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신태형: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잖아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멸문이라는 말에 사형제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천년 역사를 가진 무림 문파가 자신의 대에서 멸문을 당한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문일 선자가 사형제들에게 말했다.
“우리 싸우지 말고 저 수인족 애들이 원하는 것은 그냥 주면 안 될까요?”
“문일 선자님. 저들은 우리 삼검문의 보물인 천지인 구슬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슬을 준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문일 선자님. 안일한 생각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천지인 구슬로 군마벽을 열면 마교 교주가 세상에 나와서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일 선자의 말에 덕일 스님이 말했다.
“그러니까, 수인족 애들은 자신들도 위험하게 될 텐데 말이에요. 왜 마교도를 도우려고 할까요?”
“수인족의 족장들이 마교도들에게 잡혀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어떻게요?”
“저야 잘 모르죠. 아무튼, 지금은 수인족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낼지 의논해야 합니다.”
“막기 어렵다면서요. 멸문의 위험이 있다면서요. 그래서 수인족의 의도를 알아야 해요.”
“그렇다고 천지인 구슬을 수인족에게 넘겨주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군마벽을 열려면 천지인 구슬이 필요하지만 마교 교주의 속박을 풀려면 천하제일의 명검이라는 간장(干將)이나 막야(莫耶)도 있어야 하잖아요.”
대화는 덕일 스님과 문일 선자가 주로 하고, 덕현이 가끔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마교 교주를 되살리려면 반인 반수의 피를 가진 여자의 심장도 필요하다고 하지요.”
“그 전설에 따르면 반인 반수의 피를 가진 남녀가 마교의 교주를 죽인다고 했지요.”
“선자님 말씀은 저들이 군마벽을 열게 천지인 구슬을 넘겨주고, 군마벽을 열면 마교의 교주를 죽이자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심오한 계획은 아니고요.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멸문을 각오하고 싸우기보다는 더 나은 방법이 아닌가 싶어서 하는 말이에요.”
마교 교주를 죽이자는 말에 문일 선자가 발을 빼자, 덕현이 말을 이었다.
“반인 반수의 피를 가진 남자라면 준석이가 있지만, 여자는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지 않습니까? 선자님. 혹시 그 여자를 찾았습니까?”
”......“
”그래서 저들에게 천지인을 내주자고 하시는 것입니까?”
덕현의 말에 문일 선자는 결심한 듯이 말했다.
“네. 그 여자를 찾았어요. 다만 그 여자가 전설에서 말한 그 여자인지는 모르겠어요. 인간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을 테니 반인반수가 맞을 거예요.”
“선자님은 그 아이를 이용해서 마교 교주를 없애자는 것이군요.”
“먼저 군마벽의 마교 교주를 나오게 구슬을 저들에게 넘겨주자는 말이죠.”
“음, 선자님. 그 여자는 어디 있습니까?”
“그 여자는, 이곳에 있습니다.”
* * *
강산은 세트장에서 신태형 대표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세트장은 온통 그린 스크린으로 채워져 있어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고 불평했다.
“후속 작업을 할 인원들은 충분하신가요?”
“마침, 방학 중이라 대학교 제자들과 직원들의 친구들을 통해 100여명이 아르바이트로 초벌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들의 실력으로 괜찮을까요?”
“초벌 작업이죠. 알바들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도와주고 진짜 작업들은 저하고 <디지털도메인>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마침 휴가를 와서 작업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마침, 휴가를 한국으로 온 친구들은 조시 켄트, 로버트 가너, 밥 고메즈로 신태형이 <디지털도메인>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다.
후일, 신태형이 <디지털도메인>으로 복귀했을 때 그의 오른팔 왼팔이 되었던 친구들이다.
이들은 신태형이 술과 여자, 맛있는 음식을 무료로 제공해 주겠다고 하고 남미로 여행 가려는 것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처음, 일주일은 강남의 클럽도 가서 즐기고 서울여행도 하고, 한우에 삼겹살에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놀았지만, 그 후에는 <태형그래픽스>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래도 조시 켄트는 주말에 홍대와 강남 클럽에 가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야근과 야식으로 한 달 사이에 10kg이나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그렇군요. 일정은 문제가 없나요.”
“그 부분을 상의드리고 싶습니다. 강감독님이 요구한 세계관을 CG로 반영하다보니 생각보다 일정과 비용이 계속 추가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강산도 고민하던 부분이다.
<삼검문>에 올인한다고 생각하니 그대로 지나갈 수 없는 부분이 많아지고 기왕에 망한다면 후회 없이 만들어보고 망하고 싶다는 객기도 생겼다.
그래서 처음에 생각하던 세계관을 넓혀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비용이 너무 추가되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신대표님께 상의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강감독님. 무슨 말씀이든지 하시죠. 우리는 지금 같은 배를 타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 영화를 삼부작으로 나누고 이번 영화는 <삼검문; 더 비기닝>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제작비용을 1편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이미 작업을 한 뒷부분은 어떻게 되나요?”
“아쉽지만 포기하도록 하지요. <삼검문; 더 비기닝>이 흥행하면 2편을 만들고, 2편이 흥행하면 3편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요.”
“그 말은 지금으로서는 어렵다는 말이군요. 정말 아쉽네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선택과 집중, 저는 1편 <삼검문; 더 비기닝>에 올인입니다. 신대표님도 이번 프로젝트를 마쳐도 이익이 없다면서요.”
“아쉽지만 작품 완성이 우선이지요. 아직은 젊으니까,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잖아요.”
강산은 신태형의 배려에 감동했다.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자신의 부족한 능력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신태형 대표나, 연기하는 배우들이나 촬영하는 스태프들은 잘못이 없다.
