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차명수: 약속을 왜 안 지켰습니까?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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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회귀한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회귀하자마자 영화를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다시 영화를 만들면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지났다.
강산은 자신이 회귀한 것이 맞는지, 아니면 예지몽을 꾼 것처럼 긴 꿈을 꾼 것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회귀 전의 예전 기억들은 흐릿하고 지금의 일들은 겪어보지 못한 과거이자 새로운 현실이다.
제작비는 언제나 부족하고 배우들은 연이어 사고가 나고 상황에 맞게 대본을 고치느라 잠도 자지 못하고 밤새워 수정하고 있다.
맨붕이 올 것 같은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출연중인 배우들과 스텝들이 하드한 일정을 참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삼일에 하루 쉬는 것을 보장해 주었지만, 점차 사일에 하루, 지난주는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
그렇다고 돈을 더 주는 것은 아니다.
강산은 자신이 회귀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있다.
제작부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텝들에게 휴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강산 자신이 쉬고 싶은 이유가 더 크지만.
* * *
강산은 짝귀역에 김춘배, 이지만역에 이성호 배우를 캐스팅했다.
김춘배 배우는 키는 크지 않지만 험악하게 생긴 이목구비와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연극무대를 장악하는 연기력에 반해 짝귀역으로 캐스팅했다.
김춘배 배우를 기억하는 것은 강한 마초 이미지 때문에 누아르 영화에서 조폭 보스나 인상적인 악당 캐릭터로 많이 캐스팅됐다.
반전 이미지로 심성이 착한 동네 아저씨나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인공 아들을 혼자 키우는 홀아비 역할도 하기는 했었다.
나중에는 '조폭 보스 전문 배우'라고 할 정도로 조폭 보스역을 많이 맡았다.
이지만 역의 이성호는 강산이 직접 캐스팅했다.
본래는 짝귀역의 김춘배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김춘배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다가, 상대역으로 출연한 이성호 배우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아직 연기 경험이 많지 않아서 연기에 기복이 있어 보였지만 김춘호 배우에게 맞서 서늘하게 째려보는 눈빛에 반했다.
한밤중에 길을 가다 이런 캐릭터를 만난다면 지릴 것 같았다.
“감독님. 질문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이지만은 왜 이런 짓을 할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이지만이가 친구 아버지 차영남을 폭행하고 자기 대신에 감옥 간 친구 차명수를 해치려고 하잖아요.”
이성호가 이지만이 어떤 사람인가를 물어오자, 강산은 이성호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지만의 이미지를 이야기했다.
“저는 이지만이 결손 가정에서 자랐다고 설정했어요. 이지만에게는 이모부 짝귀가 아버지 대신이고 반대로 짝귀도 이지만을 아들처럼 여기죠.”
“지만이는 왜 명수와 사이가 좋지 않은 건가요?”
“친구가 되고 싶은가요?”
“가능하다면요. 같은 고등학교 출신에다, 짝귀파 동료기도하고 임정재씨가 너무 멋지잖아요. 나중에 명수를 찌르는 장면에서 지만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해서요.”
“이지만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나쁜 짓인지도 몰라요. 자기가 제일 중요한 어린아이 같은 성격이에요. 그리고 차명수와 친해지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왜요?”
“이미숙 때문에요. 짝귀파 똘마니 차명수와 술집 아가씨 이미숙이 서로 사귀고 있었는데 이지만이 이미숙에게 나쁜 짓을 했거든요.”
“나쁜 짓요?”
“강제로 하는 거 있잖아요.”
“아~. 차명수와 이지만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겠네요.”
“그렇겠죠.”
“그럼 감독님. 이지만의 얼굴에 흉터를 그려 넣으면 어떨까요?”
“어떤 의미죠?”
“이지만이 차명수에게 얼굴을 다치고 복수하려고 한다는 거죠.”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렇게 하죠.”
* * *
오늘 촬영할 씬은 차명수와 짝귀가 만나는 씬이다.
의심이 많은 짝귀가 처조카인 이지만을 데리고 나온다는 설정으로 차명수, 짝귀, 이지만이 등장한다.
강산은 이 씬에서는 남자 이야기가 분명하게 나오게 하고 싶었다.
임정재와 김춘배에게 정장 수트를 입게 하고 이지만에게는 수트 대신 셔츠만 입게 했다.
임정재는 마른 몸매를 강조하는 진회색 수트와 김춘배는 조금 헐렁거리는 편한 남색 수트를 입혔다.
임정재는 기대했던 대로 슬림핏이 잘 어울렸지만, 김춘배의 몸매가 살이 쪄서인지 단추를 끼우지 못해서 열어두라고 했다.
이성호의 얼굴에는 오른쪽 눈 옆에서 턱까지 15cm가 넘는 가는 칼선이 있었다.
강산은 이성호에게 별도로 제작한 진보라색 비단 셔츠를 입히고, 체인 금목걸이를 목에 두르게 했다.
강산은 임정재와 짝귀역의 김춘배, 이지만역에 이성호 배우에게 동선과 톤, 이미지를 설명하고 사전 리허설을 한 후, 촬영에 들어갔다.
오후 6시라는 설정상, <신한건설> 사무실 복도에는 노을이 스며들고 있었다.
강산은 조명팀에게 노을과 함께 걸어오는 임정재의 모습을 촬영할 때 임정재의 얼굴에 노을빛이 스며들게 비추라고 주문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내리는 장면부터 사무실 정면으로 걸어오는 장면과 뒤에서 걸어가는 장면, 옆에서 걸어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편집된 장면에서는 임정재라는 피사체가 노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음악이 긴장된 분위기를 살려줄 것이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의 등 뒤로 흐르던 <always heart="" in="" my=""> 같은 기타 음악을 주문할 것이다.
