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92화 (92/140)

〈 92화 〉 기모석: 나 보고 어떻게 하라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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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재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대학로에서 조금 떨어진 빌딩의 골목을 돌고 있었다.

검은 마스크를 쓴 것은 나름,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다.

강산이 가르쳐준 연기 코치를 찾아가고 있지만, 대학로 근처에 이런 골목이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하고 있었다.

강산의 쪽지가 가리키는 주소는 4층 건물의 지하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건물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이 나타나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긴 복도가 나타났다.

긴 복도에는 사무실 입구로 보이는 문들이 세 개가 보였다.

그중 두 번째 문에는 임정재가 찾는 <기모석 연기연구소>라는 작은 간판이 있었다.

임정재는 이제야 제대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똑, 똑, 똑”

임정재는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안에 사람이 없나 보다.’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연기 코치도 안 만나고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임정재는 연락처라도 남겨두고 가려고 했다.

마땅한 종이가 없어 고민하다가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메모지와 볼펜을 빌려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기모석 연기연구소>에 메모지를 끼어두고 돌아서는데, 메모지와 볼펜을 빌린 여고생이 <기모석 연기연구소> 문고리를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허탈한 표정을 짓던 임정재는 여고생처럼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은 생각보다 넓었지만 너무 어두워서 주변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어디에서 연기 톤의 독백 소리가 들려왔다.

큰 소리는 가운데에 있는 작은 무대 위에 있는 여학생에게서 나왔고, 그녀의 머리 위에 다운라이트 하나가 켜져 있었다.

무대 위에는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이 연기하고 학생들 옆에는 중년의 남자가 학생들의 연기 파트너가 되어 학생들의 연기를 받쳐 주었다.

아마추어이지만 열정이 넘치는 연기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사무실에 불이 켜지고 환하게 밝아졌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났는지 중년 남자에게 인사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중년 남자가 임정재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어떻게 오셨나요?”

임정재는 마스크를 벗고 기모석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임정재입니다.”

“기모석입니다.”

“강산 감독, 소개로 왔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아~ 네.”

“임정재 배우가 찾아올 거라고 전화 왔었습니다.”

임정재는 기모석의 단답형 대답에 어색해진다.

연기를 배우려고 어렵게 찾아온 제자에게 연기 코치의 단답형 대답은 사무실 안의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평소 임정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과묵한 사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임정재는 기모석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자신이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기모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선생님. 강산 감독이 뭐라고 하던 가요?”

“많이 들어주고 많이 보여주라고 하던 데요.”

“아~ 네. 무엇을 말입니까?”

“네?”

“그러니까, 강산 감독이 무엇을 들어주고, 무엇을 보여주라고 하던 가요?”

“들어주는 건, 임배우님 말을 많이 들어주고 보여주는 건, 아이들과 같이 연기하는 장면을 임배우님에게 많이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임정재는 기모석과 대화가 불편했다.

나이도 어리고 연기를 배우러 온 사람에게 높임말을 쓰는 기모석의 태도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선생님. 말을 좀 편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불편하세요. 저는 이게 편한데요.”

“네. 제가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제가요.”

“음, 나중에 좀 더 편해지면...”

기모석은 임정재가 말을 편하게 하라는 말이 더 부담스럽다.

임정재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미남 배우, 여러 영화에 출연한 인기 많은 젊은 무비스타라고 알고 있다.

알 파치노 같은 대배우도 액팅 코치, 연기 선생을 둔다고 하지만 자신이 임정재, 서정아 같은 배우의 연기 선생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   *   *

강산 감독은 잘 모른다.

어느 날, 자신을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한 젊은 친구가 찾아와서, 작은 영화를 준비한다고 자기가 보내는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모석은 연극배우 출신 심리상담가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연극에 입문한 후, 극단 <꿈꾸는 나무>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연극으로는 밥을 먹고 살기 어렵다고 생각한 기모석의 부모는 기모석에게 심리학과를 졸업한 경력을 살려 심리대학원에 진학 후, 심리상담전문가 자격을 따도록 했다.

기모석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 <기모석 심리상담소>를 열었다.

개업하고 한동안 손님들이 없어 사무실을 운영하기 어렵게 되자, 평범한 심리상담으로는 인기를 얻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고객들의 상담과정 중에 연기과정을 넣었다.

우연한 일이지만 상담하던 학생 중에 한 학생이 한강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하면서 심리상담보다 연기 입시학원으로 잠시 이름을 얻기도 했지만, 기모석의 본업은 심리상담이었다.

다만, 이 연기과정이 학부모 사이에 유명해지고 정신과 병원에 출입기록이 남을 것을 꺼리는 학부모들이 기모석에게 아이들을 보내왔다.

연기과정이 효과가 있는지 학교성적, 가정불화, 부모이혼 등 각종 문제로 고민하고 방황하던 아이들이 안정되면서 사무실을 운영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어느 학부모가 <기모석 심리상담소>라는 간판을 다른 이름, 예를 들어 **연기학원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심리상담소>라는 말이 아이들을 보내기 조금 부담스럽다고 말이다.

