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이덕배: 남자가 의리 빼면 시체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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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나인수의 뮤직비디오를 마지막으로 만들고 나서, <준 픽쳐스>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제부터는 정연이가 말한 천만 원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다른 방법도 많이 있겠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강산은 정연이가 연우대 의대에 합격했다고 말에, 걱정하지 말고 대학에 갈 준비나 하라고 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먼저는 미안한 감정이다.
회귀 전에 정연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간호조무사학원에 다니고,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다시 간호대학에 들어가 간호사가 되었다.
머리가 좋고 공부 욕심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우대 의대에 합격할 줄은 몰랐다.
둘째는 난감한 감정이다.
입학금, 1학년 등록금, 1년 기숙사비, 생활비를 생각하면 1학기만 해도 족히 천만 원은 들것이다.
어떻게 천만 원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것도 입학금, 등록금 마감일인 2월 말, 지금부터 두 달 안에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뮤직비디오로 천만 원을 만들기는 어렵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준 픽쳐스> 최영준 사장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생각했지만 마지막 방법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것도 또 다른 빚이다.
이 빚을 갚으려면 최소 6개월 정도는 뮤직비디오 일을 더해야 할 것이다.
강산은 회귀를 무기삼아 돈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부동산, 아무 곳이나 강남 땅을 사 놓으면 돈이 되겠지만 땅을 살 돈도 없고, 산다고 해도 투자한 돈을 회수 하려면 너무 길다.
주식, 주식을 생각하면 할 돈도 없고 어떤 종목을 사야 급등할 지, 잘 모르겠다.
비트코인, 맞다. 강산이 가진 돈으로 천만 원을 만들려면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딱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2008년이 되어서야 만들어진다.
지금은 부동산이나 주식, 가상화폐인 비트코인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강산이 내린 결론은 다시 에로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일들은 잘 몰라도 영화는 잘 안다.
특히 에로영화는 누구보다도 제일 잘 만들고, 시장의 흐름도 잘 안다고 자부한다.
다시 에로영화를 선택한 것은 약간은 정신 승리 같은 감정이 섞여있었다.
절대로 에로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다시 에로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래도 회귀 전에는 나 혼자 먹고 살기 위해 에로영화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에로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뮤직비디오를 몇 달 간 만들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감정이 강산을 사로잡았다.
‘너 지금 영화 만들지 않고 뭐하고 있어?’
강산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에로영화라도 말이다.
* * *
“여섯 달, 작품 네 개”
“세 달, 작품 한 개.”
강산은 이덕배 사장과 작업 조건에 대해서 흥정하고 있었다.
이덕배 사장과의 미팅이 어색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제 만났다가 헤어진 사이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덕배는 강산에게 예전처럼 애플의 전임을 요구했지만 강산은 딱 부러지는 말로 전임은 절대 안 한다고 거절했다.
대신 천만 원의 선금을 요구했다.
이덕배는 천만 원의 선금을 요구하는 강산에게 여섯 달, 작품 네 개를 요구하고, 강산은 세 달, 작품 한 개를 하겠다고 했다.
이 정도를 불러 놔야 나중에 줄어들거나 늘어나도 타협할 수 있을 것이다.
“안 돼~. 강감독 그럼 한 작품에 천이잖아. 그 정도면 이 바닥에서는 특 A급 감독 수준이야.”
“이 사장님. 제 작품을 보고도 그러세요. 제가 만든 <두 자매> 하고 <사랑의 데자뷰> 모두 잘 나간다고 하던데요.”
강산은 이덕배 사장을 만나기 전에 김두호를 만났다.
김두호는 강산에게 <두 자매>, <사랑의 데자뷰>가 극장에 올라간 지 3개월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극장에 걸려 있다고 초대박이 났다고 좋아했다.
내려갈 때가 된, 아니 넘은(?) 에로영화에 이상한 소문이 났다고 한다.
