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박형수: 너는 멜로보다 에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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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어떻게 생각해?”
“내가 보기엔 너는 멜로보다 에로에 소질이 있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전혀 에로 장면이 아닌데도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잖아, 다음에 이규리 배우의 정사 씬은 어떻게 촬영할지 정말 기대된다.”
이규리가 휴게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 장면을 모니터를 보고 있던 촬영감독 박형수가 강산에게 말했다.
강산은 박형수가 자신의 전생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이규리 배우 몸매가 좀 괜찮지”
“몸매라면 서정아 배우도 못지않지. 그나저나 이규리 배우도 대단하다. 이렇게 노출이 심한 의상을 다 소화하고”
“레깅스 자체는 노출은 없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날 뿐이지.”
“이런 옷을 입고 실제로 나타나면 사람들이 눈을 둘 데가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이럴 것이라면 벗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지 않아?”
“왜요? 이번에도 벗기려고요.”
강산과 박형수가 모니터를 보면서 감탄을 하자, 어느새 이규리가 다가와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는 이 정도로 만족합니다만 이배우님은 어떠세요?”
강산은 이규리가 배꼽이 보이는 크롭탑이나 몸매가 드러나는 레깅스가 의상이 부담스러운지 망토로 가리고 있었다.
강산이 먼저 선수치고 나섰다.
“박성희 의상감독이 노출이 심한 옷을 좋아해서 큰일이네.”
“감독님, 의상이 너무...”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이배우가 잘 표현해서 괜찮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예전 생각이 나서요.”
이규리는 아무래도 에로배우시절의 기억이 나는지, 조금 부담스러운 표정이다.
이때 서정아가 모니터 주변에 나타났다.
서정아는 베트걸 패션, 광택이 흐르는 검정색 가죽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와~’하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사진예술 같은 서정아의 탄력적인 몸매에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 것이다.
“저는 좋은데요. 이규리 배우가 어색하면 저하고 스타일이나 컨셉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아뇨. 저는 제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요. 이대로 갈 거예요.”
방금까지만 해도 불편해하던 이규리가 서정아가 스타일을 바꾸자고 하자 마음에 든다고 잡아뗐다.
이규리는 가운을 벗으면서 일어나 서정아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규리씨. 나 때문에 일부러 그럴 필요 없어요. 방금 워킹만 봐도 위축된 것 같던데요.”
“내가요? 전혀요. 감독님, 내가 그래 보였어요?”
서정아와 이규리 사이에 묘한 자존심 대결이 흐른 전쟁터에 이규리가 강산을 끌어들였다.
으음, 이런 경우에는 말을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두 배우 중 어느 배우는 원수가 되는지, 두고두고 사골을 끓이듯이 우려먹을 것이다.
그런데, 뭐라고 말을 하지.
강산이 뭐라 말하지 않고 우물거리자, 이규리가 먼저 말했다.
“알았어요.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군요. 감독님, 다시 갈게요.”
이규리는 강산에게 이 말을 하고는 다시 세트장으로 돌아갔다.
황당한 강산은 서정아를 바라보자, 서정아는 강산에게 살짝 윙크하고 자리를 떠났다.
뭐지? 저 윙크의 의미는.
문제는 강산이 방금 씬에서 오케이 하자마자, 카메라하고 조명들이 이미 철수해버렸다는 것이다.
“형수형, 다시 세팅해주세요.”
강산은 이규리에게 NG를 걸고 다시 테이크를 가자고 하고 싶었다.
이규리가 예전보다 노출 씬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NG를 걸지 못했다.
이것은 이규리의 출연 조건이기도 했다.
강산은 이규리가 연기하는 윤서영은 비운의 주인공이 아니라 예측불허의 매력을 지닌 ‘팜므파탈’같은 치명적인 여자를 그리고 싶었다.
사실, 이 부분은 영화가 <삼검문> 삼부작중 첫 번째 도입부라 캐릭터에 대한 신비감을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편을 만들지 못하면 윤서영은 이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존재감을 부여하려고 과감한 의상과 복도를 걸어가는 워킹씬을 만들었다.
강산이 다시 촬영을 시작하려고 ‘레디 액션’을 외치자 이규리가 방금 전의 복장을 하고 휴게실 문 앞에서 주변을 살핀 후, 밖으로 나왔다.
취소다. 방금 전에 촬영했던 복장이 아니다.
이번에는 하얀색 벨벳의 망토는 가슴 부위에서 잘려져 짧은 망토가 되어 있었다.
하얀색 레깅스 팬티는 그대로였지만 속옷으로 입었던 검은 크롭탑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는 이규리가 복도를 걸어오는 모습을 정면으로 잡았는데, 걸음을 걸을 때마다 살짝살짝 가슴선이 보였다.
이규리는 카메라를 지나가고 카메라가 이규리의 뒷모습을 잡자, 뒤태 미인이라는 사과 같은 엉덩이, ‘애플힙’과 아름다운 엉덩이의 라인, ‘애플라인’을 보여주었다.
강산은 이규리의 애플 라인을 보고 엉덩이에 CG로 여우 꼬리를 만들어서 좀 더 리듬감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윤서영은 아직 꼬리가 아홉 개가 되지 못한 구미호다.
* * *
어두운 공간에 김경희와 두 제자의 머리 위에 다운 라이트가 비치고 있었다.
김경희와 두 제자의 주변에는 원형의 진법이 그려져 있고, 김경희와 제자들은 삼각대형으로 앉아서 참선하면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카메라는 김경희와 제자의 얼굴과 입을 줌인했다가 아웃하며, 그녀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문을 외우는 모습을 천천히 지나갔다.
