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90화 (90/140)

〈 90화 〉 김여정: 엄마 생각은 나?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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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로 올라온 후, 강산은 스텝들에게 하루 휴식을 주었다.

스텝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강산은 배우 섭외를 마무리하기 위해 쉴 수 없었다.

박형수를 찾아 충무로로 갔다.

“형수형. 송광호 선배는 아직도 연락이 없어요?”

“광호형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소속사에 출연료를 맞춰 주겠다고 해 보세요.”

“출연료 때문은 아니고 다른 작품에 들어가는 거 같더라.”

“그럼 다른 배우들은 관심이 있대요?”

“임정재는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어려울 거 같고 장우성은 정중하게 거절하더라.”

“그럼 다 안 된다는 거네”

“이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데?”

“2주 정도”

“다른 배우를 섭외하는 것은 어때?”

“다른 배우들을 섭외하는 것도 고민해 볼게요. 배우들에게 맞춰 대본을 쓰는데 또 다른 배우를 섭외하면 수정할 부분이 너무 많아져서 곤란해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형, 임정재에게 한번 만나자고 연락을 해 주세요.”

“그러고도 안 되면?”

“그때는 다시 생각해보죠.”

*   *   *

강산은 탑골 공원에서 촬영하고 있다.

탑골 공원에서는 오전에는 김여정(박마리아)이 출연하고 오후에는 김여정과 서정아가 출연한다.

오늘은 가능하면 촬영을 빨리 마무리할 생각이다.

형수형에게 가능하면 임정재와 오늘 저녁에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봄 볕도 따스하고 채광도 좋아 촬영하기에 좋은 날씨다.

단역배우 할아버지들이 공원 외곽에 있는 벤치에서 장기를 두거나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박카스 아줌마 역으로 섭외한 세 분의 할머니 배우들은 분홍색, 빨강색, 보라색 등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할아버지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배회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주로 크로스백을 어깨에 가로질러 메고 다닌다.

박카스나 소주, 담배, 비아그라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을 넣었다가 꺼내기에 크로스백이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원래 박카스 아줌마들은 공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호객행위를 못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공원밖에 있는 화단에 서 있다.

여담으로 공원 안 중앙에는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구경하는 할아버지가 차지한다.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는 할아버지들은 주로 공원의 가장자리에서 토론을 벌이는데, 지지하는 정치성향에 따라 동쪽과 남서쪽으로 나뉜다고 한다.

강산이 신호를 주자, 회색 점퍼를 입은 할아버지가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화면 안으로 내려온다.

화장을 짙게 하고 크로스백을 맨 분홍색 아줌마가 회색 점퍼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저, 여기는 처음이세요?”

“그렇소”

“박카스 한 병 하실래요.”

“박카스?”

“박카스가 그러면 소주도 있어요.”

“그런 거 말고 다른 것도 판다고 하던데?”

“저요. 저는 얼마 안 해요.”

분홍색 아줌마는 주저하는 할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화면에서 사라진다.

이어 검은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위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보라색 아줌마가 중절모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어 보지만, 중절모 할아버지에게 거절 당했나 보다.

보라색 아줌마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중절모 할아버지가 박마리아 앞을 지나가려고 하자, 박마리아가 중절모 할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오빠, 나랑 연애할래요? ”

“관심 없소.”

“잘 해 드릴게~”

“...”

박마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중절모 할아버지와 팔짱을 끼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밀어내며 박마리아의 얼굴을 보았다.

나이가 든 얼굴이지만 곱상한 외모에 날씬한 몸매, 짝퉁 페라가모를 맨 박마리아의 모습이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박마리아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할아버지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제가 먼저 갈게, 따라오세요.”

박마리아는 중절모 할아버지와 눈빛을 교환하고 앞장서서 걸었다.

중절모 할아버지는 박마리아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박마리아의 뒤를 따라갔다.

할아버지에게 거절당한 보라색 아줌마가 두 사람을 보고 입을 샐쭉거렸다.

“컷. OK요. 30분 정도 쉬었다가 다음 씬 갈게요.”

중절모 할아버지 역을 하신 분은 원로 연극배우이신 박상건 선생이다.

박상건 선생은 장민호 선생이 젊은 시절 몸담았던 극단 <청춘 만세> 선배로 장민호 소개로 캐스팅했다.

다음 씬은 보라색 아줌마 최영신, 김여정, 서정아가 출연한다.

자신을 고객을 자꾸 빼앗아 가는 박마리아에게 화가 난 보라색 아줌마가 박마리아와 싸우는 중에 이미숙이 관여하는 씬이다.

“마리아. 너 말이야. 자꾸 남의 손님한테 그러면 안 돼”

“뭐가?”

“요즘 조선족 아이들이 지하철 근처에서 손님들을 뺏어가서 가뜩이나 손님이 없는데, 네가 남의 손님을 자꾸 뺏어가고 있잖아.”

“진희씨.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내가 언제 남의 손님을 뺐었다고 그래. 손님들이 나를 찾아오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래. 네년 **는 금테를 둘렀냐?”

“그래, 나는 금테를 둘렀다. 너는 은테도 없냐?”

박마리아와 진희씨가 언쟁을 높이자 지나가던 남자들과 다른 박카스 아줌마들이 구경하려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래. 마리아 너 잘났다. 네년이 그것을 그렇게 죽여주게 잘한다면서, 그래서 싸가지가 없이 그러냐”

“그래, 내가 죽여주는 여자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그래 이년아.”

“아니, 이년이 그래도, 네년 나한테 한번 죽어봐라. 이년!”

