음향감독의 헤드폰에 고희윤이 거친 숨소리가 잡혔다.

고희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언덕 위로 올라오고 김현수는 고희윤에게서 떨어져 천천히 달려오고 있었다.

고희윤이 지친 발걸음으로 지평선이 된 도로 위로 머리부터 조금씩 보이면서 온전한 전신이 나타나 언덕 아래를 달려갔다.

“컷. OK입니다. 30분만 쉬었다가 다음 씬 갈게요.”

강산이 오케이를 하자, 고희윤과 김현수는 힘이 풀리는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나는 죽을 것 같다. 희윤아. 너는 괜찮냐?”

“너무 힘들어요. 선배님”

스태프가 고희윤과 김현수에게 물과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김현수는 ‘벌컥’ ‘벌컥’ 물을 마셨고, 고희윤은 물을 바로 마시지 않고 물을 씹어 먹듯이 입안에서 굴린 후에 마셨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다. 희윤아. 너는 왜 이 영화에 출연했냐?”

“강산 감독님하고 다음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해서요. 선배님은요?”

“음, 나는 집주인 때문이야.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해서 이 영화에 출연했어. 집주인만 아니었어도 절대 출연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선배님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야기는 들었을 거잖아요.”

“너는 아무 얘기도 못 들은 거야?”

“솔직히 말하면 선탠하고 다이어트하는 줄 알았어요. 이런 식으로 다이어트 하는 줄은 몰랐어요.”

“나에겐 강감독이 이 영화를 뭐라고 소개한 줄 아니?”

“뭐라고 했는데요.”

“첫사랑 이야기래. 부상으로 은퇴한 첫사랑 소녀가 다시 육상을 시작하려고 하자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이라는 거야. 그때는 그 말이 옆에서 같이 달리는 역할인 줄은 몰랐지.”

“호호호, 선배님도 저도 강산 감독님에게 속았네요.”

김현수는 굽었던 허리를 펴고 일어나면서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이곳은 지리산의 영향을 받는 곳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희윤아. 날씨가 안 좋아지는데 촬영을 계속할까?”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강감독은 비가 와도 계속 촬영할 거예요. 괜히 기대했다가 안 되면 마음만 상할 거예요.”

“그래도 이렇게 날씨가 안 좋아지는데 촬영을 종료하고 숙소로 돌아가지 않을까?”

바람이 불고 어두워진 날씨에 당황한 것은 배우들만이 아니다.

현장 스태프들도 강산을 쳐다본다.

강산의 결정에 따라 촬영을 계속할지, 철수할지를 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강감독! 날씨가 안 좋아. 비가 심해질 것 같은데 철수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안 돼요. 오늘 촬영을 마쳐야 해요. 내일은 서울로 올라가야 해요.”

“날씨가 너무 안 좋은데”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죄송하지만, 비옷을 준비해 달라고 하세요.”

강산은 오늘 촬영을 마치면 내일은 서울로 올라가 성동구 응봉산 개나리꽃을 촬영하고 마지막인 무산시 10km 단축마라톤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 <봄날>을 준비해야 한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

강산은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벚꽃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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