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유명세: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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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고민이 생겼다.
차명수가 등장하면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아버지 차영남과의 대립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영화의 긴장감을 더하려고 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과 사고만 치는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한 여자.
그런데 오늘 촬영을 앞두고 갑자기 장민호 선생이 다쳤다는 연락이 왔다.
강산은 스텝들에게 대기해 달라고 하고, 서둘러 택시를 타고 목포 영락병원으로 갔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오만가지 상상을 했다.
장민호 선생이 다치면 큰일이다.
큰일을 넘어 영화가 엎어질 수도 있다.
강산이 병실에 들어서자, 장민호는 발목에 깁스하고 환자복으로 누워 신문을 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안 괜찮아.”
“선생님, 죄송하지만 얼마나 입원해야 할 것 같습니까?”
“죄송하면 묻지를 말아야지. 여기 의사 선생이 일주일 이상은 쉬어야 한다고 하네.”
“네. 어디 부러지거나 잘못된 건 아니죠?”
“왜? 어디 부러졌으면 해?”
“아뇨. 발목 부근에 깁스해서요?
”발목 부근 인대하고 근육이 많이 놀랐다고 하더라고, 하루라도 빨리 진정시키려면 깁스가 좋대”
“휴우, 다행이네요. 선생님.”
“뭐가 다행이야. 나는 죽는 줄 알았는데”
“죽기는 왜 죽습니까? 이 영화가 터지면 여기저기서 출연해 달라고 난리가 날 텐데요.”
“음, 그래. 강감독이 뒷말을 하지 않았으면 살짝 섭섭할뻔했어.”
“선생님, 어떻게 다치신 거예요?”
“목욕하다가 미끄러졌어.”
“술에 취해서 발을 겹질렸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에요?”
“아니,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
“선생님. 매니저가요.”
장민호는 지난번에 강산의 영화 <두 자매>, <사랑의 데자뷰>에 출연한 후 소속사가 생겼다.
극단 <청춘만세> 출신인 노영후가 사장인 <더불어 만세>다.
장민호의 매니저 최인호는 장민호에게 잡혀서 술을 먹고 귀가하다가 장민호가 발목을 헛디뎌 쓰러질 때 할 때 곁에 있었다.
최인호가 택시를 잡고 장민호를 영락병원으로 데려왔다.
“끄응, 강감독은 알면서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요.”
“남들이 물으면 목욕하다가 다쳤다고 그래. 특히 김여정씨가 물으면 절대 술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하지 말고”
“네. 절대로 김여정 선생님께는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선생님 머리 다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네요.”
“아무튼, 미안하게 됐어. 강감독. 나 때문에 일정이 늦어지게 돼서”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정보다는 선생님 건강이 더 중요하죠.”
강산은 장민호 선생을 위로하고 영락병원을 나섰다.
말은 건강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 강산은 스텝들에게 오늘 하루 일정을 취소한다고 했다.
스텝들은 촬영 현장을 정리하고 숙소인 <로마의 휴일>이라는 모텔로 돌아갔다.
강산도 모텔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제작부장인 김두호와 유명세가 강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았다.
강산은 담담하게 표정을 관리하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그어진다.
“제작부장님들, 어디 가서 커피나 마시면서 이야기할까요.”
일정이 늦어지면 항상 제작비 문제가 따른다.
저예산 영화를 만들다 보면 항상 겪는 문제라 조금은 둔감하려고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강산은 두 제작부장인 김두호와 유명세를 데리고 <행복 다방>으로 들어갔다.
“말씀하시죠.”
“강감독,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김두호 부장님, 편안하게 말하세요.”
김두호는 강산에게 말하면서, 옆에 있는 유명세의 눈치를 보았다.
아마도 유명세가 없었다면 반말을 했을 것이다.
“그게 말이야. 강산 감독도 알다시피 제작비가 얼마 남지 않아서 말이야.”
“그래서”
“촬영 기간이 늘어나게 되면 좀 곤란해져서 그래.”
“김부장. 곤란한 것은 나도 아는데. 배우가 다쳤는데 어쩔 수 없잖아. 일부러 다친 것도 아니고 말이야.”
강산은 김두호의 압박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유명세다.
* * *
회귀 전에 유명세는 손대는 작품마다 성공해서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불렸지만, 유명세의 다른 별명은 <냉혈의 도살자>다.
<냉혈의 도살자>는 사람을 냉정하게 죽인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냉정하게 죽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투자자가 이익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예술을 돈으로 평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돈을 벌려면 다른 사업을 하지, 굳이 예술을 하면서 작품들을 죽이는가?
