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94화 (94/140)

〈 94화 〉 김여정: 강감독, 나쁜 사람이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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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과 스텝들은 <보성 여관>의 접수대에 다시 모였다.

스텝들은 어제 자정 넘어서까지 김현수와 이영은 배우가 촬영하고 철수하면서, 내일(?) 아니 오늘도 이곳에서 촬영하겠다고 했다.

오늘 아침, 근처에서 쪽 잠을 잔 스텝들은 다시 촬영 준비를 했다.

장민호 배우는 아침부터 정오까지 접수대를 지키면서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장면과 손님이 들어오자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손님에게 돈을 받고 방키를 내주는 장면들을 촬영했다.

정오 무렵에는 장민호 배우와 서정아 배우가 교대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아저씨. 손님은 있었어요?”

“한 분”

“아저씨 서재에 식사 준비 해 놨어요. 지금부터는 제가 볼게요.”

“내가 볼 수 있는데 귀찮게 무슨 교대냐?”

“아저씨도 쉬어야죠. 그리고 저도 심심하고요. 아저씨 집에 계시지 말고 나갔다 오세요. 바깥 바람도 쐬셔야죠.”

“날도 더운데 무슨 나들이냐, 나는 집에 있는 게 좋아.”

“집에만 계시면 병 나요. 나갔다 오세요. 공원에 가서 친구들도 만나시고요.”

“고맙다. 미숙아.”

이미숙이 자리를 지키는데도 손님은 많지 않다.

강산은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듯이 부드러운 조명으로 접수대에 시간의 그림자가 달라지게 촬영했다.

부드러운 피아노곡 에릭 사티 짐노페디 1번이 한가로움을 더하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피아노가 잠시 멈춘다.

이미숙이 방 키를 들고 손님방까지 안내하는데, 삐걱거리는 복도의 나무바닥 소리와 손님들의 대화 소리가 이어지고 ‘탁’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이미숙의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서자 다시 피아노 곡이 흐르고, 접수대로 돌아와서 앉아 조용히 눈을 감으면 음악이 들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소설가 지망생 이한이 접수대에서 손님을 기다리면서 소설을 쓰는 장면도 추가했다.

이미숙이 이한에게 잠시만 접수대를 봐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목포에서 촬영할 예정이다.

여관으로 들어오는 입구와 여관 내부인 목포의 적산가옥, 실제 손님들이 대실 하는 방이나 잠을 자는 방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다.

손님들이 방에서 퇴실하면 방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장면들은 별도로 공간에서 촬영했다.

장민호, 서정아, 이영철 배우가 떠났는데, 스텝들은 <보성 여관>의 접수대에서 퇴근하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산 감독은 스텝들에게 새로운 배우가 온다는 말만 했다.

박카스 아줌마 최영신 배우도 오고 할아버지역의 액스트라 배우도 왔지만, 시작하지 않고 한 사람 더 온다고만 했다.

누가 오는지, 언제 오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스텝들은 강산 감독이 대본도 촬영도 혼자 하는 사람이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서 그런가 싶었다.

강산은 임정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정재가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목포의 <장미 여관>의 부엌에서 촬영할 예정이다.

그러나 실제 첫 촬영은 서울, <보성 여관>의 접수대, 이곳에서 촬영할 예정이다.

임정재의 출연은 다른 배우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비밀이다.

마음 같아서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스텝들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   *

박카스 아줌마 진희씨가 골목으로 들어오고 액스트라 할아버지가 진희씨를 따라온다.

진희씨는 절반 정도 열려있는 <장미 여관>의 접수대로 와서 ‘똑’ ‘똑’ ‘똑’하고 문을 두드렸다.

접수대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진희씨는 평소처럼 오천 원을 접수대에 두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여관방 키를 달라는 말이다.

그런데 접수대 안에서는 키 대신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대실은 만원이에요.”

“누구야. 영남씨는 어디 갔어?”

“그 영남씨, 아들이에요. 영남씨는 어디 갔는지 몰라요.”

“이봐. 이곳 단골들은 만원이 아니라 오천 원이야,”

“아줌마. 아줌마가 단골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럼, 영남씨는 언제 오는데?”

“영남씨가 언제 오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당신 진짜 영남씨 아들 맞아?”

“영남씨 아들, 맞아요. 아줌마. 그런데 계속 이러고 있을 거예요. 저기 아저씨가 그냥 가려고 하는데?”

진희씨가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보았다.

접수대에서 소란을 벌이는 동안, 기다리기 머쓱해진 할아버지가 발길을 돌려 돌아가고 있었다.

진희씨는 서둘러 돌아가 할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오빠! 어디가.”

“됐어, 그만 갈래”

“내가 잘해 줄게~”

“그것이 말이야...”

“오빠. 다 해결됐어. 좀만 쉬었다 가자. 응~, 오빠”

진희씨는 돌아가려는 할아버지를 설득해서 다시 돌아왔다.

불편한 표정으로 진희씨가 접수대에 오천 원을 더 올려놓자, 차명수는 ‘씨익’하고 웃으면서 진희씨에게 방 키를 내주었다.

“아줌마. 편안히 쉬세요.”

강산은 임정재의 비릿한 미소를 여운으로 남겨두었다.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임정재가 출연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다.

*   *   *

“맛있게 먹을게요. 철성이 아저씨”

“철성씨 덕에 입이 호강하네.”

