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116화 (116/140)

〈 116화 〉 강산: 이런 게 돈의 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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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본의 아니게 촬영 중간에, 열흘 간의 휴가를 가지게 되었다.

미술감독이자 의상감독, 무대감독인 박성희가 강산에게 일주일만 더 달라고 부탁했다.

오마카세 씬에서 무협 씬으로 전환하는 장면에서 조리대가 ‘푹’하고 꺼지는 장면과 환상진이 가동되면서 수인족들과 삼검문 문도들이 다른 공간에서 만나는 세트를 만들기 위해서 이 삼일 정도 쉬려고 했다.

환상진으로 보호 받던 스시집 몽(夢)이 수인족에게 포위되고, 조리대가 있던 실내는 수인족과 삼검문도들이 대치하는 장소로 변한다.

강산은 넓고 어두운 장소에서 다운 라이트가 비추는 곳에서 싸우는 형식으로 공간을 나누어 촬영하겠다고 박성희 무대감독에게 말했다.

문제가 생겼다.

신태형 CG 감독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실제 배경을 촬영하고 그 위에 CG를 입히는 방식을 설명해 주면서 크로마키를 이용해서 촬영한 헐리우드 판타지 영화들을 보여주었다.

여기까지는 무난한 과정이었는데 다음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강산이 삼검문도와 수인족들이 싸우는 장면들을 샘플로 촬영해서 신태형 감독에게 보내 준 적이 있었다.

나중에 CG 넣을 때 참고하라는 의도로 보내준 것이다.

그런데 신태형 감독은 강산이 보내준 액션 샘플에다 헐리우드 판타지 영화처럼 아름다운 배경을 넣어서 만들어 왔다.

무술감독들은 박성희 무대감독에게 수인족과 삼검문도들의 결투 장소로 단순한 공간보다는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는 장소에서 액션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강산이 무술 감독을 두 분이나 섭외한 것은 실제 액션도 하고 개성적인 화면을 빨리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다른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

스태프들은 강산이 지난번 영화부터 액션을 중요시해서 일부러 두 명의 무술감독을 뽑았다고 수군거렸다.

두 무술감독은 스타일이 서로 다르다.

원영묵이 선이 굵은 투기 스타일이라면 임채명은 섬세하고 화려한 스타일이다.

아무튼, 한 영화의 같은 시퀀스에서 서로 다른 액션들을 보여줘야 한다.

강산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들에게는 무술 감독의 자존심이 걸린 매우 심각한 일이다.

두 무술감독은 강산의 선택을 받으려고, 각자의 무술팀을 가지고 서로 다른 스타일의 무술을 짜서 보여주었다.

선글라스를 쓴 강산은 큰 관심이 없는 듯이 의례적인 수고 인사만 했다.

강산은 이번 영화 <삼검문>의 흥행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영화 <삼검문>은 장도연의 출연 문제로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이 뒤로 밀리자, 그동안 스태프들을 지키기 위해서 급하게 결정한 영화다.

그래서 강산의 미션은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적자를 면하는 것이다.

영화 시나리오도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폐업을 앞둔 스시집 주인이 재개발로 원수가 된 친구들을 위해 초밥을 만들고 화해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너무 뻔한 스토리라는 생각에 반전을 넣어보기로 했다.

스시집이라는 큰 줄거리에 손님들이 귀신이라면 어떨까? 손님들은 자신이 귀신이라는 것을 모른다.

죽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에 이승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점에서 만나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중에 원한이 풀리면 성불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성불하는 이미지를 고민하다가 CG를 생각했다.

이제는 CG의 대가인 신태형 감독을 만나면서 판타지 무협영화가 되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무협영화의 특성상 배우들의 액션의 합이 중요하다.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나 액션들은 CG로 해결한다고 생각하니, 배우들의 작은 실수에 관대해진다.

사소한 실수들은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촉산류의 무협영화를 관객들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찍어야 손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강산의 시크한 태도는 원영묵과 임채명에게 묘한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첫눈>에서 본 정명성 감독이 보여준 국일관 액션은 평소에 알던 정명성의 액션 스타일이 아니다.

정명성은 강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산 감독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을 요구하고, 그 이상을 만들어 냅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듭니다. 요구 수준이 너무 높습니다. 그러나 끝나고 나면 무엇이 변해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강산 감독의 이런 요구가 정명성의 스타일을 바꿔 놓은 것이다.

정명성 무술감독은 영화 <첫눈>이후로 찾는 감독이 너무 많아서 이 작품에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원영묵과 임채명을 추천했다.

두 감독 중에 마음에 드는 스타일의 감독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는데, 강산은  두 감독 모두 선택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강산은 액션 영화를 잘 모른다.

과거 회귀하기 전에도, 회귀한 지금도 액션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액션이라면 남녀 간의 살이 부딪히고 유혹하는 스타일을 좋아하지, 남자들 간에 쇠를 들고 부딪히고 위협하는 스타일은 별로다.

영화 <첫눈>에서 유명한 국일관 시퀀스는 흥행에 실패하면 고생 길이 열리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만든 것이다.

<첫눈> 스타일의 마초 냄새가 많이 나는 스타일은 딱 질색이다.

그런데 강산이 됐다고 하는데도 무술 감독들이 액션 씬들을 다시 만들어 와서 봐 달라고 한다.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강산의 생각으로는 액션 씬은 그 정도면 됐고, CG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 지가 고민이었다.

