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차명수: 계산이 틀리다고 해 주세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강산은 본의 아니게 대본을 수정해야 했다.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장민호 선생의 부상으로 대본을 일부 수정했지만, 형사로 출연하기로 했던 서재승 배우가 출연을 번복했다.
서재승 배우는 이번에 MBS 아침 드라마에 캐스팅되면서 출연하기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다른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고민하던 차에, 설상가상이다.
이한 역을 하던 이영철 배우가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발목에 금이 가는 사고로 거동하기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이영철은 연극이나 촬영이 없으면 택배 배달, 대리기사, 공사장 일용직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도왔다.
계속되는 배우들의 사고 소식에 스텝들이 술렁이고, 출연 배우들은 이 영화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사람들은 강산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신인 감독에게는 너무 큰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강산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임정재가 이번 영화에 출연하면서 송광호의 이미지를 차용한 기존의 설정들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먼저 차명수와 이미숙의 갈등은 이 영화의 주요한 부분이다.
본래 설정은 차명수가 장미여관으로 돌아와 이미숙을 강제로 몸을 빼앗고 돈도 갈취하고 온갖 나쁜 짓을 하며 상처를 준다.
차명수는 여관 손님들에게 이미숙에게 매춘을 강요한다.
또한 장기 투숙하는 이한과 조철성에게도 매춘을 제안하고 이미숙에게 부끄러운 상황을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차영남이 이미숙을 보호하고 나서고 차명수와 대립한다.
갑자기 차명수가 시신으로 발견되자, 경찰이 수사에 나선다.
형사는 차명수의 살인 용의자로 이한과 조철성, 박마리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차명수가 숨겨놓은 다른 복선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였다.
이 내용 중에서 형사와 관련된 부분을 걷어내고 차명수와 관련된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차명수는 <신한건설>이라는 사무실에 와 있었다.
<신한건설>은 건설 회사라기보다는 짝귀파라는 조폭패밀리의 사무실이다.
짙은 남색 수트를 입은 차명수는 사무실 복도를 걸어오면서 머리를 만지고 <신한건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무실 안에는 인상이 더러운 사내들이 소파에 앉아있다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명수 앞을 막아 섰다.
“어이, 형씨. 여기는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여!”
차명수는 거칠게 막아서는 사내를 무시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검정 소파에 앉았다.
“아니, 이런 시벌넘이! 여기가 어디라고. 안 일어나!”
사내들이 명수의 어깨를 잡고 끌어내려고 하고 명수는 사내들에게 저항하는 승강이가 벌어졌다.
그때, 사무실 안쪽에서 큰 소리가 났다.
“칠석아! 윤태야! 배때기에 칼 밥 먹기 싫으면 빨리 손 놔라잉. 명수야! 너도 칼 집어 넣고!”
명수는 칠석과 윤태에게 어깨를 잡히자, 뒷 호주머니에 있는 발리송 나이프를 잡고 있었다.
명수는 자신의 어깨를 잡은 칠석과 윤태에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형씨들, 오늘 운 좋수다.”
칠석과 윤태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떨어지자, 명수는 옷이 구겨졌다는 듯이 수트 상의를 털며 소파에 다시 앉았다.
방금 명수에게 칼을 집어넣으라는 사내가 명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성규 형님”
“명수야. 오랜만이다. 정말 반갑기는 헌디, 시방 너, 아직 핵교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게요. 학교에서 빨리 나가라고 그러네요.”
“그래, 언제 나왔냐?”
“한 일주일 정도 전에”
“그래. 참 나, 너는 간도 크다. 이곳에 나타나고. 나도 너처럼 간도 커야 허는디. 칠석이! 윤태! 너 들은 쪼깐 나가 있어라.”
“예! 형님!”
성규는 동생인 칠석이와 윤태를 보고 나가 있으라고 했다.
명수와 성규가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들어봤자, 애들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성규형, 왜 애들은 내보내고 그러세요.”
“우리가 허는 말들을 애들이 들어서 좋은 말이 있겠냐. 괜히 짝귀 성님에게 의심만 사지. 그라고, 여긴 어쩐 일이냐?”
“동생이 학교에서 나왔는데 짝귀 형님에게 인사드려야지요.”
“짝귀 성님이 좋아 헐까? 안 좋아 헐틴디,”
“그래도 인사는 드려야죠. 그래도 한때는 형님으로 모셨던 분인데”
“내 생각엔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어. 그냥 가는 것이 어떠냐.”
“그래도 왔으면 보고 가야죠.”
성규는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빨고는 명수에게 담뱃갑을 내밀었다.
명수는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이제는 담배 안 해요”
“왜 그래, 하루에 세 갑을 피던 상 꼴초가”
“학교에서 끊었어요.”
“잘했다. 이것이 말이여. 백해무익이여.”
성규는 제떨이에 담배를 비벼끄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말이여. 느그 아버지가 그제 여기에 왔었다.”
“아버지가요?”
“여기 와서 난리를 피우다 갔어?”
“참, 영남씨는 힘도 좋지. 뭐라고 하던 가요?”
“짝귀 성님이 들어오라고 불러서 둘이서 한 이야기는 잘 모르지, 느그 아버지가 가고 지만이를 부르는 것을 보면 좋게 끝나지는 않을 거 같어.”
“짝귀는 왜 지만이를 싸고도는 거예요?”
“뭐가?”
“아니~, 내가 있을 때도 그렇고 성규형보다도 더 믿는 거 같아서 말이에요.”