“고기 더 시켜도 돼요. 아저씨”

“그래. 더 시켜. 이한이 많이 먹어”

드럼통 테이블이 놓인 불판에는 ‘지글 지글’ 돼지고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작은 식당 안에는 몇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가운데 테이블에는 <장미 여관> 멤버들이 회식을 하고 있다.

진짜 회식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첫눈>에서 하는 극중 회식이다.

“영남이 아저씨. 제 술 한잔 받으세요.”

“그래. 한잔 만.”

“아저씨도 힘드실 텐데, 기다려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무슨 말씀을”

“아닙니다. 아저씨도 힘들다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괜찮아. 잘 되고 있어요.”

노가대하는 조철성은 몇 달 동안 여관방 값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달까지 일하던 건설현장에서 몇 달 치 임금을 받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받은 것이다.

조철성은 밀린 임금을 받자마자 밀렸던 여관 방값을 한 번에 계산했다.

조철성은 여관주인인 차영남과 여관에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한턱, 내겠다고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다.

“철성이 아저씨. 제가 한 잔 드릴게요.”

“그래, 미숙씨.”

이미숙이 조철성에게 술잔을 권하자 조철성이 바로 주욱 마시고는 이미숙에게 술잔을 돌려줬다.

“내 잔도 한잔 받아.”

“네. 아저씨.”

“미숙씨. 정말 고마워”

“아녜요. 아저씨”

이미숙 옆에서 돼지고기를 젓가락으로 깨작깨작하던 박마리아가 조철성에게 말했다.

“철성씨. 미숙이가 뭐해줬다고 고맙다고 그래.”

“미숙씨가 가끔 고구마도 챙겨줘서요.”

“철성씨, 고구마를 좋아하는구나. 내가 나중에 고구마 박스로 사줄게. 고구마가 얼마나 한다고”

“마리아 아줌마. 마음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아니야. 내가 진짜로 사줄게”

“네. 네”

“마리아 아줌마. 제 술 한잔 받으세요.”

“그래. 한잔 만 줘. 나는 소주가 안 받는데 철성씨가 주는 술이니까 한잔 받을게”

박마리아는 조철성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고는 인상을 찡그리고 소주를 마시고는 다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기분 좋다. 철성씨, 내 술 한잔 받아”

“네. 가득 부어 주세요.”

이때 이미숙이 일어나 건배를 제안했다.

“자. 우리 같이 한잔하시죠. 거기, 이한씨. 고기만 먹지 말고 잔 좀 채워요. 자 우리 모두 행복한 내일을 위하여!”

“위하여!”

“하하하”

“호호호”

다 같이 ‘위하여’라고 합창하듯이 한 번에 말을 맞추고는, 한 번에 말을 맞추는 것이 서로 신기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   *   *

강산과 스텝들은 오늘 아침 일찍부터 서울에서 출발해서 목포로 내려오느라 고생했다.

지난번에 내려올 때는 익산, 고창을 들러서 오느라 조금 괜찮았는데, 이번에 서울에서 목포까지 바로 내려올 때는 8시간이 넘게 걸렸다.

기차로라도 이동하면 좋았겠지만 싣고 움직여야 하는 기자재 때문이라도 기차를 이용할 수 없었다.

휴게실에서 쉬는 시간을 포함한 것이지만 아무튼 시간이 너무 걸렸다.

강산과 스텝들은 배우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저녁부터 시작하는 촬영을 준비해야 했다.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저녁 6시까지 목포로 내려와 달라고 했다.

스텝들은 한 달 만에 다시 온 적산가옥의 모습을 예전의 <장미 여관>의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지난번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기준으로 불필요한 물건들을 치우고 정리했다.

배우들에게는 오늘부터 차영남의 아들인 차명수가 출연하는 씬을 촬영한다고 했다.

참, 차명수 역으로 섭외된 배우가 누군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강산과 스텝들이 늦은 점심을 먹고 오자, 김여정 배우가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강감독!”

“오셨어요. 선생님.”

“강감독. 내가 지난번에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랬지.”

“그럼 뭐라고 불러야 마음에 드실까요.”

“누나. 누나 좋다.”

“누나는 좀...”

“그럼, 큰 엄마.”

“큰 엄마요!”

“호호호, 무얼 그리 놀라. 강감독은 놀리는 맛이 있어. 편한 대로 불러. 그런데 말이야. 강감독, 그게 사실이야.”

“무엇이요?”

“영남씨 아들, 명수 말이야.”

“명수가 어떤데요?”

“소문대로 송광호가 출연하는 거야?”

“송광호요?”

“강감독이 송광호가 아니면 촬영하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내가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아니면 말고, 송광호가 아니면 누구야? 임정재와 장우성이야. 김동원이라는 말도 있던데”

“그런 배우들이 이런 독립영화에 출연하겠어요. 오면 확인하세요.”

“강감독, 나쁜 사람이네. ”

“제가요. 왜요?”

“그거 몰라. 호기심이 사람을 죽게 한다는 거 몰라. 코난 도일도 호기심 때문에 죽었다고 하잖아.”

“코난 도일요. 선생님, 셜록 홈즈를 쓴 작가 말이에요? 그 작가가 호기심 때문에 죽었어요?”

“코난 도일이 작가야? 탐정 아냐? 아무튼. 강감독, 나한테만 살짝 가르쳐줘.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을게”

“선생님. 귀 좀 가까이 대 주세요.”

“그래, 누구야?”

김여정은 언제 삐졌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강산의 입에 귀를 가까이 댔다.

“나중에 확인하세요.”

강산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김여정은 강산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강감독, 심장이 나쁜 늙은이를 호기심으로 죽게 할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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