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98화 (98/140)

〈 98화 〉 조철성: 또 돈 이야기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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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장민호 선생의 부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다.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장민호 선생의 출연분을 미루었다가 촬영하거나 대본을 수정해서 촬영해야 한다.

촬영을 미루는 방법은 문제가 있다.

안 그래도 제작비 문제가 커지고 있어서 촬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강산은 장민호 선생의 상황에 맞게 대본을 수정하기로 했다.

차영남이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해 입원한다는 설정이다.

장민호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얼굴에도 멍든 분장을 하고 다리뿐만 아니라 오른쪽 어깨에도 깁스를 했다.

차영남이 입원한 병실에 이미숙이 찾아온다.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

“아무것도 아니다. 목욕하다가 실수로 미끄러졌어.”

“목욕하다가 다친 사람이 이래요.”

“늙으면 다리 힘이 없어서 그래”

“말해 주세요. 짝귀파 애들이에요? 누구에요?”

“그게 아니라고, 미숙아. 그런 게 아니라 목욕하다가 다쳤다고 해도 그래”

“아저씨. 내가 바보예요. 이런 상처를 보고 아저씨 말을 믿으라고 그래요. 흐으윽...”

이미숙이 차영남의 상처에 놀라 울기 시작하자, 차영남은 이미숙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미숙아.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저절로 아문단다. 과정이 조금 힘들 뿐이지.”

“아저씨. 그래두. 흐으윽”

“괜찮아. 괜찮아”

미숙이 떠나가자 영남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영남은 결심한 듯이 머리의 붕대를 풀어 놓고 웃옷을 걸치고는 다친 다리를 끌며 병실을 떠났다.

*   *   *

강산은 차명수의 등장 이후로는 영화의 톤을 무겁게 만들어가려고 했다.

이미숙, 차영남의 사소한 행동에 장미여관의 사람들은 이후에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 예측 불가능하게 말이다.

문제는 장미여관 사람들에 대한 서사가 길어지면 관객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것 같아서 고민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편집할 때 결정하려고 한다.

먼저 이한이다.

이한은 몇 년째 준비하던 신춘문예가 모두 떨어졌다.

한동안 좌절하고 있다가 다시 새로운 소설을 준비할 때 이미숙을 알게 되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 같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이곳 장미여관에 온 이유는 불분명하다.

이미숙은 여관주인인 영남 아저씨를 도와주며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이미숙의 출현은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과 삶의 재미를 못 느끼던 이한에게 새로운 호기심과 삶의 긴장을 주었다.

이한은 이미숙을 볼 때마다 더러운 세상에서 숨겨진 연꽃을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이한은 일부러 좁은 마루에서 청소하는 미숙의 옆을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화장실을 가려고 밖으로 나오거나 미숙이 청소하러 나올 때마다 글 쓰는 것을 멈추고 마루 청소를 하는 미숙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숙이 이한에게 책을 빌리러 오기도 하고 이한의 방에서 책을 읽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미숙도 접수대를 지키다가 일이 생기면 이한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이제는 거의 루틴처럼 시간이 정해지고 있었다.

차명수가 다녀간 후, 미숙은 평소와는 많이 달라져 보였다.

마루 청소를 하는 데도 예전 같은 생기있는 움직임이 없고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늘었다.

예전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과 여관 사람들을 맞았지만, 지금은 표정이 굳어있고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말하지 않았다.

보통 하루에 한 번, 적어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접수대를 대신 봐 달라고 부탁하러 오는 시간에도 오지 않았다.

어제도 오지 않고 오늘도 미숙이 부탁하러 오기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한은 미숙에게 무슨 일이 있나 걱정되어 접수대로 가보았다.

미숙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지 이한의 기척을 알아보지 못하자 이한이 접수대 문을 ‘똑’ ‘똑’ ‘똑’ 두드렸다.

“무슨 일이에요. 이한씨”

“접수대 교대 시간이 돼서요. 교대해 드릴까요?”

“아뇨. 오늘은 괜찮아요.”

“미숙씨도 쉬셔야죠.”

“정말 괜찮아요.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미숙씨, 정말 괜찮아요?”

“네?”

“요즘 좀 이상한 거 같아서요.”

“뭐가요?”

“차명수인가 하는 그 친구가 다녀간 후부터는 미숙씨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요. 그 친구, 사고뭉치라고 하던데요. 그... 친구하고는 무슨 사이에요.”

“이한씨. 지금 선을 넘고 있어요.”

“네?”

“제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 불편해요. 더 이상의 관심은 끊어 줬으면 좋겠어요. 그만 돌아가 주세요.”

이한은 미숙의 냉정한 말에 쓸쓸하게 여관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혼자만이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어렵게 키워온 자신의 사랑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갑자기 나타난 차명수 때문이다.

미숙에게 보호한다고 나섰다가 차명수의 발리송 나이프에 겁먹고 떨고 있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모습을 보고 미숙이 자신에게 실망해서 이러는 걸까?