차명수는 노을에 반사되는 창문 복도를 따라 걸어오다가, <신한건설> 사무실 입구에 서서 ‘똑’ ‘똑’ ‘똑’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ㄷ’자 형의 검정 소파 중앙에 짝귀가 앉아있었고 오른쪽 소파에는 이지만이 앉아있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형님”
차명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머리를 90도로 숙이고는 짝귀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래, 고생했다. 명수야.”
“네.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편안하게 지내셨나 봅니다. 배도 나오고”
“나이를 먹다 보니 배도 좀 나오고 그렇지. 너는 어떻게 지내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님, 손님 대접이 영 아니네요. 그래도 동생이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음료수도 한잔 안주고 말이에요. 내가 있을 땐 그래도 손님이 찾아오면 음료수라도 대접했는데 말이에요.”
명수의 말을 들은 짝귀는 지만에게 음료수라도 내오라고 손짓을 한다.
짝귀에게 배가 나왔다는 말은 임정재의 애드립이다.
김춘배 배우가 상의 수트 단추를 채우지 못해서 풀어 두었더니 배가 나와서 그런지 셔츠가 타이트하게 보였다.
지만은 사무실 구석에 있는 냉장고에서 오렌지 쥬스를 유리컵에 따라서 명수앞에 ‘탁’하고 내려놓고 자기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지만씨, 고마워. 아직도 음료수 당번을 못 벗어났어?”
“진작에 벗어났어 새꺄. 내가 이제는 짝귀파의 넘버 쓰리야.”
“넘버 쓰리는 무슨, 내가 있었으면 아직도 사무실 바닥이나 닦고 있을 놈이”
“아니, 이 자식이 정말 죽으려고 환장했나!”
“여자들 아니면 상대하지도 못하는 놈이 큰소리는”
이지만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서서. 특유의 서늘한 눈빛으로 차명수를 노려보았다.
차명수도 자리에서 일어나, 이지만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누구 애비도 깝죽대다가 내가 손 좀 봐줬지!”
“너 뭐라고 했냐. 이 새끼, 이번에는 얼굴로 끝나지 않을 줄 알아. 네 놈 명줄은 내가 꼭 끊어주마.”
이지만은 차명수의 말에 자극을 받은 듯 눈빛이 번들거린다.
카메라는 서로 노려보는 얼굴을 밑에서 클로즈업하고 서로 칼을 숨기고 있는 오른손을 비춰주었다.
여차하면 칼부림이 벌어질 상황이었다.
“그만!”
일촉즉발의 상황에 짝귀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제 자리에 가서 앉아라. 명수야. 너는 싸움을 하려고 나 찾아왔냐. 인사하러 왔냐. 지만이 너도 마찬가지야. 명수가 이제는 우리 손님 아니냐.”
짝귀의 호통에 명수와 지만은 서로 떨어져 앉았다.
명수의 특유의 포즈로 구겨진 상의 수트를 펴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저야, 당연히 인사드리러 왔죠. 그리고 할 이야기도 있고요.”
“무슨 얘기?”
“형님. 계산이 틀리지 않습니까?”
“무슨 계산 말이냐?”
“모른 척하시는 것입니까? 형님이 나에게 약속한 거 말입니다.”
“내가 무슨 약속을 했지?”
“형님! 정말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차명수의 말투가 차가워진다.
임정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특유의 중저음으로 천천히 말했다.
강산은 임정재에게 이 대사부터 조금씩 감정선을 올려가며, 분노를 표현해 달라고 했다.
“화장실 갈 때하고 나올 때가 다르다고 하던데 그런 건가요.”
“...”
“형님 지시로 학산파 이명학을 담갔을 때, 형님이 뭐라고 내게 뭐라고 했습니까? 지만이 저놈 대신 내가 혼자 뒤집어쓰고 빵에 들어갔다 오면 내가 말한 두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명수의 말을 마치고 짝귀의 얼굴을 보았다.
차가운 표정의 짝귀를 비추던 카메라는 짝귀의 등 뒤로 돌아가 명수의 얼굴을 비추고 긴장한 명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맞아. 그랬었지. 굳이 둘이 들어갈 필요는 없어서 그랬다.”
“지만이가 처조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런 면도 없지는 않지.”
명수는 짝귀가 순순히 인정하고 나오자 내심 당황했다.
짝귀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나올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가 싶었다.
“그럼, 저하고 한 약속을 왜 안 지켰습니까?”
“그건 세모로 하자.”
“무슨 뜻입니까?”
“약속을 지킨 것도 있고 못 지킨 것도 있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미숙이 건은 지켰고 제 건은 못 지켰다는 말이니까? 일부러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고요.”
“미숙이라는 여자애 빚은 네 말대로 모두 탕감해 줬어. 네 건은 네가 교도소에서 나오면 해결해 주려고 했으니까, 내가 약속을 안 지킨 건 아니지.”
“그런데요. 형님. 미숙이한테 말을 들어보니까 자기가 빚을 다 갚고 나왔다고 하던데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분명 그 미숙이라는 아이 선수금을 탕감해 주라고 지시했다.”
“형님은 그랬는지 몰라도 동생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보죠.”
“으음, 그 건은 내가 확인하고 나서 이야기하자.”
“제 건은요? 제가 출소하면 1억을 준다고 분명하게 말했잖아요. 내가 혼자 남은 아버지가 걱정된다고 하니까, 그중 5천을 먼저 아버지에게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는 받은 적이 없다고 하던데요.”
짝귀는 명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지만의 얼굴을 노려봤다.
짝귀의 성난 눈빛을 마주친 지만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짝귀를 보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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