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김여정: 죄다 사랑타령이잖아.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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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가칭 <삼검문(三劍門)>이라는 판타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과 같이 작품을 해본 배우들을 불렀다.
짧은 시간에 영화를 만들려면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칭 <삼검문(三劍門)>에는 열 명 정도의 인물이 등장한다.
애플에서 같이했던 장민호 선생, 이규리 배우, 선우혜 배우, 안정민 배우가 출연하기로 했다.
박미혜 배우에게도 연락했는데, 지금 연극공연 중이라 출연이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장민호 선생은 다음 영화 <봄날은 간다>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스케줄 조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규리 배우, 선우혜 배우는 이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예정된 스케줄을 조정해야 했다.
<첫눈>에 참여한 배우 중에서 김여정 배우, 이지만역의 이성호 배우, 진희씨 역에 최영신 배우가 참여하기로 했다.
최영신 배우는 손님 역이라 초반에는 초밥을 먹는 연기를 하지만, 이성호 배우는 주방 막내 역할이라 실제 스시집에서 2주일 동안 주방 막내로 일하면서 막내가 하는 일을 배웠다.
새로운 배우는 일본인 미우라 다카시와 무술감독 임채명과 원영묵이 출연하기로 했다.
짧은 머리의 미우라 다카시는 오다기리 죠를 닮은 연기자로 10년 이상의 스시 수업을 받은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삼검문>의 초반은 스시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전문적인 칼솜씨와 초밥을 쥐는 장면들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보여줘야 한다.
초밥을 요리하는 장면에서는 연기하는 배우 대신 초밥을 잡을 전문가 대역이 필요해서 다카시가 생선을 다루거나 초밥을 쥐는 손만 나오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이어지는 다른 배우들의 손 모양이나 피부톤이 차이가 나서 직접 출연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카시는 한국말을 할 수 있지만 조금 어눌한 발음이 있어서 강산은 가능한 대사를 줄여서 촬영하기로 했다.
* * *
“강감독, 나 분장 좀 다시하면 안 돼?”
“선생님. 제가 보기엔 괜찮은데요.”
“강감독. 강감독이 보기에 이 머리가 괜찮아. 새치가 너무 많아서 할머니 같잖아. 할머니.”
김여정은 분장을 마친 자신의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강산에게 불평하고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 김여정은 스시집 몽(夢)의 주인인 강마담 역을 맡고 있었다.
강산은 스시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상하면서, 등장하는 배우들이 조금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스시집 몽의 모습은 들어오는 입구외에는 어둡게 묘사하고 있다.
몽의 실내 공간도 스시를 만드는 공간과 손님들이 쉐프와 마주 보고 앉아있는 자리를 제외하고는 어둡게 처리하려고 했다.
“선생님. 강마담은 항상 베일이 있는 검은 모자를 써서 머리카락은 잘 안 보여요.”
“그래. 내 말이, 안 보이잖아. 굳이 이렇게 분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선생님. 검은 망사 베일 사이로 살짝 흰머리가 보여야 해요. 그래야 강마담의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워지거든요.”
“그럼 좋아. 머리는 그렇다 치고, 얼굴분장은 왜 하얗게 하는 거야. 조금만 더 칠하면 거 있잖아, 그거 뭐지? 일본에서 하는 연극 있잖아?”
“가부키요?”
“그래. 가부키 배우나 게이샤라고 해도 믿을 걸, 그리고 입술은 왜 이렇게 빨갛게 칠하는 건데?”
“신비롭게 보이게요. 선생님이 평범한 스시집 사장처럼 보이는 건 좀 아니잖아요. 빨간 입술 색깔은 긴 담뱃대의 끝부분의 붉은 옻칠 색과 맞추고 싶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요.”
“헵번 파이프!”
“네. 오드리 헵번이 블랙드레스를 입고 긴 담뱃대를 든 모습 있잖아요. 선생님이 아니면 누가 오드리가 담뱃대를 든 모습을 재현하겠어요?”
“그래?”
“네. 선생님. 그래서 선생님 드래스를 리틀블랙드레스 스타일로 뽑아달라고 했어요.”
강산은 김여정에게 이번 영화에 나오는 컨셉을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에서 나왔던 모습으로 하자고 꼬드겼다.
오드리 헵번이 어깨가 드러나는 <지방시>의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입고 긴 담뱃대, 헵번 파이프를 들고 있는 모습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강산은 스시집 몽의 공간 활용을 위해 제작비의 많은 부분을 세트장을 짓는데 투자했다.
카메라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스시집 몽의 주방은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부산하다.
쉐프인 김실장(장민호 분)은 신이치(다카시 분)와 준석(이성호 분)이 재료 준비하는 것을 굳은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신이치는 능숙하게 대형 생선을 기절시키고 생선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피를 닦아낸다.
이어 생선의 지느러미, 꼬리, 머리 부분을 제거하고 뼈와 살을 발라내어 살코기만 해동지에 싸서 냉장고에 보관했다.
강산은 이 컷을 원테이크로 뽑기를 원해서 신이치는 대형 광어와 농어를 십여마리를 잡아야 했다.
막내 준석은 뜨거운 김이 나는 샤리(초밥용 쌀)를 나무통에 올려놓고 적초를 주걱으로 골고루 섞고 있다.
초밥을 잘 만들려면 우선 밥을 잘 지어야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초밥 요리사가 되려면 ‘밥 짓기 3년, 밥 쥐기 8년’이란 말도 있다.