윤서영은 그 모습이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잠시 후, 윤서영은 주문을 외우고 있는 그녀들을 향해 오른손을 입술에다 대고 ‘후우’하고 바람을 불었다.
손바닥에 있던 꽃가루가 하얀 나비가 되어 바람을 타고 김경희와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하얀 나비는 주문을 외우는 김경희와 제자들의 얼굴에 머물다가 다시 가루가 되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김경희와 제자들은 얼굴색이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변하고 ‘커억’하고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서영은 그녀들의 뒤에 있는 문으로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 안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었고, 어두운 벽에는 무사들이 수련하는 동작이 조각된 벽화들과 불교의 사천왕상 같은 무서운 얼굴의 무인상이 있었다.
하늘에서 빛줄기 하나가 내려와 가운데에 있는 탁자를 비추고 탁자 위에는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서영은 다시 오른손을 입술에다 대고 ‘후우’하고 바람을 불었다.
꽃가루는 바람을 타고 하얀 나비가 되어 날아가다가 탁자 위에 앉았다.
무슨 함정이나 방어벽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비를 날렸는데, 탁자 위에는 아무런 방어장치가 없었다.
서영은 가볍게 날아가서 탁자 위로 올라갔다.
상자 속에 놓여 있는 구슬을 들어 올리자, 천정에서 비치는 빛을 받은 천지인 구슬이 어두운 공간을 환하게 채웠다.
빛이 조금씩 사라질 즈음, 서영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컷, OK입니다.”
* * *
“사부님. 결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덕일이 하늘을 보자, <삼검문> 장원을 보호해주던 결계가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곧 하늘에는 수인족 들 중에 독수리와 조인들이 <삼검문>의 하늘을 뒤덮을 것이다.
“사형, 이제는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단기접전을 신청하셔야 합니다.”
단기접전(單騎接戰)이란 옛날 전쟁에서 자군의 사기를 높이거나 불필요한 병력손실을 막기 위해, 혹은 명예를 위해 전장에서 장수끼리 일대일로 치르는 결투를 말한다.
일본 말로는 일기토(一騎討)라고 하는데, 1990년대 이후 일본 코에이(Koei)사의 삼국지 게임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일기토가 장수 간의 일대일 대결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단기접전을 한다면 누가 나갈 것인가?”
“덕일 사형은 이곳을 지휘해야 하고 덕수 사제는 부상 중이라 저하고 강사장, 아니 문일 선자, 제자인 신이치와 준석이가 나가겠습니다. 그래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사형이 나서 주세요.”
“사제. 미안하네.”
“아닙니다. 사형. 이제 결계가 없어지면 수인족의 총공격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때는 포탄을 아끼지 말고 사용하시고 기관포까지 사용하게 되면 수인족도 큰 타격을 받고 일시적으로 소강상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 단기접전을 신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수인족도 단기접전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알겠네.”
“그럼 저는 단기접전을 준비하러 내려가 보겠습니다.”
이즈음, 결계가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다.
하늘은 완전하게 조인들로 가득하고, 땅에는 온갖 짐승들이 장원의 방벽으로 달려들었다.
“큰 사부님! 수인족들이 몰려옵니다!”
“덕수 사제. 그것을 열게”
“네 사형! 너희들은 빨리 가서 자리를 잡아라.”
덕수와 그의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기관총을 씌운 포장을 열었다.
포신 같은 커다란 총구를 하늘과 땅을 향해 조정하고, 기관총처럼 불을(?), 아니 초밥들을 토해 냈다.
‘텅’ ‘텅’ ‘텅’ 소리와 함께 초밥들이 하늘과 땅으로 날아가고 하늘과 땅에는 초밥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강산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공습하는 폭격기를 향해 소나기처럼 퍼붓던 대공포(對空砲)를 생각했다.
실제 대공포는 비행기의 속도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았지만, 줄줄이 날아가는 모습은 하늘을 뒤덮는 조인(鳥人)들에게 큰 위협적인 그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조인들은 불이 붙은 채로 방벽으로 떨어지고 그중에 일부는 살아남아 방벽에 있는 삼검문도의 제자들을 공격했다.
강산은 하늘과 땅에 있는 수인족을 상대하는 모습을 <서울불꽃놀이 세계축제>처럼 형형색색으로 하늘을 수놓는 불꽃의 색깔과 다양한 모습으로 불꽃이 터지는 장면을 CG로 담을 것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2001>에서 마법사 간달프가 호빗 마을에서 폭죽으로 용을 만든 것처럼, 초밥 폭탄이 터지면서 만들어진 불꽃들은 용으로 변해 조인들을 제거하였다.
처절한 전투장면에서 강산은 영화가 너무 심각하게 흐르지 않게 초밥 폭탄을 맞고 조인들이 폭발하는 장면의 템포를 영화음악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음악이 좋을까 고민했다.
제일 마음에 드는 음악은 <킹스맨. 2015>의 최고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사람들의 머리가 폭발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왔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다.
‘뺨~빰, 빠바밤 빠~밤,’
킹스맨에서는 <위풍당당 행진곡>의 템포에 맞춰 사람들의 머리가 폭발하는데 피와 살이 터지는 장면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버섯 구름이 피어오른다.
강산은 버섯 구름은 너무 잔인(?)한 것 같아서 불꽃 축제처럼 공중에서 연달아 터지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여담으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의 원 제목은 ‘Pomp and Circumstance’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의 3막 3장에 나오는 대사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