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차명수: 정말 개 같은 인생이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차명수는 모텔방 구석에서 극악한 고통에 홀로 몸부림치며 신음하고 있었다.
간신히 화장실로 들어간 차명수는 팔을 걷어 고무줄로 묶고 마약을 주사했는데, 이미 그의 팔에는 주사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차명수는 주사를 맞고 얼굴이 편안해지자 고무줄을 무심하게 버리고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정리하고 모텔 방을 나섰다.
이 장면은 나중에 밝혀질 사건에 대한 복선을 주기 위한 장면이다.
강산은 고통에 빠져 신음하는 장면과 편안해진 얼굴로 모텔방의 나서는 장면에서 자연스러운 음악의 반전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캔디Candy, 2006> 닐 암필드 감독처럼 마약을 주사할 때 성가 음악이 흘러나오게 해서 미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룸살롱 <헤라>에서 두 번째 씬은 차명수가 김성규를 만나러 왔다가 이미숙이 헤라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이미숙을 데리고 나오는 씬이다.
강산은 이번 영화에서 임정재에게 항상 수트를 입혔다.
임정재는 수트가 잘 어울린다. 아직은 젊은 나이라 수트가 불편할 수 있지만, 강산이 본 임정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수트를 우아하게 입을 줄 알았다.
임정재의 수트를 위해 의상 감독이 없고 제작비 여유도 없지만, 임정재의 수트 만큼은 투자하고 싶었다.
고급스럽게 잘 빠진 수트를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원단을 떠다가 40년 경력의 신사복 전문 테일러에게 의상을 맡겼다.
카메라 렌즈로 임정재가 수트를 입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는 부분이 있다.
임정재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떻게 걸어야 차명수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 * *
차명수는 외제중고차 벤츠를 몰고 운전하고 있다.
벤츠의 넓은 차창에는 거리의 네온사인과 조명들이 아름답게 반사되고 있었다.
‘끼익’하고 벤츠는 <헤라> 룸살롱 앞에 섰다.
발레파킹을 하는 주차요원들이 나와서 차창을 두드리고 차명수는 익숙한 듯이 차키를 넘겨줬다.
차명수가 <헤라> 입구로 천천히 들어서자, 여러 룸에서 들려오는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가 경쟁하듯이 들려왔다.
마담과 웨이터들은 앞서 온 단체 손님들을 맞이하려고 번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때, 가슴이 깊게 파인 초록색 룸복을 입은 이미숙과 아가씨들이 룸으로 들어가려고 명수를 지나갔다.
명수는 순간적으로 미숙을 본 것 같아서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명수에게 머리에 기름을 바른 어린 웨이터가 차명수에게 달라붙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다른 일행분은 계십니까?”
“나! 나는 손님 아니야. 여기 사장 성규형 좀 보고 가려고.”
“손님. 약속은 하셨습니까?”
“성규형에게 명수가 왔다고 전해줘요.”
잠시 후, 웨이터가 차명수를 사장실로 안내하고 돌아갔다.
차명수가 ‘똑’ ‘똑’ ‘똑’ 사무실 문을 두드리자, 사무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차명수가 문을 닫고 들어서자, 룸에서 들려오는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가 멈췄다.
사무실 안에서 부하들과 잡담을 하고 있던 김성규는 소파에서 일어서서 차명수에게 말했다.
“어~이. 명수야. 무슨 일이냐. 니가 이곳에 찾아오고”
“근처에 온 김에 성규형, 얼굴 좀 보고 가려고 왔어. 온 김에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고”
차명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김성규의 반대편 소파에 앉아서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성규는 명수의 서늘한 태도에 무언가 다른 느낌이 오는지 말을 더듬는다.
“며, 명수야. 나가 시방 바쁜디 말이여. 야들허고 중헌 야기허던 중이라 말이여. 야들허고 야기허게 쪼깐 밖에서 기둘려야 것는디.”
“그렇다면 기다려야지. 나란 놈은 시간밖에 없는데 말이야. 얼마 전에 짝귀를 만났던 이야기 좀 하려고 하는데, 여기 <헤라> 얘기도 있고 말이야.”
“그려, 그러믄 느그들 쫌 나가 있어라. 오랜만에 동상이 찾아와서 이야기 좀 헐랑게”
“네. 형님”
성규는 부하들을 나가자 다급하게 명수에게 말했다.
“짝귀 성님이 너헌티 뭐라고 허더냐?”
“나보고 말이야.”
“그래 너보고”
“여기 <헤라> 좀 맡아볼 생각이 없냐고 하데?”
“너는 뭐라고 했는데?”
명수는 성규의 긴장하는 얼굴이 재미있는지 잠깐 뜸을 들인다.
성규 역을 맡은 강태식 배우도 성규 역에 빠져서 긴장했는지, 사투리를 쓰는 것도 잊었다.
강산도 긴장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굳이 ‘NG’를 걸지 않았다.
“나, 나는 생각 좀 해 보겠다고 했지.”
“그래. 잘 혔다. 잘 혔어. 이 일이 옛날허고는 전혀 다른 일이 되어 부렀어야. 옛날에야 재미 좋았지. 시방은 짭새들, 소방서 놈들, 구청 놈들 상대허려면 기가 다 빠져부러야.”
“성규형. 이런 일, 난 관심 없어.”
“그래 잘 생각혔다. 명수야. 니, 용돈 필요허지.”
성규는 뒷주머니 지갑에서 파란색 수표 세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예요?”
“니가 이제 나왔은 게 돈이 필요할 거 아니여.”
