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강산: 무슨 선택을 하든지 운명이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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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배는 해피미디어 최룡해 사장을 찾아갔다.
최룡해 사장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5천을 만들려고 했지만, 돈은 모으지 못하고 술을 먹느라 오히려 돈만 쓰고 다녔다.
소문이 좋지 않았다.
애플 사장 이덕배가 영화제작 투자금을 모으려고 사람들을 만나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애플 사장이 조폭 출신이지만 손을 씻었다고 하더니, 갑자기 극장용 영화제작을 한다고 하며 사기를 치려고 한다는 황당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로비디오를 만들던 사람이 갑자기 극장 개봉용 영화를 만든다고 나서고, 감독이라는 사람은 강산이라는 신인 감독이라고 하는데 이제 갓 스물 다섯을 넘었다고 한다.
결국, 이덕배는 새로운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운명이다.
강산이 최룡해를 먼저 찾지 않고 이덕배를 찾은 것은 최룡해와 가능한 인연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강산이 이덕배에게 안되면 최룡해를 찾아보라고 최룡해를 언급한 것은, 이덕배의 청개구리 성격상 오히려 절대로 최룡해를 참여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번 영화 <첫눈>이 성공하면, 이번 생의 키다리 아저씨이자 영화 투자자로 이덕배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덕배는 새로운 파트너를 찾지 못하고 최룡해 밖에 없었는지, 강산은 해피미디어 사장실에 앉아있다.
최룡해하고는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고 끊으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 인연인가 싶었다.
이덕배 사장은 다른 투자자들에게 오천만 원을 만드는 미션을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성공했다면 이덕배는 절대로 해피미디어 최룡해 사장을 포함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강산의 생각과는 반대로, 이덕배는 지난주에 최룡해의 전화를 받았다.
- 이사장님. 통화 가능하세요?
“아~ 최사장님. 가능합니다. 누구 전화 신데요. 그런데 무슨 일로?”
- 전에 강산 감독하고 통화하다 갑자기 끊어진 적이 있잖아요.
“제가 그랬나요?”
이덕배는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지만, 일부러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잡아 뗐다.
최룡해하고는 강산의 작품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최룡해가 이덕배에게 나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덕배는 강산의 작품으로 수 억을 번 최룡해가 부럽고 미울 뿐이었다.
자신은 두 작품을 만들고도 최룡해가 보너스로 준 삼천만 원이 다였다.
- 이사장님이 갑자기 급한 일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기억이 잘...”
- 그럼, 이 말을 들으면 이사장님 기억이 선명해지겠군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 갑자기, 이사장님이 기억이 더 나빠지기 전에 채무를 다 회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끄응... 최사장님, 기억이 납니다.”
- 아~. 이제 기억이 나시는군요.
“네. 그때 강산 감독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랬습니다.”
- 그 급한 일이란 게 무언지 제가 알면 안 될까요. 이사장님.
“그게 좀 사소한 일이라 말하기가 좀...”
- 안타깝군요.
“네? 뭐가요.”
- 사소한 일 때문에 저하고 이사장님 사이가 벌어지게 되겠군요. 덤으로 채무도...
“최사장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 저희가 한두 해 아는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 그런 좋은 관계를 이사장님이 지금 거칠어지게 만들고 있죠.
“끄응... 전부 말하겠습니다. 채무 이야기는 그만하시지요.”
- 이사장님이 하는 거 보고요.
* * *
강산은 해피미디어 사장실에서 영화 <첫눈> 제작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최룡해 사장은 얼굴에 웃고 있었지만, 이덕배는 심퉁한 표정을 지으며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강산은 최룡해의 이런 관심이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에게 오천만 원은 큰 돈이지만 최룡해에게 오천만 원은 그리 큰 돈이 아니다.
그에게는 푼 돈에 불과하다.
나중에 ‘T’그룹, 태산그룹 후계자 싸움에 뛰어들려면 지금은 한창 사업에 집중해야하는 시간이 아닌가?
정말로 예술을 좋아해서 이러는가?
아니면 <두 자매>가 예상보다 크게 흥행해서 그런가 싶었다.
최룡해에게 강산은 매우 흥미로운 존재였다.
애플의 이덕배 사장은 절대 허술한 사람이거나, 정같은 감정때문에 판단을 흐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랬다면 절대 독사파 행동대장을 하거나, 조폭 세계에서 나와 독립하거나, 애플 프로덕션이라는 사업을 지금까지 운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덕배 사장은 강산 감독이라는 친구를 싸고돌았다.
강산을 애플에 보낸 것은 최룡해 자신이지만 강산의 능력을 알고 보낸 것은 아니다.
우연이지만 이덕배 사장은 항상 최룡해에게 사람이 없어서 에로영화를 만들기 어렵다고 불평했다.
그때도 작품비를 올려달라고 칭얼거리는 통에 마침, 채무자로 잡혀 온 강산을 잡부로 보낸 것이다.
어찌 보면, 강산에게 운이 강한지도 모른다.
열악한 에로영화 현장에서도 살아남더니, 운이 좋게도 에로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강산이 만든 <두 자매> <사랑의 데자뷰>, 두 작품 모두 괜찮았는데 그 중 <두 자매>는 충격이었다.
열악한 제작비 상황이나 배우들의 수준이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화면의 구성과 촬영기술로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생긴 빈틈을 메우고 있었다.
사실, 최룡해가 이런 에로영화에 신경 쓰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지금 운영하는 사업체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신사업을 구상하느라 너무 바쁘고 머리가 아프다.
그 와중에 에로영화 감상이나 제작투자 같은 것은 무리한 일이다.
