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나인수: 미-쏘를 잊-지를 마알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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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현은 촬영을 마치고 밴드 세션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들 덕분에 무사히 마쳤어요.”
“아냐. 네가 잘한 거지”
“아니에요. 선생님들 덕이에요. 완전. 선생님들이 오시기 전만해도 헤매고 있었거든요.”
“그래. 좋은 경험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최수현은 세션들에게 ‘꾸벅’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탁성대는 헤드폰을 쓰고 녹음된 음원들을 확인하고, 강산은 최수현의 촬영한 카메라들에서 수거한 테이프를 돌려보고 있었다.
강산이 보기에도 최수현의 노래나 표정도 이전보다 자연스러운데다 밴드 세션들의 반주도 나쁘지 않았다.
세 카메라에서 촬영된 세 가지 테이프를 가지고 나누어 편집하면 최수현의 표정이 좀 더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다만, CD로 녹음된 노래와 달리 이번 뮤직비디오는 현장 공연에 가까웠고 현장 사운드가 좀 더 블루지 하게 녹음되었다.
“최수현씨! 잠깐만 이쪽으로 와주세요!”
강산이 최수현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달라고 했다.
국일관의 손님들이 앉는 소파에서 김철수와 이야기하던 최수현이 서둘러 다가왔다.
“최수현씨. 촬영된 테이프를 확인하시고 불만이 계시면 말해 주세요.”
최수현은 신중하게 촬영된 테이프를 돌려보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강산은 방금 전만 해도 얼굴이 너무 굳어 있어서 말을 걸기도 어려웠는데, 촬영이 끝나자 최수현의 얼굴이 생기를 되찾은 듯 했다.
“어때요? 마음에 안 들어요?”
“아뇨. 아뇨. 완전 마음에 들어요.”
“그럼 이대로 마쳐도 될까요?”
“네”
* * *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지났다.
오늘 계획으로는 최수현의 뮤직비디오는 3시까지 끝내려고 했지만 벌써 4시가 다되었다.
벌써부터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나인수 선생은 오후 5시 정도에 온다고 연락이 와서 신림사거리로 나가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왔다.
5시 정도가 되자 나인수 선생이 남색 양복을 입고 머리에는 검은색 페도라를 쓰고 국일관으로 들어왔다.
나인수 선생이 들어오자 김철수가 먼저 다가갔다.
“아버지, 오셨어요.”
“그래. 네가 수고한다.”
나인수는 김철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밴드가 있는 무대로 올라가 밴드원들과 악수하며 차례로 인사했다.
“인수. 몸은 괜찮아?”
“어이 승호! 괜찮아. 괜찮아. 너는 요즘도 술을 마시니?”
“당연하지. 내가 술을 안마시면 누가 술을 마시겠어.”
“오늘은 손을 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그래서 그런지 오늘 승호 스네어가 울림이 다른 것 같은데.”
“맞아, 승호가 그냥 때리는 거 같은데 잔울림이 자연스럽게 생겨서 놀랐어.”
“그게 별로야?”
“아냐. 너무 너무 좋아.”
“그게 바로 승호가 섬기는 주님의 은총이야”
“승호는 항상 주님의 은총을 받고 있지. 하하하”
나인수가 무대 위의 밴드원들과 인사를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 강산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강산 감독님”
“아닙니다. 선생님”
“언제 시작할 예정인가요?”
“선생님이 준비되면 시작하기로 하죠.”
“그래요.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요?”
“오늘 촬영은 총 세곡으로 한 곡당 리허설 한번, 본 촬영은 세 번 정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네. 한 20분 정도 있다 시작하세요.”
“네. 첫 곡은 <애수의 소야곡>입니다.”
“알았어요.”
* * *
배인수는 간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담당 의사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고 요양해야 한다고 권한다.
노래를 하는데 담배를 조심하라고 해서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술 때문이었는지 간에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간경변증 증세가 심해지면서 의사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라고 수술을 권하고 있었다.
문제는 수술을 하고 나서도 노래를 계속할 수 있을까?
아마도 노래를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래를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무명가수지만 노래는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불렀다.
나인수는 지나간 인생을 생각해 보았다.
무명가수지만 노래 덕분에 2남 1녀, 아이들도 다 대학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들의 인생을 살아가서 원도 한도 없다.
마지막 남은 미련은 밴드 세션을 해주던 친구들이다.
그동안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남은 게 없다.
강제 은퇴하기 전에, 그동안 신세를 진 친구들과 사진처럼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었다.
“선생님. 밴드 반주를 사용하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 어려워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내 아들이 음향기사에요. 이 바닥에서 제법 유명해요.”
“선생님. 현장 녹음은 쉽지 않아요. 잘못하면 망치기 쉽거든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리고 결과를 보장하기 힘들어요.”
“결과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산이는 걱정하지 말고, 밴드 세션들이 참여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주세요.”
“선생님. 밴드가 참여하면 저는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강산이 뮤직비디오를 거절해서 다른 감독들을 찾아보았지만 트로트를 만드는 뮤직비디오 감독은 많지 않았다.
어렵게 찾은 감독을 만나 보았지만 만들어 놓은 작품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다 돈만 밝히는 것 같아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수술 날짜는 하루 이틀 다가오는데 뮤직비디오를 찍을 감독을 찾지 못했다.