너무 비참해진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에 이미숙이 이한을 찾아왔다.

접수대 데스크를 대신 봐 달라고 말이다.

이한은 삐진 마음에 거절하려고 했지만, 이미숙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저녁 늦게까지도 미숙씨는 여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렵게 한 전화도 받지 않고 말이다.

이후로도 오후 4시만 되면 미숙씨는 이한에게 접수대를 맡기고 밖으로 나갔다.

덕분에 이한은 접수대 데스크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가끔 박마리아 아줌마가 쉬는 날에 교대해주었지만, 보통은 이한이 말뚝이 되었다.

철성이 형님에게 접수대 데스크를 맡겼다가 무뚝뚝한 말투와 인상에 젊은 손님이 기겁해서 철성이 형님에게는 맡길 수 없었다.

*   *   *

조성철은 새벽마다 공사장에 나가려고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선다.

지방에서 사업을 하다가 연대보증을 섰다가 부도가 나자, 가족들을 보호하려고 아내와 위장 이혼하고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왔다.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돈이 모이면 지방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부쳤다.

여관 사람들도 조성철을 새벽같이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여관에서는 잠만 자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지난 몇 달 간 임금을 받지 못해, 시골집으로 돈을 보내지 못했다.

- 전화 받을 수 있어요?

“무슨 일이야. 이 밤중에, 애들은 지금 뭐하는데?”

- 애들은 자고 있어요. 저...

“또 돈 이야기야. 밀린 임금은 곧 받을 거라고 했잖아. 돈 받으면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보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

- 그게...

“돈은 며칠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

- 돈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럼. 준호가 또 사고 친 거야.”

- 그런 게 아니에요.

아내는 시골에서 미장원을 하면서 남매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준호와 윤희 남매로 아비 없이 사춘기를 보내다가 준호가 사고를 많이 쳤다.

아내는 시골 미장원 수입으로,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다.

마음으로는 아내를 이해하지만 전화할 때마다 돈 이야기를 꺼내는 아내가 불편하고 어려워졌다.

그래서 먼저 아내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조철성은 먹고 자는 돈을 제외하고는 모든 돈을 집으로 보냈다.

그래도 아내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럼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 이제는 돈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고, 흐으윽

“그게 무슨 말이야?”

- 이제부터는... 그렇게, 당신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이 말을 하고 아내는 전화를 끊었다.

아내의 마지막 말이 조철성의 심장을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찔렀다.

빌어먹을, 아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았다.

조철성은 아내에게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하려고 했다가 아내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의 희망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고 하더니,

조철성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직도 채권자들은 위장 이혼을 밝히려고 아내 주변을 감시하고 가끔씩 찾아와 조철성이 사는 곳을 대라고 행패를 부린다고 들었다.

어떻게 보면 아내도 아이들도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더이상 채권자들에게 협박받거나 사기꾼의 아내와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내의 마지막 전화 이후로 조철성은 삶의 의욕을 잃은 것 같았다.

조철성은 아내와 아이들이 아니라면 공사장 일용직같이 힘든 일을 하거나 돈을 모을 이유가 없었다.

조철성은 여관방에 틀어박혀 일주일을 쉬었다.

일주일 후, 조철성은 습관적으로 다시 일하러 나섰다.

공사장에서 힘든 일을 하다 보면 그 시간만이라도 고민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조성철이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려고 하면 이미숙이 와서 김밥이나 주먹밥, 고구마 같은 요기 거리를 건네주었다.

미숙의 선의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손을 내밀어준 조성철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몇 달째 여관비도 제대로 내지 못했는데 기다리는 여관주인 아저씨도 고맙고, 여관 일을 하는 이미숙에게도 고맙다.

지난번에 너무 배가 고파서 여관 부엌에 들어가 고구마를 훔쳐먹다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갔는데 이미숙이 모르는 척해주었다.

그때 만일 이미숙이 자신을 도둑이라고 밝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발생했을 것이다.

조철성은 밑으로 떨어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희망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미숙은 조철성이 더 이상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 구원해 준 구세주나 다름없다.

조철성은 밀린 임금이 받자마자, 밀린 여관비도 지불하고 시골에도 돈을 부쳤다.

남은 돈으로 신세 진 여관 사람들에게 크게 한턱을 냈다.

회식 분위기도 괜찮았고 이미숙의 밝은 표정도 조철성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차명수라는 친구가 나타나기 전에는 말이다.

차명수가 다녀간 후로, 며칠 동안 이미숙은 새벽에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지만, 새벽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느라 이미숙을 보지 못했다.

조철성이 퇴근하고 여관으로 돌아와서 이미숙을 찾으면 이미숙은 여관에 없고 접수대에는 이한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이. 미숙씨는 어디 있나?”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후에 교대하면 저녁 늦게나 들어오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는지 아는가?”

“아마도 차명수, 그 친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차명수?”

“그 친구가 나타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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