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차명수: 가석방 받았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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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씬은 임정재와 서정아의 베드씬이다.
강산은 이번 씬을 두고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느 정도 톤으로 조절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베드씬은 관객들의 성적인 호기심을 끌기에 적절한 수단이다.
과하면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채색시키기 때문에 적절한 톤 조절이 제일 중요하다.
회귀하기 전에 만들었던 영화에서는 베드씬에 대한 톤 조절에 실패해서인지 관객들은 파격적인 성인물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컸다.
그렇다고 이번 영화에서 이 씬을 뺄 수도 없다.
이 씬이 없다면 이한이나 조철성이 왜 차명수를 싫어하는지, 뒤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을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아버지 차명남의 미묘한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강산이 처음 대본을 썼을 때에는 송광호 배우가 차명수로 출연한다고 가정하고 대본을 썼다.
송광호의 거칠고 날것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차명수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송광호의 차명수는 이미숙을 학대하고 몸을 강제로 빼앗으면서 이미숙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준다.
장미여관 사람들에게 차명수는 정의의 심판 대상이 되고 아버지 차영남에게는 매우 힘든 결정을 해야 한다는 설정이었다.
이런 설정으로 송광호가 촬영할 때에는 어두운 분위기에 인위적인 조명을 최소로 하려고 했다.
명수의 거친 폭력과 미숙의 반항이 어우러진 날것의 베드씬을 만들려고 했다.
임정재가 차명수가 되면서 고민이 생겼다.
물론 임정재의 차명수도 폭력으로 서정아를 상대할 수 있겠지만 송광호만큼 강렬함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임정재의 멋진 외모와 몸매를 그렇게 쓰는 것은 낭비라 생각했다.
문제는 부드럽고 매력적인 베드씬으로 차영남과 장미여관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을까?
관객들은 임정재의 차명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 * *
커다란 창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명수는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지만, 교도소에서 나와서 집에서 자는 잠이라 그런지 너무 달콤하고 편안했다.
“으음, 지금 몇 시야?”
“10시 반, 내가 잠을 깨운 거야. 좀 더 자지.”
“아냐, 일어나야지.”
“커피 할래? 아니면 보리차?”
명수는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침대 머리맡에 허리에 대고 반쯤 몸을 세웠다.
“커피 그런 거 말고 담배나 하나 줘”
“담배는 좀 그렇지 않아, 들어가기 전에도 폐가 안 좋았잖아.”
“그냥 담배나 줘”
“알았어”
미숙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후, 차명수에게 건네주었다.
명수는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이고는 기침을 ‘쿨럭’였다.
“이거 무슨 담배야. 너무 독한데”
“그거 맨솔이라 순한 건데?”
“오랜만에 담배라 힘드네”
명수는 담배를 미숙에게 돌려주었다.
미숙은 돌려받은 담배를 종이컵에 비벼 끄고는 휴지통에 넣었다.
“나, 나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
미숙이 나가려고 하자, 명수가 미숙의 손을 잡았다.
미숙은 자신의 손을 붙잡는 명수의 손을 보고 다시 명수의 눈을 보았다.
“나가 봐야 해”
“잠시만”
“왜 그래?”
“잠시만 있다 가.”
미숙은 잠시 주저하다가 명수 옆에 앉았다.
명수는 미숙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미숙에게 키스를 시도했다.
미숙은 명수를 밀어내며 말했다.
“그만!”
미숙은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명수의 입술을 피하면서 명수의 가슴을 밀어냈다.
“명수씨. 우리 이제 어린애가 아니잖아. 후회할 일은 또 만들지 말자”
“후회는 네가 하지. 나는 아냐”
명수는 미숙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미숙의 입술에 거칠게 키스했다.
두 눈을 감은 미숙의 깊게 다문 입술이 천천히 열리면서, 미숙은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명수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미숙이 명수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 * *
임정재와 서정아의 베드씬을 앞두고 강산은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 씬이 이미숙과 차명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두 사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말이다.
예전의 실수를 만회하려면 지나친 성적 표현도 삼가야 하지만 두 사람의 정사가 어색하게 보여서도 안 된다.
서정아와 임정재,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도 베드씬은 어렵다.
연기의 대가라는 안성기 배우도 베드씬 만큼은 몰입이 되지 않아서 찍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 <즐거운 사라>,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로 유명한 마광수 교수가 안성기 배우를 이렇게 평가했다.
“성실하고 노력하는 배우지만 예술가적인 순발력과 천재적 광기를 지닌 배우가 못 된다.”
이것은 순전히 안성기 배우가 ‘야한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 말이라고 한다. 참고로 마광수 교수와 안성기 배우는 동년배이다.
베드씬은 배우들뿐만 아니라 촬영하는 감독도 어렵다.
천재 감독이라는 봉중호 감독도 베드씬만큼은 어려워했다. 베드씬을 촬영하는 현장을 이렇게 말했다.
“서로 긴장했는데 그것을 드러내기는 싫고, 긴장했다는 티를 내도 서로 민폐가 되니까, 촬영장에 어색한 썰렁함이 흐르는 순간이다.”
하지만 강산은 베드씬에 관한 한 다른 감독들과는 넥스트 레벨이다.
강산은 베드씬을 두려워해서 영화 출연을 고민하던 서정아를 위해 독특한 미션을 생각했다.