강산은 아무런 대사 없이 김실장, 신이치와 준석이 능숙하게 생선을 손질하고 밥을 짓고 샤리의 간을 보고 영업을 준비하는 장면들을 길게 촬영했다.
이 장면은 영화 <음식 남녀>의 오프닝 씬의 오마주다.
<음식 남녀>의 오프닝 씬은 매우 인상적이다.
주사부(랑웅 분)가 항아리에 있는 큰 민물고기를 잡아서 비늘과 뼈를 제거하고 생선살에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한 후, 4분 정도까지 아무런 대사 없이 음식을 만들고 있는 오프닝 씬은 존 패브로 감독이 만든 <아메리칸 셰프 2014>에서도 오마주 장면과 음악이 나온다.
* * *
강산은 세트로 만든 스시집 몽(夢)의 인테리어에 대해 박성희 미술감독과 상의를 많이 했다.
“카운터는 약간 어둡게 하고 조리대는 조명을 밝게 해서 연극무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박성희 미술감독은 카운터의 바깥쪽 공간은 블랙톤으로 어둡게 인테리어하고 내부의 조리공간에는 밝은 조명을 설치했다.
조리대는 실제 스시집에서 사용하는 편백나무 조리대를 설치했다.
다음 씬은 김여정, 강사장이 나오는 씬이다.
강사장은 검은 망사 모자를 쓴 채, 오드리 햅번의 블랙 리틀 드레스를 입고 카운터 바깥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 실장님. 오늘 예약 손님은 몇 명이에요?”
“네 명입니다. 사장님.”
“네 명 밖에 안 돼. 그럼 우리는 뭐 먹고 살아. 이렇게 손님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하는 거 아니야?”
“...”
“저 밑에 있는 중국집하고, 위에 있는 한식집 애들은 그렇게 잘 된다고 자랑하는데 우리는 이게 뭐야. 네 명이 뭐냐구.”
강사장은 술을 원 샷하고 푸념하듯이 말하자, 굳은 표정의 김실장이 강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술은 이제 그만...”
“내가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겠어요.”
“그래도 위스키는 좀”
“내가 독하지 못하니까 술이라도 독한 것을 마셔야지”
강사장은 술에 취한 듯이 갑자기 눈이 풀리면서 살며시 카운터 자리 위로 쓰러졌다.
“컷. OK입니다.”
강산이 OK를 하자, 김여정이 일어나 모니터가 있는 구석으로 왔다. 김여정은 자신의 연기를 확인하고 강산에게 말했다.
“강감독, 어때 괜찮아? 너무 오버한 거 아니야?”
“괜찮은데요. 제가 원하는 이미지입니다. 좀 더 망가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말이야. 강감독, 나는 왜 이런 역할만 시키는 거야. 지난 번에는 창녀, 이번에는 알콜 중독자, 이게 뭐야 이게. 다음에 찍는 영화라고 지난번에 준 대본 있잖아. 그 뭐야?”
“<봄날은 간다> 대본요.”
“그래, <봄날> 거기서도 이상한 역할을 주고”
“집사 역할이 이상해요?”
“그냥 집사가 아니잖아. 강감독은 왜 그래 뭐가 부족한 사람처럼 말이야.”
“내가 뭐가 부족한데요.”
“애정 결핍 말이야.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죄다 사랑 타령이잖아. 알고 보면 사람들이 사고 치는 거, 다 사랑 때문이야. 나 같은 나이 정도가 되면 남자도 사랑도 다 귀찮아지거든”
“선생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다 보이구만. 이렇게 얼굴에 써져 있잖아. 애, 정, 결. 핍.”
“선생님. 다음 씬 시작해야 하거든요. 준비해 주시죠.”
“그래. 그럼 나는 안 나오니까 좀 쉬고 있으면 되지.”
“아뇨. 아까 그대로 엎드려있어야 해요. 선생님이 배경으로 있어야 다음에 등장할 때 자연스러워져요.”
“강감독, 방금 전에 내가 한 말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지”
“네버요. 선생님. 준비해 주세요. 바로 슛 들어갈게요.”
* * *
강산은 흑백 화면으로 윤서영(이규리 분)이 비를 맞고 거리를 헤매다가 스시집 몽(夢)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박형수 촬영감독은 핸드헬드로 윤서영의 등 뒤에서 윤서영을 따라 걸었다.
빗물에 흠뻑 젖은 흰색 블라우스와 검정색 치마가 몸에 달라붙어 육감적인 윤서영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흑백으로 보이는 화면 중에서 스시집 몽의 간판을 밝히는 빨간 불빛만이 다른 색을 보여 주었다.
윤서영이 몽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홀에서 서빙을 담당하는 김경희(선우혜 분)가 윤서영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김경희의 선창에 조리대에서 준비하던 사람들도 일을 멈추고 합창을 하듯 다 같이 인사한다.
“어서 오십시요!”
김경희는 예약자를 확인하는 명부를 들고 윤서영에게 말했다.
“손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윤서영 인데요.”
“네. 윤서영님. 손님, 예약하셨어요?”
“예약 안했는데요.”
“손님. 여기는 예약제로 운영하는 곳이라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너무 지치고 배가 고파서 그런데요. 사정 좀 봐주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손님. 저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손님이 입구에서 들어오지 않고 소란스러워지자, 조리대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사람들도 입구를 쳐다본다.
이때, 술에 취해 졸고 있던 강사장이 일어나 입구로 걸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야? 소란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