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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112화 (112/140)

〈 112화 〉 강산: 나를 찾지 말라고 해줘.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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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최성배 매니저를 만나고 청담동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거실과 방으로 이루어진 투룸의 오피스텔은 노량진 고시원 방에 비하면 고급 호텔이나 다름없었다.

강산은 냉장고에서 당근 쥬스를 꺼내 들고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TV에서는 미국 9.11테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8월 1일에 <첫눈>을 개봉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9.11 이후, 한동안 미국의 9.11테러 이야기가 모든 사회적인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2001년 9월 7일에 개봉한 <무사>는 정우성과 장쯔이가 출연하고 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하면서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9.11테러로 시기를 잘못 만나 흥행에 참패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강산은 <첫눈>이라는 영화에 올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라도 흥행에 실패하면 다시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영향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행운이 따랐다.

강산에게 9.11테러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다.

회귀하기 전에 9.11은 여배우가 촬영 도중에 잠적해서 누더기가 된 에로영화를 재편집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일하느라 이틀이 지나서야 알았다.

9.11테러 이후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시작하고,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이 쓰러지고, 2011년의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로 이어졌다.

이런 세계사적 사건하고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에로영화를 만드느라 밤샘 작업을 하는 사내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9.11테러는 회귀한 지금도 먼 나라 이야기인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최룡해 사장은 9.11테러를 이용한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벌었다고 들었다.

이번에도 돈을 벌었을까?

강산은 장도연의 매니저와의 미팅을 생각했다.

장도연의 출연 약속으로 <봄날은 간다>의 제일 큰 문제는 해결했지만 새로운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5개월이지만 제작이 지연되고, 고희윤의 출연은 새로운 고민이다.

사실, 고희윤의 영화 출연은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서유석의 노래 가사처럼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게 어디 한두 번으로 끝날 일인가?

고희윤과의 사랑과 이별은 너무 아픈 기억이지만 현재의 일이 아니라 전생의 일이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고희윤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전생에서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혼자서 오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산은 <봄날은 간다>에 등장하는 배역들에 고희윤의 이미지를 넣고 머릿속을 돌려보았다.

가능한 중요 배역을 피해서 돌리다 보니, 특별하게 좋거나 싫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희윤의 미모가 낭비되는 것 같았다.

사적인 감정 때문에 고희윤이라는 배우와 영화 <봄날은 간다>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서 머리가 아파왔다.

아직은 5개월의 여유가 있으므로 최대한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   *   *

늦어진 5개월 동안 스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스텝들도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고 생활을 해야 하는데, 예술 한다고 손가락만 빨고 살 수는 없다.

스텝들에게 5개월의 제작 지연은 생활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5개월 동안 스텝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없으므로 최대한 빨리 다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영화 제작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불편한 소문이 돌기 전에 말이다.

“두호야. 명세에게 일주일 동안 나를 찾지 말라고 해줘. 너도.”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일주일 동안 새로운 작품 하나를 쓰려고 해”

“장도연 때문에? 그런데 산아. 다음 영화에 장도연이 꼭 있어야 하는 거야”

“왜? 무슨 일 있어?”

“아냐. 네가 너무 장도연에게 집착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다른 배우들도 있잖아?”

“다른 배우들도 있지만, 이 작품을 장도연이 아니면 안 돼. 그녀를 모델로 쓴 작품이거든”

“알았어.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이해해 줘서 고맙다. 일주일 동안 전화기를 꺼 놓을 테니까, 연락 안 된다고 오해하지 말고”

“일주일이면 되는 거야?”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어.”

“음, 알았어. 어디 있는지나 말해 줘”

“나도 몰라. 아직 안 정했어.”

강산은 유명세와 김두호에게 일주일 동안 자신을 찾지 말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시나리오 한 편을 쓰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강산은 2001년에 흥행했던 영화들을 생각해 보았다.

2001년 흥행 1위를 기록한 <친구>가 3월에 개봉되고, <신라의 달밤>이 6월, <엽기적인 그녀>가 7월, <무사> <조폭마누라>가 9월, <킬러들의 수다>가 10월, <달마야 놀자>가 11월, <두사부일체>가 12월에 개봉되었다.

2001년에 흥행한 영화들을 보면 흥행 순위 10위 가운데 6편이 조폭과 관련된 조폭 영화다.

조폭 영화 덕에 2001년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2000년의 30%에서 47%까지 뛰어올랐다.

그렇게 생각하면 강산의 영화 <첫눈>도 조폭 영화에 속해서 흥행에 성공한 것인가?

강산은 미래의 유행을 알고 있다고 해서, 유행에 편승하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번 생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것이다.

