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서정아: 지금 데이트 신청 하시는 건가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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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산은 서정아와 데이트하고 저녁에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기로 했다.
영화 <삼검문>에 출연해준 것에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
어제 단기접전 씬을 마지막으로 서정아의 출연 씬은 종료했다.
그런데 강산이 서정아와 찍고 싶은 씬이 있어서, 서정아에게 한 번 더 부탁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서정아의 영화 <삼검문> 출연은 강산의 부탁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카메오로 출연하는 줄 알았지만, 삼검문과의 전투장면뿐만 아니라 단기접전에서도 출연해야 했다.
그리고 와이어액션을 하려고 2주간을 액션 스쿨에서 훈련해야 했다.
서정아는 바쁜 스케줄에도 강산의 영화에 출연하고 고난도 와이어액션을 연기하기 위해 액션 훈련까지 받았다.
강산은 서정아가 외모가 아닌 진정한 연기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삼송전자의 CF까지 취소하고 영화 출연에 집중하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강산은 어제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서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정아 배우님 핸드폰인가요?”
“네. 감독님. 무슨 일이세요? 전화도 주고”
“아니. 잘 들어 가셨나 해서요.”
“네. 잘 들어왔어요. 그 말 하려고 전화했어요?”
“아뇨. 아뇨. 내일은 뭐하세요?”
“내일요? 왜요? 감독님.”
“시간이 되시면 식사나 같이할까 해서요. 바쁘시면 다음에 하고요.”
“지금 데이트 신청 하시는 건가요?”
“아뇨. 아뇨. 데이트 신청이 아니라 식사 같이 하자고요.”
강산은 여배우에게 식사하자고 하는 전화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생에서 개인적인 식사는 처음이라는 말이다.
다른 배우들이나 스텝들과 같이 식사하는 것은 많이 했다.
전생에서는 여배우들과 개인적인 식사를 많이 했다.
아름다운 이성과 식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영화에서의 많은 장면들은 감독과의 믿음과 신뢰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많다.
성인영화의 감독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노출 수위가 높은 베드씬과 노출 장면에서는 항상 감독과 여배우들 간의 갈등이 뒤따른다.
예전의 영화감독이 배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베드씬과 노출 장면을 강요하는 일이 많았다.
참, 지금이 바로 그 예전이었지.
강산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강산의 화술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옷을 벗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생에는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강산은 서정아에게 영화 <삼검문>의 앞부분에 수인족중 고양이 부족이 마교도에 복속하는 장면이 남아있다.
마교사자 전일기와의 장면은 노출이 조금 심한 장면이지만 이야기의 전개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말해야 한다.
“괜찮아요. 감독님?”
“네?”
“시간이 된다고요. 어디서 식사해요?”
“식당은 제가 잘 몰라서요. 서정아 배우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럼, 감독님, 내일 오후하고 저녁 시간을 내주시는 것은 어때요?”
“내일 오후하고 저녁요?”
“네. 감독님,”
“음, 그러시죠.”
강산은 서정아에게 부탁하려고 식사나 같이하면서 말해 보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데이트 약속이 되어버렸다.
* * *
“정아야. 내일 스케줄 있잖아. 내가 강산감독에게 전화해서 내일은 어렵다고 다시 말할게”
“언니, 그냥 내일 스케줄 좀 빼줘”
강남의 아파트에서 쉬고 있던 서정아는 매니저인 한은미에게 내일 스케줄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안 돼. 다른 약속도 아닌 헤르메스하고 약속이야. 헤르메스, 너 헤르메스 몰라?”
“잘 알아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헤르메스.”
“그런데도 약속을 취소해”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거잖아요.”
“그게 그거잖아. 그러다 헤르메스에서 다른 배우하고 접촉하면 어떡해?”
“그럼, 인연이 아닌 거죠. 언니, 내가 연기하다가 발목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하다고 일주일만 뒤로 미루자고 해주세요.”
“너 대체 왜 그래. 삼송전자 CF도 미루면서 휴가를 달라더니, 이상한 영화에 출연하고 이제는 헤르메스하고 약속을 미루면서 감독을 만나는 거야.”
서정아의 소속사인 <파인트리>에서는 한은미에게 서정아를 잘 관리하라고 주의를 받고 있었다.
계약도 1년밖에 남지 않아서 민감한 부분이 많았다.
<파인트리>는 서정아에게 큰 관심이 없었지만 영화<첫눈>에 출연하고 난 후에는 서정아를 찾는 감독이나 PD들이 많아지면서 관심이 많아졌다.
SBC 드라마 <피아노 맨>이 시청률 43%를 기록하자, 영화, 드라마, CF 관계자들의 서정아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언니, 언니도 잘 알잖아. 영화 <첫눈>하고 바로 <피아노 맨>에 출연하느라 쉬는 시간이 없었다는 거 말이야. 사람이 좀 쉬어야 다음에 일하지.”
“알았어. 그런데 너 조금 이상한 거 같다. 혹시 너 강산 감독이라는 어린애 좋아하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냐. 강산 감독이 나이는 어려도 나에게는 연기를 가르쳐준 스승 같은 감독이거든, 그리고 언니, 나하고 강산 감독하고 세 살 밖에 차이 나지 않거든.”
