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강사장: 나 항복이야 항복!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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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세트장에서 이규리가 가운을 입고 모니터실로 들어왔다.
모니터 앞에 모여 있던 스태프들은 이규리를 위해 자리를 피해주었다.
이규리는 이제까지 편집한 영상들을 집중해서 되돌려 보고는 다시 세트장으로 돌아갔다.
“대체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두 세 시간 전에도 저러더니 그냥 들어가더라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 봐”
“아마 대역에 대해 불만이 많은가 봐요?”
옆에 있던 김철수 음향기사가 박형수 촬영감독에게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대역이 촬영한 후에 한 번씩 나와서 모니터를 확인하더라고요.”
“그거 뭐냐? <옥보단>에 나왔던 배우가 내건 원칙, 그런 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성대형. 무슨 말이에요?”
“그런 게 있어. 그 배우는 유두와 음부는 절대로 노출하지 않는다고 유명했거든.”
“엽자미, 견지삼점(堅持三點)”
엽자미는 성인영화에 출연하지만 미래의 남편을 위해 양쪽의 유두와 음부는 절대로 노출하지 않았다.
어떤 영화사는 그녀의 가슴 노출에 800만 위안(현재 가치로 한화 15억원)을 제시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형수형도 대단하네요. 어떻게 배우 이름도 기억해요?”
“이규리 배우는 엽자미 스타일은 아니야. 그녀는 이미 에로배우 시절도 있어서 노출을 감추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무엇보다 그녀의 눈을 보면 욕심이 보이거든.”
“무슨 욕심요?”
“연기 욕심. 진짜 배우가 되려는 욕심 말이야. 한번 밑으로 떨어져 본 사람은 그런 게 있거든. 아무튼, 그렇다고.”
“그래도 조역이지만 <여인 정난정>, <아름다운 인생> 연달아 히트했는데, 노출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탁성대와 박형수, 김철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명감독 정진수가 스태프들의 대화 사이로 들어왔다.
“나는 이규리 배우가 연기력으로 계속 승부하면, 이규리 배우에게도 좋은 기회가 올 거 같은데.”
“쉽지 않을 거야.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회는 여자들에게 너무 보수적이거든. 오모양 사건만 봐도 그래. 사랑은 남자친구하고 같이 해놓고, 오모양만 강제 은퇴하게 됐잖아.”
“아~, 남자는 어떻게 됐지?”
“요즘 에세이 책도 내고 성인방송에도 출연한다고 하더라고.”
“오모양은?”
“미국으로 이민 갔어.”
“탁감독, 어떻게 그리 잘 알아. 오모양을 좋아하는 거 아니야.”
“좋아하는 거야. 우리 세대의 남자들치고 누가 오모양을 좋아하지 않았겠어.”
“나는 오모양이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말이야. 세상이 변하고 있잖아. 누가 알아 우리나라 영화가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을지 말이야.”
“아니야. 아마 어려울 거야. 나도 오모양이 재기하기를 바라지만 보수적인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어렵다고 생각해.”
탁성대와 박형수는 이규리에서 오모양으로, 다시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가 번져가고 있었다.
“형들! 잠깐만”
“왜?”
“고은아씨가 촬영하던 씬들 있잖아요. 이규리씨가 다시 촬영하는 것 같아요. 아까 고은아씨가 촬영하던 장면을 리허설하는 것 같아요.”
강산은 이규리가 고은아가 촬영하던 부분을 직접 촬영하겠다고 하자, 이규리에게 이성호의 위로 올라가서 연기하는 장면을 리허설했다.
방금 전에는 이규리의 얼굴을 피하려고 소극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슬로우도 걸어가며 이규리의 얼굴을 촬영할 예정이다.
“그래, 이래야지. 우리 같은 전문가들은 알겠지만 이규리씨가 나온 씬하고, 고은아씨가 미세하게 차이가 났거든.”
“쉿! 조용히요. 시작했어요.”
모니터실에는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중단하고 모두 모니터에 집중했다.
한동안 모니터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촬영이 중단되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모니터에서 떨어졌다.
어떤 스태프는 담배가, 어떤 스태프는 소변이 마려운지, 참았던 각자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모니터실을 나갔다.
모니터실에는 탁성대와 박형수만 남았다.
“탁감독, 아까 하려고 하던 이야기가 뭐야?”
“무슨 이야기?”
“전설의 감독 이야기 말이야.”
조금 전, 탁성대는 전설의 감독을 확인하려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아~, 청단 감독 영화가 다시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서.”
“청단 감독? 그 사람이 누군데?”
“신비주의 감독이야. 대강 추측이 가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모두 함구하고 있어서 추측만 할 뿐이야.”
“그런데 청단 감독이라는 사람이 왜 전설의 감독이야?”
“청단 감독의 영화를 본 음악가들은 청단 감독을 전설의 감독이라고 불러. 이재윤이라는 음악 감독이 따로 있지만, 그분보다는 청단 감독이 더 유명하거든.”
“탁감독, 음악가들 사이에 얼마나 유명하길래, 청단 감독을 전설이라고 부르는 거야”
“청단 감독은 그 영화에서 대본, 음악, 촬영, 감독을 혼자서 했다고 하더라고. 그 중의 음악은 어디서 녹음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탁월해서 전설의 음반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음악은 몰라도, 어디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래서 말이야. 강산 감독이 혼자서 촬영한다고 하길래, 어떻게 촬영하는지 구경해보려고 온 거야”
“다른 의도는 없고?”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하는 걸 들어야겠어.”
* * *
수인족과 삼검문이 대치하고 있는 중간지대에 단기접전의 결투 무대가 만들어졌다.