애플의 에로영화는 최룡해가 운영하는 영화관에 영화를 공급하는 수단중의 하나일 뿐이고 소소한 일이다.
최룡해는 강산에게서 언더독들이 가지는 사납고 거친 느낌과 함께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강산의 작품을 보고 후속 작업을 지원하고, 자신의 극장과 다른 극장들에 올린 <두 자매>, <사랑의 데자뷰>가 흥행에 성공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지만 다른 사업에 비하면 큰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최룡해에게 강산의 작품은 바쁜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자 작은 일탈을 하는 변태적인 취미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강산이 영화를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다.
강산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아서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이덕배 사장도 자신을 뺀찌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최룡해는 이덕배 사장을 협박(?)해서 <첫눈>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입수해 읽어 보고 영화 제작에 참여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덕배는 제작투자가 이미 끝났다고 거절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이덕배의 반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최룡해는 이덕배에게 영화 <첫눈>의 총제작비 1억을 전부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이덕배가 오천 이상은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최룡해는 이덕배에게 한 달에 세 작품을 납품하던 일정을 한 달 유예해 주겠다고 했다.
계약을 모두 마치자, 최룡해는 강산과 이덕배에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식사나 같이하자고 했다.
전생에서 영화제작 계약을 마치면 항상 최사장이 밥을 사고 강산이 2차를 샀다.
최룡해는 이덕배와 강산을 데리고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뒤편 4층 건물 지하에 있는 일식집 ‘란’으로 갔다.
일식집 ‘란’은 강산이 전생에 알던 곳이 아니다.
‘란’으로 들어가자, 실내 정원 같은 중앙 공간에 커다란 매화나무가 가지를 넓게 펼쳐져 있었다.
회귀 전에 강산은 미식가 최룡해를 따라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곳이라고 소문난 음식점들을 많이 따라 다녔었다.
그런데 이곳 ‘란’은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강산이 최룡해를 만났던 시기는 2005년으로 그때에는 이곳이 문제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만난 기억은 없었다.
“제가 먼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최룡해는 신선한 다금바리 생선회와 스끼다시가 상위에 펼쳐지자, 이덕배와 강산에게 사케 술잔을 돌렸다.
사케는 강산이 예상한 대로 ‘오토코야마’였다.
오토코야마는 세계 주류 콩쿠르 대회에서 연속 금메달을 받은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사케다.
최룡해가 만나는 사람 중에 ‘오토코야마’를 권하는 것은 당신과 잘 지내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다.
그리고 어지간히 친한 사람이 아니면 ‘오토코야마’를 권하지 않고 주방장이 권하는 술을 돌렸다.
“잘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룡해의 말에 강산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는 술잔을 자리 내려놓았다.
강산이 술을 마시지 않고 사이다만 홀짝거리다 보니, 술잔은 이덕배와 최룡해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강감독님, 내년 월드컵에서는 우리나라 축구가 어떻게 될까요?”
“월드컵 축구요. 히딩크 감독이 알아서 잘 하겠죠.”
최룡해는 강산이 술도 마시지 않고 혼자서만 안주를 먹고 있자, 대화에 끌어오려고 강산에게 월드컵 축구 이야기를 했다.
그래, 남자는 축구지.
“히딩크 감독이 잘한다는 기준은요?”
“16강에 올라가면 잘 하는 거고 탈락이면 못하는 거죠.”
“그럼, 강감독은 우리나라가 16강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하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있나요?”
“역대 개최국들은 16강을 모두 통과했다고 하더군요.”
강산이 ‘내가 회귀하기 전에 봤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어 개최국 이야기로 피해갔다.
“강감독님. 내기 한번 할까요?”
“무슨 내기요.”
“강감독님, 말대로 16강에 가면 내가 강감독 소원 하나 들어주고, 못 가면 강감독이 내 소원 하나 들어주기요.”
강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했다.
회귀로 결과를 알고 있는 강산은 잠깐 최룡해의 제안한 내기를 받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에 투자하는 최룡해에게 사기 치는 것 같았다.
“음... 그 내기는 다음에 하죠. 최사장님, 저는 16강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감독님. 16강 이상이면 얼마까지 올라갈까요. 8강?”
다금바리를 먹고 있던 강산은 최룡해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도 최룡해 사장 덕에 영화도 성공하고 <좋은 친구들>이라는 회사도 만들었다.
이번 생은 최룡해 사장과는 되도록 인연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지만 최룡해 사장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최사장님. 제가 반대로 내기 제안할까요. 최사장님, 생각에 우리나라가 최대한으로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음... 16강. 제 생각에는 최대한 16강 정도에요. 강감독님은요?”
“저는 4강까지 간다고 생각합니다.”
“에이~ 아무리 운이 좋아도 4강은 무리예요.”
“최사장님. 나중에 월드컵 끝나고 제 말이 맞으면 말이에요. 최사장님이 고민하는 일이 있을 때 제 말 믿고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요.”
강산이 최사장을 처음 만났을 때는 2005년이었다.
최룡해는 강산과 친해지자, 강산과 개인적인 술자리를 많이 가졌다.
회귀하기 전에는 강산도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셨다.
최룡해는 술에 취하면 항상 강산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던 일이 있었다.
2002년에 ‘A’ 보험회사를 인수할 기회가 있었는데, 주위의 반대로 인수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최룡해는 그때 ‘A’ 보험회사를 인수하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때 ‘A’ 보험회사를 인수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태산그룹의 후계자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리라 생각됐다.
이번 생에는 최룡해가 ‘A’ 보험회사를 인수할까?
예전처럼 주위 사람의 말을 듣고 ‘A’ 보험회사 인수를 포기할까?
무슨 선택을 하든지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