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136화 (136/140)

〈 136화 〉 고희윤: 꽃부터 피는 식물은 없대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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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예요?”

고희윤은 병원 침대에서 눈을 떴다.

노란 유채밭과 하얀 조팝나무 사이를 달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깨어나 보니 병원이다.

마침, 고희윤의 곁에서 수액을 교체하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고의원이라는 병원이에요. 환자님.”

“으음, 간호사님. 다른 분들은 어디에 있어요?”

고희윤이 일어나 앉으려고 하자, 간호사가 손을 흔들며 일어나는 것을 만류했다.

“잠깐만요. 환자님, 아직은 몸을 움직이면 안 돼요. 보호자님! 환자분이 깨어났어요.”

간호사는 환자인 고희윤을 뒤로하고 고개를 돌려 보호자를 불렀다.

병실은 4인실로 커튼이 쳐진 구석 침대에서 커튼이 열리고 누워있던 사내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강산이었다.

강산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기지개를 켜며 고희윤에게 왔다.

“희윤아. 괜찮아.”

“네. 감독님, 다른 분들은 어디 있어요?”

“다른 스태프들은 다 서귀포로 돌아갔어.”

“서귀포요?”

“서귀포에 있는 숙소 해돋이 모텔.”

“그럼, 저도 그 모텔로 갈래요.”

“아냐. 아냐. 희윤아. 괜찮아. 오늘은 병원에서 푹 쉬고 내일 보자.”

이번 영화 <달리는 여자>는 촬영 계획은 3주로, 매우 타이트하게 잡혀있었다.

3주 동안에 이동해야 하는 거리도 제주도에서 구래, 하동, 서울까지, 연기하는 배우들도 힘들지만 촬영하는 스테프들도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저, 이제 괜찮아졌어요.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괜찮아. 무리할 필요 없어”

“감독님. 오늘 남은 촬영해야 하잖아요?”

“오늘 촬영은 다 마무리했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푹 쉬어.”

강산은 고희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고희윤의 어깨를 가볍게 ‘툭’ ‘툭’ 터치하며 말했다.

그런데 얘, 왜 이래?

고희윤의 얼굴이 발그레 붉어지며 수줍은 듯이 몸을 비꼰다.

앗! 실수다.

강산은 자신도 모르게 고희윤과 사귀던 시절의 스킨십이 나왔다.

“죄송해요. 감독님. 저 때문에 일정이 늦어지게 돼서.”

강산은 다급하게 방금 전, 상황을 부정하듯이 말했다.

“아냐. 아냐. 오늘은 촬영을 빨리 정리하고 식사나 같이하려고 했어. 네가 빠지게 돼서 미안하지. 스태프들은 지금 밀렸던 회식을 한다고 술 마시고 놀고 있을 거야.”

“감독님은 안 가세요?”

“어디?”

“스태프들이 술 마시는 데요.”

“희윤이 네가 깨어나는 거 보고 가려고”

“내일은 어떻게 할 거예요? 감독님.”

“음, 내일은... 희윤아. 내일은 네 컨디션을 보고 일정을 조정하기로 하자. 내일 걱정은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푹 쉬어라.”

“네. 감독님, 그런데 이분은?”

강산의 옆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세줄 무늬 추리닝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아! 이분은 이번 영화가 끝날 때까지, 네 컨디션을 관리해줄 스포츠 재활 전문가 이양숙씨.”

“이양숙입니다. 고희윤씨”

“이양숙씨는 하루를 마칠 때마다 마사지해 주실 거야. 특히, 얼굴경락 마시지를 전문으로 빠뜨리지 말고”

“네. 감독님”

“오늘부터 업무를 시작했으니까, 이분 말씀대로 몸 관리해라. 그리고 음, 복잡한 일들은 내일 이야기하자.”

강산이 나간 병실에는 ‘으으읔’ ‘흠’ ‘아악’ 고희윤의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   *  *

마라톤은 조깅과 달리 의외로 부상이 많다.

마라토너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무릎 통증인 '러너스 니’(runner's knee)외에도 발목 염좌, 족저근막염, 인대손상, 아킬레스 건의 손상 등이 있다.

그래서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하다.

초보자가 무리하게 달리다가는 발목 부위나 여러 신체 부위에 무리가 갈 수 있다.

강산은 고희윤의 지도를 위해 육상전문가를 초빙했다.

육상전문가는 기초체력훈련으로 고희윤에게 날마다 윗몸일으키기와 스쿼트 30회, 2세트를 하게 했다.

또한,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약 200m의 거리를 100m는 전력 질주로 나머지 100m는 약 40%의 속도로 달리는 코스를 2~3회를 반복하게 했다.

일주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고희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육상전문가와 같이 주법을 연습하고 촬영 시작 한 시간 전에 자세를 점검했다.

강산은 육상전문가에게 고힁윤에게 마라톤 선수가 될 것이 아니므로 고희윤의 신체에 맞는 주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전문가는 여러 주법중에서 고희윤에게 ‘체간 달리기’라는 주법을 추천했다.

고희윤은 촬영이 종료된 후, 숙소로 돌아가서는 이양숙의 지시대로 15분 정도 가벼운 강도의 회복 운동을 하고, 30분 정도의 냉온욕과 한 시간 정도의 마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젖살이 남아있는 얼굴에 경락마사지를 받았다.

제주도에서 삼 일간 촬영한 후, 강산은 스텝들을 데리고 여수로 갔다.

남도의 3월은 광양의 하얀 매화꽃이 만발하면 구례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피고 다시 하동의 벚꽃으로 이어진다.

내일 아침에는 전남 광양 매화마을에 가서 촬영한 후에는 저녁까지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상위마을로 가야 한다.