잘못하다가는 뮤직비디오를 촬영도 못하고 은퇴해야 할 것 같아서 안 피우던 담배도 입에 물었다.
그런데 아들인 철수가 강산 감독이 뮤직비디오 촬영을 오케이했다고 전해주었다.
다행이다.
강산이 만든 뮤직비디오들을 다시 보니 나인수의 취향에 맞았다.
나인수는 밴드 연주를 해줄 세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들은 나인수의 건강 문제를 알고 있는지 흔쾌히 참여해 주었다.
문제는 나인수의 건강이다.
정신적인 문제인지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피곤함을 자주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인수는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컨디션 조절을 해왔다.
* * *
무대 위는 어둠으로 가득하다.
다운 라이트가 켜지자, 무대 위에는 아코디언을 들고 앉아있는 심상락 선생이 노래하듯이 ‘부-우’하고 바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애수의 소야곡> 1절을 아코디언으로 마치고 페이드 아웃하자, 다시 옆으로 다운라이트가 내려왔다.
조명 아래에는 백운규가 통기타를 들고 앉아 있다가, 다시 전주 부분의 기타음이 튕기기 시작한다.
<애수의 소야곡>은 기타의 대가들이 많이 연주하는 곡이다.
‘땅다다 당단 따가다가당당’ 기타 전주가 마쳐갈 때, 아코디언이 ‘따다 따다’하고 들어오자, 나인수의 머리 위로 다운 라이트가 내려왔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나인수의 노래는 ‘남인수의 재림’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미성이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나인수의 노래를 들으면 남인수에 대한 그림움에 애간장이 녹는다고 했다.
원곡의 전설적인 가수 남인수는 <애수의 소야곡 1938>을 발표한 후, 조선 제일의 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남인수가 가는 곳에는 돈과 여자가 따른다고 ‘돈인수’ ‘여인수’라고 불렸다고 한다.
다음 곡은 박재홍의 <유정천리, 1959>.
“가아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나인수는 몸이 풀렸는지, 가벼운 제스쳐로 박자를 맞추고 리듬에 온몸을 살짝 살짝 흔들면서 노래를 불렀다.
간주부분에서는 기타와 아코디언이 대화를 하듯이 연주했다.
이 노래는 남홍일 감독의 영화 <유정천리 1959> 주제곡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가난 때문에 죄를 짓고 아버지가 교도소에 가고, 어머니는 정부와 눈이 맞아 가출한다.
졸지에 고아가 된 어린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 거리를 헤맨다.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나온 후, 우연히 만난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어린 아들이 안성기 배우라고 한다.
영화 <유정천리>는 개봉시기를 잘못 타서 흥행에 실패했지만 노래만은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이 노래는 1960년 2월,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미국에서 급서한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 박사를 애도하고 자유당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개사되어 널리 퍼졌다.
원곡의 박재홍은 구수한 음색이 매력적이다.
나인수는 맑은 미성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애틋한 감정을 노래했다.
노래도 훌륭하지만 나인수의 행복한 미소와 표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노래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마지막은 <태양이 뜨거울 때 1966>.
‘태양이- 뜨거울 때, 가슴이 날개 칠 때~’
째즈풍의 이 노래는 길옥윤의 곡으로 패티김의 카리스마가 듣는 이의 심장을 뜨겁게 하는 노래다.
패티김의 본명은 김혜자다.
패티김은 미8군에서 59년 초부터 노래를 불렀는데 미군들이 김혜자라는 이름을 어려워했다.
김혜자는 당시 자신이 좋아하던 가수 패티 페이지(1927-2013)의 이름에서 패티를 따서 패티김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나인수는 원곡보다 좀더 째즈하게 편곡하고 패티김 못지않게 자신 있게 노래를 불렀다.
강산도 감탄한 부분은 원곡에 없던 간주를 부분이었다.
원곡은 ‘영원보다 더머어얼리 꽃피어라 푸른 꿈아’ 하고 바로 ‘미소를 잊지를 마알고, 걸음을 멈추지 말고’로 넘어가지만 나인수는 잠시 노래를 멈추었다.
잠시 암전,
갑자기 무대 중앙에서 트럼펫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운 라이트가 커지고 무대 중앙에는 나인수가 트럼펫을 불고 있었다.
나인수는 재즈 연주가 쳇 베이커처럼 ‘삐-익’ 첫 음을 비명 같은 불협화음을 길게 내뱉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긴 호흡의 트럼펫을 내뱉은 후, 다시 트럼펫은 째지하게 원곡을 재해석 하고 노래를 부르듯이 흥을 타다가 트럼펫이 멈추고 무대가 어두워졌다.
다시 다운 라이트가 커지고 나인수 특유의 미성의 고음이 흘러나왔다.
“미-쏘를 잊-지를 마알고~”
나인수가 다시 첫 음을 내뱉을 때, 밴드 세션들은 아무도 반주를 하지 않았다.
나인수는 반주 없이 목소리 만으로 텅 빈 무대 위를 가득 채웠다.
노래의 내공이 적지 않음이다.
강산이 감탄하고 있을 즈음, 헤드폰을 쓴 탁성재의 신호로 다시 반주가 시작되고 노래의 마무리를 향해 달려갔다.