아니, 만들고 싶다는 말이다.

참고로 소심한 말이지만 지금 당장 그렇게 한다는 말은 아니다.

강산은 회귀하기 전에 보았던 수많은 영화와 시나리오들을 생각해 보았다.

<음식남녀. 1994> <러브레터, 1995> <고령화가족 2013> <퍼펙트 스트레인저 2016> <미스백 2018> 같은 화려한 액션 같은 매운맛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재미있는 영화 말이다.

두세 달의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소재로서 단순한 줄거리지만 지루하지 않고 흥미로운 이야기.

큰 줄거리 위주로 작은 서사는 대사로 처리하면서도 긴장감을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시골 할머니와 소년 이야기는 어떨까?

시골 할머니에게 이혼한 며느리가 다니던 술집에서 사고 치고 한 달만 맡아 달라고 아들을 맡기고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다.

철이 없는 할머니와 애늙은이 소년이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는 이야기다.

철이 없는 할머니에게 시골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년은 한 달 동안 맡아 놓은 거추장스러운 짐이다.

할머니는 손자를 데리고 노인정에 화투 치러 가고 술에 취해 술주정하다가 다른 할머니에게 무시 당하는데 소년이 할머니를 도와준다.

소년은 소년대로 전학 온 시골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아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첫사랑 소녀를 만난다.

나중에는 소년이 할머니들 사이에서 화투를 치고, 친구들과도 친해지면서 시골 생활에 적응하고 할머니와 친손자가 되어간다.

갈등 요소로 어느 날 며느리가 양아치같은 애인을 데리고 나타나 소년을 데려가려고 하면서 극적인 장면을 만든다.

철이 없는 할머니역으로 김여정 선생이 연기하고 똑똑하고 야무진 아역배우를 섭외하면 어떨까?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김여정 선생의 투정을 참아내는 인내와의 전쟁이 될 것 같아서 김여정 선생의 철없는 할머니는 X.

김여정 선생 대신 강혜자 선생을 할머니 역으로 캐스팅 해보자.

자신을 시골에 두고 떠난 엄마를 미워하는 손자의 온갖 투정들을 강혜자 선생이 미소로 받아주고, 손자의 상처 입은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그림은 어떨까?

아니다. 잘못하면 내년에 나올 <집으로... 2002>와 내용이 너무 비슷해질 것 같아서 X.

그럼, 할머니와 사춘기 소녀는 어떨까?

할머니는 김여정 선생이나 강혜자 선생으로 하고, 할머니하고 같이 사는 사춘기 손녀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상상했다.

손녀가 어느 날 사고를 당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벌어진 일을 밝히기 위해 나서면서 결손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청소년의 왕따 문제, 이성 문제를 고발하는 이야기다.

강산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지만, 공부가 부족해서 소녀의 문제와 할머니의 진정을 심도 있게 들어가지 못하고 겉모습만 그릴 것 같았다.

지금은 사회문제 공부가 부족하고 소녀의 감성도 잘 모르고 잘못하면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갈 것 같아서 X.

하지만 나중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강산은 영화는 관객을 위로해주는 이야기 친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책을 보고 산을 오르고 산책하고 사랑하고 노래 부르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그중에 사랑에 실패하거나 사람에 상처받았거나 인생에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영화 속 음식이지만 맛있는 음식으로 다시 일상을 시작할 힘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강산은 음식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강산은 어떤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생각했다.

회귀하기 전에 강산은 인상 깊었던 음식 영화로 <바베트의 만찬 1987> <음식남녀 1994> <스시장인: 지로의 꿈 2011>이 있었다.

강산은 폐업을 앞둔 스시집을 생각했다.

30년이 넘게 장사를 하던 스시집 란(蘭)이 주변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스시집도 폐업을 하게 됐다.

스시집 사장 종두는 폐업을 앞두고, 그동안 신세를 진 친구들에게 오마카세(주방장 특선요리)를 대접하려고 한다.

스시집 란에 모인 종두의 친구들은 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재개발을 앞두고 서로에게 화가 나 있었다.

재개발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싸우다가 서로 원수가 되어 있었다.

원수가 된 친구들은 종두가 만든 초밥을 먹으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응어리졌던 마음도 풀리기 시작한다.

종두의 오마카세가 진행되면서 란에 모인 사람들은 그동안 숨겨두었던 감정들을 고백한다.

서로에 대한 오해와 실망, 고마움과 미안함을 서로에게 고백하고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내용이다.

강산은 시나리오를 마치고 보니, 가칭 <오마카세>가 바베트의 만찬과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을 짜깁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무언가 신선하지 않고 익숙한 느낌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 1996>같은 괴랄한 영화를 만들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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