이상하지만 클래식 매니아들이 <두 자매>, <사랑의 데자뷰>를 계속 찾아와서 강제 장기상연 중이라고 한다.
“그거야... 그런데, 강감독 천만 원이나 선금을 주는데, 이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씀은 제 조건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말인가요?”
“꼭 그렇다기보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는 말이지.”
“이사장님. 내가 어떤 소문을 들었는데요?”
“어떤 소문?”
“<두 자매> 하고 <사랑의 데자뷰> 말이에요.”
“그래. 무슨 소문일까?”
“얼마 전에 관객 동원이 10만이 넘었다면서요.”
김두호에게 들었다.
두 영화의 관객 동원이 10만을 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해피미디어 최룡해 사장이 이덕배 사장에게 보너스를 줬다고 한다.
참고로 2,000년 당시 한국영화 흥행 순위 1위는 ‘공동경비구역 JSA’(583만)이다.
뒤를 이어 ‘비천무’(210만), ‘반칙왕’(187만), ‘단적비연수’(150만), ‘리베라메’(135만 명)가 2위에서 5위를 기록했다.
강산의 영화는 <두 자매>, <사랑의 데자뷰> 2편에다 전국 관객이라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제작비 대비 관객 수를 비교하면 초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그렇다고 하데.”
“그래서 최룡해 사장님이 보너스로 이덕배 사장님에게 삼천만 원을 더 주었다고 하던데요.”
“아냐. 아냐. 강감독. 그런 헛소리 누구한테 들었어? 김두호!”
이덕배는 사나운 눈초리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김두호를 찾았지만, 사장실에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
김두호는 이덕배 사장과 강산의 딜이 길어지자 눈치껏 알아서 자리를 피했다.
“두호는 나중에 찾아서 물어보시고요. 사실만 확인해 주세요.”
“강감독. 자린고비 최사장이 주기는 무슨 개뿔인가? 그건 한 달에 일을 마치면 주는 천만 원에, 밀렸던 천만 원을 받은 거 뿐이야.”
“사장님. 최사장님. 확인해 봐도 되지요?”
“당연하지. 전화해봐. 전화! 이 사람이 정말, 사람 말을 못 믿고 말이야. 그렇게 못 믿을 거면 다 집어 쳐!”
강산은 갑자기 화를 내는 이덕배 사장의 얼굴을 보았다.
험악한 인상에 흔들리는 동공, 굳이 말을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 줄 알겠다.
강산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신호음이 가는 소리가 들린 후, 누군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 오랜만입니다. 강산 감독님.
“안녕하세요. 최사장님. 전화 통화 가능하신가요?”
- 네. 말씀하세요.
“이번에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요.”
강산이 최룡해 사장과 통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손이 튀어나와 강산의 핸드폰을 빼앗았다.
“최사장님. 저 이덕배입니다. 강산 감독이 일이 생겨서 다음에 전화 드리겠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최사장님.”
이덕배는 강산의 핸드폰을 빼앗아 최룡해에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허허. 강감독 무슨 성질이 그리 급허신가?”
“아니 이사장님. 최룡해 사장님에게 확인할 것이 있어서 전화하는데 갑자기 그러시면”
“내가 안 된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최사장하고 통화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예의요?”
“아따 강 감독.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보고 해야지. 끝까지 들어보지 않고 결론을 내버리면 어떡하나.”
“그럼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아쉽네요. 저는 그래도 이덕배 사장님과 의리를 지키려고 찾아왔는데 어쩔 수 없이 다른 영화사를 찾아봐야겠네요.”
“아이구. 머리야. 알았어! 알았다고.”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남자가 의리 빼면 시체가 아니겠습니까?”
‘남자가 의리 빼면 시체다.’
이 말은 전생에 이덕배가 강산에게 자주 사용하던 말이다.
부족한 제작비와 과로에 시달린 강산이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거절할 때마다 이덕배가 강산에게 술을 사면서 술잔을 부딪치며 하던 건배사다.