진희씨는 박마리아의 머리칼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짝퉁 페라가모 백을 메고 있는 박마리아는 진희씨의 힘에 감당하지 못하고 진희씨의 팔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다녔다.

“얘, 얘, 진희씨. 진희야. 머리 좀 놓고 얘기하자. 놓고 얘기하자고. 나 어제 머리했어. 진희씨. 요즘 머리에 힘이 없어. 자꾸 머리가 빠진단 말이야. 진희야”

그때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로 이미숙이 들어와 둘 사이를 떼어냈다.

“헉, 헉, 네년은 또 뭐야”

“아줌마. 머리카락은 놓고 얘기해요. 마리아 아줌마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하잖아요.”

“네년은 누구야. 네년도 이 죽여주는 년과 한패야”

“한 패는 아니지만, 한 집에 살고 있어요.”

미숙이 진희씨와 박마리아 사이에 끼어들자, 두 사람은 몸싸움을 멈추고 대치 상태로 변했다.

박마리아는 미숙이 자기 편을 들자, 다시 살아났다.

“미숙아. 저년은 아주 무식하고 힘만 센 깡패 같은 년이야. 아니, 깡패 년이야 깡패 년”

“박마리아. 네년 정말 죽어볼래!”

“진희야. 나는 네년이 한 말대로 죽여주는 여자라니까. 죽어주는 여자가 아니라.”

“네년 오늘 저녁에는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을 줄 알아.”

이때, ‘피-이익, 휘-익’하는 휘슬 소리가 들려오고 공원관리소 아저씨들이 나오자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컷. OK입니다. 오늘 촬영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강산이 ‘컷’을 하자 연기하던 배우들이 연기를 마치고 흩어지고, 배우들은 서로 수고했다고 다독인다.

“영신아. 너는 건강한가 보다. 아직도 힘이 세.”

“여정 언니, 잘 지냈어. 오바하는 연기는 옛날하고 똑같네.”

“그래, 너는 어떻게 지내.”

“평상시에는 연극하고 연극이 쉴 때는 작품 있으면 작품하고 없으면 놀고 그래”

“영신아. 언제 시간 되면 술이나 하자.”

“술 좋아하는 것도 옛날하고 똑같네. 똑같아.”

*   *   *

김여정은 이번 영화가 편하지 않았다.

독립영화이니만큼 현장 환경이 편하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다.

맡은 배역도 배역이라 음습한 여관 방의 퀴퀴한 냄새나 좁은 방안에서 몇 달을 지내야 한다.

자신이야 몇 달간 고생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지만, 이곳에서 몸을 파는 여성들은 평생 이런 곳에서 지내야 한다니 눈물이 났다.

몸을 파는 여성 역할을 연기하는 것도 몸과 마음이 아프다.

젊은 시절에 이런 역할을 맡았다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았다.

강산이라는 신임 감독이 아니었다면 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많은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다.

“강감독. 마리아씨는 왜 이렇게 살까?”

“선생님. 사람마다 무슨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겠지. 사람이 사는데,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러니까 말이야. 강감독, 마리아씨 과거는 어땠어?”

“네?”

“마리아씨가 어떻게 살았냐고?”

“아~ 네. 제가 생각한 마리아씨는 어린 시절, 가정 형편상 학교에 가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해요.”

“그래 옛날에는 그런 일들이 많았지”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나쁜 짓을 당해서 임신하고 그 남자와 동거를 시작해요. 딸을 낳고 삼 년 정도 같이 살다가 남편이 공장사고로 죽어요.”

“그래. 그랬구나. 딸은 어떻게 됐어”

“사고보상금이 문제에요. 보상금 때문에 시댁 식구가 딸을 빼앗아 가고 그 후로는 딸을 보지 못했어요. 마리아가 찾아올까 이사가 버렸거든요. 그 후로 살기 위해 몸을 팔기 시작해요. 지금까지요.”

“강감독. 너무 슬프다. 눈물이 나서 안 되겠어. 나 화장지 좀 줘”

“선생님. 여기”

김여정은 박마리아 이야기에 감정이 북받쳐오는 지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강산이 김여정에게 화장지를 뽑아서 건네주자, 김여정은 화장지로 눈물을 닦았다.

“그래. 고마워. 강감독 너무 주책이지.”

“아뇨. 선생님 마음이 따뜻한 거죠.”

“아냐. 아니야. 내가 너무 주책이다. 강감독에게 너무 주책을 부렸어.”

“아닙니다. 선생님.”

“강감독. 선생님이라고 하지 말아요. 내가 뭘 가르쳐 준 것도 없는데, 선생님은 무슨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하면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잖아”

“그럼 뭐라고?”

“누나. 누나는 좀 그런가? 강감독 엄마 나이가 어떻게 돼?”

“엄마요. 마흔하나인데요.”

“마흔하나. 그래 마흔하나. 그럼 강감독을 언제 낳은 거야. 열여섯에 낳은 거야.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닌데 왜 그렇게 빨리 낳은 거야.”

“아녜요. 마흔하나에 돌아가셔서 더 이상 나이를 먹지는 않아서요”

“엄마가 돌아가신 거야. 그럼 고아인 거야?”

김여정은 휴지를 눈물을 닦으며 말하자, 강산이 다급하게 부인한다.

“아녜요. 선생님. 아버지는 시골에 잘 계세요.”

“그래도 너무 슬프다. 오늘 나, 왜 그러는 거지. 정말 주책이다. 정말”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산은 휴지를 많이 뽑아서 김여정에게 건네주었다.

“그래. 그래도 엄마 없이 얼마나 힘들겠니? 엄마 생각은 나?”

“네. 가끔씩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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