“내가 돈이 필요한 거 하고, 성규형하고 무슨 상관이 있길래 돈을 주는 거예요? 나한테 귀찮게 하지 말라고 주는 거예요.”
“아니야. 그게 아니고”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건가.”
“그게 아니라니까”
“성규형, 내가 빵에 들어갈 때 형에게 몇 가지 부탁드렸죠.”
“......”
명수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성규를 바라보자, 성규는 명수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하고 미숙이를 돌봐 주는 조건으로 <헤라>를 맡는 것을 밀어드린 거 아닌가요?”
“미안하다. 내가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그랬다.”
“성규형. 짝귀한테서 묘한 말을 들었어요.”
“무슨 말?”
“미숙이 선수금 말이에요.”
* * *
이미숙이 화가 난 표정으로 걸어와서 김성규의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성규의 부하가 미숙을 막아섰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성규 오빠 만나러 왔는데”
“지금은 안 됩니다.”
“허 참, 어이없어. 비켜, 안 비켜.”
미숙이 억지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부하가 미숙의 손을 잡고 들어가지 못하게 끌어당겼다.
“뭐야 이거! 이거 손 안 놔. 손 안 놔.”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
“뭐야. 너! 너 지금 내 가슴 만졌어.”
미숙이 가슴을 만졌다고 생떼를 쓰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구경거리가 생긴것처럼 모여들고 당황한 성규 부하는 잡았던 미숙의 손을 놓았다.
“이 새끼가 정말, 너 내 가슴 만졌지. 만졌네. 만졌어”
성규 부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흔들며 아니라고 결백을 호소했지만, 주위의 남자와 여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미숙은 피식하고 웃으며 성규 부하를 뒤로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성규의 굳은 표정에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아 보였지만 미숙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미숙은 성규의 얼굴에다 대고 숨도 쉬지 않고 랩을 뱉듯이 대사를 쳤다.
“성규 오빠. 요즘 애들이 왜 이래? 기도하는 애는 내 가슴 만지고 손님이라는 애는 신고식을 하라는데 ‘수지’라고 인사했더니, 신고식을 제대로 하라는 거야. 요즘 신고식은 옷 벗고 계곡주를 하는 거라고 말이야. 요즘 신고식은 그렇게 하는 거야?”
성규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알을 왼쪽으로 굴리며 옆에 명수가 있다고 신호를 계속 줬지만,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미숙은 참지 않았다.
“오빠. 정말 그런 거야. 내가 오랜만에 나왔다고 사기 치는 거 아니야. 내가 한 몸매 하니까 옷 벗겨 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냐, 그게 아니고”
“오빠. 눈 아파. 왜 그렇게 눈을 굴리고 그래.”
그때, 차명수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미숙아, 너 여기서 뭐 하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미숙의 눈이 커진다.
“명수야. 네가 왜 여기 있어?”
“그건 내가 할 말 같은 데, 미숙아. 네가 왜 여기 있냐?”
“...”
갑자기 미숙이 사무실 밖으로 도망치려고 하자 명수가 재빨리 문 앞을 막아섰다.
“놔 줘. 제발 가게 해줘”
미숙은 명수에게 가달라고 했지만, 문을 막아선 명수는 미숙의 눈을 바라봤다.
미숙이 고개를 돌리자, 명수는 미숙의 허리를 잡아서 소파 위로 떠밀고는 상의 수트를 털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정말, 개 같은 인생이구만”
“......”
“아버지하고 애인을 살리려고 누명을 무릅쓰고 빵에 들어갔더니만, 아버지는 사채에 허덕이고 애인이라는 여자는 몸이나 팔고 있고”
“......”
“정말, 좃 같은 인생이네”
명수는 불을 붙이지 않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천천히 길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컷, OK입니다. 다음 씬은 한 시간 정도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강산이 OK를 하자, 임정재, 서정아, 강태식 배우는 모니터에서 자신이 한 연기를 확인했다.
모니터에서 자신의 연기를 본 임정재가 강산에게 와서 말했다.
“감독님. 바로 다음 씬을 가는 것은 어떨까요?”
“무슨 일이 있어요?”
“지금 감정이 남아 있을 때 쭉 달려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괜찮아요. 임배우님. 다음 씬은 지금 씬과는 톤이 달라지니까요. 조금 쉬었다가 감정을 고르고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지금 감정이 너무 아까워서요. 이렇게 배역에 몰입해본 것은 처음인 것 같거든요.”
“나중에는 이런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 나중을 위해 지금은 열정을 아껴두죠.”
강산이 보기에도 임정재의 컨디션이 좋은 것 같았다.
임정재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던 섬세한 표정 연기나 사소한 동작에도 집중력이 남달라 보였다.
“그런데 감독님. 마의 상의를 터는 명수의 버릇은 어떻게 만든 거예요?”
“그거요. 폼생폼사하는 명수의 캐릭터를 나타내는 데 무슨 버릇이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가난한 조폭이지만 고급 수트를 좋아해요. 그래서 수트가 구겨지는 것을 아주 싫어해서 누가 수트에 손대면 바로 털어내는 거죠.”
“저도 그런 버릇이 생기는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요?”
“지난번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다가 제 옷을 더럽혀서 나도 모르게 ‘조심해’하고 아이에게 소리치게 되더라고요. 내가 말해 놓고 한참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연기자들은 항상 감정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해요. 축구선수들이 필드 위에서는 늑대처럼 거칠지만, 필드를 벗어나면 순한 양처럼 변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말로는 알고 있는데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네요.”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죠.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