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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135화 (135/140)

〈 135화 〉 강산: 너 이상한 ‘쪼’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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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NG요. 고배우! 아빠가 아파서 우는데 예쁜 척하면 어떻게 해!”

“컷. NG요. 여기서는 하나가 아빠를 미워하는 척하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잖아. 이 순간에 누가 이쁜 척하냐.”

“컷. NG요. 고희윤! 너 이상한 ‘쪼’가 있어. 너 왜 카메라만 보면 미소를 짓냐? 입술 끝이 올라가잖아.”

아버지 김훈(박철 분)이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김하나(고희윤 분)가 슬픈 감정에 북받쳐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이다.

김하나는 이 장면을 계기로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도하며, 부상으로 은퇴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다.

강산은 고희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오해할까 봐서 미리 말하는 것이지만, 절대로 다른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를 하다가 몸에 붙은 ‘쪼(고치기 힘든 나쁜 버릇)’를 고치려고 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다시 할게요.”

“20분만 쉬었다가 갑시다. 고배우는 다시 얼굴 정리하시고 감정도 같이 정리하세요.”

고희윤은 강산에게 다시 가겠다고 했지만, 강산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했다.

강산은 모니터를 보며 고희윤의 표정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조감독 역할을 하는 승현이가 다가와 강산에게 말했다.

“저... 감독님.”

“왜? 승현아.”

“지금 2시가 넘었는데, 식사하고 다시 하면 어떨까요?”

“음, 스태프 형들이 너보고 나한테 물어보래? 거의 다 왔어, 이제 한두 번만 더하면 원하는 그림이 나올 거야. 이제야 감정이 나오는데, 더 쉬었다 가는 고희윤 배우가 다시 감정 잡기 힘들어져서 안 돼, 조금만 더 참자고 그래라.”

강산은 스태프들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몇 테이크만 더 하면 고희윤에게서 원하는 감정이 나올 것 같아서 템포를 늦추기 어려웠다.

“뭐라고 그래”

“조금만 더 하자고 그러는데요.”

음향 감독 김철수가 김승현에게 강산 감독에게 식사하고 하자고 말해 보라고 시키고 답변을 기다렸지만, 강산의 거절에 실망한 표정이다.

“거봐. 내가 그랬잖아. 강감독이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제때에 밥 먹기는 틀렸다고 했잖아.”

촬영감독 박형수가 판소리에 추임새를 넣듯이 끼어들었다.

“그런데요. 저 정도 연기면 괜찮은 거 아니에요. 고희윤 배우가 연기로 먹고 사는 연기파 배우도 아니고, 미모로 먹고사는 배우가 저 정도로 연기하면 나라면 바로 오케이다.”

조명감독 정진수가 강산을 원망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너는 영화감독을 못 하고 조명이나 하는 거야.”

“형수형. 지금, 조명을 무시하는 말을 한 거야. 이거 우리 조명인들 모임, 특히 형이 애정하는 이승아 조명 기사님에게 쫙 풀어버린다.”

“잠깐만, 정진수 조명감독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형제를 사랑으로 용서하겠습니다.”

“아휴, 이 자식을 그냥”

“형수형, 아무리 화가 나도 이승아 기사님을 잊지 마세요.”

정진수는 박형수의 약점을 잡고 있다는 듯이 박형수가 애모하는 이승아 조명기사를 언급하며 놀렸다.

“하~ 참. 고희윤 배우가 요물은 요물인 거 같아. 우리 강산 패밀리 사이도 분열시키고 말이야.”

“형. 솔직하게 말해서 저 미모에 연기까지 잘하면 너무 불공평하잖아. 다른 여배우들은 뭐 먹고 살라고. 여배우 생태계가 교란돼서 안 돼”

“지금은 대스타가 된 모 여배우가 신인이었을 때 말이야. 강형욱 감독이 오디션을 보러 온 여배우를 보자마자, 연기도 보지 않고 바로 캐스팅했다고 하는 거야. 왜 캐스팅한 줄 알아?”

“왜 캐스팅했는데요?”

“강형욱 감독이 말이야. 그 여배우 얼굴을 보고 ‘너 정말 연기 잘하게 생겼다.’라고 했다는 거야.”

“너무 예뻐서요?”

“가만히 좀 있어 봐. 강형욱 감독이 말하기를, 그 여배우보고 ‘네가 연기를 못하면 이 세계에서 먹고 살기 힘든 얼굴이다.’라고 했다는 거야.”

“그 여배우가 누군데요?”

“노 코멘트.”

“형수형!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이러기에요. 형이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보통 배우가 아닐 거잖아요?”

“우스갯소리를 너무 진지하게 듣는 것 같은데, 아무튼 내 대답은 노 코멘트야.”

“그럼, 내가 말할게. 형은 고개만 끄덕거려. 강선아?”

“노 코멘트”

“윤여빈!, 전미란! 장도연!”

“허-억, 노 코멘트 라니까, 너 왜 그래?”

“설마, 장도연이라고”

*   *   *

김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육상코치인 아빠를 따라 달리기를 시작하고 중장거리 유망주로 활약하다가 부상 당하자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육상선수로 운동하면서 코치가 선수를 때리고 군대처럼 선배가 후배에게 구타나 욕설을 하는 가혹 행위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다정한 아빠가 떨어진 육상성적 때문에 하나에게 화를 내고 손찌검까지 하자, 하나는 큰 충격을 받고 그 길로 집을 나와 이모집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김하나는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육상부 선배이자 아빠의 애제자였던 박재경(김현수 분)으로부터 아버지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나가 본 아버지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마른 몸매에 눈 주위가 휑한 환자 얼굴이었다.