강산은 산태형 대표와 같이 작업 이야기로 자주 만나다 보니, 어느새 친해져서 사적으로는 형, 동생하며 지내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신대표님. 저보다 열 살이나 더 많지 않습니까? 젊다는 것은 조금, 장가도 가셔야 할 텐데요.”
“강감독. 분위기가 좋았는데, 꼭 그런 말을 해서 분위기를 깨야 하겠어.”
“아뇨. 장가 못가서 늙고 있는 동네 형님 생각이 나서요.”
“왜? 여자나 소개시켜 주면서 걱정을 하지, 말로만 걱정해 주는 척하고 일은 다 시키고 말이야.”
“아닙니다. 형님. 제가 참한 아가씨를 소개시켜 주려고 하는데 형님이 관심이 없을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그런 고민은 하지 말고 먼저 소개나 해줘. 나 내일 모래가 마흔이다.”
강산은 신태형 대표의 짝으로 김애란을 생각해 보았다.
사람 좋은 신태형 대표의 사무실에 야무진 모습으로 앉아있는 김애란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웃음이 지어졌다.
어, 그러다 강산의 일도 칼같이 계산하고 나올 텐데, 소개시켜주면 안 되려나.
아차, 김두호는 애란씨하고 어떻게 됐지?
두호가 문숙씨와 결혼하게 돼서 두호가 애란씨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잊었다.
두호하고 애란씨는 어떻게 됐었지.
또 기억이 나지 않네. 정말 이 기억력 큰일이다.
“참. 강감독. 지난번에 말한 거 준비해 놨는데 같이 확인해 보세”
신태형 대표는 강산을 데리고 세트장 한쪽 구석으로 갔다.
박형수 촬영감독도 그들을 따라갔다.
한쪽 구석 그린 스크린 앞에는 어떤 물건이 넓은 포장으로 가려져 있었다.
신태형 대포가 포장을 내리자, 그 안에는 수십 대의 카메라를 70도의 각도로 연이어 설치되어 있었다.
“강감독. 이 카메라들은 뭐야?”
“형수형, 수인족들이 초밥 폭탄을 피하는 씬들 중의 일부를 타임 슬라이스로 촬영하려고요.”
“타임 슬라이스?”
타임 슬라이스(Time Slice)란 말 그대로 시간을 조각 낸다는 말이다.
이 기법은 <매트릭스 1999>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총알을 피하는 장면이나 캐리 앤 모스가 경찰관들과 대결할 때 학다리로 공중 부양하는 장면에서 사용되었다.
강산은 삼검문도가 던지는 초밥 폭탄을 수인족들이 피하는 장면을 타임 슬라이스로 촬영하려고 카메라를 설치해 달라고 했다.
디지털카메라는 남대문의 회현 상가에서 중고카메라를 빌려 왔다고 한다.
서정아와 체조 선수들은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처럼 림보를 하듯이 허리를 눕혀서 촬영하였다.
이 장면은 매트릭스의 오마주다.
대신 검은 가죽 타이즈에 서정아의 몸매가 드러나게 해서 섹시한 느낌으로 촬영했다.
원영묵과 임채명은 팀원들과 같이 촬영에 들어갔다.
원영묵과 그의 무술팀은 옆으로 2바퀴 반을 뒹굴고 낙법을 펼치며 일어서는 장면을 맞추려고 10번이 넘게 뒹군 다음에야 강산에게서 OK를 받았다.
임채명과 그의 무술팀은 피켜 스케이팅에서 스핀 회전을 하듯이 회전하며 초밥 폭탄을 쳐내는 동작도 같이해야 했다.
이 장면에서 강산은 기존의 슬라이스 촬영에다 슬로우 촬영을 섞어서 슬라이스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덤블링 장면과 스핀 회전 장면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다.
안정민은 피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라고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무술가가 아닌 이상 연기 동작에서 포스를 만들 수 없어서 반대로 연기자의 특성을 살려 개그 코드를 섞기로 했다.
다른 수인족들은 초밥 폭탄을 피하거나 쳐내지만, 안정민의 표범은 피하려고 날뛰다가 다 맞는다는 설정이다.
강산은 안정민의 얼굴을 엉망으로 분장하게 하고 특히 눈두덩이 하고 입술 주위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게 분장해 달라고 했다.
안정민은 슬라이스 촬영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초밥 폭탄을 상상하며 놀란 표정을 촬영하고는 이어서 폭탄을 맞는 장면을 촬영했다.
* * *
윤서영(이규리 분)은 휴게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겨울 왕국. 2014>의 엘사처럼 머리를 길게 따고, 후드가 달린하얀 벨벳 망토를 입고, 속옷으로 검은색 크롭탑과 바지는 하얀 레깅스 팬츠를 입고 있었다.
이규리의 머리카락을 후드에 가릴지 고민하다가 후드를 쓰지 않고 머리카락이 밖으로 드러나게 했다.
덕분에 이규리는 후드를 쓰고 머리카락을 감춘 컷과 후드를 내리고 머리카락을 드러낸 컷을 촬영해야 했다.
이 의상은 강산이 박성희에게 특별하게 주문한 것이다.
몸매가 드러나는 레깅스 팬츠나 배꼽이 보이는 크롭탑은 이규리의 섹시한 몸매를 보여주기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레깅스나 크롭탑이 유행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빠를 뿐이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레깅스가 충격적인 노출로 여겨져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고 한다.
윤서영은 휴게실을 나와서 배꼽이 보이는 크롭탑을 입고 사과 같은 애플힙을 흔들며 패션쇼를 하듯이 건물의 뒤 복도로 걸어갔다.
“컷,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