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132화 (132/140)

〈 132화 〉 강산: 이쯤에서 발을 빼자.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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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배는 김두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무슨 일이세요. 사장님.

“잘 지냈냐?”

- 네. 사장님. 저 아무리 힘들어도 안 돌아가요.

“알았어! 임마. 너 다시 안 불러. 남의 사람 된 애를 내가 왜 다시 부르냐.”

- 그럼, 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 이 자식이 정말,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지. 김두호! 내가 심심해서 전화 한번 걸어봤다.”

- 저 지금 바빠요. 사장님. 사장님하고 놀아줄 시간이 없어요.

“야! 나 이덕배야. 이덕배!”

이덕배는 화가 나면 복식호흡으로 목소리를 올리는데, 지금처럼 진성으로 화를 내면 진짜로 화가 났다는 소리다.

이덕배가 이렇게 큰 소리를 내면 김두호는 알아서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김두호도 더 이상 예전의 김두호가 아니다.

- 네. 알고 있습니다. 이, 덕, 배, 사장님. 이제 됐죠.

“끄응. 두호야. 거두절미하고 강감독한테 작품 하나를 연출 부탁하려면 얼마나 준비해야겠냐?”

- 사장님. 강감독, 너무 바빠서 1년 안에는 다른 작품 연출하기 어려울 거에요.

“그래서 하는 말이야. 얼마야? 얼마면 되냐구?”

- 사장님. 내가 강산이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요.

“두호야. 그러지 말고. 네가 한번은 나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

김두호는 이덕배 사장이 예전처럼 큰소리로 협박하면 끝까지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부탁하자 마음이 약해진다.

- 하~. 사장님.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강산이 걔 지금, 엄청 바빠서 아무리 사장님이 돈을 많이 줘도 안 할거예요. 아니 못할 거에요.

“그럼, 내가 유명세 대표를 만나서 부탁할까?”

-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여러 곳에서 연출 제안이 오고 있지만, 유명세 대표가 거절하고 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내년에는 더 어려울 거 아니야?”

- 아무래도 그러겠죠. 이 상태로만 가도 내년에는 강산의 얼굴을 보기 힘들 거에요.

“두호야. 일은 다음에 시간 나면 연출한다고 치고, 연출 계약은 지금이라도 할 수 있잖아.”

- 그런 조건이라면 강산이 받을 수도 있겠네요.

“얼마나 준다고 해야 강산이 받을까? 계약금 천만 원에 런닝개런티를 준다고 하면 받을까?”

- 안 받을 거예요. 그 시간에 뮤직비디오를 한두 편 찍어도 그 정도는 받을걸요.

“그럼, 얼마를 준다고 해야 강산이 움직이는 거야?”

- 제 생각에는 계약금으로 최소 이천은 준다고 해야 관심을 가질 거에요.

“최소 이천? 그런데 두호야. 꼭 이천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 그것은 알 필요가 없고요. 다른 감독들을 찾아보세요. 최소 오천은 부를걸요. 마침 이천 정도가 필요한 시점이니까 강산이 관심을 가질 거에요.

“알았다. 잘 되면 내가 밥 한번 사마.”

- 사장님. 절대로 저한테 들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나중에 강산이 알면 제가 곤란해져요.

*   *   *

이덕배는 지금 타이밍이 강산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계약금 2천에 런닝개런티는 수익의 5:5, 다른 조건은 이전과 동일해. 어때?”

“콜!”

강산은 계약금이 2천이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콜’을 했다.

2천만 원이 당장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2천만 원을 구하려고 하면 구할 수는 있는 돈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너무 싫었다.

“좋아. 강감독 그런데 말이야. 조건이 하나 있어.”

“무슨 조건요?”

“해피미디어 최룡해 사장은 참여 불가 조건이야.”

“네. 그렇게 하죠. 그럼, 저도 조건이 있어요.”

“계약금 2천을 일주일 내에 지급하는 거예요.”

“오케이. 이번 주 금요일에 계약서를 쓰도록 하세. 그때 바로 이천만 원을 입금해 주겠네.”

이덕배가 계약서를 쓰자는 말에 강산이 정색한다.

계약서를 쓴다는 것은 계약서의 내용에 따라 새로운 구속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계약서를 피하고 싶었다.

“사장님. 우리가 한두 번 작품을 해본 사이도 아니고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입니까? 저 못 믿으세요. 사장님. 저, 강산이에요. 굳셀 강에 뫼 산, 산처럼 굳센 남자 강산이에요.”

“나야 믿지. 내가 왜 강감독을 못 믿어. 그런데 말이야. 어느 신인 감독이 나한테 하던 말이 인상적이라서 말이야.

그 신인 감독이 말이야. 나보고 나는 사람의 말보다 계약서를 믿습니다. 그러는 거야.

얼마나 나를 몰아붙이던지, 나도 그 후로는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절대로 돈거래를 하지 않고 있네.”

*   *   *

강산은 이덕배 사장이 제안한 영화의 계약금으로 이천만 원을 받았다.

이천만 원은 두 여동생 정연과 정화의 대학교 새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 시골에 있는 아버지와 막내 여동생 정미 등 강산 가족의 반년 치 생활비였다.

이덕배 사장의 제안을 받고 거절할까도 고민했지만, 지금 당장은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강산이 파스타 집 <키토>에서 서정아에게 말했던 세 가지 아이디어는 이덕배 대표가 제안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정아씨, 통화 가능하세요?”

- 네. 감독님.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이 아니라... 정아씨, 요즘 시간은 어떠세요?”