이덕배가 ‘남자가 의리 빼면’하고 선창을 하면 강산과 졸개들은 ‘시체다.’하고 술잔을 모두 비워야 한다.
“저도 양보하죠. 5개월에 작품 두 편하죠.”
“강감독. 진작부터 그렇게 한다고 하면 좋지 않았나. 괜시리 이런 소동도 만들고 말이야. 그래 제작비는 얼마를 예상하고 있는가?”
“제작비는 한 편당 1억.
“뭐? 1억!”
“네. 그중에 제 감독료 선금 1,000은 별도에요.”
“너, 너무 많지 않은가? 차라리 감독료 천만 원에 제작비 사천은 어떤가?”
강산의 말에 이덕배의 얼굴이 노랗게 변하고 있었다.
강산은 사람의 얼굴이 참외처럼 샛노랗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덕배는 3개월 만에 만나자마자 1억을 달라고 하는 강산을 보고, 이덕배의 얼굴 근육이 떨리기 시작한다.
“이사장님. 다른 영화들은 보통 10억에서 20억 하지 않겠습니까? 제 영화 정도 퀄리티에 1억이라면 제가 손해에요.”
“그래도...”
이덕배 사장이 뒤로 물러서려고 하자, 강산이 미끼를 던진다.
“이사장님. 언제까지 앵벌이처럼 에로비디오 영화를 만들 거예요. 한 달에 세 작품, 사람이 쳇바퀴 속을 도는 다람쥐도 아니고 말이에요.”
“다람쥐?”
이덕배 사장은 술에 취하면 항상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을 노래했다.
다람쥐 챗바퀴 인생을 그만 두려고 독사파를 나왔는데, 애플에서도 다람쥐 인생은 달라진 게 없었다.
강산이 애플에서 독립하자 이덕배는 애플을 정리하고 산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었다.
라고 들었는데, 산속 겨울이 너무 춥다고 겨울에는 간간이 도시로 내려온다고 했다.
아무튼, 강산의 말에 이덕배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강산, 이 친구만 만나면 한번은 베팅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다.
맞다. 대박을 꿈꾸고 있다면 먼저 로또를 사야 한다.
로또도 사지 않고 대박을 꿈꿀 수는 없다.
강산이 만든 <두 자매>, <사랑의 데자뷰>는 관객 동원이 10만을 넘었다고 하고, 지방 극장이나 2편을 동시에 상영하는 극장에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최룡해 사장은 강산의 영화 <두 자매>, <사랑의 데자뷰>로 5억이 넘는 돈을 벌었을 것이다.
아직 비디오로 출시하지 않았으니, 비디오로 출시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강산이 만든 영화가 <두 자매>, <사랑의 데자뷰> 정도 성과를 낸다면 어떻게 될까?
절대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강산이 이전 두 작품 이상의 성과를 낸다면?
4대 배급사는 아니더라도 정식 배급사에서 영화를 배급한다면?
“강감독. 그런데 말이야.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자금은 오천 정도야. 그 이상은 죽었다 깨나도 만들기 어려워.”
“이 사장님. 해피머니 최룡해 사장이 있잖아요. 부족한 자금은 그 분하고 상의해 보시죠.”
“최룡해 사장?”
“네. 최룡해 사장이라면 참여하지 않겠어요.”
“최사장은 좀 그런데”
“최사장이 그러면 다른 분들을 모아 보던지요.”
“아무튼 저는 한 편당 제작비 1억 정도가 필요합니다. 이 사장님, 시나리오는 안 물어 보세요.”
“아 참, 시나리오는?”
“한 작품은 <첫눈>이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고, 다른 작품은 <봄날은 간다>예요. 늙은 남자에게 시집온 여자가 사랑을 위해 남편과 애인, 애인의 애인을 죽이는 이야기예요.”
“재밌겠는데, 강감독이 모두 쓴 것인가?”
“<봄날은 간다>는 원작이 있어요.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에요.”
“므... 뭣?”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