“그야, 믿을 만 허니까 그러지 안컷어”
“그 새끼가 뭐가 믿을만 해요. 뒷통수나 때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나 같으면 절대로 그 자식에게 뒤를 안 맡겨요.”
“우리가 보기엔 그렇지만서도, 그래도 핏줄을 더 믿지 안컷냐.”
“핏줄요?”
“너 몰랐냐? 지만이가 짝귀 성님 처조카라는 거?”
박지만.
박지만과 차명수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지만 둘 사이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다.
명수는 다른 학교 애들과 싸우다가 퇴학을 당했지만, 박지만은 술 취한 아저씨를 퍽치기하다가 퇴학당했다.
고등학교를 퇴학하고 짝귀파에서 다시 만났지만 짝귀파에서도 둘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명수가 교도소가 들어가게 된 그 사건도 지만이와 같이하게 됐다.
짝귀파 보스인 김춘배의 지시로 아현동 재건축사업의 경쟁 상대인 학산파 보스인 이명학을 담그는 일에 참여했다.
명수가 아니라 지만이 이명학을 담갔지만, 명수는 짝귀와 이야기를 하고 혼자서 한 것으로 자수하고 징역 7년을 받았다.
그런데 복역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명수야, 미안허다만 요즘 짝귀 성님은 여기 잘 안와야.”
“영남씨는 짝귀를 만났다면서요.”
“그것은 느그 아버지가 운이 좋은 거고, 짝귀 성님은 새 여자에게 빠져서 그 여자 집에서 잘 안 나와야.”
“짝귀에게 내가 만나자고 한다고 연락 좀 해 주세요.
”꼭 짝귀 성님을 만나야겄냐?”
“네. 꼭 만나야겠어요. 성규형.”
“알겄다. 내가 전화해서 만날 의향이 있는지 물어는 보것지만 너무 기대허지는 마라.”
“성규형. 짝귀에게 내가 계산이 틀리다고 해 주세요.”
* * *
박마리아는 월요일과 화요일은 탑골 공원에서, 목요일과 금요일은 장충단 공원으로 일하러 나갔다.
수요일과 일요일은 일하지 않았다.
교회에 가거나 종교활동을 위해 쉬는 것은 아니다.
박마리아는 교회에 나가지도 않지만, 돈이 궁해지면 수요일과 일요일에도 일하러 나갔다.
다만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혼자 사는데, 큰 지장이 없어 악착같이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
하루 목표인 세 건을 채우거나 비가 오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일진이 좋지 않으면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박마리아에게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는 사치스러운 기호식품이지만, 담배와 커피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오늘은 운이 좋게도 세 건의 일을 빨리 처리하고, 커피나 마시면서 쉬려고 근처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접수대에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빈자리에서 기다리는데, 이미숙이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하려고 일어서려는데 커피숍 진동벨이 울렸다.
박마리아가 진동벨을 들고 일어서려는 사이, 이미숙은 험상궂게 생긴 사내 앞에 앉았다.
박마리아는 접수대에서 커피를 받고는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이미숙이 앉은 자리 뒤에 앉았다.
미숙이 앞에 앉은 사람의 모습이 일반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박마리아도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요즘 부쩍 여관을 비우는 이미숙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 하는 궁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숙아, 자꾸 불러내면 내가 곤란허지 않겠냐? 나도 나름 바뻐야. 낮에는 사무실 지키고 밤에는 <헤라>도 지키고 도통 시간이 없당게”
“성규 오빠. 내가 왜 이러는지 아시잖아요?”
“미숙아. 네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해줄 말이 없어야.”
“명수씨 아버지는 어떻게 된 거예요.”
“나야 모르지. 명수 아버지 담근 것을 누가 알겄냐?”
“오빠. 나는 명수씨 아버지를 어떻게 된 거만 물었는데요”
“......”
“아저씨가 누군가에게 당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오빠는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어떻게 알았어요.”
성규는 미숙이 말꼬투리를 잡고 나서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끄응, 아무튼 난 말 못 해.”
“좋아요. 그럼, 이것만 말해 주세요. 명수씨는 지금 어디 있어요?”
“그건 또 내가 어떻게 아냐!”
“오빠가 모르면 누가 알아요. 명수씨가 짝귀를 찾아갔을 거 아니에요.”
“내가 점쟁이냐. 명수가 짝귀 성님을 찾아간 걸 내가 어떻게 아냐”
“오빠 정말 이럴 거예요. 내가 명숙이 언니 찾아가요?”
“갑자기, 남의 마누라 이름은 왜 꺼내는 거여”
“그러니까, 명숙이 언니 찾아가서 오빠 여자 이야기 다 까발리기 전에 빨리 명수씨가 어디 있는지 말을 하라구요.”
“허이 참, 미숙아. 맹세코 명수가 어디 있는지 잘 몰라. 다만 말이여. 명수가 짝귀 성님헌티 할 말이 있다고 찾아오기는 혓어.”
“그래서요? 빨리 말해 주세요.”
“명수가 짝귀 성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혀서, 연결만 시켜 줬을 뿐이랑게.”
“언제 만나는 데요.”
“나야 모르제. 그것을 내가 어찌 알것냐.”
“언제 만나는 데요.”
미숙의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반복하는데 성규는 더이상 모른다고 할 수 없었다.
“오늘 6시여”
“어디서요?”
“그건 진짜로 몰러. 진짜랑께”
“그럼, 왜 만나는지는 아세요?”
“그러니까, 명수가 짝귀 형님헌티 요상한 말을 전달해 달라고 허긴 허더라.”
“뭐라고요.”
“계산이 틀리다고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