평론가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영화들도 영화인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유명세는 무서운 점은 돈이 안 되는 영화를 귀신같이 찾아내서 아웃시키고 절대로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영화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유명세가 영화 투자에서 실패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 투자할 때 각종 다양한 조건들을 붙여서, 흥행에 실패하면 영화사는 망해도 자신은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산은 이 부분이 고민이다.
* * *
“감독님.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유명세가 강산에게 말을 걸었다.
강산은 김두호에게 잘 들었다고 하면서 대충 이 자리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유명세가 놓아주지 않는다.
“말씀하시죠.”
“감독님. 저희 제작부장들의 고민은 제작비가 얼마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요?” “제작비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 가지요? 네 가지는 아니고요?”
강산은 이제야 유명세의 본색이 나오는가 싶었다.
전생의 명성에 맞지 않게 그동안 아무 말 없이 영화를 따라오는가 싶었는데, 장민호 선생이 다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제를 걸고 나온다.
“네? 네 가지요. 제 방법은 세 가지인데요.”
강산은 유명세가 순진한 사람처럼 놀라는 척하는 모습이 가소로워 보였다.
“계속하세요.”
“첫 번째 방법은 해피와 애플, 두 제작사가 제작비를 증액하는 방법입니다. 저희 해피는 애플에서 동의하면 증액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유부장님. 저희 애플은 제작비 증액에 동의한 바 없습니다. 그리고 유부장님, 이런 일은 저하고 사전에 상의해야지 않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저도 장민호씨가 다치면서 고민한 것이라 미리 상의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만, 이 방법이 제일 무난한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저희 애플은 이덕배 사장님의 컨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각자 사장님에게 컨펌을 받도록 하지요.”
강산은 유명세가 제작비를 증액하자는 말이 의심스러웠다.
유명세는 해피머니 최룡해의 사람이다.
우리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조건이 없는 돈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조건에 무슨 함정이 숨어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이덕배 사장을 생각하면 제작비 증액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덕배 사장은 말은 거칠지만, 최룡해 사장처럼 의뭉스럽지는 않아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돈이 없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제작비 증액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다.
“두호야. 이덕배 사장이 오케이 하겠냐? 오천도 간신히 만들었는데”
“산아. 그래도 이덕배 사장에게 말은 해봐야지 않겠어.”
“아서라. 그렇지 않아도 이덕배 사장, 이번 영화 투자로 새 가슴이 되어 있을 텐데, 제작비 증액까지 말하면 간까지 콩알만 해질 거야.”
“......”
“유부장님. 두 번째 이야기나 해 주시죠.”
유명세는 강산 감독이 김두호 부장에게 말을 편하게 하자 은근히 질투가 났다.
자신도 강산 감독과 친해지려고 제작비 고민을 덜어주려고 증액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런데 강산 감독은 자신의 선의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김두호 부장 말로는 해피머니에서 돈을 빌렸다가 애플에서 일하면서 큰 고생을 했다고 하더니 해피미디어 최룡해 사장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최룡해 사장은 자신에게 강산 감독을 잘 도와주라고 하고, 제작비가 부족하면 2천까지는 알아서 채워주라고 하였다.
최룡해 사장이 강산 감독에게 무슨 빚이 있나?
“두 번째는 스텝들과 배우들의 급료를 협의하에 절반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유부장. 그게 가능해?”
김두호가 유명세에게 말했다.
“만약 성공한다면 2천 정도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런닝개런티로 바꾸는 거죠. 이번 영화가 개봉하면 충분히 원래의 급료 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산아. 왜?”
“음, 내가 안 돼. 내가 받은 돈은 동생 학비로 모두 써버렸거든.”
“강산 감독님. 그럼 강산 감독님의 제외하고 스텝들이나 배우들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몇 분에게 물어봤는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던데요.”
“강산아. 그래. 이 방법이 좋겠다. 흥행에 성공하면 더 받게 되니 더 좋지 않겠어?”
“안 돼! 내가 받은 돈을 다 써놓고 스텝과 배우들에게 그런 제안을 한다는 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어. 그리고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내 런닝 개런티를 나눠 줄 생각이니까, 그분들에게 폐를 끼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
“감독님이 반대하면 할 수 없죠.”
강산의 반대에 유명세와 김두호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급료의 반납은 최후의 방법이지만, 제작부장들이 보기에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세 번째 방법은 제가 이천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유부장님이 왜 투자하는데요?”
강산은 유명세가 이 영화에 투자한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왜 투자하냐는 말이 나왔다.
“제 대답은 성공할 것 같아서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아무리 여유가 없다고 제작부장이 투자하는 돈을 받기는 그렇습니다.”
“강감독, 나도 천만 원 투자할게”
“두호, 너는 또 왜 그래?”
“유부장, 혼자 총대 메는 것은 도의가 아니지. 마침 적금이 만기가 돼서 여유가 있어.”
“두 분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작비 투자는 마지막으로 남겨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