“하나야. 아빠가 잘못했다. 네가 잘되라고 한 것인데, 달리기를 그만둘 줄 몰랐다. 내가 잘못했다. 하나야. 내가 밉다고 달리는 것을 그만두지 마라.”

김하나는 아빠의 가늘어진 손을 보자, 아빠가 건강하던 시절의 모습들이 지나갔다.

초등학생 시절에 아버지와 같이 달리던 모습, 하나가 중학생이 되자 자전거를 타고 따라오고, 고등학생 선수가 되자 스쿠터를 타고 하나의 뒤를 따라왔다.

하나는 아버지 김승훈의 병이 심해지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소원인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고희윤은 본격적으로 <달리는 여자>를 촬영하려고 세줄 무늬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유명세는 세줄 무늬 해외브랜드에 다니는 대학 선배를 통해 이번 영화의 협찬으로 운동화, 추리닝 등 의류 일체를 받았다.

강산은 이번 영화촬영을 위해 고가의 바이크와 좌우 양쪽에서 문이 열리는 윙바디 차량을 임대했다.

바이크에는 라이더 뒤에 촬영감독인 박형수가 카메라를 맡고, 2.5톤 윙바디 차량에 있는 카메라는 강산이 맡았다.

강산은 <달리는 여자>를 촬영하기 위해 <마라톤 맨 1976>, <러닝 1979>, <가을 마라톤 1979>, <천국의 아이들 1997>이라는 영화를 참조했다.

강산은 아빠 김훈과 딸인 김하나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고희윤의 어린 시절 대역으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섭외했다.

아빠 김훈이 새벽에 조깅을 나가려고 하자, 초등학생 김하나가 아빠를 조르는 시늉을 하고 아빠와 같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김훈의 옆에서 달리는 초등학생은 중학생으로 변해 달리다가 다시 고등학생 고희윤으로 변했다.

아빠 김훈은 김하나가 집을 나간 후에도, 습관처럼 새벽 달리기에 나선다.

비에 젖은 도로에 비치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쓸쓸하게 달려가는 중년 사내의 뒷모습은 <가을 마라톤 1979>의 오마주다.

고희윤은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운동신경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밖에서 운동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강산은 육상전문가를 섭외해서 고희윤에게 달리기 주법을 정확하게 배우고 연습하게 했다.

고희윤은 속도는 느리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준 그 주법을 지키면서 달렸다.

오랜만에 달려서 그런지,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숨차 오르고 다리가 떨려왔다.

고희윤은 경련이 온 것처럼 다리가 떨려오자,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숨 쉬다가, 다시 억지로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오빠...”

김하나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앞에서 달려가는 박재경을 부르자, 박재경이 뒤를 돌아보았다.

박재경은 김하나의 재기를 돕기 위해 페이스메이커처럼 도우미로 나섰다.

“더, 더, 이상은 안...”

김하나는 말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고 쓰러지자, 박재경이 서둘러 돌아가서 김하나의 안색을 살핀 후, 김하나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컷. 오케이요.”

강산이 오케이를 알리자, 고희윤을 안고 달리고 있던 김현수가 힘들었는지, 고희윤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강산에게 소리쳤다.

“강감독! 얘 진짜 정신을 잃었어.”

*  *  *

“여기가 어디예요?”

고희윤은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뜨자, 마침 수액을 교체하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촬영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 병원이다.

“고의원이라는 병원이에요. 환자님.”

“다른 분들은 어디에 있어요?”

고희윤이 일어나려고 하자, 간호사가 손을 흔들며 일어나는 것을 만류했다.

“잠깐만요. 아직은 일어날 때가 아니에요. 보호자님! 환자분이 깨어났어요.”

간호사가 보호자를 부르자, 4인실 구석 침대에서 누워있던 강산이 일어나서 고희윤에게 왔다.

“희윤아. 괜찮아.”

“네. 감독님, 다른 분들은 어디 있어요?”

“현수 형하고 스태프들은 서귀포 모텔 숙소로 돌아갔어.”

“그럼, 저도 모텔로 돌아갈게요.”

“됐다. 오늘은 병원에서 푹 쉬고 내일 보자.”

“저, 이제 괜찮아졌어요.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남은 촬영을 해야죠?”

“괜찮아. 괜찮아. 오늘 촬영은 다 마무리했어.”

강산은 고희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어깨를 가볍게 ‘툭’ ‘툭’ 터치하며 말했다.

그런데 얘, 왜 이래?

고희윤의 얼굴이 발그레 붉어지며 수줍은 듯이 몸을 비꼰다.

앗! 실수다.

강산은 자신도 모르게 고희윤과 사귀던 시절의 스킨십이 나왔다.

“죄송해요. 감독님. 저 때문에 일정이 늦어지게 됐어요.”

강산은 다급하게 방금 전의 상황을 부정하듯이 말했다.

“아냐. 아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스태프들은 지금 밀렸던 회식을 한다고 술 마시고 놀고 있을 거야.”

“감독님은 안 가세요?”

“어디?”

“스태프들이 술 마시는 데요.”

“희윤이 네가 깨어나는 거 보고 가려고”

“내일은 어떻게 할 거예요? 감독님.”

“음, 내일은... 희윤아. 내일은 네 컨디션을 보고 일정을 조정하기로 하자. 내일 걱정은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푹 쉬어라.”

“네. 감독님, 그런데 이분은?”

강산의 옆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세줄 무늬 추리닝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아! 이분은 이번 영화가 끝날 때까지, 네 컨디션을 관리해줄 스포츠 의학 전문가 이양숙씨.”

“이양숙입니다. 고희윤씨”

“오늘부터 업무를 시작했으니까, 이분 말씀대로 몸 관리해라. 그리고 음, 복잡한 일들은 내일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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