내일부터는 다시 달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강산은 여수에서 맛있는 음식을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대접하려고 다양한 회와 해산물이 나오는 여수 한정식집으로 갔다.

여수 한정식은 여수가 바닷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지역에서 맛보는 모금회와 해산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다음 날, 강산은 아침 일찍 스태프와 배우들을 이끌고 광양 매화마을로 이동했다.

지금 광양 매화마을 주변에는 강변과 산언덕을 온통 하얗게 매화가 뒤덮고 이미 꽃 대궐이 한창이었다.

광양 매화축제는 1995년에 시작했지만, 당시는 청매실농원이 주관한 청매실 농원 매화축제였다.

1997년부터 광양 매화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2003년부터 전라남도 10대 대표축제로 선정되고 2019년에는 전라남도 대표축제로 선정되었다.

광양 매화마을에서 제일 유명한 곳은 원조격인 청매실농원이다.

강산과 스태프들이 전망대에 올라서자, 함박눈이 내린 것처럼 새하얗게 덮인 매화 숲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야말로 섬진강 주변이 눈이 부시게 하얀 백매화로 뒤덮여 있고 간간이 복숭아꽃처럼 붉은빛이 나는 홍매화가 피어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강산은 전망대에서 촬영한 후, 매화꽃이 만발한 언덕 반대편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주변 풍경을 담았다.

이곳은 ‘아프냐? 나도 아프다.’ MBC 드라마 <다모 2003>,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2002>과 <서편제 1993>의 속편 격인 <천년학 2007>의 촬영지일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 드라마, CF 촬영지이기도 하다.

강산은 고희윤과 김현수가 보조를 맞춰 달리는 모습을 촬영했다.

고희윤은 매화꽃이 만발한 숲속을 걷고 싶었지만, 강산이 촬영에 집중하라고 배우들과 스태프를 독려하는 통에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강산이 오케이 하자, 스태프들은 철수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고희윤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내고 매화나무 숲으로 다가가 매화꽃과 향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고희윤은 새하얀 백매화와 하얀 꽃에 푸른 기운이 섞인 청매화, 붉은 홍매화의 꽃잎에 눈부셔 눈이 상할 것 같았다.

아찔한 매화 향기와 매화나무 아래에 있는 쑥 향기에 술에 취한 것처럼 꽃향기 멀미가 와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강산은 산동면의 상위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정리하다가, 매화 향기를 감상하는 고희윤을 보았다.

매화나무 사이에 있는 고희윤의 모습을 보고 강산의 가슴이 심쿵했다.

강산은 애써 고개를 돌려 고희윤을 외면하려고 했지만 이런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뛴다.

스태프들은 모르지만 고희윤의 스포츠 재활 전문가로 처음 소개받은 사람은 중년의 남자였다.

강산은 그분 대신 이양숙씨를 선택했다.

마사지하는 것이지만 고희윤의 몸을 다른 남자가 만진다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강산은 서둘러 광양 매화마을에서 구례 산동마을로 이동하고 하룻밤을 보냈다.

시골 산촌의 산동마을은 나중에 <산수유 마을>로 유명해진다.

화개장터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산수유 마을>의 3월은 샛노란 산수유꽃이 지천으로 핀다.

강산은 구례 상위마을의 돌담길 풍경, 현천마을 어귀 저수지, 반곡마을의 서시천을 가로질러 달리는 고희윤을 촬영하려고 했다.

먼저 상위마을에서 세월에 바랜 돌담길 위에 피어있는 노란 산수유와 산촌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정진수 조명감독에게 그늘지는 돌담길에 노란 산수유 위에 비치는 자연광을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형수 촬영감독에게는 배우들의 동선을 말해주고 이동시 카메라의 위치, 고희윤의 얼굴을 잡는 카메라 각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상의했다.

조감독 승현에게 통제해야 하는 장소와 구경하러 나온 주민들과 아이들을 통제해 달라고 하였다.

고희윤에게 움직이는 동선을 설명해 주었다.

“고희윤 배우님, 우리가 이쪽에서 카메라를 촬영하고 있으면 조감독 승현이가 신호를 줄 거예요, 그러면 고배우가 저 뒤쪽에서 뛰어오면서 산수유가 돌담 위에 만발해 있는 이쪽 골목으로 나오는 거예요.”

“네. 감독님. 그런데 어떤 상태로 뛰어올까요?”

“나리는 지금 많이 달린 상태에요. 호흡이 조금 차오르고 얼굴에도 땀이 차고 발갛게 달아올랐으면 좋겠어요.”

“네. 감독님. 준비할게요. 오늘 일정은 어떻게 돼요?”

“오늘은 이 씬하고 두 씬을 더 촬영하려고 하는데, 왜 컨디션 별로야?”

“아뇨. 괜찮아요.”

고희윤은 할 말이 남았는지, 팔장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면서 머리를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얘, 또 왜 이래.

“감독님?”

“왜? 무슨 일이에요? 고배우님”

강산은 고희윤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거리를 두었다.

“산수유, 있잖아요.”

“산수유가 왜?”

“산수유가 왜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줄 아세요?”

“몰라. 그게 궁금해?”

“네. 개나리, 진달래, 목련도 잎보다 꽃이 먼저 피잖아요?”

“그러고 보니,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들이 많네.”

“그런데요. 감독님. 꽃부터 피는 식물은 없데요.”

“무슨 말이야?”

“잎이 나고 꽃을 피울 시기에 겨울이 맞은 식물은 겨울눈을 만들어 겨울을 지내고 봄이 오면 그제야 꽃을 피운데요.”

“그래. 그렇구나. 이제 촬영 시작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네. 시작해요.”

강산은 고희윤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를 잘 몰랐다.

촬영을 앞두고 갑자기 꽃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그렇고 배우들, 특히 여배우들의 감정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강산에게는 적응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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