- 요즘 좀 바쁘기는 하지만...

“바쁘시면 할 수 없죠. 이번 주에 시간 되면 식사나 할까 했는데 나중에 시간 되면 식사 같이하죠.”

- 죄송해요. 감독님. 이번 주는 어렵고 다음 주 금요일에는 가능할 것 같아요.

“네. 바쁘신가 보네요.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 다음 작품이 잡힐 것 같아서요.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밀린 CF를 촬영하려고 발리로 가야 해요.

“인도네시아 발리요?”

- 네. 인도네시아요. 내일 출발해서 다음 주 목요일에 들어올 예정이에요.

“다음 작품은 언제 들어가는데요?”

- 아직 결정은 안 했어요. 모두 다음 달에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거 같아요.

“무슨 작품인지 알 수 있을까요?”

- 두 작품이 들어왔는데요. 두 작품 다 영화예요. 둘 다 다음 달에 들어가서 5~6개월 정도 걸리나 봐요. 두 작품 중에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중이에요.

“무슨 작품인지 가르쳐줄 수 없을까요?”

- 둘 다 가칭이기는 한데요. 하나는 김자운 감독의 <장화전>인데, 장화홍련전과는 상관이 없는 공포영화예요.

다른 하나는 장준한 신인 감독의 <지구 방어프로젝트>, SF영화에요. 강감독님은 어느 작품이 마음에 드세요.

“두 작품 다 괜찮을 것 같네요. 감독님들도 다 훌륭하신 분들이고요. 아무 작품이나 들어가도 좋을 것 같은데요.”

- 그래도 둘 중에 한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면요?

“음, 작품성만 본다면 둘 다 좋은 작품이 되겠지만 흥행까지 생각하면 아무래도 신인 감독보다는 중견 감독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네요. 좀 더 고민해 보시죠?”

- 네. 도와줘서 고마워요. 감독님, 다른 할 말은 없어요?

“네. 다음에 시간 되면 식사나 하죠.”

강산은 두 영화를 생각해보았다.

두 작품 모두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품이지만 흥행성만 본다는 결과는 너무 차이가 났다.

특히, <지구 방어프로젝트>는 저주받은 명작이라는 평을 받는데, 실패한 마케팅으로 유명해진다.

포스터와 광고로 코믹물인 줄 알고 온 관객들이 SF 스릴러 고어물을 접하게 되면서 결국 흥행엔 실패한다.

서정화와 영화 이야기나 하려고 전화한 것이 아닌데, 이야기하다 보니 영화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서정아에게 영화같이 하자고 시간을 떠보려고 하는 것이었으니 영화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었구나.

강산은 서정아에게 다른 작품 대신 내 작품에 참여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했다가 거절당하면 다시 서정아를 만나거나 전화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 말을 하기에는 강산의 작품은 저예산 영화다.

다른 감독님보다 예산이나 규모로 볼 때, 서정아에게 말을 붙이기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자신이 서정아라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감정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 나이 먹고 짝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쯤에서 발을 빼자.

그것이 부끄러운 흑역사의 반복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   *

강산은 영화 <삼검문>을 촬영하면서도 다음 영화 <봄날>의 주요 배역들의 섭외를 진행하고 있었다.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은 유지태, 이영애 주연,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봄날은 간다. 2001>가 9월 말에 개봉하면서 제목을 <봄날>로 고치기로 했다.

강산은 건망증을 가지고 회귀했는지, 어쩐지 친근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백설희 선생의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가사가 영화의 주인공 홍주의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을 고집하고 싶었다.

여담으로 <봄날은 간다>를 부른 백설희 선생을 전영록씨의 어머니로 기억하는가, 아니면 <티아라>라는 전보람의 할머니로 기억하는가에 따라 세대를 구분한다고 한다.

아무튼,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가 2001년에 9월 말에 개봉하고, 장도연의 출연 문제로 강산의 영화로 2002년으로 제작이 넘어가면서 가칭 <봄날은 간다>는 새로운 제목이 필요했다.

강산은 <연분홍 치마>로 할까, 아니면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할까 고민했다.

우연히 김여정 선생이 이 영화의 제목을 <봄날>이라고 부르면서, 강산은 <봄날>도 제목으로 괜찮겠다 싶었다.

영화 <봄날>의 주요 배역은 젊은 아내 홍주, 늙은 남편 김석원, 늙은 남편의 조카 김원일, 하녀 강서희다.

늙은 남편 김석원(일본명, 가네야마 샤쿠겐 金山錫源)역에 박군형 선생을 섭외했다.

원래 늙은 남편 역은 장민호 선생이 하기로 했다.

영화 <봄날>을 촬영하고, MBS 드라마 <인어공주>에 출연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영화 <봄날>의 촬영이 5개월 지연되면서, 영화 <봄날>과 MBS 드라마 <인어공주>의 일정이 겹치게 되자 드라마를 선택한 것이다.

장민호에게 MBS 드라마 출연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지상파에서 출연정지가 되어있던 블랙리스트가 MBS부터 풀리는 것이다.

아무튼, 장민호 선생이 MBS 드라마 <인어공주>에 아버지역으로 출연하기로 하면서 <봄날>에는 출연하기 어려워졌다.

아이러니하지만 영화 <봄날>에서 늙은 남편 김석원 역으로 장민호 선생 대신 섭외한 박군형 선생은, 원래 <인어공주> 드라마에 장민호 선생이 하기로 한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었다.

원래의 역사가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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