“그래 알았어. 헤르메스는 내가 알아서 할게. 일주일만 연기하는 거다.”
“고마워 언니.”
* * *
2002년 1월의 어느 날,
강산은 서정아를 만나기 위해 겨울 잠바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강산이 차를 끌고 가겠다고 했지만 서정아는 자신이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강산이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는 도로가에 서 있었다.
강산은 서정아를 기다리고 있는 이 감정이 어색했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즐거운 기분도 아니다. 이런 상황이 조금 어색할 뿐이다.
강산이 도로가에서 서정아의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딱정벌레차’라는 빨간색 <뉴비틀>이 ‘끼익’하고 강산의 옆에 섰다.
빨간색 <뉴비틀> 자동차 창문이 내려가더니 서정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세요. 감독님”
“네.”
강산이 옆자리에 올라타자 서정아는 운전이 익숙한지 자연스런 코너링으로 뉴비틀을 사당방면으로 몰았다.
“서배우님, 어디로 가는가요?”
“가보면 알아요. 힌트는 미술관 옆 동물원요.”
“이정향 감독이 1998년에 만든 영화 말하는 가요?”
“네. 지금 우리는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동물원에 가고 있어요. 시간이 되면 미술관도 가고요.”
“아~ 네.”
“그 영화의 실제 배경도 과천 동물원이래요.”
“네. 서배우님, 과천에 있는 동물원인데 왜 서울동물원으로 부르는지 아세요?”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왜 과천동물원이라고 하지 않죠?”
“창경궁에 있던 동물원이 과천으로 이사 가서 서울동물원이라고 한데요. 관리도 서울시에서 하고요.”
“네.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강산은 서정아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하자 다음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로 강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산은 이상하게 자동차에 타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는지 몰랐다.
아마도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자동차 안으로 들어왔더니 긴장이 풀렸는가 보다.
강산이 고개를 숙여 잠이 들자 서정아는 조용하게 차를 몰았다.
“자. 감독님. 도착했어요. 일어나세요.”
“내가 잠이 들었나요.”
“네. 피곤했나 봐요. 코까지 골고”
“그랬나요. 덕분에 잘 잤어요.”
강산은 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 앞에서 코를 골았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서정아에게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서정아는 강산이 조금 이상했다.
자신을 만나는 남자들은 모두 자신이 잘난 남자라는 것을 서정아에게 자랑했다.
얼마나 부자인지, 얼마나 똑똑한지 자기 가족들의 부나 자신들의 학벌을 자랑하려고 했지, 대놓고 잠을 자거나 코를 골지는 않았다.
강산은 서정아 같은 미스코리아에게 다른 생각을 해봐야 이룰수 없는 사랑이고 결국 상처받을 사람은 강산 자신이다.
도덕성이 높아서라기보다 오래 살다보니 제분수를 안다는 것이다.
서정아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는 강산을 데리고 동물원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주말이 아니라서인지 동물원에 구경 하러온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강산은 동물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서정아는 동물들을 좋아하는지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서정아는 동물원을 들어가자 매점에서 팔고 있는 어묵이나 소시지를 보고 강산에게 사달라고 했다.
“아니 돈도 많이 버는 배우님이 가난한 영화감독의 코묻은 돈을 뺏어야겠어요.”
“강산씨는 무드를 몰라요. 이런 곳에 와서는 남자가 사줘야 한다고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저녁도 사야 하는데”
“저녁을 살 돈은 있고요? 아저씨 어묵 하나 주세요. 강산씨는 어묵 먹을래요? 아니면 소시지 먹을래요?”
“난 소시지요”
강산은 매점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서정아에게 받은 소시지를 오물거리며 서정아 뒤를 따라다녔다.
날이 추워서인지 동물들은 실내에 많이 있었지만 겨울에도 동물들은 다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보고 싶은 동물들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사계절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동물원을 다 돌고 나니 3시 반이 지났다.
날이 추워서인지 동물원 밖으로 나오자 바로 서정아의 차로 들어가 히터를 틀었다.
“어때요. 강산씨?”
“좋았어요, 날씨가 좋은 날에 여유롭게 보면 좋겠다 싶더군요.”
“그렇죠. 동물들을 보다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동물들이 나오는 영화가 나오면 출연해 볼까 해요.”
“우리나라에서 동물영화들은 흥행하기 어려워요. 아니 폭망할 거예요.”
“폭망요. 왜요?”
“CG가 제일 큰 문제지만 좋은 스토리도 별로 없고 동물영화는 가족을 대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죠. 정아씨는 나중에 동물영화 캐스팅이 오면 절대로 출연하지 마세요.”
“강산씨는 가볍게 한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게 받네요. 스토리가 재미있으면 흥행도 가능할걸요.”
“그럴 수도 있지요. 다음 코스는 어디에요?”
강산은 서정아에게 슬슬 자신이 서정아를 보자고 한 이유를 꺼내볼까 하는데 적당한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이야기가 진지해 진다.
“미술관은 어때요. 미술관 감상이 끝나면 식사하러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