회귀 전에 보았던 타티아 필리에바의 <첫 키스(First Kiss)>라는 동영상이다.
이 동영상에서 타티아 필리에바는 스무 명의 모델들을 초대해서 서로 파트너에게 인사를 하고 키스를 하도록 했다.
어색하던 모델들은 파트너와 첫 키스를 한 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참고로 이 동영상은 렌(Wren)이라는 의류 브랜드의 광고에 사용되었다.
강산은 서정아와 임정재에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키스해 보라고 하고 스텝들에게 자리를 피해 달라고 했다.
강산은 두 사람을 미리 촬영하면서 가장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각도를 계산했다.
서정아와 임정재는 한 시간이 넘게 키스와 서로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 * *
명수가 서둘러 셔츠를 벗자, 마르고 탄탄한 몸매가 드러났다.
미숙은 명수와 키스를 하다가 명수를 침대에 눕히고 명수의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명수의 바지를 벗기는 장면이 자연스럽지 않아서 NG가 났다.
강산은 서정아가 바지를 벗길 때 임정재에게 엉덩이를 살짝 들어서 서정아가 바지를 벗기기 쉽게 해달라고 했다.
미숙은 누워있는 명수의 몸 위로 올라가서 허리를 숙이며 명수와 열정적으로 키스하다가 허리를 세우고 명수를 바라보았다.
미숙은 천천히 자신의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허리 아래로부터 걷어 올려 머리 위로 벗겨내고는 침대 아래로 던졌다.
카메라는 침대 아래로 떨어진 원피스에 잠시 멈췄다.
미숙이 하얀 속살과 빨간 브래지어를 드러내자 명수는 허리를 세워 미숙의 등을 더듬어 빨간 브래지어 끈을 풀었다.
명수는 미숙의 봉긋한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미숙은 팬티를 내리고 명수의 허리 밑에서 위아래로 움직였다.
카메라는 미숙의 등 뒤에서 명수의 얼굴을 잡다가 뒤로 물러나고, 명수는 허리를 들어 미숙을 애무하다가 미숙을 눕히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명수를 바라보는 미숙의 반짝이는 눈빛을 외면하지 않았다.
강산은 베드씬을 촬영할 때 배우들의 몸매를 촬영하는 것보다 표정, 그중에 눈빛을 촬영하는 것을 좋아했다.
강산은 서정아에게 표정에 신경 써 달라고 주문했다.
여배우의 표정은 굳이 어떤 격렬한 행위 장면보다 더 섹시하고 더 유혹적이다.
그리고 미숙의 표정 변화로 명수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명수씨...”
미숙은 습기에 찬 목소리로 명수를 불렀다.
땀으로 얼룩진 명수는 미숙의 몸 위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며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이윽고 명수는 신음과 함께 미숙의 몸 위로 쓰러졌다.
“컷, OK입니다.”
이 씬은 이틀이 넘게 찍었다.
보통 베드씬은 이틀을 찍으면 사흘을 쉰다. 배우들에게 베드씬은 액션씬 못지않게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강산은 일정 때문에 이틀 안에 끝내야 했다.
서정아를 설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산은 서정아에게 노출 수위나 기타 민감할 수 있는 부분들은 미리 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영화를 찍어가면서 미숙의 감정에 따라 그 감정에 맞춰서 연기하자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출 수위가 정해졌다.
임정재는 의외로 설득하기 까다로웠다.
강산은 임정재가 베드씬 연기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경험이 많지 않았다.
나는 회귀하기 전을 기준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2001년 기준으로 임정재는 제임스 딘 같은 반항아, 동네 양아치에서 연상의 여자를 사랑하는 부드러운 남자로 조금씩 연기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임정재는 연기 변신을 고민하던 중에 이 작품을 만난 것이다.
* * *
명수는 밖으로 나가려는지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빗고 얼굴과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미숙은 홑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말했다.
“명수씨, 좀 더 쉬었다가 나가지.”
“아냐. 가봐야 할 일이 있어.”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없어? 자기는 예전부터 비밀이 너무 많아. 그리고 너무 위험해 보여”
“영남씨는 어디 갔어?”
“아저씨는 접수대에 계실 거야.”
“영남씨는 여전히 부지런하네.”
“아들과는 다르지”
“그게 내 매력이지. 그건 그렇고 이 방은 미숙이 네가 쓰고 있던 거야.”
“아저씨가 내게 쓰라고 해서. 명수씨도 없고 젊은 여자를 여관방에 재우기 그렇다고 해서”
“어제는?”
“이곳이 장미여관이야. 방은 많아”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미숙이 네가 이방 써”
“명수씨는?”
“나는 부르는 데가 많아서 밖에서 잘 일이 많을 거 같아. 잠잘 방이 필요하면 네 말대로 여관방에서 자면 되지. ”
“일부러 그럴 필요 없어”
“아냐. 나는 그게 편해. 누구한테든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그래.”
“알았어. 명수씨, 그런데 말이야...”
미숙이 말을 하다 주저하자, 거울을 보던 명수는 고개를 돌려 미숙을 바라보았다.
“뭐? 뭐가 궁금한데?”
“교도소, 아직 3년 더 남은 거 아니야?”
“그거. 가석방 받았어.”
“가석방?”
“그래. 가석방. 자세한 내용은 알 거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