편견이 없는 기모석은 <기모석 연기연구소>라고 간판을 고쳐 달았다.

<심리상담소>가 연기학원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연기학원이라고 간판을 달기에는 기모석이 부담스러웠다.

아무튼, <기모석 연기연구소>는 학생들의 심리상담을 연기를 통해 고민을 치유하는 과정을 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기모석 연기연구소> 출신 학생들이 연극영화과에 많이 합격한다는 이상하게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입시학원이 아닌데 상담받으러 오는 학생보다 연기를 배우러 오는 멀쩡한 애들이 가끔 섞여(?) 많아지고 있었다.

기모석은 고민이 생겼다.

자신이 연기를 가르치는 사람인지, 심리상담을 하는 심리상담가인지 정체성이 불분명해지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심리상담소>에서 <연기연구소>로 간판을 고친지도 3년이 지나면서, 심리상담기법도 연기를 통한 상담기법 말고는 잘 모르겠다.

문제 있는 아이들보다 연기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이 더 많아졌다.

사실 문제없는 아이들이 어디 없겠는가? 정상적인 아이들도 누구나 고민 하나둘 정도는 달고 사는 세상이 아닌가?

이제 본격적으로 학생들에게 연기지도를 해 볼까 하는 고민하던 차에 강산이 찾아와 배우들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했다.

본격적으로 연기학원을 하려면 제자들 이력이 필요하다.

연기 선생으로서 지도 경력은 짧지 않지만, 제자들 대부분이 학생이라 성인연기자들 이름이 필요했다.

기모석은 강산이 귀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자신의 심리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기도 했지만, 고민을 해결해준 분이 나타났는데 귀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산이 만드는 작은 영화,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연기 경험이 부족한 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쳐달라는 제안으로 생각하고 배우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서정아가 <기모석 연기연구소>에 나타난 것이다.

미코출신 서정아가 자신에게 연기를 배우러 오다니, 이것은 잘못 되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바로 사무실 밖으로 나가 강산에게 전화했다.

“감독님, 서정아 배우가 찾아왔습니다.”

“네. 제가 보냈습니다.”

“감독님, 제가 어떻게 서정아 배우를 가르칩니까? 제가 오히려 서정아 배우에게 연기를 배워야죠.”

“기모석 선생님, 충분하게 가르칠 자격이 있습니다. 자격이 있으니까 보낸 것입니다.”

“감독님. 저를 높게 평가해 주신 것이야 감사한 일이지만 이건 무리입니다. 저는 안 되겠습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선생님! 일단 제 말을 들어주세요. 들어보시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으실 겁니다.”

“음... 말씀하세요.”

“일단 서정아 배우와 고민 이야기를 나눠보시죠. 저는 선생님에게 서정아 배우에게 연기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상담을 해 달라는 말입니다.”

“심리상담요.”

“네. 선생님. 심리상담가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선생님 제자들 중에 한 분이 제 학교 후배거든요.”

“누구... 인가요?”

기모석은 강산의 말한 후배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고요. 후배가 말해 준 선생님의 강의 기법이 인상적인 부분도 있지만요. 지금은 심리상담이 필요합니다.”

“서정아 배우가요. 아픈가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서정아 배우가 연기 고민이 많거든요. 힘을 빼고 연기하면 더 좋은 표정을 만들 수 있는데, 고민이 너무 많아서인지 벽에 갇힌 느낌이에요. 선생님이 서정아 배우 고민을 들어주세요.”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가요?”

“선생님, 먼저 서정아 배우 고민을 들어주다가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학생들과 연기지도 하듯이 해주세요.”

“학생들처럼요.”

“네. 학생들처럼요. 학생들하고 연기 지도를 할 때 학생들이 써온 대본으로 선생님이 상대 역할을 해 주잖아요. 이번 영화 <첫눈> 대본에서 서정아씨 상대 역을 해주세요.”

그 후로 서정아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찾아왔다.

일정은 단순하다. 서정아의 고민을 들어주고 학생들의 연기지도하는 모습을 참관하기도 하고 서정아의 연기 파트너가 되기도 했다.

기모석은 서정아가 너무 예뻐서 처음에는 말도 걸지 못하다가 요즘에는 학생들에게 지도하듯이 서정아를 지도하고 있다.

서정아는 연기지도 시간을 마칠 때마다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하고 하고 가지만 진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고창 공소에 갔을 때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면서 상담을 하는데, 상담전문가 시각으로 서정아의 불안 심리를 분석하고 이야기해 주었다.

기모석은 서정아의 심리를 상담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배우도 다른 배우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사는구나.’

서정아에게 간신히 적응했다고 생각할 무렵, 강산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사람을 더 보내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2주일 정도, 배우의 말을 많이 들어주고 많이 보여주라고 한다.

기모석은 이제야 자신에게 맞는 배우를 보내주는가 싶었다.

이번 배우와는 연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학생들과의 연기 호흡을 많이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임정재가 나타난 것이다.

'나 보고 어떻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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