무대는 30여 평이 넘는 정사각형 무대에 바닥은 나무로 만들었다. 무대 주변에는 그린 스크린으로 장막처럼 높게 둘러있었다.
수인족과 삼검문은 무대를 중앙으로 동서로 나누어져 있었다.
삼검문의 단기접전의 첫 번째 주자로 스시 몽(夢), 강사장이 나섰다.
수인족 상대는 고양이 부족 족장 문영이다.
강사장은 어깨가 드러나는 <지방시>의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입고 베일이 있는 검은 모자를 쓰고 손에는 헵번 파이프를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문영은 캣우먼 스타일의 검정 광택이 흐르는 타이트한 라텍스 가죽옷을 입고 긴 채찍을 들었다.
이 채찍은 끝부분이 아홉 줄기로 되어있는 <아홉 마리의 뱀>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문영은 무대 위로 올라오자, 시위하듯이 ‘찰싹’ ‘찰싹’ 하고 공기를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채찍을 거칠게 휘둘렀다.
강사장은 긴 담뱃대를 무기로 들었고, 캣우먼 문영은 채찍을 들고 나왔다.
카메라는 담뱃대를 입에 물고 있는 강사장을 정면으로 잡고, 캣우먼 문영은 아래에서 위로 역광이 살짝살짝 비치는 빛을 잡았다가 옆으로 물러나 중앙에 섰다.
‘챠압’
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켓우먼 문영이 채찍을 휘두르며 선공을 시작했다.
<아홉 마리의 뱀>이라는 채찍의 끝부분에서는 아홉 줄기에서 사납게 생긴 뱀들이 ‘주~욱’ 늘어나며 강사장을 위협했다.
강사장이 담뱃대를 휘두르자, 담뱃대가 길게 늘어나며 달려드는 뱀들의 머리를 때렸다.
강사장은 공중부양하듯이 뒤쪽으로 물러서며 뱀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얘! 너는 말도 하지 않고 시작하니? 너는 위아래도 없니?”
“이게 장난이야. 생사투에 무슨 말이 필요해!”
문영은 강사장의 말을 무시하고, 날카로운 <아홉 마리의 뱀>을 연달아 강사장을 향해 휘둘렀다.
<아홉 마리의 뱀>이라는 채찍에서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뱀들이 나타나 강사장을 쫓고 있었다.
강사장이 담뱃대를 입에 대고 한 모금 길게 빨고 내뿜자, 연기는 다양한 동물로 변해 뱀들을 상대했다.
연기로 만들어진 동물들은 뱀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뱀을 잡는 망구스로 변해 뱀들을 위기로 몰아넣는데, 뱀들이 내뿜는 독들에 망구스가 닿자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얘가 정말, 엄마 친구보고 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네 생일에 선물해 준거, 네 엄마가 죽었을 때 내게 부탁한 거 몰라?”
“이 할망구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이 우리 엄마를 어떻게 알아.”
하기는 인간이 어떻게 묘인족의 전대 족장인 문영의 엄마를 알겠는가?
문영은 강사장의 말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강사장은 문영의 혼을 쑥 빼놓으려고 하는지, 계속 채찍을 피하면서 문영에게 트래시 토크를 걸었다.
트래시 토크란 축구나 농구에서 상대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상대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을 말한다.
“애야, 언니 말을 들어. 너는 지금 마교 애들에게 속고 있는 거야. 너 지금 전일기에게 빠져서 속고 있는 거라고”
“아니, 이 년이 지금 아까는 엄마 친구라고 했다가 지금은 언니라고 하는 거야. 도망가지 말고 정당하게 싸우기나 하라고”
문영은 채찍을 휘두르며 강사장의 뒤를 쫓았다.
강사장은 문영의 채찍을 피하며 연기를 내뿜고 있었지만 갈수록 동작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강사장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런 미꾸라지 같은 년!”
강사장은 아무래도 젊은 문영을 오래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문영도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강사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채찍을 휘두르는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속도를 더했다.
강사장은 이렇게 가다가는 패배를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험을 걸어야 했다.
강사장이 굳은 얼굴로 담배 한 모금을 연기를 내뿜자, 연기는 커다란 호랑이로 변해 문영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문영은 채찍으로 호랑이를 쳐내자 호랑이는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검은 그물이 문영을 향해 내려왔다.
강사장은 커다란 연기를 트릭으로 공격하는 척하면서 베일이 있는 검은 모자를 벗어 문영에게 던졌다.
베일이 있는 모자는 커다란 그물로 변하고 문영의 사방을 포위하고 살아 있는 그물로 변해 문영이 피하지 못하게 문영을 뒤덮었다.
문영은 그물이 자신의 몸을 조여오자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풀어주지 않았다.
강사장은 문영을 향해 담뱃대로 연기를 만들지 않고, 초밥 폭탄처럼 담뱃대의 담배가 총알처럼 연달아 쏘았다.
“퍽, 퍽, 퍽”
문영은 이를 악물고 그물 속에서 강사장이 쏘는 담배 폭탄을 몸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항복해! 이 년아. 그러다가 너 죽을지도 몰라.”
“죽어도 못해!”
문영은 자신의 혀끝을 깨물어 입안에 피를 모으고는 자신을 뒤덮은 그물을 향해 내뿜었다.
문영의 피를 받은 그물은 힘을 잃고 흐물거리고 문영은 그물에서 포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문영의 캣우먼 가죽 옷에는 온몸에 담배빵같은 구멍이 나 있었다.
분노한 문영은 눈에 핏발을 서리고 너덜너덜해진 라텍스 가죽옷을 입은 채로 강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담배 폭탄을 다 소진한 강사장이 손을 머리 위로 바짝 들고 문영에게 외쳤다.
“나! 항복이야. 항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