뚱뚱한 회사원역의 채원영(원영묵 분)은 환상진이 데려간 공간에서는 본래의 모습인 근육질의 멧돼지로 변한다.

채원영의 액션 파트너는 요리사 막내 준석(이성호 분)이다.

준석은 영화 <삼검문>에서 특별한 비밀을 가진 자로 쿠크리 칼을 주무기로 사용한다.

원영묵은 한 달 전부터 이성호와 합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무술팀에서 특훈을 해왔다.

이성호는 훈련이 너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합이 맞아가고 거친 액션도 재미있었다.

근육질의 멧돼지로 분장한 채원영이 도끼를 들고, 준석이 쿠크리를 들고 싸우는 리허설 장면을 보고는 강산이 말했다.

“밀실에서 결투하는 느낌으로 합을 짜 주세요. 성호씨는 더 날렵하고 날카롭게 액션을 해주시고 원감독님은 좀 더 거칠게 해 주세요.

이런 느낌 있잖아요. 초반에는 준석이 원영을 쉽게 이길 것 같이 압도적인 속도의 액션을 보여주지만 우리 원영이는 죽지 않죠.

원감독님, 힘들어도 준석을 난폭하게 밀어붙여 주세요. 준석이 원감독님에게 ‘제발 죽어주세요’ 하는 느낌으로요.”

임채명도 다카시와 연습한 지도 한 달 정도가 되었다.

강산은 늙은 원숭이로 분장한 손일석(임채명 분)과 무사로 변한 신이치(다카시 분)가 검을 겨루는 장면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산 꼭대기 공터에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느낌으로 합을 짜 주세요. 늙은 원숭이는 재능이 많은 후배를 죽여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처음에는 손일석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죠. 신이치를 한 손으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에요.

신이치씨는 지치지 않고 계속 손일석에게 도전하고요. 결국은 신이치씨가 이기지만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느낌이에요.”

강산은 말을 하고 괜히 말했다 싶었다.

무술 감독들의 액션 씬에 대한 경쟁이 지나쳐서 파트너 배우들도 소속 무술 팀원이 되어 팀들 간의 경쟁으로 변하고 있었다.

자꾸 강산에게 와서 자기 팀의 액션을 평가해 달라고 했다.

그것 참, 그 정도면 됐다고 하는데도 진짜로 사람을 죽일 것 같이 연기했다.

연기나 액션이 맞지 않는 부분은 CG로 채우면 되는데, 저렇게 무리하게 연습하다가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강산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원영묵과 임채명에게 새로운 미션을 주었다.

원영묵 감독에게는 장민호와 안정민의 액션을, 임채명 감독에게는 김여정과 서정아의 액션 연기를 지도해 달라고 했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장민호와 안정민은 <두 자매><사랑의 데자뷰>에 나왔고, 김여정과 서정아는 <첫눈>에 나왔다.

<삼검문>에서도 거기에서 했던 특유의 대사를 분위기에 맞게 인용할 생각이다.

원래는 배우들의 나이와 육체적인 능력을 고려해서 장민호와 김여정은 춤을 추듯이 연기하면 CG로 폭탄이나 검광이 폭발하는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상대 연기자는 폭탄이나 검광을 피하는 화려한 액션을 하고 부족한 부분은 CG로 채우려고 했다.

생각해보니, 장민호 선생이나 김여정 선생도 적당한 운동을 하면 건강에 좋을 것 같다.

조금은 두 분에게 쌓인 사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부분도 없지 않은 면도 있었다.

진짜 이유는 무술 감독들이 두 분을 상대하다 보면 다른 배우들의 훈련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수인족으로 변하는 씬 부터는 문영의 역할은 최영신 배우 대신 서정아 배우가 출연한다.

서정아 배우의 출연은 시간이 되는 것도 있지만 영화 배역상 할머니 문영은 고양이 묘(猫)족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니 만큼 섹시하고 생동감 있는 액션이 필요한데 최영신 배우로서는 무리가 있었다.

서정아 배우의 멋진 몸매를 부각하는 캣우먼처럼 타이트한 옷을 입히겠지만 성적(?) 그런 분위기를 유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미션을 받은 무술감독에게는 미안하지만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특히, 임채명 감독 말이다.

김여정 선생을 상대하는 사람은 액션 훈련 뿐만 아니라 불평이나 잔소리도 이겨내야 하니까 말이다.

사실, 장민호 선생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   *   *

아무튼, 무대 공사 덕분에 강산은 강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강산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첫째 여동생 정연이와 신촌에서 만나 커피를 마셨다.

대학 진학하려고 둘째 여동생 정화가 올라오자, 정연이도 불러서 청담동 오피스텔 근처 새벽집에서 소고기를 사주었다.

다음 날에는 정연이와 정화를 데리고 롯테 백화점 본점으로 갔다.

대학에 가면 입을 만한 원피스 두 벌을 사주고, 아버지 옷으로 점퍼와 마이, 막내 정미 옷으로 정연이와 정화가 고른 두 벌을 사주고 나니 이백만 원이 넘었다.

돈으로 플렉스 한 것이지만 이런 게 돈의 맛인가 싶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돈이 훨씬 많았지만 너무 늦어서 느껴보지 못한 돈의 맛.

강산은 둘째 정화에게 대학에 합격하면 오피스텔에서 같이 지내자고 했다.

아무래도 영화를 촬영하다 보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많고, 어쩌다 쉬는 날이 생겨도 촬영장 근처 여관에서 잠을 잤다.

영화를 찍다 보면 강산의 오피스텔은 항상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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